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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해줘] 04
S#1. 입시학원(낮)
접수처 프린트에 을채의 수강증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직원, 수강증을 동그란 구멍으로 내밀면,
영채, 서 있다가 "감사합니다"하고 수강증 받아 이쪽으로 온다. 영채 얼굴이 수척하다.
을채, 병수에게 전도연 흉내라도 내며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다.
병수, 영채가 다가오니 어쩐지 쭈뼛거려지는데.
영채 : (을채에게 수강증 내밀며) 열심히 해. 안그래두 아빠 허리가 휘어지는데 올해는 꼭 돼야지.
을채 : (받으며) 언니야. 오늘까지만 놀고 낼부터 다니모 안대겠나?
영채 : 아예 학원 다니지 말구 놀아. 석관이한테 시집보내지고 싶으면.
S#2. 하숙집 마당
석관, 걷다가 멈춘 포즈로 얼굴을 묘하게 찡그리고 있다. 내려다보는 석관. 개똥 밟았다.
반야가 말끄러미 올려다 보고 있다.
하얗게 빤 이불홑청을 빨래바구니에 담아가지고 나오는 능옥에게
석관 : 이모! 내 반야 똥 밟았다 아입니꺼! 일마 이거 복날까지 기다릴 거 없이 고마 팍 묵어버립시더!
'촤르륵' 소리가 나도록 홑청을 펼쳐 빨래줄에 너는
능옥 : 반야 똥 먹넌거넌 안말리는디 반야럴 먹넌거넌 삼가 거절이여. 억만겁 전생을 지나야만 개가 되구, 개 담에 사람 되넌겨.
반야는 다음 생에 사람으루다 태어날 테지만, 니넘은 개벼룩이나 개진드기루 날지두 몰러.
개벼룩이 사람 전생을 함부루 먹을겨? 아나 먹어라, 아나 먹어.
석관 : 이모!!!!!!!!!!
S#3. 지하철 역 앞
영채가 전철역을 향해 앞서 걷고, 병수가 따라온다.
병수 : 영채야, 토스트라두 먹구 가자. 너 요 며칠새 물 밖에 안먹었잖아.
영채 : (전철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는데)
병수 : 영채야......(하며 따라 내려가려면)
영채 : (문득 서서) 헌팅 가야 하잖아, 너. 이쪽이 아니잖아. 박감독님이랑 정작가님이랑 기다리잖아!
병수 : 그래, 너 토스트라두 한쪽 먹이구 가려구.
영채 : 빨리 가라. 상관 말구.
병수 : 너 얼굴이 노래. 쓰러지기 일보 직전처럼 보인단 말야.
영채 : 빨리 사라져주라... 병수야. 왜 니가 빨리 사라져야 하냐면 말이지, 내가, 니 얼굴만 보면, 미치겠거든....
병수 : ....
영채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구 묻구 싶어서.
병수 : ....
영채 : 그러니까... 아무것두 생각 안날때 까지 좀 사라져달라구. 알았지?
영채, 계단으로 내려가 버린다.
병수,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고.......
S#4. 승강장
지하철 들어오고 있는데 벤치에 앉아있던 영채, 전철 타려고 일어서면 병수가 뛰어와서 영채를 잡는다.
영채 : ? 안갔어?
병수 : (전철 들어오는 소리에 안 먹히려고 큰 소리로) 자신있어?
영채 : ....
병수 : 말해줄께....
영채 : ...
병수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줄(하는데)
영채 : 싫어.
병수 : ....
영채 : 안들을래. 자신 없어. 하지마.
영채, 열차에 타서 다른 칸으로 막 걸어가 사라지고 열차 문 닫힌다.
출발하는 열차를 망연히 보고 있는
병수 : .......
S#5. 병원복도
영채, 수척한 얼굴로 걸어온다. 병실을 확인하며 걷는 영채. 희수의 병실 앞에 서서 노크하려는데,
병실 문 확 열리고 희수의 새엄마가 울그락 불그락해서 나오며 영채를 확 치고 간다.
영채, 새엄마를 한번 보고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S#6. 병실안
영채 들어서자마자 베개가 날아와 영채 얼굴에 맞고 떨어진다.
놀라는 영채. 놀라는 희수.
희수 : ...미안. 어떤 아줌만 줄 알았거든.
영채 : ....
희수 : 좀 전에 나간 아줌마가 다시 들어온 줄 알았어. 그 아줌마 무지 재수 없거든. 명색이 내 계모야. 나랑 열살씩이나 차이 나는
영채 : (가방에서 시나리오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시나리오에요.
일단 이거 읽으시구, 감독님이 헌팅에서 돌아오시면 미팅 하시래요.
희수 : ...가서 전해. 나 안한다구.
영채 : 그렇게 나올 거랬어요.
희수 : ?
영채 : 근데, 작품 세개 계약금을 미리 다 받으셨다면서요?
희수 : ... 이런 망할...
영채 : 이번이 세개 중 마지막 작품이라구. 위약금 물어내시려면 그렇게 하시래요. 위약금은 계약 금액의 세배라면서요?
희수 : 허......(어이가 없는)
영채 : 그리구 보도자료두 벌써 나갔어요.
희수 : 뭐?
영채 : 박희수씨가 음악 맡았다구 보도자료 나갔다구요. 꽤 유명하시다면서요?
희수 : (얼굴 구기고 ... 생각에 잠겨있다가) 일단... 가봐,
영채 : 예?
희수 : 나중에 조대표한테 따루 연락할 테니까 일단 가보라구.
영채 : 안돼요.
희수 : ?
영채 :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시나리오 다 읽으실 때까지 지켜야해요.
희수 : ... 지켜?
영채 : (가방에서 책 꺼내 펼쳐 읽기 시작한다.)
희수 : (그런 영채를 보다가)..어어.. 왜그래?
영채가 펼쳐놓은 책 위로 똑! 하고 피 한방울 떨어진다.
이나 : (E) 좀 삐딱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 코피 나게 싸워야 할지도 몰라요.
S#7. 영화사 이나의 방 (회상)
이나 앉아있고 영채, 서 있다.
이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사무적이다.
이나 : 이름깨나 알려지구 나선 자꾸만 거들먹 거리네. 요령껏 잘 설득해봐요.
영채 : (자기도 제법 사무적으로, 애쓴다) 예 알겠습니다. (돌아서는데...)
이나 : 또 궁금한 건 없나요?
영채 : ...(본다)
이나 : ... 뭐든지, 물어봐요. 감추는 거 없이 다... 대답해줄 용의 있어요.
영채와 이나, 서로 힘껏 마주본다. 아찔한 시선.
이나는 도전자의 눈.
영채는, 뭔지 몰라도 나 만만한 애 아니에요의 눈으로.
영채 : ....없습니다.
이나 : (보다가... 웃으며) 술 한잔 하며 얘기해봐요. 술이 들어가면 좀 부드러워지는 사람이니까.
영채 : ....
S#8. 병실
희수, 휴지로 영채의 코피를 닦아주고 있다.
영채 : 고맙습니다, 제가 할께요.
희수 : (손 떼고, 영채를 안쓰럽다는 듯 보는) 이런 젠장.... 입원은 그쪽이 해야겠구만.
영채 : (닦아내며)........ 술 한잔 .... 사주실래요?
희수 : .......
S#9. 입시학원 복도
쉬는 시간, 와글와글한데, 을채가 교실에서 뛰어나와 기다리고 있는 병수에게로 간다.
을채 : (반가운) 오빠야! 금방 가놓고 와 또 왔는데?
병수 : (주머니에서 지갑 꺼내고, 지갑에서 돈 꺼내고, 돈 주며) 영채가 오늘도 암것도 안묵었거든?
을채 : 근데?
병수 : 이따 집에 갈때 이걸로 영채 맛있는 거 사다줄래?
을채 : 치...
병수 : 내가 촬영지 헌팅 간다 아이가.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니가 언니야 쫌 챙기.
을채, 병수를 노려보고 병수, 그런 을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간다.
을채 : (가는 병수를 보며 혼잣말) 오빠야는 내끼다. 까불지 마라.
을채,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휙 도는 순간 막 교실에서 나오던 누군가와 꽝 부딪힌다.
보면, 한준이다.
을채 : 눈까리 쫌 똑띠 달고 다니그라! (쏘아주고 들어가는데)
한준 : 죽고싶나? (<친구>의 유오성)
S#10. 배안
배가 섬을 향해 가고 있다.
박감독, 배 난간에 엎어져서 바다에다 꽥꽥 토하고 있다.
병수, 걱정스러운 듯 박감독의 등을 두들겨 준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정형수 : 미치겄네...... 이십프로는 흔들리는 배에서 찍어야 하는데, 감독이 헌팅할때 부터 이라고 보대껴불면 어쩐다요? 예?
(하면서 자기도 메슥메슥하다)
병수 : 괜찮으시겠어요?
박감독 : (끅끅대며) 야 얼마나 더 가야 되냐
병수 : 여기선 십분만 더 가면 되지만........ 가서 또 전세낸 배 갈아타구 무인도까지 한시간 더 가야 하는데...
박감독 : 꽥-꽥- (토하고)
정형수 : (갑자기 박감독 옆에 엎어져서 꽥꽥 토하기 시작한다.)
병수 : 큰일이네....
박감독 : (갑판에 주저앉으며) 새끼 나, 누가 이따위걸 쓰랬어.........
정형수 : (같이 주저앉으며) 작품 죽인다고 헐 땐 언제구우우우우.....웩-!
정형수, 후다닥 일어나 바다에다 토 한다.
병수, 박감독 챙기랴, 정형수 두들겨주랴 정신 없다.
박감독 : (수건으로 입 닦우며) 나는 멀미지만 형수 너는 입덧이다 새꺄... 배 나온 거 좀 봐 짜시이이으으으으으에엑
박감독, 정형수 엎으로 후다닥 가서 꽥꽥 댄다.
병수, 다시 박감독의 등을 두들겨준다.
박감독과 정형수 나란히 갑판으로 미끄러져 주저 앉는다. 두사람 얼굴이 노-래졌다.
박감독 : (지쳐서) 나 물 좀 주라.
정형수 : (마찬가지) 난 따땃헌 놈으로 도라 병수야.
병수 :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병수, 선실 쪽으로 후다닥 간다.
S#11. 선실
병수, 선실 문 열고 들어서는데 안에 있던 이나가 보온병을 내민다.
병수, 본다.
이나 : 춥지 않나? 들어와있지...
병수 : 멀미.... 때문에요....
병수, 보온병 받아서 가려는데
이나 : 병수씨. 벌써 다른 사람들 한테 들키구 싶어?
병수 : ?
이나 :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서 어색하게.... 그러지 마요.
병수 : ....
이나, 자리로 가 앉는다.
병수, 잠시 생각하다가 이나 옆으로 가서 한자리쯤 사이를 비우고 앉는다.
이나 : ?
병수 : 지금까지 한번도 영채에게 비밀이 있어본 적이 없어요.
이나 : ...
병수 : 비밀이 생기니까... 힘듭니다.
이나 : ....
병수 : 비밀을 지키려구 거짓말을 만들거나... 아예 다른 말까지 안해버리거나...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나 : 그래서?
병수 : 그래서.... 차마 말 할 수 없는 일 따윈. 만들지 말아야겠다구 생각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대표님 마음, 받을 수 없습니다.
이나 : (그럴 줄 알았지만, 사운한, 자신도 모르게 표독해지는)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거 아닌가?
병수 : 예?
이나 : 차마 말 할 수 없는 일 따위가 벌써... 저질러져 버린거 아니냐구.
병수 : 그건...
이나 : 실수였다구?
병수 : ....
이나 : 너두... 뻔하구나. 김병수.
병수 : ...
S#12. 큰섬
풍경. 백소동 고리, 새 소리 들리고.
S#13. 선착장 휴게실
박감독과 정형수,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휴게실의 낡은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다.
이나, 서성거리고,
거의 캠핑 장비에 가까운 짐꾸러미 옆을 지키는 병수, 자꾸만 밖을 내다본다.
박감독 : 내가, 헬기, 비행기, 롤러코스터두 다 타봤는데 멀미 난 적이 없거든. 배멀미 있는 건 몰랐네.. 내가... 아 이거 죽갔네~
정형수 : 날만 좋으면 이라고 겁나게 안 흔들릴 거인디..그나저나 이렇게 늦어지면 오늘 안에 못 나오는 거 아니여?
이나, 서성거리며 병수를 보고 있고
병수, 시계 확인하며 바깥을 보다가 뭘 봤는지 반색하면,
50대 아저씨가 안좋은 얼굴로 들어온다.
병수 : 안오시는 줄 알았어요. 풍산호 선장님 되시죠?
아저씨 : 영화찍는 사람들?
병수 일행 일제히 아저씨를 본다.
병수 : 예, 저희가,
아저씨 : 이거 미안한데 쪼끔만 더 기다려줘야겠어. 노모가 계시는데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거든?
병수 : ?
아저씨 : 겨우 찾았어. 메셔갈 사람이 오구 있으니까 쪼금만, (하다가) 어이구 노인네, 내가 제명에 못 죽지, 못 죽어!!!
(휴게실 문 벌컥 열고 나가며) 엄마! 엄마!! 거기 가만 계시라니까 또 어딜 가요오~!
병수일행 : .......
밖을 보면, 팔순 쯤 된 할머니가 배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고,
아저씨, 뒤 쫒아가 할머니를 끌고 이쪽으로 온다.
아저씨, 할머니에게 막 잔소리 하다가 뭘 봤는지 빨리 오라 손짓해놓고,
휴게실 쪽을 향해서도 나오라고 손을 흔든다.
S#14. 선착장
아저씨의 부인이 와서 할머니를 인수인계 받아 모시고 가면,
풍산호라 쓰인 허술한 작은 배 앞에, 노랗게 질려 서 있는 정형수와 박감독.
그런 두사람을 보고 서 있는 이나와 병수.
아저씨 : (부인 뒤통수에 대고) 뭔 일 있으면 바루 핸드폰을 허여! 알었어?
부인 : (끄덕여 보이고 멀어져 가면)
아저씨 : 미안하게 됐수다들. 어여 타요 어여.
아저씨, 배에 오르면, 배가 크게 출~렁 한다.
정형수와 박감독,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동시에 우엑~ 헛구역질.
병수, 또 챙기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이나 : 이래갖구 어디 헌팅 하겠어요?
박감독 : 조대표, 우리 날 좋으면 가지. 바람이 너무 많이 부욱. (헛구역질)
정형수 : (동의의 끄덕끄덕)
병수 : ....
이나 : 여기서 여러날 흘려보낼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힘드세요?
박감독 : 가보긴 가봐야 하는데....... 어휴, 흔들리는 건 시계추만 봐두 구역질이 날 거 같아.
정형수 : (끄덕끄덕)
병수 : 그럼 쉬구 계세요. 제가 가서 찍어오겠습니다.
박감독 : (말 끝나자마자, 반색하며) 어, 그럴래?
정형수 : 역시 병수다, 잉. 학교 댕길때게여... 병수 안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당께요. 병수야, 싸목싸목 댕겨와 잉?
병수 : 예...(짐들고 배 쪽으로 가고)
이나 : ...
정형수 : 형, 갑시다, 어디 가서 속 조까 녹입시다. (짐 챙겨 반대로 가고)
박감독 : 어... 그래...(짐 챙겨 형수를 따라가고)
이나 : (형수네를 보고, 병수를 보고, 형수네를 보고, 병수를 보고...)
S#15. 작은 배
무인도를 향해 가고 있는 작은 배.
아저씨, 운전하고 있고, 이나, 불편하게 앉아있고,
병수, 멀리 보이는 섬 등을 캠코더로 찍고 있다.
아저씨 : 동굴은 북쪽으루 있지. 짚숙하게 들어가면 섬 반대짝으루다 나오는 구녕이 있구.
병수 : 사람이 살았던 적이 한번두 없었나요?
아저씨 : 왜여, 있지. 내 고향이 저 섬인거든? 칠십오년부터 하나둘씩 빠져 나가더니 저작년에 딱 한가구 남었더라구.
혼자 어떻게 살어. 지난 가을까지 버티다가 겨울은 큰 섬서 난다구 큰섬으로 이사나왔더만. 그게 나여. 허허허
병수 : 예에.
병수의 캠코더 모니터에, 추위로 달달 떨고 있는 이나 보인다...
무인도는 점점 가까와지고.
S#16. 작은 섬 입구
배가 와서 닿는다.
아저씨가 내려서 병수와 이나가 내리는 것을 돕는다.
아저씨 : 실실 걸어서 돌어대겨두 두시간두 안걸릴거여. 어느짝으루 와두 일루 나오게 돼 있으니까 걱정말구 다녀오여.
병수 : 예. 다녀오겠습니다.
S#17. 작은 섬 일각
여기저기 캠코더에 담는 병수 추위에 떨어가며 병수 뒤를 쫓아다니는 이나.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분위기.
S#18. 폐가
먼지 앉은 폐가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병수.
S#19. 폐가의 부엌
무쇠솥도 있고. 한쪽에 마른 장작도 그래도 쌓여있다.
캠코더에 담는 병수.
S#20. 폐가의 방 안
다 챙겨가지 않은 낡은 살림살이들 흩어져 있고.
벽에 걸린 가족 사진, 아까 배를 몰던 아저씨네 가족이다.
아저씨랑 그 할머니랑, 그 부인이랑 애들도 박혀있다.
병수가 캠코더에 그 사진을 담다가 문득 이나를 본다.
이나,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 오돌오돌 불쌍하게 떨고 있다.
S#21. 부엌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 불을 지피는 병수.
S#22. 마루
방에서 연기가 풀풀 새어나오고 있고, 이나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떨고 있는데, 부엌에서 나오는
병수 : (캠코더를 집어들며) 방에 연기 좀 빠지면 들어가서 쉬구 계세요. 동굴에 좀 다녀올께요.
병수, 캠코더를 어깨에 걸고 마당 밖으로 간다.
이나, 그런 병수를 보는데 정신이 까물까물하다.
S#23. 작은 섬 입구
아저씨, 모닥불을 피워놓고 쬐며 전화를 받고 있다.
아저씨 : 메여!!! 아 이사람아~ 울지 말구 차근차근 말을 허여어!! (자기가 울기 시작하면서) 아 울지말구 말 허라구, 이 여편네야!!
S#24. 큰 섬 횟집 (오후)
밖은 차차 어두워지고 있는데 정형수와 박감독, 술상 잔뜩 어질러놓고 술 마시고 있다.
그릇들이 거의 비어있는 걸로 보아 둘 다 엄청나게 마시고 엄청나게 취했다.
정형수 : 아들 면이 죽었다. 스무살 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딱 이 세줄에 지가 뒤로 발라당 자빠라져부렀당께요, 형님.
이것이 언 필칭 예술이어요. 안그렇고? 이 소설 꼭 영화 만듭시다요 형님.
박감독 : 너는 새까, 그 문학성 때문에 영화에서 번번히 깨지는거 얌마.
정형수 : 감독님. 박감독님! 형님! 나헌티는 고시랑바시랑 잔소리 혀도 되넌디요,
우리 김훈 선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회피해 주십쇼. 지가 용서하지 않을랍니다.
박감독 : (술잔을 탕! 놓으며) 내가 언제 김훈 선생한테 잔소리 했냐, 너한테 했지 임마. 어디 니깟놈이 김훈 선생을 입에 올려.
정형수 : 니깟놈이라고요? 허허이~, 그러는 형님은 어디가 잘났소? 아 밤낮 대종상만 받으면 뭐던다요?
지헌티만 솔찌거니 말 해 보씨요. 상 받을라고 와이로 썼지라?
두 사람, 취해서 되도 않는 소리를 마구 지껄이고 있는데,
횟집 통유리 밖으로, 엉엉 울며 달려가고 있는 풍산호 아저씨가 보인다.
두사람,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며 싸우고 있다.
S#25. 폐가의 방
따뜻해지고 있는 아랫목에 무릎을 안고 힘겹게 앉아있는 이나.
병수 : (E) 차마 말 할 수 없는 일 따윈...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대표님 마음.... 받을 수 없습니다.
이나 : (꺼지듯이) 제법.... 힘드는 일이구나....
S#26. 동굴안
캠코더에 붙은 조명으로 동굴안을 비추며 들어서는 병수
병수의 발에 밟히는 자박자박 낙엽더미가 내는 소리 크게 울리면
어린 영채 : (E) 아자작아자작 새우깡 씹어먹는 소리
S#27. 울진 성류굴 (회상)
손전등을 들고 "영채야" 부르며 들어가는 어린 병수.
굴 속 어딘가에서 아자작 아자작 소리 희미하게 들리는데.
영채, 굴 속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자작 아자작 새우깡 씹어먹고 있다.
멀리서 "영채야" 부르는 병수의 목소리가 텅텅 울린다.
영채, 문득 먹기를 그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시한번 "영채야" 부르는 병수 소리.
영채, 벌떡 일어나 병수야!!! 외친다.
달려오는 병수의 발자국 소리 점점 커지고, 마침내 병수의 플래쉬가 영채를 비춘다.
병수 : 영채야!
영채 : (불빛에 눈이 부셔 잠시 찌푸리며 병수를 보다가 다시 새우깡을 아작아작 씹어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썩가이네 반 애들이랑 같이 놀았는데, 썩가이가 깜박 잊고 내를 흘리고 갔다.
병수 : ...점또록 찾아댕깄다. 안무서벘나?
영채 : (아작아작) 쪼매 무섭다가, 니가 내를 델로 올꺼라 생각하니까 안무섭드라.
병수 : ......가자.
영채 : 어.
병수, 영채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손전등을 비추며 출구를 향해 조심조심 가고 있다.
저기 동굴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보인다.
S#28. 동굴 밖 (현실, 이브닝)
병수, 나오면, 세상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다.
병수 : ....
영채 : (E) 그 자식은 내...대나무 숲이거든요?
S#29. 거리
완전히 어두워진 건 아니지만 밤에 가까운 시간.
영채, 다소 취한 듯 걷고 있고, 그 옆에서 희수가 심난 한 듯 걷고있다.
영채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구!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고,
희수, 영채를 가볍게 잡아 말린다.
영채 : (그러거나 말거나) 뭐든지 그 자식한테 말 했어요. 그 자식두 나한테 그렇게 했구요.
한마디루 우린, 비밀이 없었다구요. 아시겠어요?
희수 : 좋았겠구나.
영채 : 그자식이 내 대나무숲인데, 대나무 숲이 저지른 일은 누가한테 물어봐야해요?
희구 : ...(알면서도 )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
영채 : 글쎄 그걸 알 수가 없....(하다 문득 서며)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다....
희수 : ?
영채 : ...지금...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구요.
김홍준 : (E) 여기 이 장면 말야, 원래 계획으론 이게 아니었던 걸루 알구 있는데?
S#30. 인서트
병수 작품의 한 장면.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에 푸른 기운이 조금 남아있어 사람과 사물이 서커멓게 보이는 시간,
배추밭 사이에서 울고 있는 영채(갈래머리, 여고생으로 분했다)에게서 카메라가 한 없이 멀어지고 있다.
김홍준 : (E) 시나리오는 이렇지 않았잖아.
S#31. 영상원 강의실 (회상)
김홍준 교수와 학생들, 병수가 만든 작품을 보고 있고,
학생들 사이로 영채와 병수도 보인다.
김교수 화면을 정지화면으로 만들고 병수를 본다.
병수 : 그게... 저기... (긁적긁적)
김교수 : 대변인이 말해봐!
영채 : 예. 원래 저기서는 주인공이 밭고랑 사이를 막 달려가구, 그런 주인공을 핸드핼드로 뒤쫒아가며 촬영할 계획이었음다.
그런데 김병수군은, 그렇게 하면 저 할머니네 배추밭을 망치게 된다고 망설였습니다.
저를 비롯해 스탭들 모두는 그냥 몰~래 찍구 토끼자고 부추겼지만....
학생들 : (웃음)
영채 : 김병수 감독의 두시간여에 걸친 장고 끝에, 주인공이 그냥 앉아있고, 카메라가 줌 아웃으루 빠지는 걸루 결정된 겁니다.
김교수 : (정지돼 있는 화면을 보고, 다시 병수를 보고, 웃으며 끄덕끄덕)
병수 : (긁적)
김교수 : 시간이 이런 시간이었나?
병수 : 저기.... 달리려구 했던 건 주인공이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구 싶었던 건데요... 배추밭 땜에... 달릴 수가 없어서...
대신 하루중에서 가장 무서운 시간을 택했습니다.
영채 : 으에에에~ 그거 아니잖아 임마! 선생님! 택한 게 아니구요, 저 자식이 두시간을 고민하는 바람에 자연히 시간이 흘러
저 시간이 돼 버린 거라구요!
웃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고,
김교수, 웃으면서 칠판 앞으로 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이라고 쓴다.
김교수 : 프랑스 사람들이 하루중에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구 부르는 시간이 있다. (비디오를 가리키며) 바로 저 시간.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아주 조금 남아있는 푸른 기운 이라 해야 하나, 먹물 풀어논 거 같다구 해야 하나..
암튼 이 시간엔, 이시간엔 저 앞에서 내 앞으로 걸어오는 짐승이 우리집에서 키우는 갠지, 산에서 내려온 늑댄지
분간하기 힘들다구 해서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야.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아이들 : ...(또랑또랑)
김교수 : 배추밭 망칠까봐... 걱정을... 해야지, 이놈들아 니들은 학생인데.
일동 : (멋적음)
김교수 : 병수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화면에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영화감독 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영화를 살리려구 할머니에 대한 예의를 포기했다면, 저 훌륭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을 껏이다.
나는 예의 바른 사람이 좋다.
영채 : (병수를 본다)
병수 : (자기 조원들을 향해 남들 몰래 브이를 그려 보이며 바보처럼 웃는다)
김교수 :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딴짓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일동 : (웃고)
병수 : (얼른 손가락을 거두고)
영채 : (병수가 칭찬 받아 흐뭇한데)
S#32. 거리 (밤)
완전히 깜깜해졌다. 멈춰서서 그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던
영채 : 김병수가! 그 자식이 이 서영채 앞에!
희수 : ........
영채 : 늑대를 풀어놨을리는 없겠죠?
희수 : (가엽게 보는)
영채 : 그 핸드폰이....
희수 : ...핸드폰?
영채 : ..암튼 그게..왜 거기 있었던 건지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몰라서 두려웠던 거예요. 갠지 늑댄지 모르니까.
희수 : ......
영채 : 근데 병수는, 할머니네 배추밭을 망칠 인간이 못되거든요. 그러니까 내 앞에두... 늑대를 풀어놓진 못할 꺼예요, 그쵸?
희수 : ...(혼잣말 하듯) 늑댄데..
영채 : (못 알아듣고) 네?
희수 : 어쩌면 좋니....... 너를.
영채 : 에?
희수 : (가며) 불쌍하구나, 너나...나나.
영채, 무슨 소린지 몰라 갸웃하며 따라가는데, 영채의 핸드폰 벨 울린다.
영채 : (받으며) 여보세요?
경림 : (F) 나, 나경림인데 혹시 병수씨하구 연락됬니?
영채 : 아 그자식이요? 아침에 헤어지구 여태 전화 한통 없는 자식인데 왜요?
경림 : (F) 그 팀 아무하구두 연락이 안돼! 아무하구두!
영채 : 그 팀이 누군데요?
경림 : (F) 누구긴 누구야, 박감독 정작가 김병수 조대표지.
영채 : ....조대표님두.... 같이 가셨어요?
희수 : (본다)
S#33. 영화사
경림 전화중이고, 오상무는 다른 전화 받고 있고, 직원들 제 할 일 하고 있다.
경림 : 몰랐니? 박감독하구 정작가는 배멀미가 너무 심해서 조 대표님 하구 병수 씨만 무인도로 들어갔댔거든?
근데 그 뒤룬 통 아무하구두 연락이 안...여보세요? 여보세요?...(귀에서 수화기 떼고 보며) 얜 무슨 전화를 이렇게 끊어?
오상무 : (자기 수화기 막고) 연락 없었대?
경림 : 그렇대요. (하며 뭔가 곰곰 생각하는)
오상무 : (전화계속) 아마 너무 오지라 통화권을 벗어났나봅니다, 구이사님. 연락 되는 대루 꼭 전화 드리라구 전화겠습니다.
예, 예....(끊는) 이상하네, 우리 조대표. 약속을 해 놓구 안 지키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이거... 조대표도 늙나?
경림 : 제 생각엔요 오상무님, 늙느라 그러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오상무 : 무슨 소리야?
경림 : (직원들 눈치보며, 소곤소곤) 늙어서는 커녕, 뒤늦게 청춘을 구가하는 거라구요.
오상무 : 엥?
경림 : 이상하지 않아요? 김병수 서영채 입사한 담에 조대표님 어쩐지 자꾸만 두사람 떼놓구 김병수랑 계속 같은 동선 만드는 거
눈치 못 채셨어요?
오상무 : 어허!! 쓸데없는 소리!!
경림 : (찔끔하는데)
오상무 : ..........라구만은 할 수 없는 얘기군... 음.
경림 : 그쵸그쵸?
오상무 : (꿈벅꿈벅)
S#34. 작은 섬 입구 (밤)
배도 없고 아저씨도 없다.
병수와 이나, 난감하게 서 있다.
이나는 병수의 겉옷까지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고 있는데,
병수, 주변을 둘러보는 등 초조해지고, 이나는 점점 차분해진다.
병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낸다. 이나, 그런 병수를 보고 있다,
병수, 폴더를 열어 번호를 누르려는데, 이나, 불현듯 그 핸드폰을 뺴앗는다.
병수, 보면, 이나, 빼앗은 핸드폰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순식간이다.
병수, 이나를 노려보듯 본다. 이나, 담담하게 병수를 마주본다.
두사람의 입에서 꽁꽁 언 입김이 폴폴 새어나온다.
그 위로 (E) 타닥타닥 불 지펴지는 소리.
S#35. 인서트
아궁이에 장작이 지펴지고 있다.
S#36. 작은 섬 폐가의 부엌
아궁이 앞에서 장작을 지피고 있는 병수. 전기 안들어온다.
불 앞의 병수 얼굴이 벌겋게 비춰지고 있다.
S#37. 폐가의 방
랜턴 하나 켜 있고, 아랫목에 엉덩이를 붙이고 코트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이나.
덜덜 떨어서 코트가 들썩 거리는데 가방속에서 이나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
힘겹게 손을 뻗어 핸드폰을 꺼내 보면, 발신자에 희수 뜨고
이나 : (받는) 응.
S#38. 술집
영채,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저 혼자 빠르게 술잔을 비워가고 있고,
희수 그런 영채를 보며 화장실 앞 쯤에서 전화하고 있다.
희수 : (잔뜩 꼬여서) 당신이 기뻐할 소식이야. 별루 애 쓰지도 않았는데, 당신 뜻대로 일이 너무 잘 풀리구 있거든.
꼬맹이 말야, 잔뜩 취해 있거든? 이대루 테이블에 꽁 하구 머리만 박으면 상황종료야.
술 마시던 영채, 꽁 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다.
희수 : 시나리오가 이렇게 순조롭게 풀려두 되는 건가?
S#39. 폐가의 방
이나, 혼미한 상태에서 그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희수 : (F) 기분이 어때? 국민 여러분께 목표달성을 목전에 둔 심정이 어떤 건지 한 말씀 남기셔야지, 왜 아무 말이 없나, 당신?
이나 : ...시비 받아줄 상황이 아니야... 희수씨.
S#40. 술집
희수 : (확 돌아서) Ah, so sorry!! 방해해서 미안하군, 조이나씨.
이나 : (F) 미안, 끊을께. (끊는)
희수 : (전화기를 내려다보고, 다시 번호 누르면)
S#41. 폐가의 방
다시 전화벨 울리면, 이나, 핸드폰의 배터리를 뽑아서 던져 버린다.
S#42. 술집
희수,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경질적으로 폴더를 닫은 다음 영채에게로 가는 희수.
영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다.
희수 : 야 꼬맹아, 저쪽은 방해 받구 싶지 않댄다. 우리두 나가자, 까짓거!
영채 : (테이블에 머리 박은 채로 팔만 뻗어서 희수를 부른다)
희수 : 뭐, 어쩌라구?
영채, 계속 팔로 부른다.
희수, 어쩔수 없이 가까이 가면, 영채, 희수의 머리를 문지른다.
(E) 대숲 바람소리
희수, 어안이 벙벙해 가만히 있으면 영채, 문지르다 말고 뚝 멈춘다.
바람소리도 멈춘다.
고개를 번쩍 들어 희수를 보는 영채. 병수가 아니다.
영채 : ....
희수 : ....
그 위에 (E) 타닥타닥 불 지펴지는 소리
S#43. 부엌
문지방을 넘어서는 이나의 다리. 이나의 그림자가 병수에게 너울거린다.
병수, 이나가 들어오는 걸 알고 멈칫한다. 이나, 병수 옆에 와서 병수 처럼 쪼그리고 앉는다.
병수, 조금 떨어져 앉으며 장작을 하나 더 아궁이에 던져 넣는다.
이나 : ...(그런 병수를 보는)
병수 : 들어가세요. 추워요.
이나 : ...(병수에게 손을 뻗으면)
병수 : (물러앉는다) ...(이나를 보지 않고) 어릴때는 하루가 저물구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너무 힘이 들었어요. 애들은 다 밥 먹으러
집에 가서 놀아주지않구, 하늘은 점점 더 깜깜해지구, 할아버진... 낮에두 주무시구 밤에두 주무시구... 그랬거든요.
아침이 될 때까지... 무섭구 심심해서 잠두 오지 않았어요.
이나 : ....
병수 : 그러다 절에 갔고, 영채를 만났어요. 영채랑 있으니까... 어두워져두... 무섭지 않았어요... 평생, 눈뜨구 일어나 영채를 보고,
눈 감구 자기전에 또 영채를 볼 수 있다면, 사는게 ... 두려울게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구 있었어요.....
이나 : ....
병수 : 영채는 나한테, 겁나는 게 없도록 해 줬구... 영채두 제가 데리러 갈 걸 믿구 동굴에서 길을 잃었어두 울지 않았어요...
평생... 그렇게 하구 싶어요.
이나 : (고열로 뜨거운 숨을 가쁘게 뱉으면서) 그랬으면 나한테... 웃어주지 말았어야지...
병수 : ...?
이나 : 니가 웃어서 내가 위로를 받구....... 그런일은 없었어야지....
병수 : ....
이나 : 니들이 그정도라면, 내 앞에는,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이렇게 만나지지 말았어야지..... 이미 만났는데... 어쩔거니...
이나의 몸이 병수의 몸에 뚝 떨어진다. 병수의 팔이 이나의 눈물로 젖는다.
S#44. 포장마차 안
휘장이 휙 걷히고 와르르 무너지듯 취한 영채가 밖으로 나오고 희수가 그런 영채를 붙잡으며 따라 나온다.
영채, 길바닥에 주저 앉아버린다.
희수, 그런 영채를 난감하게 보고 있다가
희수 : 후.... 미치겠네...
영채 : (홍알홍알) 나둔데...
희수 : (못알아듣고) 뭐라구?
영채 : (버럭) 나두 미치겠다구요!!
희수 : ...꼬맹아, 집이 어디냐?
영채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행곡2리 29번지...
희수 : ...(어이없음)
S#45. 달리는 택시 안
뒷좌석에 타고 있는 영채와 희수. 영채 완전히 꼬부라져 있다.
아저씨 : 아 어디까지 가시냐구요?
희수 : 일단 앞으루 쭉 가시라니까요 아저씨!!! (흔들며) 얌마 꼬맹이, 어이 어이, 집이 어디냐구....
영채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행곡2리 29번지...
희수 : 후...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행곡2리 29번지루 갑시다, 아저씨!
아저씨 이 양반이 진짜!!!!
S#46. 희수의 오피스텔 복도
희수, 영채를 업고 온다.
힘이 드는지, 중간에 벽을 짚고 두 손을 무릎위에 엉거주춤 놓고 쉬다가, 다시 들쳐업고 가는 희수.
영채 : (홍알홍알) 야 너 어디 가!
희수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행곡2리 29번지 간다. 임마.
영채 : (희수의 머리통을 세게 퍽 치며) 김병수! 너 어디가냐구 임마!!!
희수 : 윽... 씨....
S#47. 오피스텔 안
희수, 영채를 들쳐업고 들어오가 멈칫, 놀란다.
비서가 후다닥 일어나 와서 희수에게 인사하고,
희수 : 무슨 일이슈? (하며 영채를 침데에 던지듯 눕혀놓고) 후- (무거웠다)
맥가이번가? 내 집 열쇠 그리 허술하지 않은데 어떻게...(하는데)
비서 눈짓하고, 희수 보면, 희수의 부친, 적당히 앉아있다 희수를 돌아본다.
(*희수의 부친 - 키 작고 탄찬하게 생긴 노인, 무학 자수성가의 마지막 재벌, 70세쯤 됐고,
희수는 세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정도, 병원에서의 희수 새 엄마는 네번째 와이프,
이 여자와 희수 부친은 30년 차이, 희수와 새 엄마는 6-7살 차이...)
희수, 놀라는데
부친 : 야 너는 뭐하는 애냐?
희수 : 뭐예요? (예고 없는 방문에 대한 항의로)
부친 : 너말구 너 임마!
비서 : 예 회장님.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나가면)
부친 : (영채를 보고) 참 우 아래루 길다랗기만 허구 옆댕이루는 볼품 없다, 야.
희수 : (그저 마주 하기만 해도 울화통이 치미는데)
부친 : 다친덴 웬만하구?
희수 : 보면 몰라요? 멀쩡하잖아요!!
부친 : 새끼 지랄은... 너 인자 그만 들까불구 집으로 들어와야 쓰것다. 의사가 그러는디 내가 건강이 저거하댜.
희수 : (조롱) 건강이 워치케 저거헌듀? 매독이래유?
부친 : 지랄. 것두 젊어 한두번이지 시방 내 나이가 몇인디 여적지 매독이겄냐... 삼동네 개가 웃겄다 야.
간이 아프댜... 대충 노나주구 쫑 치란다.
희수 : 나눠 받구 싶은 생각 손톱만큼두 없으니까 안들어가요.
부친 : 나두 쫑질 생각 없어 야. 개코 같은 소리 허덜 말어. 야, 내가 아무리 밑엤돈이 숨을 못 쉰다구 해두 엄한 넘들헌티 자꾸 자꾸
뒷돈을 대야 쓰겄냐? 새끼들 중에 그나머 지루다 니넘이 대갈통이 쩜 여물었길래 비양기 태워서 정치 공부 시키구
양중에(나중에) 정치하는 넘들 방패막이루 써 먹자 했더니, (악기들 가리키며) 저 구신 딱지같은 것들하고 친할라구
애비를 내 팽개치구 허구헌날 지집질이여? 똑 쓸 것만 배워라. 또 그렇게 쓸 것만 배워... 쯔쯔
희수 : 청출어람이에요.
부친 : 옘병, 문자 쓰지 말어. 무식헌 애비 놀리는겨? 강태동인지 강동탠지 허는 국회의원하구 밥 먹었다.
웬만만 허면 그짝으루 출근 햐. 내 건강두 저거하구 허니께 그참에 잔말말구.
희수 : (버럭) 싫어요!
영채 : (비몽사몽) 시끄러!!!!!!!!
부친 : 시끄럽단다, 참 목청은 좋다.......
희수 : (이를 악물고) 아부지.
부친 : 이빨 아프냐? 왜 이를 앙다물고 그런다니?
희수 : 아부지, 아부지 넷째 마누라 고마담 말예요, 그여자 옛날에 아부지 첫쨰 마누라가 낳은 셋째딸의 첫 번째 남편하구두
들락날락 했던 건 알아요? 나 정말 아부지 집안 재수없어요. 아부지 호적에 오른 자식들이 열댓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나 하나쯤 없는 셈 쳐두 하나두 안 이상 하잖아요. 아부지 나 성질 나쁜거 알죠? 아부지 닮아 낮술 처먹구
에미 애비두 못알아보는 놈인거 알죠? 제발, 제발, 제에발, 제에에에발 날 좀 내버려 두라구요오!!!!!!
S#48. 오피스텔 복도
희수, 부친 내 보내고 문 꽝 닫아 잠근다.
비서가 서 있다가 굽실 절 한다.
부친 : 씨도둑질은 못헌다더니 새끼 성질 하구는...... 야 나 다리 후달려 못 걷겠다.
비서 : 예 회장님.
비서, 등을 돌려대고, 부친, 업힌다.
S#49. 오피스텔 안
셔츠 바람으로 냉장고 앞에 서서 문 연 채로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희수.
다 마시고, 빈 캔 아무데나 던지고, 냉장고 문을 쾅 닫는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돌돌 말아 넣어 놓은 시나리오를 팍 꺼내 소파로 가는 희수.
희수, 소파에 앉아 신경질 적으로 시나리오 팍팍 넘긴다.
희수 : 젠장. 저 노인네한테 안 붙잡혀 가려면 나 이거 해야겠다 꼬맹아.
영채 : (쪼그린채 깊이 잠들어있고)
희수 : (팍팍 넘기며) 야 근데 너 힘들어서 어쩌냐? 조이나 그 여자가 보통 불여시가 아니거든? 넘마 지금까지 곱게만 자랐잖아..
넌 임마 인생 고달픈 걸 모르잖아? 조이나는 아니거든? 그 여잔 말야, 본투비 재벌집안두 아닌데 지금 니네 회사 사주잖아.
그게 뭘의미하는 지 니가 아냐구?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별놈의 맛을 다 봤단 뜻이야. 너 따위는 손바닥 안에 쥐구 놀걸?
영채 : (고통스러운지, 뒤척인다)
희수 : (시나리오 파닥이던 것을 멈추고 영채를 보며) 근데 그런 악바리 같은 여자가 말야, 사랑에 빠졌대. 그 여자가 욕심 나는 걸
놓칠 여자 같냐? 사람이든 물건이든...너 싸울 수 있겠어? 이길 수 있겠냐구! ...(다시 파닥파닥 시나리오 넘기며) 쨉이 안돼.
너같은 꼬맹이는, 게임이 안된다구. (하다가 다시 멈추고 영채를 보며) 대체 니 그녀석이 어떤놈이길래 조이나가 맛이 갔냐?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바둑 잘 두는 범생이 말구 또 그녀석한테 무슨 특징이 있는데? 엉?
그런 타입이 남자들이 보기에 젤루 재수 없는 타입이야. 임마 너 그거 알어?
영채 : (얼굴 찡그리고 끙끙대며 잔다)
희수 : (보다가 시나리오 휙 던지고, 어깨에서 힘을 쪽빼고 소파에 깊숙하게 파 묻히며) 빌어먹을...넌 져.
지구 말거야, 그 불여시한테......
S#50. 폐가의 부엌
빈 부엌의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피어오르고 있다.
수북하던 장작이 조금밖에 안남았다.
S#51. 폐가의 방
랜턴 불빛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나, 자기 코트 병수 코트 되는 대로 다 덮고 쭈그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며 오열하고 있다.
병수, 반대쪽 벽에 기대 특별히 시선 두는 데 없이 멍하게 앉아있다. (F.O)
S#52. 희수 오피스텔 (아침)
벌떡 일어나는 영채, 둘러본다. 낮선 곳..
영채 : 여기가 어디지...
화장실에서 나오는
희수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행곡 2리 29번지.
영채 : (휙 보는)
희수 : 깼으면 빨리 가라. 너 땜에 한 숨두 못 잤어. 무슨 잠꼬대가 그렇게 요란하니 밤새도록?
영채 : (침대에서 후다닥 내랴서서) 어떻게 한 거예요?
희수 : 뭐?
영채 : 내가 왜 여기 있냐구요!!!
희수 : (기막힘)
영채 : (자기 몸을 내려다 본다, 코트까지 다 입고 있다, 안도의 한숨..)
희수 : 안갈래?
영채 : 아무일 없었던 거 확실하죠?
희수 : 아무일 있었으면 좋겠니? 그럼 그렇게 해 주구.
영채 : 뭐라구요?
희수 : (침대에 벌렁 몸을 던지며) 정말 한숨두 못 잤으니까 얼른 가주라.
영채 : .....
S#53. 오피스텔 복도
영채, 희수네 집에서 나간다.
희수네 문 한번 보고, 다시 가다가,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리는 영채.
S#54. 오피스텔 앞
영채, 나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걸어본다. 받지 않는다.
뚜껑 덮고 심난해서 가는 영채.
S#55. 큰섬 선착장
대어져있는 풍산호 앞에서 어리둥절 해 서 있는 정형수와 박감독.
정형수와 박감독, 서로 얼굴 본다.
박감독 : 이사람들, 왔다는 거잖아?
정형수 : 우리만 두구 갔을까요? 설마?? (하며 전화기를 꺼내고)
박감독 : 그럴리가 있어? 이상하네....(다른 배 아저씨에게) 아저씨,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정형수 : (전화연결이 안되자 박감독을 따라간다)
S#56. 풍산호 아저씨네 집 앞
조등이 걸려있고, 곡소리가 난다.
S#57. 그 집 안마당
마을 사람들 죄다 모여서 먹고 마시고 조문 하고 있다.
S#58. 그 안 방
정형수와 박감독, 상복의 아저씨와 맞절중이다.
절하는 두사람의 등 뒤로, 어제의 그 할머니의 영정 보인다. 절 하고 나서
박감독 : 아니 어떻게 이런 갑작스런 애사를 당하셨어요, 아저씨......
아저씨 : (이힉이힉 울며) 어즈께 자꾸만 배를 탈라구 하신게.... 마지막으루다 고향섬을 가 보구 싶으셔서 그랬던 거르으을...
끅끅끅... 에이구 엄마~ 불쌍한 울 엄마~~
박감독 : 저 아저씨........ 애통하시겠지만 잠깐 뭣 좀 여쭙겠습니다.
아저씨 : 에이고오오~ 물어보시오오오오.....
박감독 : 어제 아저씨 배를 타구 무인도에 간 두사람, 아저씨랑 같이 안돌아왔나요?
아저씨 : 갑자기 전화받구 왔는데 어찌 같이 돌아와아아아아 끅끅끅.... 두구 왔지이이이이.......(하다가).... 두구 왔네.
어라, 전기두 안들어오고 먹을 물도 없는데.... 어쩌나.
박감독 : 예?
정형수 : 예? 아저씨, 그럼 이거 완전히 조난이잖아요! 빨리 갑시다, 아저씨!
아저씨 : (다시 울며) 상중에 상주가 어딜 움직이나아아아... 에이고오 엄마~
박감독 : (기막힘)
정형수 : (기막힘)
S#59. 하숙집 앞
영채, 힘없이 걸어오는데, 영채 앞이 가로막힌다.
한준이 길목에 떡 서 있다.
영채, 올려다보면
한준 : 외박을 해?
영채 : (멀거니 본다)
한준 : 어디서 자구 오는 거야!!!
영채 : 오늘 컨셉은 누구냐?
한준 : 급해서 못 정했다 왜!!!
영채 : 으응. 이게 그럼 진짜 너구나. 비켜. 까불지 말구.
영채 한준을 밀치고 집 쪽으로 간다.
한준 : (따라가며) 이래두 되는 거야? 어디서 뭘 하다 오는 지 말 안해?
서영채! 내가 밤새 한 숨두 못자구 니네 하숙집 대문만 보고 있었다구! 서영채! 서영채!
영채 집으로 쏙 들어가고, 대문 꽝 닫힌다.
부르르 떠는 한준 위에 송강호 떠 오르고
한준 : 밥은 먹고 다니냐...(<살인의 추억>)
S#60. 하숙집 거실
영채 들어서자마자, 죽비가 철썩 날아온다.
능옥, 죽비로 영채를 쳤다. 석관이 보고 서 있다.
영채 : (뭐라 할 틈도 없이) 이모. 연락두 없이 외박해 잘못했어요. 근데 별일 아니거든요, 정말? 저 지금 가만 내버려 두셔야 해요.
야단은 나중에 들을게요, 네? (이층으로 가며 석관에게) 너 쓸데 없이 울 아빠한테 전화하면 죽는다, 응? (하고 사라지면)
석관 : 아....... 알았다.....
S#61. 울진 고등학교 운동장 / 하숙집 병수네 방
학생들 등교 중.
필상, 등교 지도 중에 석관의 전화를 받고 있다.
석관 : 뱅수는 분메이 회사 일로 출장을 갔으이까, 영채는 지난 밤에 뱅수랑 같이 있지느 않았십니더.
영채랑 뱅수가 요즘 이상합니데이. 웃지도 않고, 까불지도 않고, 밥도 잘 안묵는 거이..
필상 : 썩가이.
석관 : 예 쌤.
필상 : 인자 니 임무는 끝이다.
석관 : 예?
필상 : 인자 그 아~들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니할일 해라.
석관 : 그렇지만도 그 아~들이 원캉 물가에 내논 얼라들 같아가꼬예,
필상 : 쓱가이.
석관 : 예, 쌤.
필상 : 니 학교 와 안댕기노?
석관 : (화들짝) 예?
필상 : 니 학교 안나간다꼬 느그 동창 복태가 그카드라.
석관 : (울상) 복태 일마 이거......
필상 : 일간 내려온나. 알긋나. 안내려오마 느그 아부지한테 말씸디릴 수 밖에 엄따! 알제!
석관 : 예..... 쌤....(큰일났다!)
(E) : 철썩 철썩!
S#62. 영채의 방
영채, 자고 있는 을채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준다.
영채 : 학원 안가나 니!!!
을채 : 밤새 공부했다카이!!!
영채, 을채의 귀를 잡아당기고 을채, 아야야야 하며 일어나고
영채, 그런 을채를 '퍼뜩 씻고 온나'하며 문 밖으로 내몰아버린다. 을채 투덜대는 소리 멀어지고.
영채, 침대에 털썩 주저 앉는데,
을채, 다시 쿵쿵 대며 문 벌컥 열고 책상위를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케익 상자 있다.
영채 ? 하면
을채 : 뱅수오빠야가 언니야 니한테 사다주라캤다. 와 밥을 안 묵어가 뱅수 오빠야를 안달쿠노, 으이?
니 얄미워가 내가 쪼매 묵었다, 배 째라!
을채, 문 쾅 닫고 나가면 영채, 멀거니 케익상자를 보다가 가서 열어본다. 다 먹고 딱 한조각 남았다.
영채, 상자 닫는데, 영채의 전화 벨 울린다.
영채, 얼른 전화기 꺼내 보는데, 병수가 아니니까 실망한다. 전화 받는
영채 : 예... 나 실장님... 네? 뭐라구요?
S#63. 희수 오피스텔 (낮)
희수 뒤척이며 자고 있는데, 초인종 마구 울린다.
이불을 확 뒤집어 쓰는 희수.
S#64. 문 밖
영채, 벨을 마구 누르고, 한참 후에 희수가 문을 벌컥 연다.
영채 : 큰일 났어요....
희수 : ?
S#65. 달리는 희수의 차
희수 운전하고, 영채가 옆에 타고 있다.
희수 : 조난이라구? 분명히 조난이라 그랬어?
영채 : (불안... 끄덕, 울것 같다.)
희수 : (클랙션 빵빵 울리며) 출근 시간두 한참 지났는데 웬 차들이 이렇게 많아!
영채 : 좀 조용히 해요. 시끄러워서 머리가 터질 거 같다구요.
희수 : (혼잣말) 날두 추운데 지가 거길 왜 묻어 가?
영채 : 묻어 간게 아니라 헌팅하러 간거예요. 바람 심해서 가기 힘들었는데 병수가 지가 갔다오겠다 그랬대요. 걘..그런 애라구요..
희수 : 몸두 부실해 감기 한번 들면 반드시 폐렴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주제에....
영채 : (본다)... 누구요?
희수 : 누군 누구야, 망할 조이나지.
영채 : .....
희수 : 아프기만 해 봐 아주......
영채 : ........
(E) 부우웅~ 모터 소리
S#66. 달리는 배
정형수와 박감독, 아저씨네 배 말고 다른 배를 타고서 꽥꽥 배 멀미 하고 있다.
S#67. 작은 섬 폐가의 부엌
아궁이 불씨가 하나도 안살아있다.
S#68. 폐가의 마루
병수, 마당 끝에서 고개를 꺾고 서 있고, 이나는 마루 끝에 힘겹게 앉아서 통화하고 있다.
이나 : 죄송해요. 몸살이 심했구.... 핸드폰은 지금 찾았어요... 예. 선착장에 나가 있을게요... (끊고)
짐 들어라... 데리러 오구 있대... (무릎을 집고 일어서는데)
병수 : .......
이나 : ....
병수 : ........
이나 : (병수에게로 가서)... 병수야...
병수 : 말 ... 시키지.... 마세요.....
이나 : .... 너 참...... 나쁘다... 난... 상처두 안 받는 사람인줄 아니?
병수 : ....
이나 : (손을 뻗으면)
병수 : (물러나고)
이나 : (팔을 뚝 떨어뜨리고) 손을 먼저 뻗은 건 내가 맞는데, 그 손을 잡은 건 너야... 안아달라구 조른 건 난데... 안아준건 너야...
또 실수 였다구 할래? 니가... 같은 실수를.... 두번이나 하는 애니?
병수 : 그만요! 제발 그만요!
이나 : 니..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구... 웃어... 니 시선 니 표정 니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아프다구....
병수 : .......
이나 : ..... 나두 아프다구 이 자식아...
병수 : .......
이나 : 이제 너 못가잖아 , 영채한테..........
병수 : ....
이나 : 갈수..... 있어? 가서 영채 얼굴...... 볼수 있어?
병수 : (푹 주저 앉는) ........
이나 : (저도 힘에 겨워 푹 주저 앉는).......
S#69. 작은 섬 선착장
서 있는 이나와 병수에게로 점점 다가오는 배.
배 위의 정형수와 박감독, 거의 실신해 대자로 누워있다.
병수 : .....
이나 : ........
S#70. 큰섬의 항구
네 사람, 배에 오르기 직전.
박감독 : (실신직전) 난 여기서 또 배타구 인천까지... 못가
정형수 : (마찬가지) 저두요.
박감독 : 낼 모래 그 아저씨네 상여가 나간다니까 그것두 보구.
정형수 : 저두요.
박감독 : 가야겠으면 먼저들 가지.
정형수 : 그러세요.
병수 : ......
이나 : ......
S#71. 인천항
영채, 보폭을 좁게 해 천천히 왔다갔다하고 있고,
희수는 저쪽에서 통화를 끝내고 영채에게로 온다.
희수 : 박감독하구 통화했는데, 출발했대. 엇갈릴지 모르니까 여기서 기다리자.
영채, 듣는지 못 듣는지 제 구두코만 응시하며 왔다리 갔다리 하고,
희수도 안절부절 못하며 전화기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며 정신 사납게 왔다갔다 한다.
S#72. 바다
작은 배들이 가고 있다.
S#73. 인천으로 가는 큰 배 선실
그 배들이 보이는 선실.
병수와 이나,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앉아있다.
이나. 다시 열이 오르는지, 까물까물하며 자꾸만 제 이마를 짚어본다.
병수, 화장실에라도 가려는 듯 일어서다가 이나늘 스쳐본다. 병수, 깜짝 놀란다.
이나의 얼굴에 열꽃이 피어있고, 혼절 직전이다.
S#74. 인천항 대합실
희수와 영채, 배 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서 있다.
사람들 틈에 섞여 병수의 머리통이 보이고 영채, 어쨌거나 반가운데,
막상 나타난 병수는 열에 들뜬 이나를 꽉 끌어안아 부축해 오고 있다.
영채의 눈에는 그저 안고 오는 걸로 보인다. 희수도 마찬가지, 눈에서 불이 튄다.
병수, 영채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이나, 그런 병수를 보고 영채를 본다. 이나, 병수를 더 바짝 끌어안고.
이나 : ......
병수 : ......
영채 : ......
희수 : ......
이나 : ......
병수 : ......
영채 : ......
희수 : ......(마침내) 가자, 꼬맹아.
희수, 영채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고 휙 돌아서서 간다.
병수, 가는 두사람을 본다.
영채, 이마가 컴컴하게 어두워져 희수에게 안겨 간다.
이나, 흐릿한 눈으로 세 사람을 보는데, 시야가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F.O)
S#75. 이나네 집 (밤)
이나, 이마에 물수건 올려진 채 침대에 까부라져 있고, 병수, 멍하게 그 앞을 지키고 있다.
이나 힘들게 눈을 떠 보면 병수, 아무데도 보고 있는 눈이 아니다.
이나 : 나.... 아직도 아픈거니?
병수 : ...네.
이나 : ... 안갔니?
병수 : ... 어떻게 ... 가요...
이나 : 내가... 아파서?
병수 : ...영채한테 ... 어떻게 가요...
이나 : ......(눈 감는)
병수 : ......(F.O)
S#76. 희수네 집 (밤)
희수, 가만히 앉아있고, 영채, 맥주캔을 들고 마시며 왔다갔다 한다.
영채 : 아니에요. 뭔가 잘못 된 거라구요. 착각이거나 꿈이예요. 걘요, 어디 안간다 그랬단 말예요. 걘요, 내가 우는 걸 못봐요...
내가 울기만 하면요, (눈물이 주르륵 ... 흐르며) 자기 머리통을 내밀어주는 애라구요.
세상에, 머리통두 안남겨두구, 나를 울릴 수가 없잖아요, 그럴 리 없잖아요! 네? 그럴리가 없잖아요!!
희수 : (굳게 굳어서)
영채 : 아저씨! 그쵸! 그럴리는 없는 거죠?
(F.O)
S#77. 호텔 복도 (밤)
이나를 끌고 객실을 항해 가고 있는 희수.
뿌리치는 이나. 다시 끌고 가는 희수.
기어이 객실 문 앞까지 끄는 희수. 이나, 뿌리치며 희수의 뺨을 철썩!
희수 : (뺨이 벌개져서)... 그럼... 내가 ... 어떻게 하면... 너를 안을 수 있니....
이나 : (노려보는)....
희수 : 어떻게 하면 거절 안당하구 당신을 안을 수 있어? 응?
이나 : (노려보는).......
희수 : 당신 뜻대루, 꼬맹이 넘어뜨려주면 되니?
이나 : (노려보는) ....
희수 : 그렇게 하면..... 당신이 날 안아줄래?
이나 : (노려보는)....
희수 : (괴로움에 어쩔줄 몰라하며) 그래, 그러자...... 당신이 준 숙제... 다 해 놓구 올께... 그럼 안을 수 있는 거지?
희수, 객실 키를 바닥에 탁 던지고, 객실 문을 발로 뻥 차고, 뒤 돌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가쁘게 숨을 쉬며 보고 있는 이나.
(F.O)
S#78. 서울역 앞 (낮)
이나, 택시에서 내려서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S#79. 서울역 안
병수, 막 개찰구로 들어가려는데 이나 달려와서 병수를 잡는다.
이나 : 너.. 어디가니!
병수 : 영채한테... 못가지만.... 조대표님한테두... 갈 수 없어요...
병수, 들어간다.
이나, 따라들어가려는데, 역무원이 붙잡는다. (F.O)
S#80. 희수의 작업실 (밤)
초췌한 희수, 문 열어주면 쓰러지 듯 들어오는
영채 : 그자식... 사라졌어요. 병수 그 자식이 없어졌어요.
희수 : 그러니 나더러 어쩌라구.
영채 : ... 이럴 수가 없잖아요!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없잖아요!
희수 : ...
영채 : 걘, 내꺼란 말예요!!! 첨부터 내꺼였구, 내 다나무 숲이었구, 그 머리통은 태어나기 전부터 내꺼였구,
날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런일이 (생기냐구요)
희수, 영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런 영채를 와락 안아버린다.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