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 증인
부활은 증명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토마스는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8,25) 나라면 다른 모든 이들이 주님을 뵈었다고 증언하니 저렇게까지 강하게 거부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그전에 그는 예수님이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그곳으로 다시 가시려고 하자 동료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했던 사람이다.(요한 11,16) 그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마음 준비가 돼 있었던 거 같다. 그런 사람이 왜 그랬을까?
주님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불의한 이들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할 수는 있어도 스승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도 역시 예수님에게 실망해서 바라빠를 풀어주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군중과 같은 마음이었을 거 같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죽는, 더 정확히 말하면 죽임을 당하는 구세주 하느님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었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입으로는 항상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의심이 인다. 정말 하느님은 무한한 자비를 베푸실까? 미사 성찬례 안에서 또다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걸까?
수도회 세계총회 시작 전에 대의원들은 피정을 한다. 지난번 피정 주제가 바로 오늘 복음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는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상처 입은 영혼들과 만나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상처 입은 그들은 악과 맞서 싸우다가 다친 이들이 아니라 불의와 폭력에 희생된 이들이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그때처럼 여전히 상처 입고 희생되신다, 가장 작은 이들과 함께. 두 군사 강국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마음 아프다. 만일 그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면 내 영혼은 다 녹아버릴 거다. 불의하게 수난하고 살해되신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이들과 함께 오늘도 고통받고 또 돌아가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당신을 따랐던 이들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분을 믿지 않은 이들에게 주님 부활 소식은 그 추종자들이 만든 가짜 뉴스에 불과했다. 부활은 증명이 아니라 믿음과 증언의 대상이다. 상처 입고 고통받는 이들에게서 어떻게 주님이 계시는지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고 그들 상처에 손을 댄 이들은 토마스 사도처럼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우리 신앙은 공동체적이다. 산속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게 아니다. 거칠고 여전히 불의한 세상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증언한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초대 교회 교우들의 삶은 가장 이상적인 교회 모습이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그런 공동체에 속한 이들은 하느님을 부정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상처 입은 이들은 모두 그 안에서 치유를 받았을 거다. 그 아름다운 일들은 모두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이 빚어낸 거다. 인간적인 계획과 몇몇 뛰어난 인물의 능력만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었거니와 2천 년을 이어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계신 하느님,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예수님, 주님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이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저희 마음과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들과 마음이 통하고 그들 상처에 손이 닿아야 제가 부활하신 주님을 제대로 선포할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파스카의 신비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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