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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 최후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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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베수비오산에서 폭발한 대규모 화산
으로 인근의 폼페이 주민 수천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높이가 1,281m인 베수비오산이 분화하리라고는 당시 사람 누
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유럽 대륙에서 유일한 활화산이었지만 900년이 넘도록 한번도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수비오산은 화산지역에서 보이는
거친 바위나 흙은 커녕 산꼭대기까지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져
기원전 1세기에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일으킨 검투사들과 노예
들이 이 곳으로 도망쳐 숨을 정도였다. 이것이 사망자 수를 늘리
는 결과를 낳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분화로 인한 피해보다 소리없이 덮쳐온 화
산재가 피해를 더 확대시켰다. 화산재를 잔뜩 머금은 안개구름
이 낮게 깔리면서 질식된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비극은 이튿날
인 25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폼페이는 돌멩이와 화산재 밑에 매몰되었고 높이는 4m에 이를
정도였다. 게다가 막판에는 화산재가 섞인 비까지 내려 이 돌멩
이와 화산재 더미는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희생자수가 2천명이라는 사람도 있고 5천명이라는 사람도 있다.
당시의 폼페이 인구는 1만5천 내지 2만명 정도였다.
매몰된 폼페이의 존재는 15세기까지 잊혀져 있었다. 16세기 말
부터 소규모의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발굴이 본격화해
지금까지 옛 시가의 절반 정도만이 발굴된 상태다.
전성기에 갑자기 파묻힌 폼페이는 오늘날의 우리가 로마인들의
당시 생활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첫댓글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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