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인이 방문했다가 마당의 넓은 돌 위에 앉아 하는 말이 '이 집은 꽃 속이네. 여기 살면 근심걱정도 없겠네.'한다. 꽃이 아무리 고와도 꽃 속에 사는 사람은 그 꽃을 보고 풍월만 읊을 수 없다. 꽃 속에 살아도 의식주 해결은 필수니까. 큰 욕심 안 부리고 큰 부자 될 생각은 애초에 없지만 생계는 이어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농사꾼에게 농사철은 숨쉬기도 힘들어 허덕댈 판이다. 나이가 늘수록 일은 고되고, 산더미처럼 보이는 일감 앞에서 꽃은 그저 제 철에 피어났다 제 철에 사라지는 바람 같은 존재다.
고사리도 산나물도 쑥쑥 올라오는 봄이다. 고사리 꺾을 일로 마음이 되다. 몸은 천근이고, 일감은 보이고, 생활고 해결은 해야 하는데 남편은 내가 고사리를 꺾으러 가면 고사리 수확을 안 하겠다고 엄포다. 일꾼 두 사람 몫을 한다는 주인이 고사리를 안 꺾으면 누가 꺾는가. 일꾼 대면 인건비만 왕창 나가고 남는 장사가 못 된다. 고사리 수확을 해서 팔아야 가을 단감 나올 때까지 산다. 고사리 꺾는 일이 중노동이다 보니 일을 할 만한 사람도 기피를 한다. 허리가 아파 고사리는 못 꺾는단다. 맞는 말이다. 농부 증 중에 가장 심한 것이 촌로들 허리 통증이다. 엎드려 꺾어야 하는 고사리 수확은 다리와 허리힘이 가장 많이 든다.
올해는 고사리 꺾어야 할 면적이 지난해보다 많다. 산에 고사리가 본격적으로 나올 조짐이다. 가파른 산은 내 다리가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한 해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런 몸으로 무슨 농사를 짓나. 한심할 때가 많다. 일꾼들 밥이나 해 줄 수 있을지. 관절염 약을 안 먹으면 걷는 것조차 불편하다. 남편이 고사리 못 꺾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이 눈에 보이는데 안 할 수도 없다. 혼자 등짐 지고 허덕이는 남편을 보는 것도 힘들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메뚜기도 한 철이라 했다. 한약을 먹는데도 효과가 없다. 순 엉터리 약이라고 구시렁거린다. 몸이 건강해야 사는 일에 신명이 난다. 몸이 불편할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해진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이미 오십 고개를 넘어서면 쇠퇴기에 접어든다. 칠십 고갯마루에 오른 이웃 형님은 자식들이 매달 생활비를 대 준단다. 운동하고 여행 다니며 몸 관리만 하는데도 여기 저기 자꾸 아픈 곳이 생긴다고 한숨이다. 그 형님이 부럽다. 한 달에 2백 만 원만 꼬박꼬박 들어오면 저축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농촌 삶이다. 힘 안 들이고 텃밭 농사 조금씩만 지어도 산다.
"되는 대로 합시다. 일꾼 없으면 고사리 농사 포기 하지 뭐. 목돈 투자해 놓은 산 고사리가 아깝긴 하지만 어쩌누. 당신이 못한다면 못하는 거지. 당신이 고사리 못 꺾게 하면 나는 안 할래. 산에 가 보니 내 다리로는 힘에 부치더라. 일꾼 한 명 더 쓰지 뭐. 일꾼 구하기가 힘들어 그렇지. 안 되면 인력에 연락하자. 방법이 없잖아. 인력에 여자 일꾼도 있는지 모르지만. 외국인 근로자 아르바이트생도 있다더라."
요즘 농촌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젊은 그들은 일감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노인들 보다 낫단다. 축산이나 비닐하우스를 하는 농부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를 쓴다. 컨테이너 집을 지어 의식주 해결까지 해 주면 고정 일꾼으로 부릴 수 있다는데. 그들은 돈벌이가 목적이라 쉬는 날 아르바이트도 뛴단다. 일꾼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들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아들은 군대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였다. 한 학기를 마친 후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었다. 호주에 2년을 거주했다. 비행기 표만 끊어 빈손으로 간 아들이었다. 일 년은 고생이 많았단다. 일단 말이 통하니 2년째는 수월했단다. 오렌지 농장과 브로콜린 농장, 도축장 등을 거쳐 관광지에서는 호텔 청소 일을 했단다. 아들은 그렇게 고생 해 번 돈으로 몇 개월 간 세계 일주를 하고도 일 년 생활비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왔었다. 외국에서 그 돈을 모우기 위해 얼마나 짠돌이 노릇을 했을지. 생각할 때마다 짠하다. 어쩌면 그 때의 경험으로 아들은 어디서든지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져 왔을 지도 모른다.
일철이 되면 아들딸을 불렀으면 하는 것도 내 힘이 달리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거들어 야무지게 잘 한다. 몸을 사리지 않고 힘든 일도 슬렁슬렁 잘 한다. 두 아이가 와서 일손을 도와주면 남편도 나도 덜 힘든데. 남편은 일언지하에 반대다. 제 일을 하도록 놔둬야 한단다. 부모가 자꾸 힘들게 하면 아이들이 제 일을 못한단다. 우리 몫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단다. 알면서도 편한 구석을 찾는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 마당을 환하게 밝힌 꽃들이 꽃잎을 휘날리며 빙긋빙긋 웃는다. 빌어먹을!
첫댓글 가까운 곳이라면 정말 일당백으로 따드리고 저도 일당으로 한아름 따오고 싶네요. 건강 챙겨야 하시는데 일거리 생각부터 하시니...... 그래도 남편분께서 많이 생각해 주시는 거 맞죠?
네^^ 비 그치면 고사리 밭에 나가봐야 해요. 산골이라 동네보다 수확이 늦은 덕을 보고 있어요.
닥치는 대로 하자 작정합니다. 힘 닿는 만큼 해야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