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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과 산북을 가르는 산줄기 따라 비조산-왕의산 현리-비조산-왕의산-덕계-산양 2013/04/06
늘 옆에 두고도 아름답다 여기지 못한 낮으막한 산줄기를 간다고 문경 산양면 현리를 찾는다. 국회의장을 배출한 채씨 집성촌으로 고택이 더러 있으나 현대 서양가옥 중심의 삶의 방식으로 관심밖의 한옥으로 전락하여 허물기직전인 집들이 안타깝다. 군데군데 옛사람의 삶과 정취가 담긴 한옥이 잡초에 덮여 대지의 품에 안기려는듯 기울어진 게 안쓰러워 얼른 마을을 벗어난다. 돌담과 수년의 연륜을 쌓은 돌담초가 지붕으 층은 역사이련만 우리는 그 역사를 버리고 있다.
마을 뒤 제사를 지나 산을 오르니 서서히 옛 마을의 전경이 눈에 안긴다. 고색창연한 기와집이나 초가, 그리고 현대화와 잘살기를 부르짖던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개량지붕, 시멘트 철골조의 주택까지 어울려 전통도, 근 현대도 모두 공존한다. 뒤에 산자락 끝을 물고 앞으로 너른 들판과 서편을 감아 돌아가는 금천은 물굽이마다 소를 이루고 소가 있는 바위 언덕에는 정자가 아름답다. 한참동안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마을이 가진 독특한 정취를 감상한다.
고개로 내려온다. 꽤 너른 논밭이 북쪽의 금천까지 늘어서고 고개마루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쌓은 돌담이 수문장이 된다. 산줄기가 갈라놓은 남북의 마을들은 각기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산북으로는 다시 긴 산줄기를 끌고와서 마을을 이루고 내와 산 언저리가 만든 땅을 일구고 산양은 너른 평야를 펼치며 풍요로운 농촌을 생각하게 한다.
이어지는 산릉은 솔 숲과 잡목이 남북으로 판이하게 갈려 왼쪽 북은 활엽 잡목 숲이 이어지고 남쪽 산 기슭은 푸르름이 기운을 북돋우는 소나무 숲이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잘 잡은 묘역너머 산양의 작은 마을들이 들판을 앞에 두고 옹기종기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제공한다. 사계절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굵은 손가락마디를 가진 우리의 어버이를 생각한다. 산업화로 농업생산이 별게 아닌 것으로 전락한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산업을 일으킨 모든 힘은 우아스런 우리네 어버이들의 손끝에서 생산된 한줌의 농산물 아닌가. 그래서 우리네 어버이들은 참 위대하다.
비조산을 지나지만 팻말 하나 없어 어떤 봉우리가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비조산 아래 비조령에 서서 비조산이었구나 한다. 비조령은 너른 들을 가진 산양과 산이 많은 산북을 잇는 또하나의 중요한 소통로이면서 물자를 주고받은 교역로이기한 게다. 사람들은 고개를 넘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기웃거리면서 자꾸 더 나은 삶의 추구에 원동력을 얻은 게다. 나는 폐쇄된 그러나 옛날에는 꽤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을 비조령 비를 지나는 한낱 산꾼으로서 현대의 드문드문 산을 넘어 고개의 명맥을 유지하는 지금을 생각한다.
회룡못을 지척에 둔 고개에 선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아 오르고 내림이 힘겹지 않으나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은 대조적이다. 구릉과 들판으로 거의 편평한 대지로 멀리까지 시야를 보내는 오른 쪽과 산골짜기를 이루는 산릉이 이어지는 왼쪽은 삶의 방식에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할 만큼 다른 모습이다. 골짜기의 물을 가둔 회룡 못은 겨우내 물을 가두어 못이 꽤 풍요로운 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산릉은 눈이 녹고 가을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여 수북한 낙엽이 걸음을 편안하게 하나 건조한 날씨에 자연 발화의 산화가 걱정된다. 낙엽의 층은 두께가 두꺼워 비가 와도 땅에까지 물이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낙엽들이 방수지붕이 되어 어지간한 비가 와도 산은 가뭄에 몸살을 앓지 않을까. 벌거숭이 민둥산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산에 자빠진 굵은 나무가 널려있어도 화목이나, 다른 용도로 쓰이지도 반출되지도 않고 모든 걸 화석연료에 의존하니 식목에서 더 나아가 숲을 제대로 가꾸어야 할 것 같다. 비조산 쪽으로 온 길을 되돌아보니 산릉의 흐름이 만나는 나무 둥치만큼 미끈하고 퍽 아름답다.
소나무 숲을 이루는 나무 하나하나가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지러운 숲의 생태를 만들고 있지만 자꾸 죽어가는 나무들이 안타깝다. 살고 죽고 다시 새생명이 자라는게 섭리겠지만, 사람들이 빼곡하게 심기만 한 숲은 자연의 질서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숲을 이루는 각양각색의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산행으로 흘리는 땀을 보상받는다. 또 하나의 고개를 지나면서 장승 같은 나무를 만난다. 불탄 자국과 썩은 몸덩이 그래도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삶을 펼치는 나무의 기상이 감동이다. 세월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나무둥치는 고갯마루 이정표이면서 수호신으로 오가는 이들에게 안정을 선물했으리라.
산행 종점에 가까운 헬기장은 잡초가 무성하다. 걸을만큼 걸었으니 내리는 산줄기로 방향을 돌린다. 인공물이 가까운 숲에 앉아 라면 하나로 참을 먹는다.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산릉을 오르내리는 건 태평성대를 사는 백성들의 삶처럼 평온함을 준다. 산아래에는 조선시대 벼슬을 한 명문가의 묘역이 깔끔하게 정돈되고 묘마다 거창한 석물이 후손들의 세를 말하는 것 같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무덤을 장식하는 산자들의 자존이 더 빛나고자 하는 게지. 산을 나온다.
마을 할머니가 밭두렁에서 곰보배추를 한웅큼 쥐고 나온다. 거동이 편해보이지 않다 싶더니 '곰보 배추가 관절에 좋대서 찾으니 그것 두 인자 귀하구만.' 하신다. 매스콤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 어느 학자나, 환자가 몸에 좋은 식물 이야기만 하면 산골짜기에도 언급된 식물이 동이 나 버리니. 멀리 지나온 능선이 눈에들어온다. 꽤 멀리 돌아 온 게다. 산을 내려선 앞에 거창하게 늘어선 수로나 동산을 파헤치고 개발하면서 파내가는 소나무, 산골 깊숙히들어서는 공장들 사람들의 만용으로 수억의 시간동안 이루어진 자연이 순식간에 변하는 게 보인다. 사행천이 직강이되는 세상 아니더냐. 자연이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을 허무는 게 아닌가. 세상의 흐름은 그래도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 산양의 대포집에서 넉넉한 인심에 막걸리가 몇 순배돈다. 오늘 처음만난 주막의 손님들과.
가물거리는 현리 마을의 역사를 나무가 몸으로 쓴다. 뒷동산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세월이 해산해 놓은 사람들의 일생의 반복들을 묵묵히 바라본 몸은 상처와 생명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늘 오늘을 살고 있지만 나무는 지난 날과 내일을, 오늘도 엮고 있다. 꾸부정한 몸, 곧추 세운 몸 모두가 한몸으로 언덕배기에서 지나는 우리에게 역사를 말한다. 2013/04/19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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