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외암리 민속마을

이제 겨울이라는 단어보다 봄이라는 단어가 더 친숙해지기 시작하는 오늘 늦은 오후 천안에 다녀오다가 외암리 민속마을에 들렸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일년이면 한 두 번은 꼭 다녀오는 곳이 되었는데 겨울에 그 곳에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여름 함께 연수를 받는 분 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공주와 예산으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사거러에서 좌회전하여 오 분 정도 달리자 민속마을이 나타났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도 외암마을의 주차장에서 주차비를 받는 것과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주차 관리를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작년 12월부터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받는 다고 한다.
찬반논쟁이 뜨거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관리를 위하여 입장료나 주차요금을 받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보았다. 사실 민속마을로 지정이 된 후 주민들의 삶이 부자연스러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을 수리를 하려해도 문화제청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고 재산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저런 불만을 잠재우는 부분중 한 가지가 입장료를 징수해서 관리를 하거니 주민들의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마을입구를 지키는 장승과 솟대인데 이 것들은 근래에 만든 것들이어서 그리 눈 여겨 볼만하지는 않지만 옛날 우리네 마을마다 있어왔던 물건들이어서 낯설거나 우리에게 싫증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장승 옆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물레방아가 있는데 몇 아이들이 그 곳에서 놀이터를 삼아 놀고 있었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연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 위로 아담한 정자가 쉬었다 가기를 청하지만 나는 그 곳을 지나쳐 새로 조성된 전시관으로 갔다. 그 곳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가 눈에 익은 것들이어서 더 정겨웠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의 외암리 민속마을은 옛 전통가옥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1988년 `전통건조물 보존지역 제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약 400년 전에 예안 이씨 일가가 정착하여 줄곧 살아왔는데 충청지방 고유의 반가(班家, 양반집) 10여 채와 초가집들이 아담하게 들어서 있고 돌담으로 둘러쳐진 마을길도 인상적이었다. 이 마을은 충청지방 고유의 전통양식을 간직한 초가, 기와집, 돌담 그리고 정원이 보존되어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새로 조성된 단지에는 조상들의 유품과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계층별 가옥을 건립하여 실생활에 사용했던 물건들과 함께 전시를 해 놓았다. 새로 조성된 가옥은 양반, 중류와 서민의 가옥이었는데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외암민속관과 계층별 가옥들을 돌아보면서 그 곳에 전시된 것들과 우리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같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소꼴을 베어 담았던 지게,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겨울 밤늦게 까지 가마니를 만들었던 가마니 틀, 소여물을 담았던 삼태기,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뒤주, 명절마다 떡살을 찧던 절구통, 가마솥에 소여물을 넣고 불을 지핀 장작,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어머니께서 두드렸던 다딤이돌, 집안 대소사에 사용이 되었던 소쿠리와 사기 그릇까지 예사롭지가 않다.
이 곳은 언제 와도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 가을에 오면 담쟁이가 곳곳에 걸린 돌담길과 초가집 담 밖으로 몸을 드러낸 둥근 박이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봄에 오면 새롭게 돋아나는 풀과 함께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의 무리들이 반겨주고, 여름에 오면 많은 꽃들 특히 접시꽃이 사람들을 맞아 준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우리 나라에서 우리의 전통의 마을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용인의 한국민속촌이나 안동의 하회마을은 꾸민 것이 많고 새로 지은 게 많지만, 이곳 외암리는 예전의 마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요즈음 새로운 건물을 지어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 곳에서 마을로 다시 돌아가니 정겨운 돌담길이 나타난다. 돌을 다듬거나 흙을 채워 모양새를 내지 않고 막돌을 크기에 맞게 짜 맞추어 쌓은 것인데도 그 모양새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마을 큰길에 연이어 집집마다 작은 돌담들이 쉼 없이 이어져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마을을 한바퀴 돌게된다. 또한 담을 가로질러 마을 곳곳에 개울과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뒷산이 불을 뿜는 형국이어서 풍수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건축가들이나 조경업자들은 낙안 읍성 마을과 더불어 이곳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는다고 한다.

작년 가을 낙안읍성에서 음식축제를 할 때 가 보았는데 그 곳에서 만났던 것들보다는 규모가 작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담한 모습은 외암리 마을을 더 시골스럽게 만든다. 이 곳의 특성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전통 사 극에서 멋있다 싶은 시골장면은 거의가 이곳 외암리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임꺽정이나 태극기 휘날리며 등도 이곳에서 일부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이제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웨딩촬영을 하는 명소로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민속마을의 사람들도 살아야 하기에 나름대로 가옥을 고쳐야 한다. 마을 중간에 폐가처럼 서 있는 집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집의 입구에는 문화제청장에게 집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곳의 가옥은 사람들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을 주민 중에는 청국장이나 묵 혹은 전통주 등을 만들어서 팔거나 음식을 파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공방체험이나 염색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그런지 체험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지난여름에 그 곳에 들렸을 때 연수 동기 중 몇 명은 염색체험을 하기도 했다.

외암리 마을은 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이라고 한다. 오늘도 사진작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가을에는 그 곳에서 사진 촬영대회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 곳은 과일 나무가 많이 있다. 봄에 가면 살구나무에서 노란 살구를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자두나 앵두를 만날 수 있다. 가을에는 은행과 밤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조성해 놓은 꽃길은 나그네들에게 주는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는 그 곳에서 농사지은 농산물이나 과일도 싸게 구입할 수가 있으며 동동주로 목을 축일수도 있다. 물론 외암리 민속마을 앞에는 음식점이 몇 곳 있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그 곳에서 안 쪽으로 들어가면 강당골이 나와 시원한 여름을 지낼 수 있는 곳이 많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늦겨울에 붙잡힌 외암리 민속마을을 만났다. 사람들이 살기에 집 에는 각종 농기계가 있고 마을길에는 자동차가 서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도 집을 수리하는 곳이 많이 있다. 전통보존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외암리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 그리고 그 곳에 정겨움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외암리 민속마을을 빠져 나왔다. 올 봄 꽃이 피면 누군가하고 그 곳에 다시 들리리라 마음먹으며 자동차 가속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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