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세아니아 순회강연 중 네 번째 순서로 멜버른(Melbourne)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6시에 오클랜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아침 해가 떴습니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여 뉴질랜드 정토회 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오전 8시 50분에 이륙하기로 예정된 비행기는 40분 연착이 되어 9시 30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4시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11시 30분에 호주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입국 수속을 한 후 공항 밖으로 나오니 멜버른 정토회 회원인 김승주 님과 최영희 님 부부가 꽃다발을 전하며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멜버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숙소로 향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오후 5시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부터 멜버른에는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박스 힐 시청(Box Hill Town Hall) 건물입니다. 다양한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박스 힐 시의 랜드마크 시립 건물인데 오늘은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청중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자 대강당이 준비한 300석이 빈자리 없이 가득 찼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먼저 즉문즉설을 하는 방법과 취지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즉문즉설은 특별히 질문을 준비해서 묻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형식의 대화가 아닙니다. 그저 친구와 친구가 차 한 잔 마시면서 ‘친구야, 내가 이런 문제가 있다’ 이렇게 고민을 내놓으면 특별히 답이라고 할 것이 없지만, 대화를 통해서 본인이 가진 의문이나 스트레스나 괴로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대화를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꾸 ‘즉문즉답’이라고 표현하거나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탁 정답을 주십니까?’ 하고 묻는데, 이것은 즉문즉설의 취지를 전혀 모르는 표현입니다. 즉문즉설은 그냥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의 실마리가 어느 정도 풀리는 대화를 옛날부터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 ‘설(說)’자를 써서 ‘즉문즉설’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괴로운 것이 바로 대화의 주제
지식적인 것을 질문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굳이 아까운 시간을 할애해서 지식적인 것을 대화의 주제에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백과사전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지만, 요즘은 바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굳이 아까운 시간을 내서 지식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 대한 고민은 인터넷에 검색한다고 해서 속 시원한 해법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인생살이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대신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본인이 지금 괴로운 것이 바로 대화의 주제입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나이 사십에 아이 셋을 가진 돌싱남을 만났지만 상대가 아이를 갖기 원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싶은데, 결혼 상대가 아이 셋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10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작년에 헤어지고 40이 가까운 나이에 올해 처음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아이가 셋 있는 이혼남으로 아이를 더 낳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이분이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띨 때 저는 이 사람이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분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도 이분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과 아이 기르는 경험을 함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슬픕니다.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지금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괴로운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이분과 계속해서 건강한 만남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는 아이 셋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려면 그 세 아이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결혼해야지, 상대가 싫다는데 거기에 또 내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면 질문자가 너무 이기적이에요. 내 아이를 낳고 싶으면 그 남자를 포기하든지, 그 남자와 결혼하려면 그 남자의 세 아이를 내 아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갓난아기를 키우려면 힘이 많이 드는데 다 키워놓은 아이 셋을 내 아이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에 저라면 젊은 여자 말고 할머니 하고 결혼을 하겠어요. 그러면 손자까지 한꺼번에 다 생기잖아요. 결혼하면 키워놓은 아이들 셋이 다 내 아이가 되는데 뭣 때문에 힘들게 아기를 낳아서 키우려고 해요? (모두 웃음)
지금 질문자가 내 아이를 낳겠다는 건 좀 이기적인 행동이고,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려면, 그 남자가 아이를 낳자고 해도 ‘당신 아이도 셋이나 있는데 뭘 또 낳아요? 지금 있는 아이들을 잘 키워 봅시다!’ 이렇게 말해야 오히려 둘의 사랑이 깊어집니다. 질문자가 아기를 낳는 건 자유지만 생각을 좀 바꾸셔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기를 낳고 싶으면 같이 살다가 남자와 의논할 필요 없이 적당할 때 기회를 봐서 요령껏 아기를 낳으면 됩니다. 그러면 남자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걸 뭐 의논합니까? 남자는 아기 낳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여자는 아기가 생기기를 원하면 요령껏 낳아버리면 되잖아요. 남자가 문제 제기를 하면 ‘우리가 조심했는데 생겼네!’ 이러면 되죠.” (모두 웃음)
“네, 알겠습니다. 저는 호주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전 남자친구와 10년의 연애가 끝나고 나니까 이 큰 땅에서 혼자 사는 게 외롭습니다. 해외에서 혼자 사는 여성이 어떻게 외로움을 잘 극복하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뉴질랜드 북동쪽에 있는 섬나라 피지(Fiji)로 이사를 가세요. 거기는 땅이 작으니까 외롭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외로운 것이 땅이 크냐 작으냐 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웃음)
“혼자 해외에서 사는 게 두려울 때가 있어요.”
“그럼 한국으로 가면 되죠.”
“네, 그러면 되긴 하죠.”
“필요하면 한국으로 가면 되기 때문에 해외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스님도 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애도 키우고 싶고, 이런 건 욕심입니다. 해외에 왔으면 주류가 되고 싶다는 것은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민을 오면 인종적으로도 주류가 될 수 없고, 언어적으로도 주류가 될 수가 없잖아요.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수자가 되는 게 싫으면 한국으로 가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주류가 되는데 뭐 때문에 자꾸 해외에 와서 소수자 취급을 받는다고 문제를 제기합니까? 소수자라는 이유로 정말 인권적인 침해를 한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수자라고 취직을 안 시켜준다거나, 식당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면, 법에 보장된 범위에서 항의하고 개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는 수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애가 셋 있는 남자와 결혼해 놓고 그 남자가 자기 자식을 보고 기뻐하는 것에 대해 질투가 난다면 처음부터 그런 결혼을 안 해야 합니다. 그 남자가 애들 엄마하고 만나서 같이 밥 먹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거나 자꾸 의심이 든다면, 그 남자와 결혼을 안 해야죠. 애가 셋 있는 아빠가 애들을 위해서 애들 엄마하고 같이 잘 지내줘야 애들이 잘 자랄 것 아니에요?”
“네, 그분은 애들 엄마와 굉장히 잘 지냅니다.”
“애들 엄마하고 잘 지내는 것을 질투한다면 결혼을 안 해야죠. 그리고 질문자도 10년간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면 혼인신고만 안 했다 뿐이지 결혼생활을 10년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데 왜 질문자는 마치 처음 결혼한 것처럼 이야기해요? 하여튼 뭐든지 다 자기중심적으로 말을 하네요. ‘나도 재혼이다. 10년간 결혼생활을 했는데 애가 없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죠. (웃음)
지금 갓난아기를 또 낳아서 키운다는 건 그 남자한테도 부담이고 질문자에게도 부담입니다. 남이 키우는 아이를 그냥 내 아이로 삼아버리는 것이 제일 편해요. 어차피 20살이 넘으면 아이들을 다 집에서 내보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집을 나가야 하는 아이들이에요. 그래서 신경을 별로 안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즉석에서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더 있는지 묻자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