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죽이기는 이제 그만 하자!
김철
4․19때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단기(檀紀) 학번이 3308이었으니 서기(西紀) 학번은 6008이라 할 수 있겠다. 학번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학창 생활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 그리움의 문으로 들어가면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순진 무구했던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는 민주주의라 하지만 사실은 이승만 독재시절이었다. 독립투사이면서도 친일파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들을 중용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오히려 홀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역사적 가치관을 왜곡시켜 나라 자체의 양심적 기반이 지금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는 이승만이었지만, 왜 그런지 그 때가 살기는 좋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옛날에도 학원(學院)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 말에는 대입학원이 몇 군데 있어 우리 부산고등학교 선생님들도 강사로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그 당시에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삼국지를 일기 시작했던 필자는 6학년이 되자 방인근(方仁根), 김내성(金來成) 등의 탐정소설에 심취했다. 방인근의 장비호(張飛虎) 탐정과 김내성의 유불란(柳不亂) 탐정의 활약상에 빠져 있는 필자가 걱정되었던지 중학생이었던 형님께서 필자가 중학교에 합격할 때까지 소설을 보지 못하도록 소설책에 대한 엠바고(embargo)를 내리기까지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는 자랑 같지만 전국 수학 경시 대회에 참가하는 등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책도 무지무지할 정도로 많이 읽었다. 마경천리(魔境千里), 몽테크리스토백작, 흑장미, 대위의 딸, 고성에 갇힌 소녀, 포오르와 비르지니, 해저 이만리 등의 세계 명작 시리즈는 물론 아리랑, 명랑(明朗), 실화(實話), 야담(野談)과 실화, 행복 등의 성인 잡지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었다.
그 때 학생 잡지로는 학원이 선두였고, 학생계, 학생시대도 학생들의 지성 계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학원에는 지금 원로 문인이라 할 수 있는 이제하, 유경환 등이 학생 문예란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언제나 “놈은…”으로 시작되던 이제하의 재밌는 산문은 지금도 기억이 될 정도다.
책을 빌려 주는 대본점도 그 당시에는 동네마다 있어 여름 방학이 되면 광목 사각 팬티 바람에 러닝셔츠도 벗어 던진 채 오징어를 한 마리 구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대본점에서 빌려 온 김내성의 ‘청춘극장(靑春劇場)’[전6권], ‘마인(魔人)’, ‘백가면(白假面)’과 방인근의 ‘魔都의 향불’, 최인욱(崔仁旭)의 ‘벌레 먹은 장미’ 등을 읽던 재미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 그 자체였다.
서울공대에 입학하여 국어 교수인 김연숙 씨[철학교수 조가경 씨 부인]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평론가 이어령 씨도 책을 볼 때 구운 오징어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습관이 있다는데 필자와는 그 습곤이 우연히 일치된다 하겠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이 분별력이 생기고, 또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아 고3 때는 수학도 좋아했지만 포켓 영한사전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영어도 일본 참고서를 구해 보면서 열심히 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저력이 되어 지금 영어신문 편집위원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옛날을 돌이켜보면 낙원(樂園)만 같다.
그런데 지금 고등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필자의 눈에 비친 그들은 불쌍하기만 하다. 유치원 때부터, 아니 태어나자마자 주물의 거푸집과도 같은 어떤 틀에 갇혀 커야 하는 비참한 고등학생들!
학교 공부만으로도 모자라 학교나 집에서 TV까지 보며 공부하도록 학생들을 괴롭히는 교육부. 미국에서 실시한다고 무조건 도입하여 수많은 말썽을 일으키고, 수많은 학생들을 자살하게 한 수능시험[CSAT, College Scholarship Adaptation Test].
필자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 정책과 관련하여 그 간의 위정자는 물론 교육부 당국자들에 대해 대단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심한 말로 해서 그들을 모두 엄벌에 처하고 싶은 심경이다. 한창 자유롭게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뻗어나가야 할 그들에게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를 가함으로써 일상생활이 인생에 도움도 되지 않는 입시 준비로 가득 채워져 있도록 하고 있는 어른들.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학교에서 한 공부 중에서 출제를 하면 학원도, EBS 특강도 필요가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등학교 공부를 이리도 복잡하게 끌고 가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능시험이란 것도 그 문제를 보면 대부분이 일부러 학생들이 틀리기 쉽게 지문을 퀴즈처럼 내고 있는 것이 수두룩해서, 문제를 읽는 도중 수험생으로 하여금 혼란과 절망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듯한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이 될 정도다.
논술고사 문제도 그렇다. 교수들도 잘 써내기 힘든 과제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유의사항을 참조하여 물음에 답하시오.(제시문 생략)
【문제1】제시문 [가]는 사회적 딜레마의 하나인 무임승차(free-ride) 현상을 다루고 있다. 제시문을 기초로 하여 무임승차 현상을 설명하시오. (200~300자)
【문제2】제시문 [가]와 [나]는 '개인의 합리성'과 '사회의 합리성'이 때때로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제시문 [다]는 이러한 합리성들 간의 괴리가 나타나게 되는 갈등상황 의 구조를 보여준다. 무임승차, 공유지의 비극, 수인의 딜레마 등을 고려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
위의 글은 어느 대학교의 논술고사 문제인데 문제 자체부터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논술고사 문제를 보면 필자는, 교수들이 마치 연약하고 만만한 나뭇가지를 붙들고 흔들며 노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곤 한다. 언제 어른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글을 마음대로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가. 노트 정리는 하도록 하고 있는가.
필자는 요즘 학생들에게 노트가 없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 때는 영어 독본의 경우, Lesson 1. April Fool's Day라 적고는 단어를 찾아 정리하고 선생님의 설명과 숙어도 정리해 두곤 했다. 시험 때도 그 노트만 복습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트가 없다니!
프랑스의 한 Ecole 입학시험은 ‘자유와 독립의 차이점을 논하라’이다. 얼마나 명료한가. 과연 데카르트로 하여금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을 쓸 수 있게 한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성도 없이 겉멋만 들어 남의 논문이나 베끼는 교수들이 논술고사를 자기들의 놀이터처럼 이용하며 앳된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왜 논술고사에 지문이 필요한가? 프랑스처럼 ‘우리나라가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데 대한 학생의 의견을 제시하시오’, ‘우리나라의 무질서에 대해 학생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쓰시오’ 등의 문제를 내고, 채점 시에도 생각을 얼마나 조리 있게 전개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지 문제 내용에 대한 지식의 깊이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면 학원 문제는 자연히 해결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을 풀어 주어야 한다. 수업은 4시경에 마치도록 하고, 미국처럼 연극하고 싶은 학생은 연극을 하고, 시 낭독을 하고 싶은 학생은 시 낭독을 하게 하고, 운동을 하고 싶은 학생은 운동을 하게 해야 한다. 트럼펫도 불고, 바이올린도 자유롭게 켜고, 그림도 그리게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학교 공부도 따라가기 힘든 학생이 있다면 학교나 학원 등에서 실시하는 과외를 선택할 자유는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국영수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생물, 물리, 화학, 한문, 사회도 옛날처럼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 윤리 과목이 있다고 하나 오늘날 학생들이 과연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길거리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이 껴안고 다니고, 버스 안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무릎에 앉힌 채 노닥거리고 있는 광경은 이제 예사가 되지 않았는가.
이공계 진학생이라고 문과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은 미래를 보는 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글을 못 쓴다는 말이 있다. 전공 외에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는 경제학 교수, 수학 교수, 천문학 교수들 중 훌륭한 수필가가 수두룩하다. ‘파리 대왕( Lord of the Flies)’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도 화학 교수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데카르트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지금도 후배들이 찾아 와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시를 쓰려면 공부, 특히 수학과 영어를 다 같이 잘하도록 하라고 충고를 한다. 그 둘은 서로 보완적으로 논리적인 글 쓰기를 도와주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서의 기초 없이는 대성을 할 수가 없다.
고교 시절 불안감 없이 정서의 기초를 튼튼히 하여 원하는 대학에 가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하면 된다. 고교 시절에는 학교 공부만 하고 놀게 하라.
그리고 미국의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미술, 음악, 문학 중 한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 제도를 우리는 고교에서 실시하면 지금 정서 불안으로 자살을 밥 먹들이 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범죄 만연, 몰예의(沒禮儀) 시대를 조금은 낙원(樂園)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