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리 수국을 생각하는 밤 / 박숙경
카페인에 덜미를 잡힌 잠이 잔금 투성이다
낄낄대며 날뛰는 초침들 방안을 휘젓는다
엎드렸던 적막이 뒤채다 흩어진다
가랑이 사이의 노묘(老猫)
색 바랜 분홍 코를 앞발로 감싸고
뒷다리를 한껏 잠 속으로 뻗고 있다
나는 누운 채 분침처럼 천천히
등을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짚은 손보다 이마가 싸늘하다, 나는 흘러든다
괜히 손가락이 가려운
오늘 밤을 어디에 둬야 할까 나를 스쳐간 별의 이름은 무엇일까
허기졌던 시간들을 비켜가는 방법으로 네가 왔을까
이쯤이면, 꼬리가 꼬리를 무는 꼬리의 시간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나름 살아 있음을 알리는 둥근 등과 긍정적인 고요와
자정의 모퉁이를 넘어와 반비례인 쓸쓸함
문득 나에게 다가왔던 말과
내게서 멀어져간 것들을 떠올리며
비바람 치던 종달리를 생각한다
-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달아실출판사, 2024.
감상 –박숙경 시인은 길에서 파양된 고양이를 식구로 들여서 초롱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초롱이는 열아홉 해를 동거하고 먼 길을 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장으로 예우를 받으며 떠났으나 초롱이로부터 받은 게 더 많다고 박숙경 시인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위 시는 초롱이를 떠나보내기 전의 자정 무렵이 시의 배경으로 보인다. 아프고 기운이 빠진 초롱이지만 그날은 곤히 잠들었고 시인은 평화와 고요 속에 내면과 먼 데를 오가는 생각과 상상으로 풍경 그윽한 언어의 집을 짓는다.
“오늘 밤을 어디에 둬야 할까”
“나를 스쳐간 별의 이름은 무엇일까”
묻는 말이 묘하게도, 잊고 있는 일상의 감각을 깨우면서 사색의 장을 마련해준다. 그 느낌 또한 시인의 전번 시집 제목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그대로 퍽 다정하기도 해서 짐짓 시계 분침의 속도로 머물게 된다. 아마 이런 다정함은 자신에게 오고 가는 관계와 인연을 반짝이는 ‘별’로 여기는 시인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흔히 존재의 귀함을 빗대서 우주 하나와 맞먹는 걸로 얘기하기도 한다. ‘나’란 존재가 있어 우주를 인식할 수 있는데 그런 ‘나’란 존재의 소멸은 우주의 소멸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다. 우주적 시각으로 보면 인간도 고양이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어린왕자가 별로 돌아가듯 고양이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초롱이가 먼 길을 떠난 지금, 박숙경 시인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하나를 초롱이로 생각하며 자신 또한 반짝이는 눈빛이 되었을지 모른다.
노묘가 주는 위안에 기대어 시인은 자신에게 다가온 것과 떠나간 것을 돌아보되 이렇고 저렇고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아주 간결하고 멋진 마무리를 선보인다. “비바람 치던 종달리”라니! 종달리에 가본 사람은 가본 대로, 종달리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못 가본 대로 풍경화를 마구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내 상상의 화판엔 해변의 수국 대신 돌담 아래 울고 있는 아기 고양이가 먼저 지나간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