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처럼
김남희
나는 칵테일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와인처럼 숙성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여행에서만큼은 컬러풀한 경험을 꿈꾼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도전한 후 숙성된 와인처럼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면서 버킷리스트가 아날까 생각한다. 내게 있어 버킷리스트는 사후 경험에 의한 것이며,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 중의 하나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에서 칵테일 클래스에 참가한 일이다. 총 두 팀, 인원으로는 7명 정도 호텔 칵테일 바에서 운영하는 칵테일 클래스에 참여했다. 사실 나는 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맥주 한 캔도 다 마시지 못할 정도로 주량이 약하고, 술자리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무료이기도 하고, 유명한 호텔에서의 칵테일 클래스는 처음이라 참여해 보기로 했다. 통역 앱을 켜 강사이자 바텐더의 수업을 경청했는데, 딸의 통역을 보태 진도를 따라갔다.
보드카, 위스키, 칵테일에는 그에 얽힌 문화와 전설 그리고 숨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술에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총 4~5종의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다양한 술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유럽이나 이탈리아 정원에서 유래된 술 이야기도 전해 들었으며, 꽃과 공주에 얽힌 이야기도 들었다. 칵테일은 이름있는 보드카나 숙성된 술들의 혼합체다. 햇살 밝은 정원에서 순수한 사람이 가꾼 듯한 순수한 맛과 향을 가진 칵테일은 보통 40도가 넘는 술들의 배합이었으며, 배합된 술의 색깔은 100도에 가까운 화려함이었다. 나는 수업에서 만든 칵테일을 조금씩 맛보았는데 칵테일클래스에서 만든 술을 모두 마셨다면 아마도 온전히 살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바텐더의 손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마지막 향을 입힐 때는 예술가의 손끝처럼 날렵했다. 바텐더는 먼저 칵테일을 계량하는 잔이나, 잔의 재질등을 설명했는데 칵테일을 만드는 일 또한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정확했다. 술의 온도, 잔의 재질, 숙성기간, 재료의 배합에 따라 칵테일의 얼굴도 다른 모습이 되었다. 술도 나름의 품격과 얼굴이 있는 것 같아 술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
밴쿠버로 오는 길에 와인 농장에도 들렀었는데 이곳에서도 술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는 와인의 숙성 정도에 따른 12종류의 와인을 맛보았는데, 와인 역시 숙성이 맛을 좌우했다. 사람도 와인처럼 숙성시킨다면 신과 같은 존재가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칵테일 클래스가 끝 난후 애프터눈티 시간을 가졌다. 이 또한 버킷리스트 목록에 오른 경험 중의 하나였다. 애프터눈티는 오후 3~5시에 즐기는 영국식 티타임으로, 차와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을 3단 트레이너에 담아 먹는 문화이다. 창가 좌석을 예약해 다양한 차를 마시며 디저트를 맛보았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레이크 루이스 호수의 풍경은 그야말로 일생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창문 너머 호수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고, 그것은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살아 움직이는 액자였다. 좌석 매니저가 각 디저트들의 색깔과 모양과 재료를 설명했는데 나는 호수를 보느라 그 설명을 순간순간 놓쳤다. 나는 너무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는 디저트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다양한 각도로 모양과 향을 음미한 후 조심스레 한 입 물었다. 그러나 맛은 생각보다 달았다. 짠 음식을 주식으로 먹고 단 음식을 디저트로 먹는 이 사람들과 간이 간간한 음식을 주로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맛의 미묘한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매니저가 알려준 차의 유래와 디저트를 만든 세프를 생각하며 애프터눈티를 즐겼다. 중세시대 귀족이 된 듯한 우아함으로 차를 마시며 나는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버킷리스트는 자신이 꿈꾸는, 그러나 쉽게 해 볼 수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때문에 버킷리스트를 아는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종종 잃는다. 버킷리스트는 그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게 도와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만의 리스트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적어본다. 아직 목록에 채워지지 않은 빈칸을 바라보면 가슴이 뛴다. 그 빈칸은 미지의 나를 부를 것이고 내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는 여정 속에서 새로운 시도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반갑다. 밋밋한 옥수수에도 맛있는 알이 차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