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호주에 온지도 꼭 한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8월 15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흘렀지요.
게이트를 들어서는데 눈물을 찔끔거리던 딸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워낙 새침해서 그럴 줄 몰랐는데 아빠로서는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집사람도 처음에는 두달간이나 이역만리 떨어진다는 것에 반대했지만
막상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니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더군요.
막내 아들녀석은 엉뚱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오버다 싶게 까불고^^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 표현방식이었겠지요.
김포 집 상공 위로는 가끔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일부 노선은 그곳에서 선회하여 본격적인 비행을 시작하게 되지요.
"아빠 탄 비행기가 8시 조금 넘어 김포를 지나니까 비행기 지나가면 손 흔들어^^"
이렇게 이르고는 게이트를 빠져나갔습니다.
나중에 정말 "아빠~"하며 손을 흔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렇게 15일 저녁 8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했습니다.
비행시간은 10시간. 우등고속보다도 좁은 좌석에서 밤새 10시간을 앉아있자니 곤욕이었습니다.
책을 보다, 음악을 듣다, 졸다가 그렇게 새벽이 다가오고
어느새 창밖으로 푸른색 띠가 나타나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의 항로는 대체로 남항이고 저는 왼쪽 창가 좌석이었으므로 그 장관을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습니다.
경험상 이런 현란한 색은 일출 직전 10분 정도만 목격할 수 있는 장관입니다.
두꺼운 비행기 창 때문에 비록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내가 굉장히 멀리, 그리고 높이 왔구나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닿는 곳, 그 끝모를 곳을 향해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배,
이을 수 없는 한 점으로 떠있는 배를 보면 그것처럼 외롭게 보이는 게 없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고 밑으로는 황망한 대지가 펼쳐집니다. 호주 대륙으로 들어선 것이지요.
간단한 기내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입국신고서를 작성합니다.
시드니 부근 상공에 이르자 시가지가 보였습니다.멀리 '해벽'이 보이더군요.
아침 7시 10분, 한국시간으로는 6시 10분쯤 시드니공항에 착륙했습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저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가진 전자비자(호주방문시 신고하면 인터넷으로 발급되는 관광비자) 문서의 생일이
엉뚱하게도 2006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덩치 큰 공항직원이 비자의 출생년도가 이상하다며 제 여권을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가더군요.
10분쯤 기다리라고 했지만 채 5분도 안되어 문제없다며 여권을 되돌려주면서 통과하라고 하더군요.
짐을 찾아 우선 전화기부터 찾았습니다.
그때 비행기 내 옆좌석의 백인여성 두 명을 다시 만났는데
그들이 짊어진 낡은 배낭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붙어있더군요.
색마저 약간 바랜 배낭은 우리나라 브랜드인 '쎄레또레'이구요.
아마도 한국에서 제법 오랜 시간 배낭여행을 하고 호주로 되돌아가거나,
한국여행을 마치고 호주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모터사이클로 남미대륙을 일주하며 제국주의 침탈로 얼룩진 남미의 정체성에 눈을 뜬 체 게바라.
그 정신이 젊은 두 백인 여성에게도 하나의 魂이 되길 빌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아이콘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10분이 지나도 공항에 약속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걸어봐야겠는데 전화카드도 없고, 동전도 없었으므로
환전 부스에 가서 동전을 바꾸었습니다.
10달러짜리 지폐를 내밀고 동전으로 바꾸어달랬더니 5달러짜리 전화카드를 줘도 되냐고 하더군요.
이 나라 전화카드 쓸 일이 뭐 있겠냐 싶었지만 5달러라면 4,000원 정도이니 전화카드로 달라고 했습니다.
막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는 순간 약속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출근시간대라 시드니 시내가 막혔다는군요.
공항을 나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정말 하늘이 맑더군요.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의 기온에 구름 한점 없는 하늘, 강한 햇빛.
우선 선그라스부터 써야했습니다.
이렇게 제 호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생활하고 있는 곳은 시드니 시티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이스트우드라는 곳입니다.
중국사람들이 제일 많고 최근 한국사람이 많이 늘어난 곳이지요.
그래서인지 백인보다 동양계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한국식품점에 가면 없는 게 없습니다. 신라면, 김치, 김밥, 심지어 소주까지^^
아, 소주는 무지 비쌉니다. 12달러, 그러니까 한국돈으로는 9천원 정도입니다.
점심때, 저녁 회식때 가끔 가는 회전초밥집입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장사 무지 잘되는 곳입니다.
(승규야, 호주와서 일식집이나 하나 차려라~)
싸게는 1.5달러 비싸게는 6달러까지.
대충 2달러짜리 5-6 접시 먹으면 배가 부르더군요.
첫 주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라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과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었습니다.
한강고수부지 정도가 연상되는 뭐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습니만,
팰리칸이라는 놈은 정말 신기하더군요.
전 멀리 있을 때 한강에 떠있는 오리배인 줄 알았습니다. 어찌나 크던지...
눈은 마치 페인트로 그린 것처럼 생겼습니다.
예전 동물원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야생 팰리칸을 보니 신기하더군요.
시드니에는 레바논 등지의 무슬림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시간인지 한 아랍계 청년이 숲속에서 예배를 보더군요.
이스라엘의 무차별 침공이 벌어지고 있던 때라 그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레바논 형제들의 안전을 빌었겠지요.
그럼 다음에 또 재미없는 시드니소식 전하겠습니다.
다들 즐겁고 안전한 등반하시길....
첫댓글 형 덕분에 마치 호주에 있는 듯 합니다. 귀국할 때까지 건강하게 , 좋은결과 맺고 오십시요, 알피나 식구들 모두 열심히 등반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세상냄새 많이 맡고 오길....
무지 오랜만!! 나도 어찌어찌 일이 바쁘다 보니 이제 안부전하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너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밤 새서 일 하더라도 빨리 오너라. 널 위해 특별히 독수리 잔치 하기로 했으니까!!!
그래도 거긴 묵은지는 없을껄.. 내가 묵은지 팍팍 삭히고 있으니깐 기대해요. ^^
아~! 마누라가 현상이를 싫어하는가? 아님, 부러워 하는가? 뱅기를 못타게 하네.. 알피나 쓰러지것다. 빨랑와..
형 마이보고싶네요 어여와요 설마 말둑 박는건 아니시지요
오랫만이군! 일 잘 끝네고 건강하게 돌아와서 보세...(문자메시지 잘받았는데, 내문자는 않가지?)
잘 있지유. 일 잘 마치고 빨리 오시게. 대장 없으니 허전하네.
잘지내시죠??? 가끔오빠 진~~짜 보고 싶네요..코락 체육대회때는 못오는거 확실하죠..ㅎㅎㅎ 건강조심..화이팅!!!
현상씨 이 생생한 기록과 사진에~ 마치 내가 시드니에 있는 기분좋은 착각에 빠지네.. 좌우간 고마운 일^^ <참, 시드니발 문자 받고 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우왕~ 재밌다.. 소식 자주 보내줘요. 궁금하니까~ 글구.. 이왕 간거 여기저기 많이 보고 오세요~ 전 호주 갔을 때 정말 오기 싫었는데... 넘 좋아서.. 오빤 돌아오세요~
2탄 기대됩니다 건강하시죠 ^^
형 잘지내시고 있죠? ..
언제 올렸다요..^^ 저 무슬림이 숲속에 숨어서 예배보는 게 아닌,그런 호주겠지 ? 자주 좀 글 올려 응? 사진이 참 좋다...역쉬~~`
장훈/가끔 산행후기에서 반가운 소식 전해듣는다.계속 애정을 가져주길, 한철형/네^^원래 보헤미안같은 놈인데..좋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용수/독수리 멸종되기 전에 가야할텐데...대원들 잘 챙겨주고^^, 철순/묵은지에 고등어조림 꼭 준비해라^^, 문수/빨랑 와라,정말 술 먹을 줄 아는 놈하고 술 한잔하고 싶다, 명종/여름내 알피나 잘 지켰다.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게다, 근형/문자? 당근 안오지^^빨리 줄 한번 같이 묶어야지~, 영남형/형, 소주 한잔 따라주세요~, 신희/10월 중순이나 되야할 것 같고,응원상 꼭 타도록^^, 주영누님/조금 더 한가해지만 소식 또 전할께요.곧 동계산행의 계절이네요^^
정은/난 한국 가고 싶어-_-너 정말 열심히 등반하더라.나 줄 좀 깔아줘~, 래정/건강하지^^ 어디 보니까 다친 모양이던데..관리 잘하고^^, 상구/상구,상구 박상구! 너야말로 잘 지내고 있냐?얼굴 한번 보여줘~, 종훈/임마 거래처 가면 전화한다더니...쩝 연애하냐?....다들 행복하게 지내세요~~~~~~
형정말 오시고 싶긴 한가 보내요^^그 긴긴밤 뭘 하시며 지내시려나
잘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 지금쯤 약간 추울 때 아닌가? 대장, 보고 싶구만 그랴..
현상아 나도 산이 싫어 나두 시드니가 좋아...
시험전날.. 질문하는 녀석들 위해 대기조로 기다리며.. 천천히 다시한번 더 시드니 편지를 읽으니.. 조리정연하고도 녹록찮은 삶의 무게가 실린 글 그리고 대한항공 사외보에서 만났던 듯한 사진에.. 다시한번 더 놀라고 다시한번 더 우리 대장 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