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세아니아 순회 강연 중 세 번째 순서로 뉴질랜드 오클랜드(Auckland)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숙소에서 새벽 5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시드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시드니에 머무는 이틀 동안 운전 봉사를 해준 표정민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금강경 책을 사인해서 선물하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드니에서 잘 지내다 갑니다.”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다가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시드니 공항을 8시 4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10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55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2시간이 앞당겨져서 벌써 오후가 되었습니다.
공항을 나오니 박정윤 님 부부와 동생, 뉴질랜드 강연 준비를 해주신 김진현 님이 마중을 나와서 꽃다발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해외를 많이 다녀서 피곤하시겠어요. 비행기를 타실 때는 좌석이라도 넓은 자리에 앉으시지 매번 좁은 좌석에 앉아 계신 사진을 봤습니다.”
“눈 감았다 뜨면 똑같아요” (웃음)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박정윤 님은 40년 전 고등학생 때 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인연이 있고, 동생 분도 같은 시기 중학생 때 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박정윤 님이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때 동생이 가출했는데 스님께서 돌봐주셨잖아요.”
스님도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출했다고 연락이 와서 알아보니 서울로 왔더라고요. 어린이 공원을 구경시켜 주고 술 한잔을 샀죠. 그런데 제가 가니까 술잔을 막 숨기더라고요. 그래서 절에 재워주겠다고 설득해서 아이들을 절로 데려갔어요. 늦은 밤에 대웅전이 쿵쿵거려서 가봤더니 아이들이 참회한다고 절을 하고 있었어요. 그게 벌써 40년이 다 되었네요.”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법문을 다 행하지는 못해도 평생 동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
약 40분을 이동해 오늘 숙소인 박정진 님의 댁에 도착했습니다.
10년 전 스님이 뉴질랜드에 강연을 하러 왔을 때도 이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10년 전 스님과 찍었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함께 차를 마시며 그간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오후 5시에 오클랜드의 서쪽 쿠뮤(Kumeu)에 위치한 한국절인 남국선사를 방문했습니다. 불사를 새롭게 하면서 선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키자는 의미에서 절의 이름도 남국정사에서 남국선사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10년 전 스님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남국선사 신도분들이 강연 준비를 도맡아 주었습니다.
법당을 참배하고 남국선사의 주지를 맡고 있는 법일 스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강연장에 가서 스님을 찾아뵈려고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스님께서 직접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주지 스님이 내어준 따뜻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법당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법일 스님은 6년 전 뉴질랜드에 와서 불사에 전념해 왔는데 곧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새로 지은 법당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이제 막 봄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푸른 들판 위에 연꽃 모양의 법당이 아름다웠습니다.
“곧 강연 시간이라 이제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저녁 6시 10분에 남국선사를 출발하여 차로 30분을 달려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랑기토토 컬리지(Rangitoto College)입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대강당을 빌려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분 전에 강연장에 도착해서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남국선사 다도팀과 잠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10년 만에 만난 신도 회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 어떻게 10년이 지났는데 하나도 변함이 없으시네요. 촘촘한 일정을 갖고 사시는데도 이렇게 변함이 없으시니 기적 같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야 놀기 삼아 다니니까요. 오늘로써 한국을 떠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스위스, 독일, 튀르키예, 부탄을 차례대로 방문하고, 엊그제부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강연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보름이 더 남았습니다.”
“스님께서 건강하신 게 저희에게는 복입니다.”
“고맙습니다.”
곧 강연 시간이 되어 스님은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 교민 5백여 명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1층이 꽉 차고 2층에도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저녁 7시 정각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한 후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 온 때가 얼마 전인 줄 알았더니 벌써 10년 전이었다고 하네요. 세월이 그만큼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못 느낄 텐데요. 늙으면 세월이 정말 빨리 갑니다. (웃음)
2014년에 제가 세계를 한 바퀴 돌면서 115일 동안 115회 연속 강연을 했습니다. 아프리카 빼고 전 세계를 다 가봤습니다. 그 당시에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강연을 한 후 이곳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강연을 하고, 그다음에 호주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네요. 다들 안 죽고 살아계셔서 반갑습니다.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번 해외 일정은 한 달간의 일정입니다. 매일 한 군데씩 도시를 이동하며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보름 전에 스위스와 독일을 방문하고, 튀르키예, 인도, 부탄, 태국을 거쳐 어제 시드니에서 강연을 하고 오늘 뉴질랜드에 왔습니다. 앞으로 멜버른, 퍼스, 브리즈번, 동티모르를 거쳐 북미 서부 지역인 시애틀,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LA, 샌디에이고로 갈 예정입니다.
이동을 많이 해서 힘들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비행기가 힘들지 제가 힘든 건 아니에요. 저는 비행기 타고 먹고 자고 하다 보면 저절로 도착지에 가 있습니다. (웃음)
어떤 일이든 자꾸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이 듭니다. 관점을 확 바꿔서 ‘짧은 시간에 세계 10여 개국을 여행한다’,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도 나누면서 논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눌 대화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입니다. 우리는 살다가 괴로움이 많아지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주는 건가’ 아니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사주팔자 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괴로움은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빚어집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강연의 말미에는 현장에서 즉석 질문도 받았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은퇴 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다며 나중에 내가 죽을 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를 들으며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주변에 얌체 같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관계를 끊고 살아야 할까요?
“저는 작년에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은퇴했습니다. 시간이 남다 보니 제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를 좀 하고 싶었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정리하는 가운데, 몇 명 되지 않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와 너무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연락처도 차단하면서 한 명씩 정리하다 보니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새로운 사람을 좀 만나야겠다’ 하는 생각에 아는 분의 소개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보기에 굉장히 신앙심도 깊고, 점잖으며, 믿음이 가는, 진짜 괜찮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존의 집을 팔고 다시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분이 제게 목돈이 있는 걸 알았으며, 그걸 가로채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당할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 놀라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교회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직 사기를 당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런 소문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그랬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있어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의 규모로 망자의 인생을 평가합니다. 제가 죽었을 때, 제 딸은 괜찮지만, 사위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됩니다. 저는 스스로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아니면 그때를 생각해서 저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만나며 살아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며 사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좋은 사람만 만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고, 싫은 사람도 만나겠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어떤 선택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기 계신 여덟 분과 만난다고 해봅시다. 제가 며칠 지내보니 마음에 드는 분은 그중에 두 분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에 드는 분만 만난다면 이 두 분만 만나야 합니다. 제가 좋더라도 그중 한 분은 제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왜 사람을 한 명밖에 사귀지 못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겠다면 소수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겠죠. 반면 여러 사람을 만나려면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싫은 사람을 어떻게 만납니까?’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장사를 해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야 합니까? 아니면 좋고 싫은 걸 좀 뛰어넘어야 합니까? 좋고 싫은 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장사를 오래 하려면 속마음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장사가 잘됩니다. 좋고 싫은 걸 너무 따지면 손님이 다 떠납니다. 그러니 내가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면 싫은 사람도 수용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결과를 원하면 내가 좋고 싫어하는 걸 좀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소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는 전부 얌체 같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갔는데, 은퇴해서 돌아보니까 내가 왜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네, 그러시면 관계를 다 끊고 혼자 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물건을 사러 갔는데 너무 비싸면 사지 않고 그냥 돌아오는 방법이 있겠죠. 아니면, 흥정해서 좀 더 싸게 사 올 수도 있고, 꼭 필요하면 제 가격에 사 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이 물건을 꼭 사고 싶은데 가격을 깎아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하고 묻는 것과 같아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릴까요? ‘내 주변에 얌체 같은 사람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질문자가 얌체라서 그런 겁니다.”
“아니요, 저는 절대 얌체가 아닌데요.”
“제가 만약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가 계속 자기 의견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람은 고집이 참 세다’라고 말하면 저도 고집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나에게 고집이 없는데, 어떻게 상대를 향해 고집이 세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상대보다 내가 가진 고집이 더 세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상대에게 ‘그래, 당신 말이 맞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고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질문자가 주변 사람들을 얌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질문자에게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런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질문자는 약간 불안증이나 의심증이 있는 겁니다. 우선 병원 진료를 받아 보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처를 받아서 생겼는지 모르지만 의심병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불안증과 의심증 두 가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지금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까 의사가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하면 괜찮은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경안정제를 조금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의사가 권장하는 대로 약을 좀 복용하면 심리가 훨씬 안정이 돼요.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이 병인지 구분하는 경계를 95퍼센트 정도로 잡습니다. 95퍼센트 안에 들어가면 괜찮다고 하고, 그 경계를 넘어가면 병으로 분류하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많이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비율은 OECD 회원국 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런 증상을 정신질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진단을 받아도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으면 미래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거나 우울증 환자가 많은 이유는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데 방치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외국에 이민을 가서 생활하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이런 불안증이나 의심증이 더 많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시죠? 저는 여러분 중에 거의 절반은 불안증이나 의심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니 잘 모를 뿐입니다. 사람들은 낯선 곳을 가거나 잘 모르는 곳에 가면 대부분이 긴장하거나 불안해합니다. 또, 어떤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계속 의심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해서 오래 쌓이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이민을 온 사람도 늘 긴장하고 의심하며 사는 습관을 그때그때 해소하지 않으면 그게 쌓여서 습관이 됩니다.
첫째, 질문자는 병원 진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인생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면 소수만 만날 수밖에 없고, 다수와 만나겠다면 좋고 싫어하는 감정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좀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합니다. 밥을 사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가서 좀 도와주거나, 저처럼 이렇게 무료로 상담을 해주거나, 이렇게 어떤 덕을 베풀어야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오늘 오신 청중들이 왜 손뼉을 치며 좋아할까요?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보고 도움을 받았다거나, 뭔가 저에게 혜택을 본 게 있으니까 강연장까지 찾아와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과 사귀고 싶다면 좀 베풀어야 합니다. 내 감정을 움켜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성질이 좀 더럽다면, 그와 만나는 것이 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굉장히 친절하고, 말도 잘하고, 인물도 잘나고, 옷도 잘 입고, 씀씀이도 좋고, 뭐든지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은 사기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낚시할 때 내가 잡으려는 물고기에 따라 미끼를 다르게 쓰는 것과 같습니다.
질문자가 같이 일한 동료나 지인들이 성격이 별로라서 불편했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질문자에게 손해 끼칠 확률이 낮은 사람입니다. 질문자에게 괜찮게 보인 사람들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너무 친절히 다가온다면 약간 주의하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절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건 없습니다. 무조건 좋은 사람도 없고, 무조건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만약 오늘 여러분께 사기를 치려고 했더라면 당하셨을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이런 인간의 속성을 알아야 현명하게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기꾼이라고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전에 친절을 베풀었으니까요. 사기꾼도 친절을 베풀었으니 본전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걸 너무 나쁘게 봐도 안 됩니다. 질문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얌체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사람들과 연락을 끊으면서 더 편해졌습니다.”
“편해졌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안 오면 안 올수록 좋습니다. 죽은 뒤에 사람들이 조문을 많이 온다고 해서 질문자에게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건 다 자녀들이 돈벌이하는 겁니다. 예전에 냈던 부의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거예요.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고는 질문자가 살아있는 때는 상관이 있지만, 죽은 뒤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 수는 물론이고 장례 방식에 관한 문제도 망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절에 아무리 열심히 다닌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교회에 다닌다면, 나중에 장례를 불교식으로 할까요? 교회식으로 할까요?”
“교회식으로 하겠죠.”
“그건 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부모가 유산을 좀 남기면 형제자매들이 나중에 서로 다투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다고 자녀들이 서로 우애가 없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자녀들이 우애가 있도록 하려면 부모가 유산을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예전에 왕이 나라의 주인이던 시절에는 왕의 자식들만 왕이 될 수 있었죠. 그 조건에서는 형제들끼리 다투었지, 그 외 다른 사람을 해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위 쟁탈전에서 수십 명이나 되는 형제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도 그 형제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만약 질문자가 재산을 남기면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이 그 재산을 탐낼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질문자의 재산을 탐낼 수 있는 사람은 질문자의 자녀들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유산을 남기면 형제간에는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나쁘게 보시면 안 됩니다. 어떤 주식회사에서 다툼이 생기는 것도 내부 주주들 간에 다툼이 생기지, 다른 외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유산으로 인한 자녀들의 갈등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봐야 합니다. 내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기면 자녀들은 그걸로 다투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죽고 나서 자녀들이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란다면 유산을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그럴 경우 자녀들이 장례식에 안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웃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특별히 나쁘다고 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모두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그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내 선택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