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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과 우리민족은 ‘형제국’이다!
-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 자료이므로 ‘단순참고’ 바랍니다.



(중국사서의 기록에 나오는 ‘치우천자와 묘족’)
(1) 사기
- 리동이국명야(黎東夷國名也) - 구리군호치우시야(九黎君號蚩尤是也) - 치우고천자(蚩尤古天子) - 삼묘재강회형주(三苗在江淮荊州)
(2) 예기
- 묘구리지후(苗九黎之後) - 구리위묘민선조(九黎爲苗民先祖)
위 사서들의 내용은
구리의 통치자는 ‘치우천자’이고 구리의 후예가 "묘민"이고 구리는 "묘민"의 선조라 하였습니다
즉, 동이/구리국의 백성이 "묘민"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기원전 2700년대에
중국의 시조라 하는 황제헌원은 한웅시대(구리,배달,신시시대)의 제후였던 소전의 아들(자손)로
산동성 ‘수구’에서 태어나 치우천자에게 반기를 들어 ‘쿠테타’를 꿈꾸었으나
치우천자에게 쫒겨 70여회의 전쟁에서 패하고
‘탁록’에서 사로잡혀 신하의 맹세를 하고 저 황토고원 ‘장안유역’으로 유배되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동이의 옥토 산동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장안북쪽 ‘황릉’에서 죽어 ‘서토(중토, 한족)의 시조가 되었다
이때 (기원전 2700년대) 구리국(배달, 한웅시대, 신시시대) 치우천자의 백성이 ‘묘민’이었으니 ‘묘족(=삼묘)’는 강회형주 유역에 살았다
① 강 = 현재의 ‘양자강’ ② 회 = 산동성 아래 ‘회수’ ③ 형주 = 하남성 ‘형주’ = 신라태자묘가 발굴된 곳
즉, 치우천자의 백성 ‘묘민’은 이 세지역을 주요 무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치우천자의 무덤이 중국 최고의 정사인 사마천 ‘사기본기’에 기록된 대로 산동성 동평에서 발굴 되었으니(치우총, 치우사 명문의 비석) ‘삼묘족’이 치우천자의 백성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호남성 묘족자치치구 회원현’에서는 ‘치우천자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사서에 기록된 대로 매월 10월달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양자강 이남 고산지대에 주로 거주하는 묘족들... 한족에 밀리어 중국남부로 서쪽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치우천자의 백성이 묘족이니 언젠가는 시조묘가 있는 ‘산동성 동평’으로 찾아가야하는 것 아닌가 ?
그곳이 바로 동이의 강역중 중심강역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연원으로 보면 ‘묘족은 형제국’인 것이다 !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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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들이 치우천왕을 기리며 만든 노래 중 <치우만가 蚩尤挽歌>
《蚩尤挽歌(치우만가)》
千古奇才横空贤, (천고기재횡공현) 可堪并论炎黄间。 (가담병론염황간) 五兵刑法君始点 (오병형법군시점) 九黎生气冲云天。 (구리생기충운천) 席卷中原华夏联, (석권중원화하련) 血染江河五千年。 (혈염강하오천년) 英名不因涿鹿败, (영명불인탁록패) 老黑石山百花鲜。 (로흑석산백화선)
(내용해설)
천고(千古)의 세월 동안 이어져오는 뛰어난 영웅인 치우천왕은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와 더불어 가히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다.
다섯 가지의 병기(兵器)를 만들었으며 형(刑)과 법(法)이 치우천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구리(九黎) 백성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화하족(華夏族)의 연맹세력인 염제와 황제를 무찌르고 중원대륙을 석권하니 5천년 동안 강물을 피로 붉게 물들게 하였다.
빛나는 영웅의 이름이 탁록(涿鹿)의 패배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흑석산의 온갖 꽃들이 여전히 선명하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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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이가 없는 글... 묘족은 국가가 아니라 중국내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데 그들과 우리가 형제국? 묘족은 자치지역을 이루고 살지 국가를 이루지 못했는데 형제국이라.... 아니면 우리도 중국내 소수민족이란는 뜻에서 형제국이라는 단어를 쓰셨나? ㅉㅉ 기본 상식이 안된 자가 이런 글을 퍼오는지 쓰는지 모르겠지만.. 아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치우을 받든다고 형제니 형제국이니 라고 한다면 중국 한나라때도 치우를 모신 사당을 건립했다는데 그럼 중국과 우리가 형제국? 한가지 더 삼족오를 예로 들면 삼족오의 원형은 고구려가 아니라 중국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삼족오를 숭배하는 중국과 삼족오를 숭배하는 고구려는 서로 형제국
이냐는 말? 이야 이거 정말 좋은 떡밥이군요...중국이 고구려는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마당에 이보다 좋은 건수는 없을 테니...ㅉㅉ 생각 좀 하고 삽시다...
묘족이 지금은 국가를 이루지 못 했으니, 만약에 형제 민족 이라는 단어는 가능 해도 형제 국가는 아닙니다. 그리고 묘족이 고대에는 아무리 치우 천왕을 모신 부족 이라 해도 가까운 역사도 아니고 2천~3천년전에 같은 민족도 같이 우리와 하나의 국가로 내려 오지 않고 갈라져 지금의 중국 내부에서 소속 민족으로 자리 잡은 지금, 2천년 이상 따로 다른 민족과 살아 왔으면 혈족의 피가 달라졌기에 형제 민족 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같은민족이라고 볼수는 있겠죠. 지나는 한족 뭐 지금은 거의 순수는 없으니 다썩였겟지만 소수민족들이 많은데 그중 치우천왕 모시고있으니 긍정적으로 알아볼수는 있죠. 묘족만 형제라는데 왜 지나인과 형제가되는건지.. 삼족오의 원형은 지나에서 왔다닌 무슨 개같은소립니까...
삼족오는 동이족 우리고유의 문화로써 중국대륙에 건설한 이민족중 선비족 등등이 고대 동이족에서 분파한 족속들 입니다. 따라서 삼족오가 중국에서도 유행한것으로 분석 할수 있죠. 한가지 알고 싶은 것은 현재의 묘족들의 고유의 언어가 존재 하는지 아니면 만주족 처럼 언어가 고사 된는지 중요한 사항 입니다 그들의 고유한 언어는 어떤 언어 인지 어순이 우리와 동일한지 언어로 동족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중요한 거죠
근데 너무 오래전 예기 아닐까요? 근데 묘족들이 저렇게 안쪽에 살고있나요? 그간 좀 이동해서 저기 살고 있는거겠죠? 환단고기에는 묘족이 치우씨(치우천황)의 후손으로 나오고, 치우씨들이 단군조선시대때 번조선의 단군으로 봉함을 받았기때문에, 번조선지역에 아마 치우씨의 후손들이 뭉쳐살았을거라 생각되는데... 이후 위만에게 번조선이 무너진다음 뿔뿔이 흩어졌겠죠. 그래서 저기 정착한 걸까요? 치우씨들이 살던 변조선이 망하여 유민들이 떠돌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194년. 중국에 남은 후손이라면 한나라의 지배.... 2천년동안 중국과 역사를 함께했군요.
이글을 올리신 분은 현재 묘족들이 고유의 언어를 간직하고 있는지 아니면 소멸되었는지 정확한 증거 자료를 올려 주시면 묘족이 우리와 같은 족이면 학계에서 동이족은 현 중국대룩에 살앗던 우리와 다른 족속이다라고 주장한 부류를 일거에 퇴출시킬수 있는 중요한 사항 입니다.
풋 이럼 일본과 우린 그냥 뭐 ... 일제 식민시대는 통일이겠군 ...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또 뭐고 ... 친일한 사람은 또 어떻게 되고 ... ㅋㅋㅋ
맞는 말씀입니다. 이미 분화되어 각기 나름의 문화와 언어로 자립하여 산지 수천년이 지났다면, 통일이란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서로의 지향점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생활양식도 차이를 보이고, 뭉쳐산다면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불협화음과 오해 차별이 심화될수 있다고 봅니다. 그냥 각기 나라를 이뤄 사는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단, 같은 뿌리였다는 실증적인 역사가 입증된다면 이를 토대로 둘간의 유대감을 공고히하여 공동의 인류미래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쪽으로 이용하는건 좋겠지요. 그 이상으로 통합이니 영토를 뭉친다느니 그런 생각의 확장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나간 제국주의의 부스러기같은 생각이겠죠.
ㅡㅡ......이건 진짜쫌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