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 빵점
대한민국에서 손재주 제일 없는 사람 선발대회를 가진다면 분명히 1등 하리라 본다. 나처럼 손재주 없이 태어난 사람 또 있을까. 손으로 다루는 평범한 재주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음악 미술 체육도 빵점이고, 그리고 삽질 곡괭이질 망치질 낫질 망치질등 연장 다루는 능력 역시 마찬가지이고 글씨도 지렁이가 기어가니 완전 기계치이다 아런 현상이 유전때문인가 생각해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재주 없는 손 가지고 여러 일을 하면서 엄청난 고통과 더불어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받아야 했다. 특히 악필은 주위로부터 빈정을 당했다.
학생시절 손으로 하는 학습은 공책에 글쓰기 음악시간 악기다루기 미술시간 체육활동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든 활동에 잘 해 나갔지만 그렇지 못했다. 특히 초등학교때 공책검사 받으면 학교에선 담임에게 집에선 부모님한테 엄청 혼났다. 초등학교 5학년때 8절지 색도화지로 응원도구용 부채를 만들었다. 폈다 접다 하는 부채인데 반장짝궁과 함께 만들었다. 짝꿍은 나보고 그거하나 못만드냐고 타박을 하였고 어떻게 어떻게 헤서 여러개를 만들었다.
미술시간 그림 공작 역시 0점에 가까웠으며 미술교사로부터 혼났고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이라는 평에 자존심을 당하여야 했다.
체육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등학교때 뜀틀넘기와 철봉못해 곤혹을 치루었고 고입 체력장중 수류탄던지기를 제대로 못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어느날 학교에서는 각 과목마다 공책검사를 받았다. 여러 선생님은 학생들의 공책을 자세히 보지않고 검인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닭대가리라는 별명을 가진 국어교사는 예외였다. 국어시간 1번부터 60번 전학생들이 공책 가지고 나와 검사를 받았다 안가져온 학생은 잉크 묻힌 도장을 얼굴에다 3번 찍었고 제대로 쓰지 않은 학생에겐 2번 다 썼으나 글씨 못쓴 학생은 1번 찍었다. 공책 검사 끝나고 나포함 대상 학생들이 나갔고 3번찍힌 학생들은 긴 막대로 허벅지 10대 2번 찍힌 학생은 5대 1번찍힌 학생은 3대 맞았다. 맞은 학생들은 너무 아파 고통을 겪었고 마지막으로 맞은 학생은 2번 맞고서 주저앉았고, 바라본 학생들은 놀란표정을 지었고 집에와서도 통증을 느껴야 했다.
글씨 잘 쓰려고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학생때 친구가 내 글씨보고 애들 글씨라고 놀려댔고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엄청 혼나야 했다. 대학시험은 직접 논문식으로 써서 낸다. 아버지는 야 너 시험지에 글씨 잘 쓰냐고 물으셨고 나같으면 점수 낮게 준다고 말씀 하였다. 작년 글씨교정학원에 갔었다 비용도 만만하고 이제와서 교정한들 의미가 없어 그녕 나왔다.
제일 못하는 두가지 과목이 있었다. 기술과 공업이었다 . 두 과목은 서로 상통하는 과목인데 공부해도 실력이 오르지 않했다. 누군가가 영어 수학도 아니고 단순 암기과목인데 왜 못하느냐고 묻겠지만 나에겐 통하질 않했다. 실업분야는 이론 실기 완전히 바닥이라 볼 수 있다
군대가서 커다란 고통을 당했다. 군대가서 받은 보직은 통신이었고 통신중에서도 제일 힘든 중가설병이었다. 중가설병은 전봇대를 올라가서 전화선을 깔고 수리하는 병과이기에 혹독하였다. 고참들 보면 능수능란하게 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뺀찌나 니퍼로 야전선 결선 결박은 기본이고 로프 맨전주 카우를 이용하여 곡예사처럼 전봇대를 타는 훈련을 받아야했다. 잘 못하면 고참들한테 엄청 맞아야했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당했다. 능숙하게 잘하는 병사도 있지만 겨우 겨우 버텨나갔고 나중엔 많은 전봇대를 탔다.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가정살림 하듯 살아가도록 유지해야한다. 병사들은 1년 내내 훈련만 받는게 아니다. 거기에 맞는 다양한 일을 하며 삽 곡괭이 톱 등 가지고서 사역이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작업을 한다. 내무반엔 병사마다 개인 관물대가 있는데 군복 체육복 속옷 양말 세면 위생도구를 넣는다. 옷의 경우 가진런히 접어 층층별로 넣는데 흐트러짐이 없이 마치 두부를 반듯하게 자르듯 넣어야 한다. 그걸 못해서 관물대가 흐트러지면 상응한 댓가를 받는다. 못해서 무척 혼났다.
졸업후 누구 소개로 어느 회사에 이력서를 써서 냈는데 받는 사람이 이력서 보고서 한 장 더 달라고 하였고 글씨를 잘 써야 한다고 훈계를 하였다.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공무원이 되었다. 그땐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공문서와 업무용장부에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야한다 처음 들어가서 잘못 쓴 숫자가 있어 빨간볼펜 긋고서 위에다 다시 써야했다. 상사는 장부를 보더니 답답했다. 후에 교육청으로부터 종합감사를 받았으며 감사관은 장부를 보더니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 하면서 악필 때문에 능력 이하로 취급했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나도 악필의 고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났다.
벌초가서 낫질 못해 어른들한테 엄청 혼나야 했다. 하필이면 손가락 하나가 낫에 베여 피를 흘렸고 아버지로부터 잔소리를 심하게 들었다. 한번은 누구 농사일 도와주었는데 요령이 없는지 기술이 없는지 엄청 힘이 들었다. 운전면허증이 없다. 자칫 잘못 다루었다간 엄청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것과 기본적인 정비 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고통을 겪었던 일이 많았다.
지금와서 손재주 없다는 것 자책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현실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손으로 작업 하는것도 거의 없으며 글씨 쓸 때 자 대고 쓰기도 한다.
지금은 육체적 손재주보다 정신적 손재주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옳고 가치를 가지는 손이 되어 제주를 부리는 일이다. 가치없는 손을 가지고 재주를 부린디면 악마나 다름없다 . 즉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된다면 가치 없는 손이고 나가선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올바른 마음으로 할일을 한다면 가치있는 손이되어 떳떳한 손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격언에 ‘바보와 손잡지 마라’ 말이 있다. 제 아무리 똑똑해도 바보와 손 잡으면 모든 것을 잃게 마련이다. 만일 바보와 손잡는다면 내 손은 더러운 손이되어 사랑없는 악마의 세계로 빠진다. 내 손 사랑한다면 지혜와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손을 내 스스로 경멸하는 것이다.
첫댓글
손재주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청우우표 님께선
군에서 통신대에 계셨군요
우리 오빠도 통신대에 근무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당시에...
이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대구에서 근무하셨다고 알고 있지요
6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