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법륜스님이 부탄을 방문해서 부탄의 스님들과 대화를 했는데, 어떤 부탄의 스님이 법륜스님에게 질문합니다. "요즘 인도에서 유행하는 명상법 중에서 6개월간 수련하면 명상할 때 공중에 뜰 수 있다고 하는 게 있습니다. 스님은 그 명상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법륜스님은 “명상을 하면 공중 부양하듯 약간 뜨는 경우가 있다고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중에 떠서 뭐 하게요?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비행기는 수백 명을 태워서 미국까지 가는데 그게 더 신기한 일 아니에요? 왜 비행기가 공중에 뜨는 건 신기해하지 않고, 사람이 공중에 뜨는 건 신기하게 여길까요? 그 이유는 비행기가 뜨는 원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공중에 뜨는 원리는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른다’ 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입니다. 부처님은 신비주의를 부정했습니다. 우리가 무지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다른 하나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부처님은 무지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고, 신비주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어서 신비주의와 두려움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무지로 인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지옥에 간다’ 하고 협박하고, 신비주의를 이용해서 ‘천당에 갈 수 있다’ 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근과 채찍입니다. 종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하는 말이 ‘이거 하면 천국 간다’ 하는 유혹과 ‘이거 안 하면 지옥 간다’ 하는 협박입니다. 만약에 무지가 사라진다면 두려움과 신비주의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협박이나 유혹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바위에 린포체의 발자국이 생기고, 명상하면 공중 부양을 하는 등의 신비한 현상이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말 자체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비화시켜서 다시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는 ‘왜 이런 현상이 생기지?’하고 원인을 찾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비주의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법륜스님이 또 부탄의 다른 지역에 갔더니 그 지방의 비구스님이 환영하는 말을 하면서 "스님이 오시기 전에 매일 비가 많이 왔는데 신기하게 스님이 오신 기간에만 비가 적게 왔습니다.”라고 덕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법륜스님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겁니다. 마침 비가 적게 올 때 스님이 왔습니다. 이렇게 말해야죠.”라고 말했습니다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무지로 인한 두려움과 신비주의를 벗어나야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인지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중에 떠서 뭐에 쓰냐"는 말씀이나 "내가 와서 비가 그친 것이 아니라 마침 비가 안올 때 내가 온 것이다."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새겨둘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