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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한시기행 1부 황금연꽃, 황산
중국 저장성, 천재 시인 소동파의 자취와 육유의 가슴 아픈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어려워요 어려워요 난 난 난.”
아름다운 풍경이 시(詩)가 되고 그 시가 다시 풍경을 이루는 중국의 한시(漢詩)들. 그 한시와 더불어 수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진짜 중국을 만나기 위해 저는 이제 천하제일경인 후앙산, 황산으로 떠납니다.
오랜 세월 중국문학을 공부해온 저에게 중국의 한시는 늘 깊은 멋과 정취로 다가왔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시와 시인들은 자연과 인생을 통찰하는 삶의 지혜를 가져다줍니다. 옛 시인들의 흔적을 찾아 떠난 두 번째 여정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 황산에서 시작합니다.
여름 한 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잡았던 연꽃이 지고나면, 들녘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곳 ‘안후이’ 성에는 일 년 내내지지 않는 황금 연꽃 황산이 있습니다.
▶ 후앙산<황산(黃山)> -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중국 최고의 명산이자 10대 명승지 중 하나.
황산 입구를 지나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인 자광각. 이곳에서 케이블카로 10여분 정도 올라가야 황산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7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황산은 원래 ‘이산’이라는 이름이었다는데요, 황제가 이곳에 와 수양을 하게 되면서 황제의 ‘황’자를 따 황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성곤(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산이 압도하네요. 확 다가오면서 압도하네요.”
또한 황산은 1년 중 200일 이상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있어 ‘구름산’이란 이름의 ‘운산’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아 이거, 밑에서는 날씨가 쾌청했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딴 세상에 와 있네.”
황산은 중국의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네 개의 현과 다섯 개의 시에 걸쳐져 있습니다. 지난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황산을 보지 않았다면 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고 할 만큼 중국인에게 첫 번째로 손꼽히는 산이 바로 황산입니다.
이곳 ‘옥경루’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영객송(迎客松)’이에요. 잉커송. 그래서 여기 황산에 오는 유객들을 맞이하는 소나무. 쭉 팔을 벌리고 있죠, 어서 오시라고. 영객송입니다. 여기 황산을 대표하는 주인격이죠.”
수령이 천 년이 넘었다는 이 소나무는 중국의 대다수 상점에 그 사진이 걸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황산은 사계절 모두 다른 빛깔을 낸다고 하는데요, 구름이나 안개에 따라서도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합니다.
“역시 황산은 이 구름이, 이 구름과 소나무가 빗어내는 아름다움이 대단해요. 잠시 안개가 걷히면서 풍경이 살아나네.”
“어이구 또 밑으로 천 길 낭떠러지예요. 아찔하네. 아! 겸허하게 구름사이를 거니니 마치 신선이 된 듯합니다. ‘이 황산의 봉우리들마다 기암괴석이 없는 데가 없고, 그리고 그 기암괴석 위로는 소나무가 없는 곳이 없고, 그 소나무 마다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말이 있어요.”
때문에 사람들은 일찍이 기암괴석과 소나무, 운해와 온천을 일러 ‘황산4절’이라 불러왔습니다. 저는 지금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경사가 만만치 않습니다.
▶ 연화봉(蓮華峰) - 황산의 최고봉. 1,860m
“야 이거 까마득한데. 야 이런 와중에도 이런 소나무가 자라고. 손이 발이 되고, 손인지 발인지 구분이 안가네, 이거.”
1979년 76세의 나이로 황산에 오른 덩샤오핑(등소평)은 그 절경에 탄복해 누구든 황산을 볼 수 있게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후 21년 동안 14만 여개의 돌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야 높다 높아. 저 밑에 아찔해.”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돌계단으로 만들었지만 등산객들에겐 쉽지 않은 길입니다. 오르는 곳곳마다 발길이 닫는 곳마다 제 각각 다른 풍경입니다.
“야 여긴 구름이 하나도 없네. 이쪽은 활짝 개었어요. 야 저 봉우리 참 예쁘다. 소나무도 예쁘고. 야~ 근데 이쪽은 구름이 빽빽해. 이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변화가... 재밌네요. 천변만화하죠. 그러니까 멋진 경치를 볼려면 기다려야 돼요. 사람이고 자연이고 간에 뭔가 변화를 보려면 기다려야 돼요, 시간을 가지고...”
한 시간을 오른 끝에 드디어 해발 1,860m의 최고봉, 연화봉에 이르렀습니다. 연화봉은 ‘주위에 여러 봉우리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연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영객송이 있던 ‘옥벽루’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연꽃같이 보인다고 하는데요, 저는 지금 안개 속에 피어난 연꽃 속에 심청이처럼 서 있습니다.
“여기가 이제 연화봉 정상인데, 이제 안개가 구름이 걷혔어요. 정말 이제 곳곳이 잠에서 깨어나는 선녀의 모습 같기도 하고 막 피어나는 연꽃 같기도 하네. 이제 안개구름 뚫고서 이곳 높은 정상 연화봉까지 왔으니까 사실 저는 사람들 소리만 없으면 하늘 높이 신들이 거니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만 한데...”
2억여년 전 이곳은 바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각운동으로 바다가 융기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화산활동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지면서 화강암 산으로 바뀐 것이죠. 그 후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쳐 기암괴석이 산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참 예쁘네요. 이 봉우리 절벽도 참 예쁘고. 사이사이에 소나무 자라는 것도 봐요... 정말 이건 그림이다 그림. 저 소나무 엄마가 누군지 알아요? 소나무 엄마가 이 바위예요, 바위. 바위가 키운 거예요. 그 모진 세월, 그 풍상을 저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위가 꽉 잡아준거라고. 그래서 꼿꼿하게 정말 아름답게 컸잖아요. 그러면 이들이 무얼 먹고 자랐는지 알아요? 엄마의 젖이 무언지 알아요? 이게 운해야 운해, 구름. ‘황산의 소나무는 바위인 엄마에게서 자랐고 운해라는 젖을 먹고 자랐다.’ 라는 표현이 있어요.”
화강암 틈에 뿌리내린 소나무들은 워낙 자라기 힘든 환경이라서 그런지 그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3m 크기의 소나무 나이가 무려 수백 살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 저 역시 소나무의 끈질김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황산은 골짜기의 모양을 따라 갈라지는 운해의 모양을 본 따 동해, 서해, 북해 등으로 나뉩니다.
“야! 이쪽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요. 이쪽은 동해 쪽인데, 기암괴석이 쭉 줄지어 서있는 것이 그 오백 나한들이 서있는 것 같아요. 야! 분위기 참 좋다.”
같은 산인가 싶을 정도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황산의 매력입니다.
“저물녘이 되니까, 저녁 운해가 가득하게 깔려가지고 운치가 더해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이 돌아갔고, 저기 있는 나한들이 다 깨어날 것 같아요. 오백 나한들이 다 깨어나서 자기들의 멋진 세계를 열어 갈 것 같아요.”
명나라 때 시인 정옥형(?)은 ‘비래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비래석(飛來石)
네가 날아온 것을 알고 있나니, 다시 날아갈까 두렵구나.
“이것이 비래석이거든요 ‘날 비’자 ‘올 래’자, 그래서 날아온 돌입니다. 이 큰 봉우리 위에 이렇게 떠 있어요. 돌이 날아와서 얹힌 거예요. 그래서 시인들의 시에, ‘네가 어딘선가 날아왔으니까, 언젠간 날아가지 않겠느냐? 걱정된다.’ 이런 시가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 것이 날아온 이유는 여기 있어요. 여기와서 보니까 이 경치가 정말로 좋아요. 황산에서 이만한 경치가 없을 것 같아요. 이 ‘비래석’이 이 경치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날아온 것 같아요. 야~ 이거 정말, 경치 끝내주네... 欲辯已妄言(욕변이망언)이네... 정말!! 할 말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정말 멋있네요.”
천하제일경이라는 황산, 그리고 그곳을 환히 비취고 있는 꽉 찬 보름달. 이 풍광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대금을 꺼내들었습니다. 옛 시인들이 저 달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했듯이 이제 저도 저 달빛 아래서 황산을 노래했던 그들을 그리워해봅니다.
오직 하늘이 돕는 사람만이 볼 수 있다는 황산의 일출은 특별했습니다.
“황산에 와서 일출보기기 쉽지 않다는데, 어젯밤에는 보름달도 없고... 정말 장관이네요. ‘雄鷄一聲 天下白(웅계일성 천하백)이라.’ ‘수탉 울음소리에 천하가 밝아온다.’고 했는데. 야 ‘金烏一飛 黃山白(금오일비 황산백)이라.’ ‘태양이 한 번 나니 황산이 밝아오는구나.’ 구절 멋지지 않아요? 참 운이 좋네요.”
새벽녘 황산의 운해를 보자니, 구름을 탄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는 곳, 그 곳이 황산입니다.
“‘운해’라는 말 자체도 벌써 시적이지 않아요? 이 황산에 와서 바다를 본다는 게 말이에요. 구름으로 가득찬 저 신비스러운 바다.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좋네!”
그간 몇 차례 황산을 찾았지만, 이번처럼 진면목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황산은 제게 보여줄 것이 더 있나 봅니다. 이곳 황산에 살고 있는 야생원숭이들입니다. 황산에 원숭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이렇게 눈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끔씩 배가 고파 이렇게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에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마침 줄만한 것이 없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잘 생겼어요. 그래 여기 황산 잘 지키고 행복하게 잘 살아요.”
황산을 떠나기 전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서해대협곡(西海大狹谷)’입니다.
“여기가 ‘서해대협곡’입니다. 서해의 비경이 몽환적으로 그려진 곳이네요. 황산이 왜 천하제일 산인지 알 수 있겠어요. 명나라 때 본격적인 여행가 한 명이 등장하거든요. 그게 서하객이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 황산을 둘러보고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五岳歸來 不看山(오악귀재 불간산)이요.
黃山歸來 不看岳(황산귀래 불간악)이라.
‘오악’ 아시죠? 태산이니 화산이니 그런 5개의 중요한 산인데, 그 오악을 보고서 돌아오면 일반 산들이 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산이 눈에 안 차는 거예요. 그런데 황산을 보고 돌아오면 오악마저도 그 훌륭한 오악마저도 안 보인다고 했어요. 정말 그 말이 실감나네요.”
서해대협곡은 황산에 있는 24개 협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야! 아주 동굴을 지나가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경치라 하여 ‘몽환경구(?)’라고도 불립니다.
“九州人共仰(구주인공앙) 구주의 인민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곳
千載鶴來還(천재학래환) 천년 세월 학이 날아오도다.
구주는 중국이예요.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 황산을 우러러본다. 그리고 신선의 학이 천년 동안 찾아온다.’ 이 황산이 사람들로 가득찬 이유를 설명하는 거죠.”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 화가들은 붓을 놓고 시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는 천하제일경 황산, 하늘 아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황산은 해발 1,000m를 기점으로 위로는 소나무가, 아래로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비취색의 물의 빛을 띤 비취계곡과 대나무 숲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臥虎藏龍(와호장룡)’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 비취계곡 - 영화 ‘臥虎藏龍(와호장룡)’의 촬영지
“여기 대나무밭이 참 좋죠, 대숲이. 이 대나무가 황산의 4대 기관 큰 볼거리 중에 들어가기도 해요. 어떤 사람은 온천을, 어떤 사람을 대나무를. 대나무 참 좋네요. 여기 한번 보실래요?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이 소나무 사이로 비취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물이 돌 위로 흘러간다.
이게 그 유명한 왕유의 시거든요.”
왕유의 시와 그림을 보고, 소동파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기 있다.’ 했습니다.
“저 폭포를 보게 되면, 저 소리가 물소리가 아니라 바위소리 같아요. 매번 물이 바위를 때리잖아요, 그러면 맞는 쪽에서 소리를 내는 게 맞잖아요. 그러니깐 저건 ‘물소리가 아니고 바위소리다.’라고 생각하는데요.”
또한 이 계곡은 남녀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곳이라 하여 ‘정인곡’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정인과 함께라면 즐거움이 더하겠지만 대나무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계곡을 휘감고 내려오는 맑은 물소리에, 설령 정인이 없어도 외롭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 황산의 산행이 고달팠는데, 여기 와서 저물녘에 맑은 계곡물 옆에 죽림을 맞이하고 않으니까 일순간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아요, 넓은 바위에 앉아서 바위의 노래, 대나무의 춤을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그윽해집니다. 왕유의 시 중에 ‘죽리관(竹裏館)’이란 시가 있어요.
홀로 대나무 숲에 앉아
거문고를 타다 길게 휘파람을 분다.
남들은 모르는 깊은 숲
명월이 찾아와 나를 비추는구나.”
천지가 혼동하여 개벽한 뒤, 두 송이 연꽃이 피어났으니, 화산과 황산이라. 황금연꽃 황홀한 황산을 이제 아쉬움 속에 이별합니다. 황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던 저는 황산 아래 위치한 전통마을 홍춘(굉촌)으로 향합니다.
송나라 때 마을이 형성돼 약 800년의 역사를 지닌 홍춘마을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홍춘마을은 아담한 두 개 호수를 중심으로 명나라 청나라의 전통가옥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 홍춘(굉촌宏村)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 모든 집을 거치도록 만든 인공 수로가 특징.
이곳 역시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마을 곳곳에선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려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이 마을은 특별한 배수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을 중앙의 작은 호수에 모여 있는 물을 골목마다 흐르게 해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하는 배수시스템의 발원지는 바로 황산입니다.
“마을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반달모양이에요. 그래서 ‘월소’라고 한데요. 달의 연못.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들이 있고 너머로 황산에서 이어지는 산들 같아요.”
왕씨의 집성촌이기도 한 이곳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옛 방식 그대로의 소박한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마을엔 예로부터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곳이 ‘쉬묵(?)’이라고 해가지고 ‘먹’이 유명한 곳이에요. 벼루도 좋고. ‘문방사우’가 꽤나 유명한 곳이니까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혹시 붓글씨 쓸 게 있으면 써보게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을의 한 문방사우를 파는 가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적접 만드시는 거죠? 굉장히 예쁘네요. 얼마나 하나요?”
“그렇게 비싸지는 않아요.”
“이 벼루는 이름이 뭔가요?”
“흡연이에요.”
이곳에서 가까운 흡현 지역에서 나는 돌로 만든 ‘흡연’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흡연의 특징은 뭔가요?”
“먹이 잘 갈려요. 벼루가 부드러워서 아기 피부 같아요.”
“‘부드럽기기 어리아이 피부 같다.’는 거죠. 그러네...”
먹 또한 중국에서 최고로 손꼽힙니다.
“이게 바로 ‘휘묵’이에요.”
위쯔치앙
“홍춘은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오래된 전통을 대대로 지켜왔죠. 옛날에는 볼펜 같은 필기구가 없어서 붓이나 먹 같은 문방사우를 이용했어요. 옛날의 문방사우가 계속 전해져 내려온 겁니다.”
“자 한번 갈아볼께요. 야 진짜 갈리는 맛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최고의 먹과 최고의 벼루가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그에 어울릴만한 멋진 필체가 나와야 할텐데, 과연 어떤 싯구가 좋을까요?
“제가 황산 구경을 아주 황홀하게 잘 했어요. 떠나면서 시를 두어 편 적었는데, 그것을 여기서 제가 붓글씨로 써서 보여드릴께요. 황산의 달을 노래한 겁니다.”
후한 시대의 ‘채륜’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이, 위진 남북조 시대에 개발된 먹, 그리고 중국 상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벼루와 은나라 때부터 썼다는 붓, 그러고 보니 문방사우만큼 중국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는 것도 없을 듯합니다.
“제가 쓴 시 어떤가요?”
“조건이 안 좋아서 그렇지 천천히 썼다면 더 잘 썼을 거예요.”
“여전히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일출을 보려 나섰더니, 일출이 아닌 산 다리 새벽 숲에서 나를 보고 환희 웃네. 어? 어젯밤에 내가 그대랑 그 무정 요에 맑은 사귐을 가졌거니, 아 그래서 돌아가지 않고 내가 다시 오기를 기다려서 비추고 있었구나.’ 그래가지고 황산의 달을 마치 나를 기다려주는 연인처럼 그렇게 묘사한 겁니다.”
“제가 쓴 시예요. 선물로 드릴께요. 글씨보다는 내용이 좋으니 기념으로 가지세요. 하하하 내가 지은 시, 막 자랑하고 선물로 줬어요.”
“한국 분이 이 정도 수준의 중국 시를 쓰시는 건 굉장히 뛰어나신 것 같아요. 일반 중국 사람도 이 정도 수준으로 쓰긴 힘들죠. 거짓말 안 보태고 진심이에요. 대단하네요.”
“지금 중국 정부에서요, 초등학생들한테 이 서예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글씨를 안 쓰는 시대니까. 서예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서예라는 것이 고요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거든요. 자기와 독대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날뛰고 다니잖아요. 그냥 정신없이 다니는데 그냥 먹물 냄새 맡으면서 그윽하게 자신의 삶에 멋진 향기를 불어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게 서예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너무 어수선하게 이걸 써가지고 내가 그런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운데....”
진한 먹냄새에 발걸음을 돌리기가 아쉬웠지만 시 한 수로 그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봅니다.
황산의 달(黃山月)
-김성곤-
저물녘 정인곡에 들었더니
푸른 대나무 푸른 연못을 희롱하는구나.
홀로 앉아 길게 시를 읊는 곳
그리운 그대와 이별하는 아쉬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