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부르심과 교회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지도자들은 불쾌하게 여겼다. 베드로가 기적을 일으켜 낫게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그들 말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사도들은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고 여겼던 거다. 예수님 부활이 사도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들에게는 가짜 뉴스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당신을 죽게 한 모든 이들 앞에 나타나셨다면 그런 갈등과 대립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그건 세속적인 생각인가 보다.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로 가르치실 때 이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실제로도 친구 라자로를 되살리시자, 그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이들도 있었지만, 지도자들은 예수님도 라자로도 다 죽이기로 결의했다.(요한 11,53; 12,10)
부활은 기적이나 깜짝쇼가 아니라 신앙의 세계다. 불치병이 낫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건 이 세상에서나 기적이지 하느님 나라에서는 당연한 사실이다. 거기서는 질병도 죽음도 없이 모두가 온전하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이들은 모두 살아있다. 소생한 라자로는 죽기 전처럼 동생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더 살다가 다시 죽어 완전히 묻혔을 거다. 다시 한번 더 되살아나는 일은 없었거니와 라자로도 그걸 바라지 않고 편안히 묻혔을 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저기, 그것도 믿는 이들에게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실 뿐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아버지 하느님 안으로, 영원한 세상으로 되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러 오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수님이 벌이신 하느님 나라 운동은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죄인들이 모인 데라서 말도 탈도 많고 심지어 역사를 보면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비리와 교회의 조직적 범죄에도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성령님이 머무시는 곳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다.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지고 모든 이가 하늘나라로 초대받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하늘나라 시민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아버지 하느님이 정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44) 하느님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신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십자고상을 보고 나무에 시체를 매달아 숭배하는 종교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거기서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사람도 있다. 교회에서 봉사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도 교회에 나온다. 내가 안 믿는다고 해도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걸 죄라고 고발하는 법은 없다. 그런 법조문은 없고 사람이 이기적인 게 당연한 건데,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양심이 뭔가에 찔리는 듯하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은 걸 죄라고 여긴다. 그게 악행이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거다. 우리는 십자고상에서 한없이 깊은 사랑과 무한히 넓은 자비, 하느님의 신비를 만난다.
예수님,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교회는 주님이 불러 모으신 죄인들이 사랑을 배우는 커다란 학교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 신비로운 눈으로 하느님 나라를 보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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