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고리 / 신순임
소장가치 따질라치면 골동품점 가야겠지만
한 시절 엄마 손에 놀아나던 것들이라
눈요기로 행복지수 높이기에 이만한 것 없어
일부러 들러 보는 안강장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 목마름 잊고 모로 누워
새 주인 기다리는 민속품 중
녹슬고 때 눌어붙은 달팽이 고리
돌돌 말은 몸속까지 햇빛 밀어 넣고
말라버린 촉수에 기 모아
누군가 알아봐 주길 고대하는데
여인네들 잠자리 들기 전
한옥 문고리에 숟가락 꽂던 때
돌쩍 빼지 않는 한 열 수 없는 잠금쇠로
쇳대도 필요 없이 요긴했지만
디지털 도어락이 집 지키는 세월
맘만 먹으면 열 수 있는 쇠붙이
아무도 알은척 않으니
스스로 달구어 가는 열기 범접할 이 없네
-『탱자가 익어갈 때』, 스타북스, 2023.
감상 – 신순임 시인은 양동마을 회재종택인 무첨당 안주인이다. 시의 양식을 빌려 전통 문화와 주변 풍속과 세상살이를 줄곧 이야기해왔다.
양동마을 앞을 흐르는 형산강은 경주에서 포항으로 빠져나간다. 양동마을에 닿기 전 안강 쪽에서 칠평천이, 기계 쪽에서 기계천이 형산강에 합류한다. 양동마을에서 차를 이용하면 기계장이나 포항 죽도시장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지만 차로 10분, 걸어서 한 시간 안쪽인 안강장을 제일 많이 이용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안강장은 4, 9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시인도 일부러 안강장에 들러 장보기를 하곤 했을 것이지만 이날만큼은 장보기보다 민속품 하나를 얻은 것에 더 만족해한다. 시인이 득템한 ‘달팽이 고리’의 실상을 알면 민속품이란 말을 쓰기에도 조금 쑥스러운 면이 있다. 굵은 철사를 몇 바퀴 돌리고 끝을 달팽이 뿔인 양 세워 마감한 것으로 문고리가 벗겨지지 않도록 쇳대 대신 감아두는 용도다.
골동품과 격이 다르고 민속품 축에서도 빠지는 꼴이지만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달팽이 고리’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준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쓸모도 그 용모도 아닌 “한 시절 엄마 손에 놀아나던 것”이기 때문이다. “녹슬고 때 눌어붙은” 달팽이 고리는 지난 어머니의 삶과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사물로서 의미를 더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배달앱 버튼으로 장보기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적잖다. 신순임 시인의 시와 삶도 그런 식이다. 한복 입고 장보기를 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마음이 그러하고, 인정을 갖고 주변과 소통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