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기 - 나는 희망한다
' 2006년 독일 월드컵 & 제11차 전국사회복지대학생 정예화 캠프 '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에 사는 심 한 기
세상에는 다양한 열정이 존재한다. 월드컵과 정예화 캠프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열정의 색깔은 다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한국이 넣은 2개의 골은 전국을 열정의 순간으로 변환시켰다. TV시청률이 75%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우리는 열광했다.
한 방송의 아나운서는 토고의 국가가 나와야 될 상황에서 한국의 국가에 나온 실수에 대해 반가워하며, 한국의 승리를 돕고 있다고 했다. 승리는 기쁜 일이다. 열정은 살아가는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붉은색의 응원문화도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월드컵의 열정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환희와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100원을 투자해서 100,000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지상최대의 단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월드컵이 시작되었다는 점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코카콜라, 질레트, 아디다스, 현대자동차, 맥도날드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시작해왔던 월드컵에 대한 공식 후원의 의미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단기투자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인 것이다. 한 기업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1% 올리기 위해서는 1억 달러 광고비가 소요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질레트는 40%가 넘는 브랜드 홍보효과를 얻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등의 가난한 아이들은 하루 1달러의 생계비를 위해 지금도 컴컴한 창고에서 아디다스의 공을 만들고 있다.
2006년 월드컵의 시청자는 최소 400억이 넘는다 한다. 이는 코카콜라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월드컵에는 순수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 속에 숨겨진 자본의 열정이 있다. 재미있게도 그 자본의 열정 덕에 보통의 사람들은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다. 전 매체가 월드컵 홍보와 광고를 통한 열정을 보이고 있으니...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열정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500억이란 적지 않은 중계료를 낸 한국의 방송사들의 투자 덕에 우린 매일 24시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축구 속에 TV를 만나고 있다.
나라의 정치가 일 방향으로 몰아치는 지금의 판국에서 우리에겐 무언가? 아주 톡 쏘는 자극이 필요한 것인가? 결국 시원한 콜라와 골인장면이 우리를 흥분하게 하고 있다. 월드컵은 외형의 열정이다.
제11차 전국대학생정예화캠프가 시작되려한다.
'사회복지의 꿈과 열정' 이라는 표제어가 여전히 물결치며, 작은 열정들이 모여가고 있다.
그동안 전국대학생정예화 캠프는 많은 진화를 시도해왔다.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 당당한 선배를 만나는 것만으로, 한 곳에서 사회복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렸던 시작으로, 사회복지의 다양한 영역을 들추어보고, 새로운 도전들을 찾아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내 왔다.
전국대학생정예화캠프에는 각각의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도 있지만 캠프의 역사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열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자본을 근거로 한 열정의 업그레이드와는 사뭇 다른 진정한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내재적 열정이다. 나는 이 내재적 열정이 영원하길 희망한다. 상대방을 이겨서 얻을 수 있는 집단적 열정보다 더 아름다운 열정은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에서 만들어진 흔들리지 않는 열정이다.
그리고 이 내재적 열정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막연한 집단적 즐거움과 흥분에 자기 존재와 철학을 빼앗기지 않으며, 몇 명의 스타나 선동가에 의해 자신의 고민과 에너지를 몰아가지 않는다. 내재적 열정은 개인과 집단 모두 쌍방향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그것이 통일되지 않더라도, 무엇이 진정한 삶의 태도이며, 선택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즉.... 기존의 사회복지를 넘어서기도 하고, 기존의 사회복지에 대응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도 하고, 결국 사회복지라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진정한 청년의 열정이다.
사회복지가 최고야! 라고 노래를 들은 적 있다. 이번 11차 캠프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복지가 최고야!를 외치며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는 무조건 16강에 가야하기 위해 프랑스를 이겨야만 하는 축구의 열정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는 그 누구의 기득권도 아니며, 누구를 이겨야하는 또는 최고야 되어야 하는 이익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는 온 세상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공의 영역이다. 사회복지의 실천이 한 집단의 전유물처럼 느껴져서도 안되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가 최고야! 라는 노래의 의미는 온 세상에 진정한 사회복지를 실천하자는 열정으로 불리워져야 한다.
얼마 전 나는 보지 않았어야 할 것을 보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어느 전문가 집단들이... 어느 공공의 영역에서.. 사회복지 전문가, 전공자만이 그 영역을 점거해야 한다며, 생때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잘못된 열정에, 만들지 말아야 할 기득권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회복지는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우주적 행복의 실천이다. 그래서 전국대학생정예화 캠프는 벤처 정신, 자연주의 이론, 생태주의적 실천, 다른 영역과의 소통과 공존을 위한 시도들을 해왔던 것이다.
제11차 전국대학생정예화 캠프에 참가하는 청년들에게 희망한다.
진정한 청년의 열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자.
진정한 사회복지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자.
그리고 그 고민들이 월드컵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공유되길 희망한다.
2006년 여름 즈음... 비오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