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질을 하지 않은 잔디가 삐죽삐죽 솟아있
는 잔디밭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문고리를 잡고 살짝 돌리자, 벽난로
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냘픈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스노이! 터프티!"
해리가 반갑게 소리치자 하얀색 페르시안 고양이 두 마리가 해리에게 걸
어왔다. 나지막이 '야옹'하고 우는 게, 꼭 인사하는 듯 정겹게 들렸다.
해리가 벽난로가 켜져 있는데도 시원한 집안으로 걸어들어가자, 순식간
에 고양이 다섯 마리가 뛰어들어왔다. 해리는 한 마리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가방을 열었다.
"너희 다이어트 좀 해야겠어. 돼지도 아니고 말이야. 너희 먹을 것 사 주
느라 헤르미온느네 거덜나겠다."
해리가 묵직한 사료 봉투를 열며 말했다. 봉투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고
양이들이 달려들었다. 씹고, 핥고, 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피그 할머니네는 이제 텅 비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볼드모트가
부활하면서 피그 할머니도 어딘가, 피신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볼드모트
가 계속 피그 할머니를 찾고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해리도 이 곳에
오는 건 위험한 짓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정말 이 곳이 좋았다. 예전에
는 정말 싫어했지만, 지금은 새삼스럽게 양배추 냄새가 나는 할머니가 그
렇게 보고싶을 수 없었다.
"당분간 못 올거야. 호그와트에 가야 하거든. 잘 지낼 수 있지?"
해리가 돌아서서 벽난로로 갔다. 벽난로 위 장식장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낯설었지만 길잃은 고양이겠지, 하고 해리는 주머니를 뒤져 플루 가루를
꺼냈다. 한달 전 론이 보낸 것이었다. 그것을 배달한 에롤은 기진맥진한 나머지 정신을 잃었고, 헤드위그가 에롤을 부엉이 병원에 보냈다. 며칠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통보가 왔다.
해리는 가루를 한 줌 집어 불 속에 던졌다. 재와 먼지가 날아왔지만 그는 곧바로 불 속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버로우!"
눈앞에서 벽난로들이 빙빙 돌았다. 하지만 해리는 꼿꼿이 서 있었다. 이제 플루 가루 여행은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씩 눈앞이 선명해지면서 위즐리네 집 거실이 나타났다.
"해리!!"
벽난로 앞에 서 있던 위즐리 부인이 땅딸막한 몸을 흔들며 해리에게 다가왔다. 눈앞에서 무언가 휙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아마도 멀미가 아닐까? 해리가 생각했다.) 해리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해리는 다정하게 위즐리 부인의 손을 잡았다. 힘들었던 동안에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위즐리 부인이기에, 해리는 그녀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을 꼭 끌어안았다. 이젠 해리가 더 커 버렸지만 여전히 위즐리 부인은 든든하게 느껴졌다. 해리는 프리벳가에서도 수없이 다짐했던 말을 되뇌었다.
이제부턴, 제가 아줌마를 안아 드리겠어요.
해리가 팔을 풀자, 위즐리 부인이 고개를 들고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론, 프레드, 조지! 모두들 내려오너라. 해리가 왔단다! 어서들 내려오너라!"
곧이어 쿵탕거리는 소리와 낡은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음과 함께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에 얼굴을 가득 채운 주근깨. 해리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론의 손을 잡고 말을 꺼냈다.
"론!"
"해리!!! 잘 있었어???"
"그럼, 잘 지냈지. 어? 너 옷 샀네?"
"응, 조지랑 프레드 형이 사 줬어. 돈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지만..... 보나마나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을 팔아서 번 돈이겠지?"
해리는 살짝 웃었다. 자신의 트리위저드 대회 상금으로 론에게 옷을 사 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론의 등 뒤에서 프레드가 살짝 윙크를 했다.
그 때, 거실에 있던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이런! 벌써 12시구나. 어서 자러들 가거라!! 모두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넌 물론 론의 방에서 자겠지?"
위즐리 부인은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며 해리를 2층으로 떠다밀었다. 해리는 론, 프레드, 조지와 함께 낡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낯익은 문들이 나타나자, 해리가 론의 손을 놓았다.
"론, 나 잠깐 프레드랑 조지와 할 말이 있어. 너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들어갈게!!"
해리는 싫다고 하는 론을 떠다밀고 쌍둥이 형제의 방으로 들어갔다. 쌍둥이 형제의 방은 온갖 마법 약재와 천 조각들로 어지럽다 못해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해리는 코를 막으며 프레드와 조지를 불렀다.
"장부 검사하러 왔어. 1000갈레온, 잘 쓰고 있겠지? 혹시 퍼시 같은 발명품 만드는 거 아냐? 그럼 내가 가만두지 않을거야."
조지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걱정 마. 식구들한테 옷 한 벌씩 사 줬고, 열심히 카나리아 크림을 만들고 있으니까. 참! 우리 또 하나 더 만들고 있는데,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좀 도와 줘. 넌 명실상부한 트리위저드 챔피언이니까."
"물론이지."
해리가 약간 우울한 소리를 냈다. 해리는 트리위저드 시합만 생각하면 항상 케드릭 생각이 나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그 상처도 많이 치유된 상태여서, 다시 즐겁게 말을 꺼냈다.
"뭔데?"
"쿠키야. 호그와트 학생들을 상대로(조지가 쿡 하고 웃었다.) 설문조사를 한 결과,(해리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쿠키가 제일 인기가 있었지. 무려 75%의 지지율을 얻었지. 머글이 쓰는 단위이긴 하지만. 보셀리치니(마법사들이 쓰는 %에 해당하는 용어)보다 훨씬 쉽잖아. 먹으면 머리카락이 몽땅 사라져. 물론 다시 나타나지. 하지만 1시간 후에야 나타날걸. 이번에는 리 조던도 참여하기로 했어."
해리는 가볍게 웃으며 방을 나왔다. 조지와 프레드의 엉뚱함에는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아마도 리 조던을 제외한다면.)
낡은 문을 열고 론의 방으로 들어가자, 론이 오렌지를 날렸다. 오렌지에 머리를 맞은 해리는 약이 올라 바닥에 떨어진 오렌지를 다시 주워 던졌다.
"뭐야, 수색꾼이. 그거 하나 제대로 못 잡아? 이제 해리 포터는 망했다, 야."
"갑자기 던지니까 그렇지."
해리는 낡아빠진 침대에 앉았다. 한쪽에는 처들리 캐논 팀이 훨훨 날아다니는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고, 플뢰르 델라쿠르의 조그만 사진이 그 옆에 붙여져 있었다. 론이 플뢰르에게 1주일에 한 번씩은 팬레터를 보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해리는 놀라지 않았다.
"그만 자자." 해리가 잠옷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사진 속의 플뢰르가 눈을 가렸다.) "버논 이모부한테 야단 맞느라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어. 이제 시리우스는 안중에도 없나 봐. 정말, 매드아이 무디라도 데려와야겠어. 아, 아, 물론 진짜 말이지." 해리가 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황급히 변명했다.
#2.
다음날 밤, 해리는 왠지 모를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서 론이 자고 있었지만 해리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뭔가 악몽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론의 방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이제 겨우 2시라는 것을 알려줬다. 해리는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침대에서 살며시 나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플뢰르의 사진을 지나 조용히 문을 연 해리는 눈부신 빛에 얼굴을 찌푸렸다. 집안은 조용했고 간간이 프레드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데 집안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전등도 켜져 있지 않은데, 해리는 의아해하며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돌아보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바로 앞에 검은 형체가 해리를 덮쳤다. 해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형체가 해리를 짓누르고 코와 입을 막았다.
해리는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너무 멀리 있었다. 망토같이 생긴 그 형체가 마침내 머리를 덮자, 의식이 혼미해졌다. 멀리서 아득하게 비명소리가 들리고... 해리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눈에 밝은 빛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선한 공기... 해리는 깨질듯한 머리를 움직였다. 눈을 살짝 뜨자 가물가물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검은 망토, 기분나쁜 빛....
해리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 곳은 론의 방이 아니었다. 호그와트의 병동이었다. 주위에는 론의 가족들이 앉아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론, 론!" 해리는 신음을 하며 론을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자 머리맡에 앉아있던 위즐리 씨가 대신 대답했다.
"레시폴드였단다, 해리. 너도 3학년 때쯤 배운 적이 있었을 거다."
"레시폴드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얘길 좀 해 줘요."
그러나 위즐리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곧 오실 거란다, 해리. 그러니 제발 누워서 쉬거라."
위즐리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해리를 강제로 눕히는 바람에, 해리는 물어보던 걸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망토처럼 생긴 레시폴드가 떠나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해리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덤블도어 교수가 긴 은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침대로 왔다.
해리는 덤블도어 교수가 갑자기 늙어 보이는데 놀랐다. 항상 정정하던 그가 50년은 더 늙어 보였다. 해리의 이런 눈길을 피해 침대에 걸터앉은 덤블도어 교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리, 괜찮니?"
"괜찮아요, 교수님. 그런데 그건...."
"레시폴드."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의 말을 끊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다. 레시폴드는 열대 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짐승이란다. 게다가 잠이 들어있는 것만 공격하지. 네 옆에 론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움직이고 있던 널 공격했는지 모르겠다."
"그럼 제가 어떻게 살아난 거죠?"
"비명." 덤블도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의 비명을 아서가 들었단다.
아서가 널 찾아내 패트로누스 마법을 썼지.... 다행히 넌 의식만 잃은 상태였어.
난 널 호그와트에 두는 게 버로우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호그와트도
너에겐 위험해."
덤블도어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잠간 나가 주겠소? 해리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요."
#3.
위즐리 씨와 론이 일어났다. 하지만 위즐리 부인은 도통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해리를 보며 한참을 흐느끼다가,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덤블도어가 말을 꺼냈다.
"해리, 버로우는 어땠니? 아직도 그 곳에 가고 싶니?"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가로저었다.
"해리,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라. 내 말을 끊지 말길 바란다. 나도 생각을 많이 했단다. 버로우는 너무 위험해. 다이애건 앨리도, 호그와트도 위험해. 프리벳 가가 제일 안전하지만, 넌 이제 그 곳에 가기조차 싫겠지. 나도 이젠 강제로 시키지 않겠다.
해리, 넌......"
덤블도어가 잠시 조용히 있더니 청천벽력같은 말을 내뱉었다.
"넌 호그와트에 오지 말거라."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해리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2학년 때의 도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뭐... 뭐라구요?" 해리가 더듬거렸다. "그건 안 돼요. 전 호그와트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럴 순 없어요."
"해리," 덤블도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즐거움보다는 생명이 더 소중한 법이다. 넌 지금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를 넘겼어. 그 레시폴드는 볼드모트의 소행이 분명해. 제발 부탁이다, 해리. 숨어 지내거라."
그러나 해리는 수긍하지 않았다. 해리가 고개를 푹 숙이자,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제안했다.
"해리, 그렇다면 말이다, 내 사무실로 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꾸나."
해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욱신거렸지만 그는 덤블도어를 따라 병실에서 나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복도 끝의 모퉁이를 돌아가 커다란 이무기 석상 앞에서 멈춰섰다.
"아필리쿠스 드레미이츠 쿠피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러자 이무기 석상이 움직이며 벽이 둘로 쪼개졌고, 그들은 움직이는 나선형의 계단을 탔다.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방 안을 둘러보던 해리는 퍽스 옆에 앉아있는 흰색 부엉이를 보았다.
"헤드위그!" 해리가 반갑게 소리치며 자리에 앉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교장들의 사진이 해리에게 인사했다.
"해리, 이제, 다 말해주마."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너에게 숨기고 있던 한 비밀을 말이다."
"비밀이요?"
"그래, 긴 이야기가 될게다. 아주 긴 이야기 말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너도 내 청을 이해하게 될거다.
해리, 넌 외동아들이 아니었단다. 너에겐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있었어. 이름은 레나였어, 레나 포터... 그런데 네 부모가 죽임을 당한 그 날 밤, 레나는 사라졌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어. 우린 그 애가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말이다, 그 애는 죽지 않았어. 4학년 때 볼드모트와의 결투가 생각나니? 희생자들의 메아리 중 그 애는 없었어. 그렇다면 레나는 죽지 않은 거야.
그녀가 어디 갔을까? 네 엄마는 널 구하기 위해 돌아가셨어. 그러면 그 애는? 그 애는 분명히 그 시간에 집에 있었는데 말이야.
결론은 하나뿐이란다, 해리. 우린 레나의 행방을 찾고 또 찾았어. 그리고 마침내 알아냈단다. 볼드모트가 몰락한 직후, 그의 추종자 중 한 명이 레나를 갓 태어난 머글 여자아이와 바꿔치기했지. 나중에 레나를 어둠의 마법사로 키우기 위함이었어. 그들은 네 안의 착한 마음씨를 파악하고 놀 죽이려했었지. 하지만 레나는 남다르게 총명했어. 그들은 그 총명함을 탐낸거야.
머글들 틈에서 자란 레나는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되었어. 레나는 물론 똑똑했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의로운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어. 레나는 줄곧 너를 돕고 있었어. 비록 네가 오빠라는 건 몰랐지만 말이야. 그 애가 지금 무슨 이름으로 불리워지는지 아니?"
4#
그 애는 말이다, 지금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라고 불려진단다."
그 순간 해리는 경악하고 말았다. 지금껏 알지 못한 사실이 해리를 쥐어흔들고 있었다. 해리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 해리, 그 애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였어. 우리도 이번 방학에 알았단다.
해리, 이게 바로 네가 호그와트에 오면 안 되는 이유란다. 그레인저 양은 지금은 널 돕고 있지만 언제 조종당할지 몰라.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이 그레인저의 피에 볼드모트의 피를 조금 섞어놓았단다. 그레인저 양을 쉽게 조종할 수 있도록 말이지."
덤블도어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약간 목이 멘 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볼드모트의 표적은 오직 너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넌 조심해야 해."
해리는 볼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해리, 지금까지 그레인저 양의 행동으로 봐서는 전혀 납득이 안 갈게다. 그렇지만 사실이란다. 대부분의 볼드모트의 추종자들도 모르는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실리스크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공격했던 것도 조종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러나 그레인저 양이 뛰어난 정신력으로 거부했단다. 비록 자신은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해리, 볼드모트가 부활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단다. 볼드모트는 그레인저 양이나 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아. 무섭지만 뛰어나지. 이번에 다시 볼드모트가 그레인저 양을 조종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을 게다."
이제 해리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이미 쉬어 버린 목에서는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만 났다. 왜 우는지, 그 까닭이 무엇인지 해리 자신도 몰랐지만 눈물은 쉴새없이 쏟아졌다. 어깨의 들썩거리는 움직임도 점점 커졌다.
덤블도어 교수가 따뜻하게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의 소리없는 통곡은 계속되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눈을 간질였다. 해리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처음 보는 방이었다. 해리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옆의 횃대에 퍽스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다시 침대에 앉았다.
커튼이 살짝 드리워진 창문 두 개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깨끗하게 정리된 해리의 짐들과 헤드위그가 졸고 있는 새장, 그리고 작은 나무 책상. 해리는 책상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 위에 놓여있던 양피지를 들었다. 거기에는 잔뜩 휘갈긴 덤블도어 교수의 글씨가 씌어 있었다.
해리에게
덤블도어란다, 해리. 잘 잤는지 모르겠구나.
방이 맘에 드니? 널 위해 특별히 하나 만들어 두었지. 맘에 든다면 다행이구나.
물론 너의 방은 호그와트에 있단다, 해리. 꼭꼭 숨겨져 있지만 말이다. 어제 네가 했던 말들이 기억나니? 호그와트에선 죽어도 떠나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내 귀가 다 멍멍했단다.(넌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겠구나.)
결국 널 호그와트에 두기로 했단다. 네 방의 위치가 궁금하니? 12층의 동쪽 작은 탐이란다.
해리, 명심하거라. 절대로 네 방 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은 네 방 안에 다 있단다.
참, 퍽스를 놓고 가마. 쓸 데가 많을 것이다.
덤블도어가.
해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편지를 접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난생 처음으로 덤블도어의 명령을 거절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 수업, 일상생활.... 이런 걸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퀴디치. 그리핀도르 팀은 그가 없으면 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었다. 후보 수색꾼을 뽑을 시간이 부족해, 훌륭한 수색꾼을 가려낼 수 없을 테였다.
해리는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퍽스가 해리의 무릎으로 날아왔다. 그는 퍽스의 따스한 깃털을 쓰다듬었다.
"퍽스, 나, 덤블도어 교수님의 지시를 어겨야 할까?"
퍽스가 유순한 눈을 깜박였다. 해리는 승낙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퍽스를 꼭 껴안았다. 퍽스가 달콤한 울음소리를 냈다.
#5.
"호그와트, 호그와트, 호기와티, 호그와트..."
해리는 창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교가를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지금쯤 연회도, 기숙사 배정도 끝났겠지. 책상 위에 연회만큼이나 성대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지만 해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연회장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금쯤 론은 얼마나 날 보고 싶어할까. 우드는 수색꾼 찾느라 여념이 없겠지. 지니는 걱정할 게 뻔하고, 말포이는 궁금해하면서도 고소할거야. 그네이프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헤르미온느를 떠올리는 건 괴로웠다.
이제야 해리는 알 수 있었다. 1학년 때 해그리드가 준 사진첩 안에서 해리 옆에 앉아 있던 갓난아기가 누구였는지를. 그 아기가 해리의 친구였다고 발뺌했던 해그리드가 야속할 뿐이었다.
해리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과연 덤블도어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 괜찮은지를. 해리가 밖에 나갈 수는 있었다. 투명망토를 쓰고 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핀도르 탑의 암호는 론에게 부엉이를 보내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그래! 뭐, 한 번 해 보는 거야.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 해리는 마음을 정하고 양피지 한 장을 꺼내들어 '론, 그리핀도르 탑 암호를 얄려 줘. -해리'라고 휘갈겨 쓴 뒤 헤드위그를 날려 보냈다. 헤드위그는 오랫동안 새장에 있어서였는지 약간 비틀거렸지만 잘 날아갔다.
해리는 침대에 앉았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덤블도어의 수업 시간이었다. 요술지팡이를 꺼내들고, 해리는 문을 겨냥했다.
잠시후 덜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덤블도어의 은빛 수염이 살짝 보이자, 해리가 냅다 소리쳤다. "릭투셈프라!"
문 뒤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웃음소리가 멈추고 덤블도어가 걸어 들어왔다.
"이런, 해리." 그가 씩 웃었다. "그래, 내가 졌구나! 연회 때 정신이 없어서 까먹었지 뭐냐... 너도 그레인저 못지 않게 똑똑하구나. 아씨오 의자!"
책상 옆에 있던 의자가 천천히 떠 오자 덤블도어 교수가 손에 잡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해리." 덤블도어 교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앉았다. "오늘은 변신술이구나. 내일부터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실게다.... 내가 좀 바빠서 말이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오늘의 수업은.... 오, 부엉이를 개구리로 바꾸는 것이로구나!!!!"
"네?" 해리가 깜짝 놀라며 빈 새장을 바라보았다. 헤드위그는 아직 안 왔는데... 해리는 최대한 태연해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덤블도어의 눈을 속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니? 헤드위그나 데려오거라." 무심코 새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덤블도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해리는 거북이처럼 목을 할 수 있는 만큼 움츠렸다.
"해리." 덤블도어가 조용히 물었다. "헤드위그가 어디 있니?"
"아... 아마도 부엉이장에 가지 않았을까요? 나가고 싶어하길래 보내 줬는데...."
"해리," 덤블도어 교수가 침울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의문에 가득차 있는 해리의 눈길을 피해 창문으로 간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너에게 말해주지 않은 내가 잘못이로구나. 네 방 주위에 마법을 걸어 놓았는데..... 이리 와서 좀 보렴."
해리는 떨리는 몸을 가누며 창문으로 갔다. 침을 꿀꺽 삼키고 창문으로 밑을 바라본 해리는 경악했다.
헤드위그가 온몸이 피로 젖은 채 죽어 있었다.
"미안하다, 해리. 그만 그치고 진정을 좀 하려무나."
벌써 1시간 째 덤블도어 교수가 달래고 있었지만 해리는 계속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의 사랑스러웠던 부엉이가 죽어 버렸다. 너무도 무참하게..... 해리는 헤드위그를 내보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욕심 때문에. 내가 왜....
덤블도어 교수가 밑으로 휙 날아가더니 헤드위그의 시체를 들고 다시 올라왔다. 해리는 눈물을 멈추고 시체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을까. 헤드위그의 얼굴은 보기 싫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부릅뜬 눈과 비틀린 부리, 이리저리 꺾인 날개와 발. 해리는 손을 내밀어 눈을 감겨 주었다.
#6.
다음날 아침. 평소 식사량의 반도 못 먹은 해리는 계속 헤드위그의 관 옆을 지키고 있었다. 퍽스의 눈물로 흉측한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불사조도 죽은 부엉이를 살려낼 순 없었다.
퍽스가 따뜻한 깃털을 몸에 대는 것이 느껴졌다. 해리는 헤드위그로부터 눈을 떼고 퍽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야!" 퍽스가 부리로 해리의 귀를 살짝 물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해리는 수업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마법'과 '점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 새 선생님을 기다렸다.
1,2분쯤 지났을까,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철커덕,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활짝 열리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트리위저드 챔피언! 오랜만이야, 해리!"
눈부신 은빛 머리카락을 나풀대며 나타난 건... 바로 플뢰르 델라쿠르였다! 어찌나 예뻤던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교사용 검은 망토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리기 힘들었다.
"플뢰르!" 해리가 반갑게 소리치며 손을 불쑥 내밀었다. "웬일이야? 아, 아니, 웬일이세요?"
"웬일이긴, 나도 교수라고." 플뢰르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랬잖아, 이 곳에서 일자리를 구할 거라고. 영어실력 무지 좋아졌지? 해리를 위한 특별교수, 마드모아젤 델라쿠르! 물론 반말은 써도 괜찮고." 플뢰르가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주황색 색안경을 살짝 꼈다.
"자, 그럼 강의 시작하겠어. 오늘은 총 4시간, 마법 2시간에 점술 2시간이야. 마법 강의부터 시작해볼까? 오늘은 마법으로 물건을 만드는 걸 해 보겠어. 자신있지? 해리, 이건 정말정말 쉬운 거야. 1시간이면 다 익혀. 우선 쉬운 것부터 만들어보자. 깃털은 어때? 머글들이 쓰는 지우개는? 머리카락도 괜찮을텐데. 넌 뭐가 좋겠니?"
프랑스어의 습관이 남아서였을까. 속사포처럼 내뱉는 플뢰르의 말은 해리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아....아마도 깃털이 좋겠다." 해리가 더듬거리자 플뢰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좋아,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어. 이 마법은 사실 금지되어 있어. 수업할 때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절대 안 돼. 자, 그럼 시작해볼까, 따라해. 메이어크루!"
"메...메이어크루!"
정말 이상한 주문이야, 해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각각 '만들다'에 해당하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섞은 거야. 고안한 사람이 중국계 일본인이었거든. 그건 그렇고, 지팡이 빼."
해리가 지팡이를 꺼내자 플뢰르가 자신의 지팡이를 허공에 찌르며 외쳤다.
"메이어크루 깃털!"
그러자 순백색의 깃털이 펑 하고 나타나 한들한들 내려앉았다.
"너도 해 봐." 플뢰르가 깃털을 주운 뒤 말했다.
해리는 지팡이를 들었다. 어젯밤 광을 낸 지팡이가 왠지 낯설어 보였다.
"메이어크루 깃털!"
그가 소리쳤지만 불꽃 하나 튀지 않았다.
"메이어크루 깃털! 메어크.... 아니, 메이어크루 깃털! 메이어크루! 아닌데, 메이어크루 깃털!"
해리는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휘둘렀다.
"메이어크루 깃털!"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서 불이 떨어졌다. 해리가 황급히 몸을 빼자 플뢰르가 지팡이에서 물이 나오게 해 불을 껐다.
"괜찮아, 해리." 바닥이 그을린 것이 보였다. "종종 있는 실수야. 계속해."
해리는 몸을 떨면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메이어크루 깃털!"
그러자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깃털이 생겼다. 조금 작긴 했지만 흠잡을 데 없었다. 해리는 얼굴을 들고 씩 웃었다. 플뢰르도 만족한 표정이었다.
"역시 트리위저드 챔피언이야! 다른 것도 하자, 해리!"
7#
1시간 뒤 그들은 체스판, 곱스톤 세트, 30개의 지우개, 공책 16권, 쥐 3마리, 머리카락 15올, 술잔 5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해리가 플뢰르에게 하늘빛 색안경을 만들어 주자 플뢰르는 무척 좋아했다.
"수업에서 만든 물건은 마법부 사람들이 가져간다지만, 안경 하나쯤이야 잃어버린 척 하고 빼돌려도 디겠지?" 해리가 말하자 플뢰르가 곱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점술 시간이 되자 해리는 기분이 바로 나빠졌다. 점술은 해리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플뢰르도 그걸 아는 듯 했다.
"해리, 맥고나걸 교수님께 들었어. 점술을 제일 싫어한다며?"
"응." 해리가 손가락을 퉁겼다. "완전히 어림잡기야."
그러자 플뢰르가 씩 웃더니 제안했다.
"너, 여기에만 있어서 갑갑할테니까 몰래 나갈까? 나도 수업 없고, 너도 심심하텐데."
해리는 깃털이 천 개쯤 달려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외출! 그는 당장에 벌떡 일어서서 투명망토를 챙겼다.
"필요없어." 플뢰르가 지팡이를 빼들었다. "투명인간 주문이 있잖아. 그걸 사용하는 건 영국에서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지만, 난 아직 프랑스 마법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까 써도 돼. 망토보다는 훨씬 편할 거 아냐? 걸어줄까?"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플뢰르가 요술지팡이를 해리의 몸에 갖다댔다.
"플라네슬레 플라네슬레 아이라 유호!" 해리는 갑자기 소나기를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제 느낌으로 돌아왔다.
"됐어, 해리." 플뢰르가 말했다. "내 눈에도, 네 눈에도 네 몸이 보일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해. 심지어 무디의 눈도." 플뢰르가 볼을 살짝 붉히며 웃었다.
"암호를 알려 줄게. 나갈 때와 들어갈 때의 암호가 다르니 조심해야 해. 나갈 땐 '부활·프리오리 인칸타템·엘프릭 이거·모디스티 랩노트'이고, 들어올 때에는 '머글보호·개구리 초콜릿·셀레스티나 와베크·푸들미어 유나이티드'야. 외울 수 있겠지?"
해리가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플뢰르는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1분쯤 내려가자 첫번째 문이 나타났다. 플뢰르가 암호를 말하자 문이 열렸고, 네번째 문까지 통과하자 다시 계단이 나타났다.
"이 계단은 내려가면 안 돼." 플뢰르가 해리의 목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내려가면 당장에 부서져 버릴거야. 밖에 가려면 이 벽돌을 빼면 돼."
플뢰르가 반쯤 빠져있는 벽돌을 잡아 빼자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이 나타났다. 다 가니 문 하나가 또 나타났고, 그 문을 여니 호그와트의 홀이 나타났다.
"빨리 와!"
해리는 조심스럽게 홀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호그와트의 홀.... 그는 한 번 둘러보고 나서 플뢰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교수님!"
해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지? 플뢰르도 놀란 것 같았다. 해리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돌려 뒤를 봤다. 그리고 그건.... 말포이였다.
"드레이코!" 플뢰르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는데 그것이 더욱 매력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니? 난 지금 바쁘니까 빨리 용건만 말해. 빨리."
말포이는 그답지 않게 얼굴이 빨개져서 중얼거렸다.
"아니예요, 그냥.... 지나가시길래 얼떨결에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바보같은 이유로 바쁜 사람 방해하지 않도록 해." 그녀가 쏘아붙이자 말포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뒤돌아 뛰어갔다.
"하하!" 해리는 플뢰르가 말포이를 통쾌하게 혼내주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 웃었다.
해리와 플뢰르는 로즈메르타 부인이 운영하는 호그스미드의 술집에 들어갔다. 조금씩 날씨가 쌀쌀해져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플뢰르는 아이스 버터 맥주 두 잔을 시키고 직접 가져왔다. 그녀는 해리의 투명인간 주문을 해제해줬다.
"지금은 걱정없으니까..." 그녀가 맥주를 쭉 들이키며 말했다. "학생들도, 교수님들도 시험 때문에 정신없으셔. 학기초에 보는 시험이 새로 생겼거든. 뭐하러 그렇게 시험을 많이 보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끔찍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리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해 보는 외출... 그리고 마침내 플뢰르가 갈 시간이 되었을 때, 해리는 정말 섭섭했다. 비록 매일 만날 거라고는 하지만, 해리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준 플뢰르. 예전의 거만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플뢰르와 방으로 돌아온 해리는 헤드위그의 죽음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플뢰르는 헤드위그를 위해 초 다섯 개를 마련해 불을 켜 주었다. 그 불꽃들은 5분마다 초록색으로, 파란색으로, 흰색으로, 보라색으로, 주황색으로 계속 색이 바뀌어 무척 아름다웠다.
해리와 플뢰르는 촛불이 비춰주는 헤드위그의 관 앞에서 손을 모으고 충실했던 부엉이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8.
아침일찍 일어난 해리는 뭔가 허전했다. 외로움이 오늘처럼 가슴 깊숙히 파고든 적도 없었다. 지금껏 한 달이나 참아 왔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거지? 해리는 의아해하며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입었다. 책상 위에 식사가 차려졌지만 토스트 하나만 집어먹은 그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퍽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퍽스가 자신의 무단 외출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죽을 때가 임박했단 걸 알고 안심했다. 퍽스는 이제 새끼로 다시 태어날 것이었다.
해리는 달력을 보고 오늘이 일요일인 것을 기억해냈다. 안개가 잔뜩 낀 날씨였는데, 운동장에는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퀴디치 경기를 할 모양이었다.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퀴디치 경기를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투명망토로는 나갈 수 없었다. 호그와트에 1년 더 남아있기로 한 무디가 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뢰르가 필요해, 해리는 플뢰르가 오길 희망했다. 그녀라면 투명인간 주문을 걸어줄 수 있을텐데...
해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때였다.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덤블도어 교수님!" 해리는 숨이 막혔다.
"그래, 해리, 덤블도어다. 어디, 잘 지냈느냐?"
해리는 일부러 화난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덤블도어가 껄껄 웃었다. "그래, 그래, 예상했던 대로다. 솔직하구나.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퀴디치 시합을 볼 수 있게 해 주마."
해리는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신없이 해리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좌석은 해그리드 옆이란다. 네가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서 교사용 자리에 앉힐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편애가 된 테니까. 보기에 불편한 자리여서 주변에 아이들이 없을 거다. 하지만 좀 불편하다고 해도 좋을 거라 믿으마."
해리가 활짝 미소를 짓는 걸 보고 덤블도어도 기뻐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안개는 점점 걷히고 청명한 날씨로 바뀌었다. 해리는 두더지가죽 코트를 입은 해그리드와 함께 경기장에 가 자리에 앉았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경기가 잘 보이는 쪽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시무스, 딘, 콜린, 패르바티, 네빌, 론.... 그러나 거기에서 그는 고개를 도렸다. 옆에는 헤르미온느, 아니 레나가 있을 것이 뻔했다.
그는 이제 막 시작된 경기에 관심을 돌렸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공들이 튀어나갔다. 스니치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핀도르 대 래번클로였다. 진홍색과 파랑색 형상들이 휙휙 지나가 정신이 없었다.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은 콜린 크리비의 동생 데니스였는데, 체격이 굉장히 작았지만 계속해서 급강하하며 래번클로의 수색꾼에게 렁스키 페인트를 쓰는 모습이 재능있어 보였다. 임시 수색꾼이긴 했지만 정말 잘했다.
"그리핀도르의 케이티 벨이 골대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안젤리나에게 패스합니다! 안젤리나, 제발!" 리 조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안젤리나 득점!"
해리는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 안젤리나가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에 래번클로가 2번 득점 시도를 했지만, 새 파수꾼인 2학년생 나탈리 맥도널드가 잘 막아냈다. (그는 해리보다 키가 더 컸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 래번클로의 수색꾼 초 챙을 찾아냈다. 그녀는 조금 마르고 핼쑥해 보였는데, 해리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4학년 때 종강연회에서의 초 챙을 잊지 않고 있었다. 초는 케드릭 디고리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이에 그리핀도르가 20점을 더 얻어 30 대 0으로 리드하고 있었다.
#9.
"래번클로의 추격꾼이 퀘이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핀도르의 몰이꾼 프레드 위즐리가 블러저를 날리는데... 안 돼, 프레드! 빗나갔습니다. 오, 제발.... 래번클로 득점!"
옆에서 해그리드가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지 위즐리가 날아와 프레드를 한 대 쥐어 박았다.
해리가 초 챙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리핀도르가 40점, 래번클로가 30점을 각각 얻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초 챙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스니치를 발견한 것이었다. 남쪽 관중석 근처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해리는 벌떡 일어났다. 관중의 반 이상이 일어나 큰 소리로 자기 편 수색꾼의 이름을 열심히 외쳤다.
해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초 챙과 스니치와의 거리는 2m도 채 되지 않았다. 데니스가 바짝 따라 붙고 있었지만 최고 속도를 내고 있는 초를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이제 초가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스니치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해리는 차가운 스니치의 촉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조지 위즐리가 친 블러저가 초 챙의 배를 세게 쳤다. 래번클로 응원석에서는 분노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초 챙이 빗자루를 약간 숙이며 두 손을 빗자루에서 떼어 한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한 손으로 스니치를 낚아채려 애썼다. 하지만 케이티 벨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 사이에 데니스 크리비가 한껏 손을 뻗어 발버둥치는 스니치를 간신히 잡았다.
"데이스 크리비가 스니치를 잡았습니다! 220 대 40으로 그리핀도르 승리!"
그리핀도르 응원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해리는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땅에 내려간 초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평생 동안 한 번도 웃지 못한 사람처럼 침울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걸어들어갔다.
해리는 초 챙 걱정을 잔뜩 하며 해그리드와 함께 홀로 들어갔다.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그를 먼저 보내고, 해리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복도가 유난히 조용해서인지 해리의 발소리가 온 벽에 울려 퍼졌다.
중세 시대의 요정 마법사의 석상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해리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말포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울고 있었다. 많이 울었는지 눈이 새빨게져 있었는데,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해리도 측은함을 느낄 정도였다.
인기척을 느끼자 그가 고개를 돌려 해리를 바라보았다.
"포터."
"말포이!" 해리가 최대한 거만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길 좀 비켜 줬으면 좋겠어. 그만 울고. 시끄러워."
그러자 갑자기 말포이가 다시 고개를 푹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말포이...." 해리가 놀라며 말포이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는거야? 말해 봐, 어서."
말포이가 고개를 들고 해리를 쳐다봤다. 해리는 말포이의 회색빛 눈이 맑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말포이는 지금 너무나도 순수하게만 보였다.
"포터.... 넌..." 말포이는 말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았다. "넌.. 정말 좋은 친구야..." 그리고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봐!" 해리가 거듭 물었지만 말포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는 걸 막고 있는 듯했다. 정말 이상했다. 예전의 말포이와 너무 달랐다.
해리는 달래다 못해 그를 방으로 데려왔다. 그가 침대에 앉고도 계속 울자 퍽스가 달콤한 울음소리를 내 기분을 가라앉혔다.
"해리.. 내 말..... 들어줄 수 있어?" 말포이가 물었다. 해리는 말포이가 그를 '해리'라고 불렀다는 것에 대해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론이지, 드레이코."
말포이가 울음을 잠시 멈추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10.
"해리, 넌 지금까지 내가 정말정말 야비하고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너말고도 슬리데린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나도 이러고 싶진 않단 말이야.... 난 정말 괴로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야..."
말포이가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자, 해리가 어깨를 다독여 진정시켜 줬다.
"계속해, 드레이코."
"난 말야, 엄청난 저주에 걸려 있어... 아버지가 걸었다... 임페리우스 저주...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날 조종하기 위해서.... 4학년 때까지 계속 조종당했어..... 그런데 5학년이 되니까.. 거부할 수 있었어... 아버지의 저주를....
처음 거부한 날이 급행 열차 안에서였어.... 아버지는 나에게 론과 헤르미온느를 욕하라고.... 시켰어.... 그런데 갑자기 잠에서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처음으로 저항을 하게 된 거야. 물론 여기에는 매드아이 무디의 도움도 약간 있었겠지.."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난 그 때부터 복종과 저항을 반복했어. 해리, 너도 알 거야. 얼마나 괴로운지를.. 힘들어..
지금은 거의... 저항만 하고 있어. 하지만, 너무 괴로워... 아버지가 방문하실 때마다 저주에 걸린 척 행동하는 거.. 뇌가 없고, 꼭두각시 인형 같은 거. 무의미한 것...
해리, 난 정말 싫어. 크레이브, 고일, 그리고.. 아버지! 저항할 때마다 너무 아파... 무능력함이... 크루시아투스 저주도 이럴까..?
그 사람!" 그의 눈이 미친 듯이 번뜩였다. "이건 다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거야.... 난 절대로 옛날 같지 않아.. 난 슬리데린이 아냐... 난 그 사람의 추종자가 아니라고.. 그.. 사람 때문이야..... 난.. 꼭 복수할 거야..... 꼭.."
말포이는, 아니 드레이코는 말을 끊고 번뜩이던 빛을 가라앉히지 않은 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떨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드레이코의 고통... 5년 가까이 욕만 해 왔는데... 그런 고통이 있었다니... 해리는 말포이의 손을 꼭 잡고 망토 자락으로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드레이코, 진작 찾아오지... 나도.... 널 도와줄 수는 없어. 하지만, 힘들 때마다 여기 찾아 와... 내가 꼭 반갑게 맞아 줄게."
해리는 드레이코에게 찾아오는 길과 암호, 주의사항을 모두 말해준 뒤 함께 홀로 나갔다. 드레이코는 눈물을 훔치더니 해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해리, 고마워. 이제 좀 나아졌어... 고마워."
해리는 드레이코를 자신도 모르는 새에 꼭 껴안아줬다. 말포이는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 슬리데린 기숙사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드레이코. 그 동안 욕만 했는데.... 그렇게 아플 줄을 몰랐는데....'
방에 돌아온 해리는 퍽스를 껴안았다. 그 때, 점술 수업 때 쓰는 수정 구슬이 이상한 빛을 발했다. 해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희뿌연 안개가 가득하더니 점점 걷혔다. 무언가 이상한... 형체가... 무언가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언가 무너진 후에,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떴을 때에는 무언가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체는 점점 사라지며 다시 희뿌연 안개로 돌아갔다. 안에서 어떤 꽃의 향기가 잠깐 난 것 같았다.
뭐, 점술은 다 어림잡기지. 해리는 혀를 차며 수정 구슬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웠다. 벨벳 커튼을 잡아당겨 내리자 달빛이 어른거렸다. 해리는 곧 잠이 오는 마법약을 마신 것처럼 깊이 잠들었다... 미풍이 살짝 불며 벨벳 커튼이 흔들렸다.
플뢰르가 온갖 마법 약재들을 한아름 들고 온 날에는 축축하게 비가 내렸다. 마법약재들을 바닥에 내려놓은 플뢰르가 한숨을 지었다.
"오늘은 너무 눅눅한 것 같아. 약효가 별로 좋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해 보지, 뭐."
플뢰르가 해리의 냄비를 올려놓고 지팡이에서 물이 나오게 해 만쯤 채우게 시켰다.
"오늘은 '머리카락이 나게 하는 약'을 만들어 볼거야. 이름만 듣고는 머글들의 돌팔이 탈모 치료제 같지만 정말 대단한 약이지. 뿌리면 바로 머리카락이 쑥쑥 나. 머리가 하나도 없던 사람의 숱이 많아질 정도지. 자, 그럼 해 볼까?"
플뢰르는 자루에서 봉지들을 꺼냈다.
"풀잠자리, 거머리, 마디풀, 유니콘의 털, 애쉬와인더의 알껍데기, 어거레이의 머리털, 번디먼, 플로버웜의 분비물, 요정의 알. 이게 다야."
"뭐? 뭐가 이렇게 많아?"
해리는 깜짝 놀랐다. 폴리주스 마법의 약에도 7가지 밖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9개가 뭐가 많다고 그래? 어서 시작해. 부르는 대로 따라해."
해리는 솥 옆에 앉고 풀잠자리 봉지를 팡 터뜨렸다.
'머리카락이 나게 하는 약'을 만드는 방법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그냥 그 재료들을 시간 간격에 맞춰 집어넣고 끓이면 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정말 까다로운 점이라면 정해진 시간 간격에서 1초만 오차가 나도 다른 성질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다 됐다." 플뢰르가 굳은 표정으로 냄비 속 물질을 휘저었다. "혹시 잘못되었으면 큰일나니까, 내가 인형을 하나 가져왔거든... 인형에다 실험해 보자."
플뢰르가 가방에서 조그만 인형을 하나 꺼냈다. 새 모양이었는데, 털을 다 밀어버린 모습이 측은하다 못해 엽기적으로 보였다.
해리는 '웨인버거 여사의 탁월한 분무기'에 약을 가득 담았다. 플뢰르와 긴장된 눈길을 주고 받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새 인형의 머리에 약을 뿌렸다.
긴장된 1분.... 그 후...
펑! 새가 그대로 터져 버렸다.
플뢰르가 요정의 알 봉지를 터뜨리며 헛기침을 했다.
"다시 하자, 해리!"
플뢰르가 가고, 마법약 찌꺼기를 청소하던 해리는 섬뜩한 느낌에 창 밖을 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가 창 밖의 화분꽂이에 앉아서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놀란 나머지 요술지팡이를 떨어뜨렸다. 퍽스가 창의 유리를 발로 차 겁을 줬지만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해리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순간, 해리의 흉터가 갑자기 쿡쿡 쑤셔오기 시작했다. 그는 아픔을 참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고양이는 앞발을 휙 휘두르더니 유리창을 깨뜨렸다. 파편이 퍽스에게 날아갔다. 퍽스의 왼쪽 날개에 유리조각이 박혀 피가 흘렀다.
해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고양이를 피해 뒷걸음질쳤다. 고양이는 천천히 해리에게 다가오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이건 고양이가 아니야, 해리는 생각했다. 고양이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어. 이건 분명히 애니마구스야.
갑자기 고양이가 눈을 치켜 뜨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동공이 열리고 붉은 빛을 띤 무언가가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곧 눈이 뒤집혔다.
해리는 할 수만 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쿡쿡 쑤시는 데다 너무 무서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양이는 해리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던 해리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양이를 밀쳐 냈지만 고양이는 해리보다 다섯 배는 힘이 셌다. 고양이의 앞발이 날아오더니 해리의 이마를 할퀴었다. 순간 해리의 눈에 번쩍 하는 빛이 보인 것 같았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고양이가 할퀸 이마를 더듬던 해리는 깜짝 놀랐다. 번개 모양의 흉터가 사라졌던 것이다.
#12.
번개 흉터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자리가 마치 분화구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해리는 있는 힘을 다해 지혈하려고 했지만 피는 계속 떨어져 망토를 적셨다. 퍽스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퍽스 자신의 상처도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망토 자락으로 쑤시는 상처를 꾹 누르다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요술지팡이를 상처에 갖다 대고 지혈 주문을 외웠다.
"오로파르네!"
하지만 전혀 효력이 없었다. 해리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욱신거리는 상처를 최대한 눌렀다. 하지만 고통은 참을 수 없을만큼 커져 해리는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가 비명을 지름과 거의 동시에 덤블도어 교수가 문을 열고 휙 날아들었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손을 흉터에서 떼고 잘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해리, 잠깐만 참거라. 이건 지혈주문으로는 소용없는 상처란다."
덤블도어는 망토 속에서 반짝이는 유리병을 꺼내 무언가를 상처에 발랐다. 약간 푸르스름하고 덩어리진 그것이 상처에 닿자 해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내뺐다. 너무 쓰라렸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의 입에서 나왔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르며 해리를 다시 끌어다 앉혔다.
덤블도어가 침울한 표정으로 그 덩어리를 다시 한 번 덧바르자 이마가 타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덤블도어가 그를 꾹 찔렀다. 눈 앞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가 기절 주문을 쏜 것이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듯한 희미한 노랫소리가 귀찮았다. 해리는 신음을 하며 몸을 비틀었다. 왠지 머리가 차가웠다.
「아이! 라우리에 란타르 랏시 수리넨,
예니 우노티메 베 라마르 알다론.
예니 베 린테 율다르 아바니에르
오마료 아이레타리 리리넨.」
맑은 목소리가 귓전을 메웠다. 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 하지만 그와 동시에 머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왠지 얼음이 느리게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기분이 몽롱했다.
해리가 머리를 흔들자 동시에 그 목소리가 명령조로 외쳤다.
「나이 엘례 히루바. 나마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본 그는 덤블도어와 낯선 한 남자가 머리맡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남자는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매끄러운 금발을 뒤로 묶었고 얼굴은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세월의 흔적과 앳됨이 동시에 나타났다.
"해리..." 그가 입을 열자 해리는 그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찮니?"
"네, 지금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리는 궁금했다. "누구세요?"
"이 분은 테드 슬레이터란다." 덤블도어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지상에 딱 10명 남아있는 반(半)요정족이기도 하단다."
해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요정이라면 옛날 온 마법계를 지배하던 왕실(이들은 조그맣고 날아다니는 요정과는 다르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이었다. 고귀하고 선하며 마력이 강했다.
해리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자 테드가 웃으며 해리를 다시 눕혔다. 덤블도어가 해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테드가 널 치료해 주었단다. 워낙 고통스러운 치료라서 마취 차원으로 널 기절시켰지... 이제 괜찮니?"
"예, 물론이에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덤블도어가 활짝 웃었지만, 그보다 더욱 현명한 반요정 테드는 해리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양이의 발톱을 느낄 수 있었다. 발톱은 제거하지 않는 한 몸 속으로 계속 파고들 것이고, 다섯 달 내에 해리의 몸을 지배할 것이다. 그 속도를 늦추긴 했지만, 그런 치료는 악이 가득한 마법에는 소용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덤블도어조차 몰랐던 해리의 방패, 번개 흉터가 큰 손상을 입은 지금 해리는 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13.
해리와 플뢰르는 두시간 째 덤블도어의 꾸중을 듣고 있었다. 플뢰르가 해리와 몰래 호그스미드에 나간 것을 덤블도어가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해리는 무서워서 정신을 못 차렸다. 덤블도어가 학생이나 교수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더욱 괴로웠다. 미친듯이 화를 내는 덤블도어는 무시무시했다.
"도대체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 겁니까! 교수가 나서서 해리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말이오! 내가 당신에게 충분히 이해시켰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어요? 정당한 이유가 있냐는 말이오!"
이제 덤블도어의 질책은 플뢰르에게 쏟아졌다. 사실 해리를 부추긴 건 플뢰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리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플뢰르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깔리기 시작하는 어둠이 그들을 휘어감았다. 플뢰르가 내뿜는 벨라의 별빛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순간 덤블도어의 호통이 귓전을 메웠다.
"그레인저 양이 알려 줘서 그나마 막을 수 있는 것이오!"
해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레인저!
투명망토로 몸을 가린 해리는 조용히 뚱보 여인의 초상화 앞에서 헤르미온느를 기다렸다. 헤르미온느는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처박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스무 권쯤 들고 있을 헤르미온느의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복도 모퉁이를 도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5학년이 시작되고 자신의 비밀을 안 후 처음 보는 여동생이었다.
여동생.... 해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잊고 싶은 단어.
헤르미온느가 초상화로 천천히 걸어왔다. 뚱보 여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암호?"
"부이야베스."
초상화가 열렸다. 헤르미온느가 들어가고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해리가 얼른 들어갔다.
학생 휴게실은 그대로였다. 헤르미온느가 테이블에 책을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망토를 벗었다. 투명망토가 바닥으로 주르르 흘러 내렸다.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움찔했다. 인기척을 느껴서였을까?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해리를 본 순간, 손으로 입을 막으며 비틀거렸다.
"해리!"
"그래, 나다, 번개 흉터." 해리가 쌀쌀맞게 말하며 한 발짝 내딛었다. "왜, 몰랐니? 반가운 거야? 섬뜩했어? 아니면..." 그가 한 발짝 더 나갔다. "네가 한 짓 때문에 두려운 거야?"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최대한 태연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내가 한 짓이라니? 난 내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설마 내가," 그녀가 도도하게 해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떨리는 눈빛을 보았다. "네 멋진 흉터를 분화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도대체 네가 알고 있는 내 '짓'이 뭔데?"
"고자질!" 해리가 소리쳤다. "그래, 그게 네가 제일 잘 하는 거였지. 남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규칙만 어겼다 하면 그대로 달려가서 일러바쳐 버리는 거야. 뭘 하고 싶어도 너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해!"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해! 넌 그걸 어겼고 말이야! 교수님들이 그걸 아셔야 네가 다음엔 그러지 않을 거 아냐? 내 말에 틀린 것 있어?"
"틀렸어! 네가 그렇게 일러 바쳤는데도 난 나왔어! 넌 틀렸다고!"
"나도 알만한 건 다 알아!"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너에게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격리되고 있다는 것!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위험하다는 것! 비록 멍청한 애들은 아직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 빌어먹을 벨라도 마찬가지이고!"
"이젠 교수님들까지 곤경에 빠뜨릴 거야? 네가 그런 애였니? 플뢰르는 명실상부한 교수님이야! 네가 싫어한다고 해서 낮추어 보지 마! 나는 스네이프한테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고!"
"오, 그래,"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래, 넌 항상 올바르고 정의롭지. 네 주위의 사람들은 네가 영웅인 줄 알고 말이야!"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말포이의 말을 이해하겠어. 고귀하고 특별하신 우리의 포터 님!"
찰싹!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리의 손이 날아가 그녀의 뺨을 쳤다.
순식간에 따귀를 맞은 헤르미온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해리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도," 해리는 잠시 말을 멈추며 침을 꿀꺽 삼켰다. "드레이코의 말을 이해하겠어. 너무 똑똑해서 별볼일없는 전교 수석, 그레인저. 그 말이 맞구나."
그는 휙 돌아서서 초상화 구멍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헤르미온느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래, 위대하신 우리의 포터가 그레인저에게 손찌검을 했어! 이제 난 모두의 멸시를 받게 되겠군! 그 더러운 슬리데린은 언제부터 너의 팬이 되었니? 드레이코? 이제 그게 새 명칭이니?"
해리가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초상화 구멍을 나갈 때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야비한 놈!"
#14.
해리는 한동안 자신도 모른 채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록 헤르미온느와 싸우긴 했지만, 그건 그의 본심이 아니었다.
"이제야 말포이의 말을 이해하겠어. 고귀하고 특별하신 우리의 포터 님!"
헤르미온느의 말이 머릿속에 꽉 차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해리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홀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주 천천히 방으로 돌아온 해리는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형체를 보았다. 불을 켜니 말포이가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해리...." 그의 창백한 얼굴에 달빛이 스쳐 지나갔다. "널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너무 힘들었거든. 그리고..." 그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너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드레이코..." 해리도 침대에 주저앉았다.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웠다. 말포이도 여간 수척해진 게 아니어서 해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래, 맞아, 많이 힘들어. 뭔가, 아직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 때문에. 의지가 조금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그 자?" 말포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자 때문에?"
"응, 그 자 때문에." 해리가 말포이의 말을 되풀이했다. "예전에는 정말 없어선 안 되었던 소중한 누군가와 딱 하나의 이유 때문에 틀어졌어. 다신 돌이킬 수 없게. 진심이 아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해리, 해리..." 말포이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것 아냐."
"틀렸어, 일부러 그랬어. 내가 화만 안 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 애가 옳았는데..."
"난..." 말포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어제 아버지가 오셨어. 괴로웠어.... 아직도 저주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굴어야 했어. 말짱 제정신이었는데.... 힘들었어."
"드레이코," 해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 "힘 내. 네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가 너무 행복한 것 같아. 하지만 너도 지금 행복할지 몰라. 네 자신은 괴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러니까 힘 내. 알았지? 지금까지 너에게 좋은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저주에서 풀려났지, 더 잘생겨졌지, 이번 시험에서 전교 2등했고, 특히 나랑 친구가 되었잖아."
그러나 말포이는 수긍하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될까?" 그의 얼굴이 굳어지며 창백한 빛을 흘렸다.
말포이가 나가고 1,2분 후, 약간 빠르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 오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는 눈을 찌푸리며 그 쪽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테드 슬레이터가 서 있었다.
"해리, 오랜만이로구나. 아니, 아닌가? 어쨌든," 그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단다."
"할 말이라니요, 무슨...?"
"너 왜 늦게까지 안 자니?" 테드가 해리의 말을 잘랐다.
"네?" 순간 해리는 당황했다. 테드가 꼭 그의 머리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난 알아, 해리. 그 남자아이 때문이지. 금발에 파란 눈, 창백한 얼굴, 약간 말랐지. 드레이코 말포이. 난 그 애와 홀에서 마주쳤어. 그리고 많은 걸 읽어낼 수 있었어.
너와의 관계, 괴로움과 모든 성격까지 샅샅이.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게 있어."
"예? 조심해야 한다니요?"
"난 루시우스 말포이와 같은 학년이었어... 그리고 그의 모든 걸 읽어낼 수 있었어. 난 정확하게 읽어낸 것 같구나. 그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남자아이에게서도 그걸 읽을 수 있어. 비록 약하지만. 그 애는 아직 임페리우스 저주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어. 알겠니, 해리? 위험하단 말이야. 언제 널 공격할지 몰라. 조심하거라."
해리는 멍하니 테드를 바라보았다.
#15.
해리는 이상한 기분으로 벌떡 일어났다. 퍽스가 살짝 날아와 해리의 옆에 앉았다. 수업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플뢰르는 올 리가 없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누가 올까? 해리는 요술지팡이와 바틸다 백셧의 <<마법의 역사>>를 꺼냈다.
무거운 발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불안하게 느껴져 해리는 몸을 떨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덤블도어였다.
"교수님!" 해리가 반갑게 소리쳤지만 덤블도어의 표정을 보고는 멈춰 섰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가늘게 손을 떨고 있었다.
"해리," 그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걸 읽어 보거라."
그건 <<예언자 일보>>였다. 1면에 대문짝만하게 활자가 박혀 있었다.
시리우스 블랙 드디어 체포!
리타 스키터 특파원
지난 15년간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던 시리우스 블랙이 지난 27일 드디어 체포되었다. 28일 마법부는 '블랙을 잡았다'며 공식 발표했고 현재 아즈카반에 수감되어 있으며 29일(오늘) 자정에 디멘터를 동행해 최고 형벌인 입맞춤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 결정은 27일 자정 마법부의 모든 판사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결졍했다.
이 결정에 매우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법부의 쓸모 없는 관료 아서 위즐리와 호그와트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우리의 영웅 해리 포터에 대한 편애라고 생각한다. 시리우스 블랙은 놀랍게도 그 자를 몰락시킨 해리 포터의 대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알다시피 아서 위즐리의 아들 론 위즐리는 해리 포터의 절친한 단짝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마법부 관계자 중 한 명은 '그 자의 측근이었던 블랙을 두둔하는 것은 곧 그 자에게 동조하는 것'이라며 분노를 나타냈다. 그리고 최근 덤블도어와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와의 불화도 덤블도어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시리우스 블랙은 브라질에 숨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한 마법사가 제보를 해 붙잡혔다. 5000갈레온의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그는 "마법부를 위해 써 달라"며 연락처를 밝히지 않았다.
해리는 갑자기 뱃속이 싸늘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 앞이 뿌옇게 변하고 코가 시큰거렸다. 덤블도어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 해리가 벌떡 일어섰다. "구해야 해요! 시리우스를 구해야 한다구요! 교수님, 제발요...."
"해리, 미안하지만, 그리고 정말 안타깝지만," 덤블도어가 <<예언자 일보>>를 접어 망토 안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게다. 아즈카반은 너무 멀고 디멘터들은 잔인하며 감시는 엄중해. 블랙에겐, 그리고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단다."
해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덤블도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덤블도어도.... 이 세상 최고의 마법사 덤블도어도 말이다.
"시리우스를," 해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힘겨웠다. "다신 못 본다는 거군요. 이대로 놔 둘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전 싫어요. 정말 싫단 말이에요. 시리우스를.... 이대로 버려둘 순 없어요."
"해리." 덤블도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시리우스는 무사할게다."
해리는 눈물을 흘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16#
그러나 하늘은 결코 무심치 않았다. 그 날 밤 11시, 덤블도어가 잠옷 차림으로 코코아를 들고 찾아왔다. 그가 품 속에서 <<예언자 일보>> 특별 호외를 꺼내들었다. 속보라고 했다.
신문을 든 해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시리우스 블랙은 무죄!!!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의 브리핑
29일(오늘) 10시, 시리우스 블랙의 형 집행을 2시간 앞둔 때, 그가 무죄라는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다음은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의 브리핑이다.
코넬리우스 퍼지= 혼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밤늦게 찾아오신 기자 여러분에게도 죄송합니다만 블랙의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무죄입니다.
기자들= (비명)
기자1= 어떻게 무죄라고 확신하십니까?
코= 우리는 블랙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진 피터 페티그루를 오늘 9시에 붙잡았습니다. 그에게 진실의 마법약을 먹여 모든 사실을 밝혀내게 한 결과, 그가 그 자의 측근이었으며 포터 부부의 비밀 파수꾼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2= 그것 가지고 시리우스 블랙이 무죄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코=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 밖에도 근거가 될 만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 자가 부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들= (비명)
기자3= 페티그루를 어떻게 잡았습니까?
코= 우리가 잡은 것이 아니라 호그와트의 5학년생인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양과 론 위즐리 군이 잡았습니다. 그는 그 자를 몰락시켰던 해리 포터 군을 찾아 내 없애려고 시도했으며, 그 시도는 그 자가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페티그루는 섣불리 공격했다가 오히려 붙잡힌 것입니다. 그에게 수여되었던 멀린 1급 훈장은 다시 반환되었습니다. 그레인저 양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리 심하지 않아서 열흘 정도만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자4= 그밖에 다른 수확이 있습니까?
코= 우리는 현재 그 자의 측근들을 모두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명단은 아직 밝힐 수 없습니다.
기자5= 덤블도어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까?
코= 저는 덤블도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으며 화해가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레인저 양과 위즐리 군에게 멀린 2등급 훈장을 각각 주기로 했습니다.
기자6= 하지만 블랙은 완전 무죄가 아닐텐데요.
코= 불론입니다. 우린 블랙의 호그와트에 무단 침입했던 것을 감안해 50갈레온의 벌금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죄가 없습니다.
기자7= 페티그루는 어디 있습니까?
코= 현재 아즈카반에 수감되어 있으며 31일 정오에 재판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해리의 볼이 발그스레해졌다. 시리우스가 무죄야! 그는 이제 해리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해리, 그것 보거라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 이제 시리우스와 함께 살 수 있겠구나!" 덤블도어가 밝게 웃었다.
해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추세웠다. 흠, 흠, 헛기침 소리를 몇 번 낸 그는 씩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요! 이제 두들리도 보지 않아도 되고요. 정말 기분이 좋은걸요! 시리우스랑 어디서 살죠? 호그스미드는 어때요? 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덤블도어는 은빛 수염을 움직이며 웃었다. 퍽스가 횃대에서 날아 올라 해리의 어깨에 앉았다. 해리는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해리는 가지고 있던 강낭콩 젤리와 쿠키를 꺼내 덤블도어와 밤새 코코아 파티를 벌였다. 창 밖에서 달빛이 그들을 오랫동안 비추었다.
#17.
해리는 눈을 비비며 벨벳 커튼을 젖혔다. 몇 시쯤일까? 밤새 코코아 파티를 하다가 잠든 것 같은데.... 덤블도어는 연회장에 간 것이 분명했다. 식탁이 호박 주스와 토스트, 머랭, 레몬 샤베트, 스테이크, 딸기 파이가 차려져 있었다. 해리는 통 안에 수북히 담겨 있는 박하사탕 하나를 집어먹고 옷을 입었다. 웬일인지 배가 엄청 고팠다. 그는 식탁에 앉아 모든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머랭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무심코 밖을 쳐다본 해리는 하마터면 입에 들어있던 걸 뱉을 뻔했다. 래번클로의 퀴디치 팀이 그리핀도르 팀과 연습경기를 한 모양이었다. 사납게 발버둥치는 블러저를 프레드와 조지가 상자 속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각 팀의 수색꾼인 데니스 크리비와 초 챙이 경기장에 내려오고 있었다.
해리는 머랭을 꿀꺽 삼키고 소리쳤다.
"조지! 프레드 형!"
마지막으로 라커룸에 들어가던 그들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밝게 미소짓는 것 같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 해리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올라 와, 홀에서 기다릴게!"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해리는 그들이 라커룸에 들어가자 옷장을 열어 투명 망토를 챙겼다. 퍽스가 횃대에 앉아 기분좋게 해리의 허둥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리는 퍽스에게 행운의 크로스(거짓말을 했을 때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하는 손동작)를 만들어 보인 후 홀로 내려갔다. 그는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고 프레드와 조지를 기다렸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홀에 울리면서 래번클로와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이 들어왔다. 그리고 약간 뒤쳐져서 프레드와 조지가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화장실에 가는 시늉을 하며 홀에 아무도 없기를 기다렸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지 해리가 투명망토를 벗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해리를 발견하곤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옆에 있던 스니젯 석상이 부르르 떨 정도였다.
"쉿!" 해리가 검지를 입에 갖다대었다. "조용히 해. 나 몰래 나온 거란 말이야." 그가 손짓을 하자 조지가 달려왔다. "따라 와, 형."
방으로 가는 문 하나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해리는 쌍둥이 형제의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방에 도착하자 그들이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망토는 땀에 젖어 있었다.
"와, 해리!" 프레드가 해리를 덥석 껴안았다. "환상적이야, 해리! 멋져! 나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
"프레드, 프레드," 해리가 미소를 지으며 헐떡였다. "침대에 좀 앉아. 얘기 좀 하자." 그는 책상에 딸린 의자를 끌어다 앉고 소환 마법으로 군것질거리를 가져왔다.
"먹어. 참, 형들 쿠키는 어때?"
"인기 만점." 조지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약간 변경했어. 먹으면 다리가 꼬이면서 피부가 파랗게 변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 더 먹으면 거대한 스니치가 되어 버리지."
"징그럽겠다."
"무슨 얘길 그렇게 해? 얼마나 재미있는데. 2시클에 팔고 있어. 그런데 벌써 560개가 팔렸어. 전교생이 2개씩 먹은 셈이야! 덤블도어 교수님도 구입하셨다고! 순이익만도 32갈레온 16시클이야! 게다가," 조지가 눈을 반짝였다. "허니듀크가 1000개를 사들였지! 58갈레온 14시클! 드디어 우리가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거야."
"맞아, 책상 앞에 붙어있는 퍼시보다는 훨씬 낫지." 해리가 장난스럽게 맞장구치며 개구리 초콜릿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말이야, 형들 왜 날 보고 놀라지 않은 거야?"
프레드가 흠칫 놀라더니 숨을 몰아쉬었다.
#18.
"우린 아빠께 들었어. 뭐, 우리도 레시폴드 사건의 현장에 있었으니까 숨기기는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네가 어디 숨어 있는지는 전혀 몰랐어! 우린 새로 만들어진 이 탑이 새로운 연구실이라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말을 그대로 믿었단 말이야! 바보 같지.
하지만 해리, 우린 널 봤어. 그, 왜, 얼마 전에 너 헤르미온느랑 싸웠잖아. 너랑 그 애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내려가 봤다니까! 걱정 마, 우리 말고는 아무도 안 깼으니까. 우린... 뭘 하고 싶어도 헤르미온느 때문에 못 한다고 그랬나? 그 때쯤부터 들었어."
"그러면 모든 걸 다 봤겠네? 거의 모든 걸. 헤르미온느 그 앤 뭐라고 그래?"
"그 앤 그 때부터 계속 울었어. 연회와 수업을 뺀 모든 시간에 울었어. 자유시간에는 침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았다. 해리, 네가 정말 너무한 것 같아."
"아냐, 형들은 몰라. 나도 힘들었다고. 난 절대 잘못하지 않았어."
해리는 단호한 목소리로 못박았다.
그 날 밤 덤블도어가 다시 올라왔다. 그가 내민 <<예언자 일보>>에는 충격적인 기사가 실려 있었다.
피터 페티그루 탈옥!
마법부가 발표한 내용 요약
그 자의 측근이었던 피터 페티그루가 오늘 밤 9시에 탈옥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탈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둠의 마법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여러분은 절대 혼란을 일으키지 말아 주십시오. 간수들이 현재 그를 찾고 있고 꼭 다시 잡힐 것입니다.
그 짧은 기사 밑에는(변함없이) 리타 스키터의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했다. 볼드모트의 힘, 디멘터는 무능한가, 심지어 퍼지와 페티그루의 관계.... 덤블도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예언자 일보>>를 든 채 다시 내려갔다.
해리는 창을 가리고 있던 푸른빛 커튼을 잡아 당겼다. 고요한 정적에 잠긴 호그와트와 운동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칠흑같이 검었는데 눈같이 보이는 것이 마치 한 쌍의 반딧불 같았다. 해리는 꼼짝 않고 그것을 주시했다.
잠시 후 필치의 사무실에 불이 반짝 켜졌다. 매우 멀긴 했지만 해리는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크룩생크 같은데, 해리가 생각했다. 아마 론의 말처럼 새를 두어마리 꿀꺽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해리는 알아차렸다. 그것은 금지된 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크룩생크가 아니었다.
해리는 이마를 더듬었다. 고양이가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업쇼었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애완 고양이일 것이라고 자신의 마음을 굳혔다. 아마 호그와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고양이겠지. 금지된 숲이 뭔지도 모를테고.
해리는 눈을 비비며 커튼을 내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때였다.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몸을 뒤틀며 금지된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고양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쥐를 뒤쫓았다. 그 쥐는 안간힘을 다해 고양이를 따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초부터 고양이와 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꼭 크룩생크 같은 그 고양이는 쥐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쥐의 앞발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무자비하게 쥐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쥐의 몸이 커지는 것을 멈추고 괴로운 듯 뒤틀리자 고양이는 마침내 쥐를 앞발로 잡아 입에 넣었다.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피터 페티그루!
해리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마가 타 들어가는 듯 아파 왔다. 한 손으로 이마를 잡고 한 손으로 요술지팡이를 꺼낸 해리는 허공을 향해 지팡이를 높이 올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문을 외쳤다.
"메이어크루!"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그가 외친 주문은 전혀 효력이 없었다. 대신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정확히, 고양이의 얼굴에 떨어졌다.
#19.
고양이가 불붙은 얼굴을 운동장 바닥에 묻었다. 불은 점차 사그라지다가 꺼져 버렸지만 고양이의 얼굴은 참혹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마침내 해리의 존재를 감지했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해리를 쏘아보았다. 눈에서 광채가 쏟아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건 사라지고 없었다.
해리는 비틀거리며 침대에 앉았다. 전등의 불빛이 팟 하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페티그루의 비명... 그건 자신의 귀에 들린 게 아닌 것 같았다. 해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만 같았다. 4학년 때 볼드모트를 위해 직접 자신의 팔을 잘랐던 페티그루가 기억났다. 그리고 그의 새로 생긴 은색 팔. 그랬다. 쥐는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해리는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루모스!"
그러자 지팡이 끝에 작은 빛이 켜졌다. 그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비가 내리는지 천장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똑 똑 똑.... 점점더 빨라졌다. 똑똑똑똑.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건 빗방울이 아니야! 저건 발자구 소리야...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는...
말포이!
해리는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문을 열어젖혔다. 복도를 밝히는 불이 모두 꺼져 앞을 볼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가 나아가길 주저하고 있는 사이 말포이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의 걸음이 불안하게 들렸다.
해리는 큰 소리로 외쳤다.
"말포이, 드레이코, 당장 멈춰!"
"해리?" 말포이의 목소리와 함게 그가 뛰는 것 같았다. 해리가 멈추라고 소리 질렀지만 벽에 부딪쳐 오싹한 웅웅거림으로 그의 귀를 찔렀다.
"멈추라고, 드레이코, 제발!"
해리의 애원과 거의 동시에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귓전을 메웠다. 계단! 말포이의 비명과 해리의 절규가 뒤섞여 묘한 울림을 이루었다.
해리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앞이 안 보여 계단의 어느 구석에서 걸려 나동그라져도 그는 계속 달렸다. 문들은 다 열려 있었고 암호를 묻는 석상들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어느 구석을 봐도 볼드모트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해리는... 위험을 향해 뛰어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미친 짓이었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건...
밖으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마침내 계단이 무너진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끝없어 보이는 암흑... 진저리나는 차가움.
"드레이코."
해리는 마침내 그 암흑 속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이 없는 것만 같았다... 100m... 200m... 속으로 높이를 가늠해 보던 해리는 흉터가 있던 자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해리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드레이코 말포이.... 호그와트에 돌아온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론... 걱정하고 있을 해그리드.... 잠시나마 자유를 맛보게 해 주었던 플뢰르... 덤블도어 교수님... 위즐리 아주머니.... 그리고 헤르미온느.
만약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사과하고 싶은데... 만약,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떨어지는 속도가 늦어지며 발이 땅에 닿았다
#20.
털썩.
해리의 무릎이 푹 꺾였다. 두 손으로 땅을 짚은 그는 차가운 빗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랬다... 정말로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여긴 실내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지?
해리는 볼드모트와 대결했던 때가 세 번 있었는데, 이 곳은 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어두웠다. 주위에 나무들이 빽빽히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들에게서 낮은 속삭임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로 여기저기를 비춰 보았다.
갑자기 발에 물컹한 무언가가 밟혔다. 화들짝 놀라면서 해리는 그것을 비춰보았다... 창백한 얼굴.... 채 감기지 않은 푸른 두 눈...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드레이코 말포이. 말포이 가문의 훌륭했던... 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있는 것이었다.
해리는 손을 뻗어 드레이코의 눈을 감겨 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는 외쳤다.
"톰 마볼로 리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천하의 볼드모트 경도 자신을 완벽히 감추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톰 리들, 이 비겁한 자식, 당장 나와!"
으스스했다. 해리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그 소리가 왠지 낯익었다. 그래, 애크로맨투라... 거미였다. 그렇다면 이 곳은... 금지된 숲.
왜 볼드모트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해리는 조심스럽게 공터를 한 바튀 돌았다. 나뭇잎이 발에 밟혀 바스락거렸다. 딸깍거리는 거미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등골이 오싹했다.
사방에서 거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이 뒤덮인 집게발들이 계속해서 딸깍거렸다. 그리고 남쪽에서 아라고그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이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만나는군, 해그리드의 친구." 아라고그가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 "신선한 날고기! 왜 또 온 거지? 정말 먹히고 싶은 건가?"
해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온 게 아니에요, 사고였어요! 비명을 지를 거예요. 해그리드는 오두막에 있단 말이에요. 내 친구는 숲 입구에 있어요. 소리치면 와서 날 구해 줄 거라구요!"
"거짓말 마, 어린 친구." 아라고그가 추한 얼굴을 해리에게 바짝 들이댔다. "해그리드는 호그스미드에 있어. 교수들 모두가 호그스미드에 가 있지. 그리고 너의 빌어먹을 친구 말야... 없잖아. 난 널 처음부터 지켜봤어. 넌 허공에서 떨어졌어. 아, 친구. 그 시체 말인가? 식었어 별로 맛이 없겠군. 안 그래?" 거미들이 흥분해서 킁킁거렸다.
"배가 고파. 해그리드는 이제 먹이를 주지도 않아. 제기랄. 결국 우리는 가엾은 동물들은 잡아먹어야 하지. 하지만 성에 안 찬단 말이야! 너 하나면 우리 식구 스물이 넉넉히 먹어. 정말 맛있게도 생겼군. 내 친구가 널 소개시켜 줬지."
"친구라니요?"
"음, 그래, 정말 친절하지. 자신을 '리들'이라고 소개했어. 보기에는 끔찍하지만 좋은 친구야. 그가 내 눈을 고쳐 줬어. 맛있는 고기도 마련해줬고. 때가 되면 날 숲에서 내보내 주겠다는군.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지. 지금은 네가 있으니까!"
아라고그가 입을 쩔 벌렸다. 해리는 그의 날카로운 집게발을 피해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쪽에 있던 거미들이 쩔껑거리며 달려들었다. 요술지팡이를 사용할까 생각해봤지만 거미에게 맞추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도리어 아라고그의 화만 돋울 것이 뻔했다.
해리는 아라고그의 공격을 피해 그의 뒤쪽으로 돌아섰다. 이제 그가 할 것은 단지 하나뿐이었다..... 제발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20
"메이어크루 검!"
그는 이 주문이 실패하길 기도했다. 아까 고양이의 얼굴을 망쳐 놓았던 것처럼.... 하지만, 정말 실망스럽게도, 허공에서 검이 뚝 떨어졌다. 해리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오는 아라고그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용기를 가졌다. 이렇게 볼드모트도 만나지 못하고 그의 수작에 말리진 않을 것이다... 난 그리핀도르이니까.
애크로맨투라가 그를 덮쳤다. 악취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지만, 해리는 집게발을 피해 몸을 웅크렸다. 집게발에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해그리드의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해리는 검을 잡고 옛날 바실리스크를 죽였던 것처럼 체중을 실어 거미의 배에 검을 푹 꽂았다. 아라고그가 끔직한 소리를 지르며 해리 위로 풀썩 쓰러졌다. 파란색인 거미의 피가 해리의 다리를 적셨다. 거미의 배에 꽂혀 있던 칼자루가 해리의 팔을 세게 쳤다.
통증이 엄습했다. 팔의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해리는 부러진 오른팔을 잘 지탱하면서 거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오른팔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페룰라."
주문을 외워 손에 부목을 대고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아라고그의 식구들은 도망치고 없었다. 아마 자신들의 두목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는 걸 보고 겁이 났으리라.
해리는 검을 뺐다. 왼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 칼은 3년 전에 마법의 모자에서 뽑았던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검이었다... 정말 마술같은 일이었다.
그는 칼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뭔가 신비한 능력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왼손을 가지고는 요술지팡이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게다가 말포이. 말포이를 거미의 밥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해리의 왼손은 너무나 약했다. 말포이를 끌고 가기는커녕 힘을 주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해리는 운에 맡겼다. 말포이의 몸 위에 나뭇잎을 뿌려 그런대로 위장한 후 숲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열심히 따라간 해리는 멀리서 희미하게 빛이 보이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투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저 덤블도어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모든 일이 악몽 같았다.
마침내 해리는 숲을 벗어났다.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해리는 눈을 뜨지 못한 채 풀썩 쓰러졌다. 그런데 바닥이 이상했다. 매끈매끈한 돌바닥.... 겨우 빛에 익숙해진 해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 위에서 무언가가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몸을 밧줄로 묶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4학년 때와 비슷했다... 똑같았다... 아니 똑같다고 믿고 싶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케드릭도... 말포이도... 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난 다시 돌아간거야... 과거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볼드모트와 당당하게 맞서서... 케드릭을 살려내겠어... 모두의 눈물을... 되돌리겠어...
해리는 잠시 후에 자기에게 엄청난 운명이 닥쳐올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이마가 쪼개질 듯 아픈 것도 모른 채,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되새기고 있었다.
론, 시리우스, 덤블도어 교수님, 해그리드, 말포이, 케드릭, 플뢰르, 위즐리 아주머니, 초 챙, 맥고나걸 교수님, 엄마, 아빠, 그리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레나 포터.
해리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22.
"이런, 이런." 차가운 목소리가 비웃듯이 말했다. "천하의 해리 포터가 울긴. 자, 해리... 이제 시간이 왔다. 볼드모트 경이 해리 포터를 없앨 그 날이... 죽음의 손을 잡아라, 해리."
해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빛이 너무나 강해 눈이 멀어 버릴것만 같았다. 마치 구름 위에 있던 것처럼 행복하던... 절망감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대신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에 볼드모트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화상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톰 리들!"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해리, 내 이름을 아직도 모르나? 난 그 더러운 아버지의 이름을 받지 않았어... 훨씬 성스러운 이름! 너무나 대단해서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는 이름! 난 볼드모트 경이야, 해리..."
"아니야," 해리가 확고하게 못박았다. "그건 가명일 뿐이야. 네 이름은 톰 리들이고, 볼드모트는 네가 만든 가명일 뿐이라고!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의 쓸데없는 가명일 뿐이라고!"
볼드모트의 입술이 위로 비틀려 올라갔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살기를 내뿜었다.
"어리석은 것.... 나와 손을 잡으면 영광과 무한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텐데... 하지만 대답을 듣기 위해 저주를 쓸 필요는 없겠군... 이미 1년 전에 물었으니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지만,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는 킬킬대고 웃으며 해리를 다시 한 번 구슬렸다.
"하지만... 마법의 모자는 널 슬리데린에 넣고 싶어했어. 넌 재능이 뛰어나.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란 말이야.... 네가 나와 손을 잡으면 세상은 너의 것이 되는거야...."
"필요없어!" 해리는 약해진 마음을 바로잡았다. "난 그리핀도르야.... 진정한 그리핀도르만이 마법의 모자에서 검을 뽑아낼 수 있어."
"하지만," 볼드모트가 허리를 폈다. "진정한 슬리데린만이 마법의 모자에서 긴 생명을 꺼낼 수 있어... 그리고 내가 그랬지.."
해리는 눈을 부릅뜨고 볼드모트를 바라보았다. 볼드모트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난 1년 전처럼 시간을 많이 끌지는 않을 거야...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지.... 아무런 고통도 없어.... 다음 생에서는 좀더 현명하게 태어나길 바란다, 해리. 잘 가거라."
해리는 무서웠다... 죽음 앞에서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공포를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의연하게 죽고 싶다...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아바다 케다..."
해리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 때였다. 볼드모트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너무도 간절히 그리워했던 목소리가 귓전을 메웠다.
"멍청하긴!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며? 해리에겐 2번 타자가 있다는 걸 몰랐나 보지?"
헤르미온느였다... 헤르미온느가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꼭 꿈만 같았다.
그녀는 도도하게 볼드모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끔씩 해리에게 희미한 미소를 짓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곧 볼드모트에 대한 경멸심으로 가득 찼다.
볼드모트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해리는 그가 충격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는 '동작 그만' 주문에 걸려서 잠시 움직임을 멈춘 것뿐이었다. 볼드모트는 해리를 죽이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헤르미온느가 어디서 났는지 시리우스가 해리에게 선물했던 주머니칼을 꺼내 밧줄을 잘라 주었다. 아라고그와 싸울 때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다시 보게 된 것이 기뻤지만 괜히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23.
"여긴 어디지?"
그곳은 비밀의 방보다 더 오싹하면서도 웅장했다. 대리석 바닥과 여기저기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횃불들, 이리저리 놓여있는 뱀 모양의 석상.
헤르미온느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모르겠어. 금지된 숲의 입구 반대편 길에 대해선 어디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그나저나 해리, 조심해. 볼드모트가 깨어날 거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볼드모트가 움찔거리더니 활활 타오르는 듯 새빨간 두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해리는 이마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헤르미온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볼드모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볼드모터와 맞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볼드모트가 코웃음을 쳤다.
"저런, 저런, 2번 타자? 안녕하신가, 아가씨? 예의바르게 결투를 하고 싶다면 소개를 해야겠지? 난 볼드모트 경이란다... 넌?"
헤르미온느가 한참 동안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단호했던지 볼드모트조차 약간 놀랄 지경이었다. 아마도 볼드모트의 말 때문에 오기가 생겼으리라... 그녀는 무시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난..."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이며 해리 포터의 2번 타자이기도 하고, 널 톰 리들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지. 하지만 네가 별로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리석은 것!" 볼드모트가 잇새로 중얼거렸다. "결국 죽고 싶다는 뜻이군. 원한다면!"
칼날 같은 바람이 그들에게 몰아쳤다.
"헤르미온느, 내가 먼저 나갈게."
"안 돼!" 그녀가 나가려는 해리를 저지했다. "넌 남아 있어."
"하지만 넌.... 내가 죽은 다음에 나가는 거잖아!"
"아냐!"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넌 나보다 소중해. 알겠니? 네가 우리의 희망이란 말이야.... 내가 볼드모트를 붙잡고 있을테니까," 헤르미온느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넌 덤블도어 교수님을 불러오도록 해.... 지금쯤 호그스미드에서 돌아오고 계실 거야."
"하지만 헤르미온느..."
"어차피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죽어야 할거야." 헤르미온느는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난... 괜찮아. 내가 죽어서 저 자를 막을 수 있다면..." 그녀가 고개를 볼드모트 쪽으로 돌렸다. "행운을 빌게, 해리..."
해리는 뒷걸음질쳤다. 볼드모트가 크게 소리쳤다.
"이런, 상대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아닌가?"
헤르미온느가 볼드모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리들, 제안할 게 있어."
"뭔가?" 볼드모트가 비웃었다. "살려달라는 건가?"
"해리를 보내 줘."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해리를 여기서 내보내 줘. 다시 숲으로 돌아가게. 물론,"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약간 떨려왔다. "내가 죽고 난 후에 해리를 쫓아가서 어떻게 하든, 그건 네 마음이야.
네가 약속을 안 지킬만큼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들어줄 수 있겠지."
볼드모트가 천천히 걸어와 헤르미온느에게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녀는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졌다.
"좋아. 그렇게 해 주지. 마지막 소원인데 말야.... 어서 포터를 내보내." 그의 눈이 잔인한 빛을 뿜었다.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해리의 손을 잡고 그 방의 입구로 걸어갔다.
"해리, 조심해."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등을 떠다밀었다." 행운을 빌어. 위험하면 피렌체를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문을 닫아." 볼드모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돌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해리는 길을 따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눈물을 삼키며 그는 피렌체를 불렀다.
#24.
헤르미온느는 문을 닫고 채 돌아서기도 전에 크루시아투스 저주에 적중 당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깔끔히 묶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렸다.
온몸이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눈알이 빙빙 돌았고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녀는 대리석 바닥에 쓰러졌다. 손이 덜덜 떨렸다. 헤르미온느는 숨이 막혀 헉헉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볼드모트의 얼굴이 그녀를 한껏 비웃었다.
"이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라는 것이다, 그레인저. 어떠냐? 괴롭지 않느냐? 다시 맞고 싶지 않다면 그저 날 따르겠다는 말 한마디면 돼. 넌 영리하니까. 그쯤은 잘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더 고통을 맛봐야겠지... 두세 번 더 맞아 보면 죽고 싶어질 거야.... 죽는 게 훨씬 편하니까."
"됐어." 헤르미온느가 요술지팡이를 으스러질 듯 꽉 쥐었다. 그녀의 얼굴에 왠지 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건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이거 좀 비겁한 거 아냐? 결투를 신청했으면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시작해야지 말야. 하긴, 어둠의 주인이 그런 예절을 알 리가 없지. 날 어떡해서든지 죽일 걸 알고 있어. 다시 쏴 봐! 고문해 보란 말이야!"
볼드모트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지금껏 그에게 이만큼 치욕적인 말을 던진 사람은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분노하는 볼드모트를 실컷 놀려댔다. 하지만... 머리에서는 해리에 대한 걱정이 끊기지 않았다. 해리는 무사히 가고 있을까?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헤르미온느는 다시 고문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볼드모트의 공격 패턴을 해리의 경험담을 듣고 모조리 파악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준비도 없이 뛰어들 헤르미온느가 아니었다. 그녀는 벌써 머릿속으로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닫으면 바로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쏜다. 내가 일어나서 비웃으면 다시 한 번 저주를 쏠 것이다. 그 정도가 되면 그는 방심한다... 내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쓸 것이다. 하지만 난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함과 동시에 또 한 번 크루시아투스 저주에 맞고, 난 일어서서 그가 날 비웃는 사이에 무장해제 주문을 쏜다. 성공 여부는 상관없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 것이고, 그 이후는..... 다시 고문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 해리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역시, 볼드모트는 다시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쏘았다. 헤르미온느는 1년 전의 해리가 그랬던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그녀는 다음 단계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부디 해리가 빨리 숲을 벗어나길.. 그것이 그녀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볼드모트가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헐떡이는 헤르미온느를 요술지팡이로 겨냥했다.
"저런, 불쌍해라. 몰랐겠지만 어둠의 주인도 무자비하지는 않단다..... 넌 한 마디만 하면 돼. 날 따르겠다고..... 저런, 저런, 얼굴이 저렇게 창백해지다니. 죽음의 그림자가 모든 걸 덮고 있어.... 하지만 그 한마디만 하면 넌 모든 마법사들이 상상도 못할 찬란한 영광을 안게 될 거야.... 세상에나... 땀이 줄줄 흐르잖아.... 그레인저, 넌 똑똑한 아이니까 잘 선택할 수 있을거야...
그래, 해리 포터를 걱정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 애가 널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줬었지? 아니야.... 만약 나와 손을 잡기만 한다면 넌 해리 포터보다 더욱 소중한 사람이 될거야..... 세상 모든 것이 너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질 거야.... 세상 모든 것이 말이야!"
볼드모트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헤르미온느를 꾀었다. 그 다음은 임페리우스 저주의 차례였다... 헤르미온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임페리오!"
헤르미온느의 계획 3단계가 시작되었다.
#25.
해리는 피렌체의 등에 올라타 숲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었다. 둘 다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간간이 피렌체가 크게 심호흡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피렌체였다.
"해리, 너 괜찮니?"
"네, 물론이죠. 팔 부러진 것만 빼고요.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헤르미온느 생각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볼드모트와 맞서다니....."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헤르미온느는 여기 오면 안 되는 거였어요..... 이건 전적으로 제 일이었다고요...."
"하지만 해리, 그 앤 네 친동생이잖니."
해리는 어찌나 놀랐던지 피렌체의 등 위에서 떨어질 뻔 했다. 중심을 못 잡고 버둥거리는 그를 피렌체가 잡아 올렸다.
"그...그걸 어떻게 아세요?" 해리가 더듬거렸다. "헤르미온느가 제 쌍둥이 동생이라는 걸 아셨어요?"
"물론이지. 켄타우루스는 모든 진실을 다 안단다.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사실 우린 진실을 다른 종족들에게 말하지 않는단다. 그건 의무야."
"그랬군요. 참 좋으시겠어요."
"아냐, 괴롭지.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니까."
피렌체가 걸음을 늦췄다. 숲의 출구가 보였다.
"행운을 빈다, 해리. 난 아직 미숙해서 예언은 잘 사지 못하지만, 왠지 좋은 느낌이 든단다.... 어서 가거라!"
해리는 땀에 흠뻑 젖은 피렌체의 등에서 내렸다.
그 때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숲을 뒤흔들었다.
"헤르미온느!" 해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헤르미온느가 위험해!"
해리는 피렌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피렌체, 미안해요. 제발 날 다시 데려가 주세요."
"안 돼. 넌 덤블도어에게 가야 해, 해리. 네가 다시 가면 너무 위험해. 어서, 해리! 가거라!"
"피렌체, 제발요." 해리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제발... 부탁해요... 피렌체, 난 헤르미온느를 구해야 한다구요...."
피렌체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그를 등에 태우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해리의 급한 마음을 알아챘는지 아까보다 서너 배는 일찍 문에 도착했다.
"잘 가, 해리. 부디 무사하길 빈다."
그 말을 남기고 피렌체는 옆으로 훌쩍 뛰더니 그새 수풀에 가려 사라졌다.
"기다려, 톰 리들."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돌문을 힘껏 열었다.
헤르미온느가 벽에 기대고 누워 있었다. 그녀의 이마로 피가 흘러내렸다.... 벽에 부딪친 게 분명했다.
그녀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눈을 뜨고는 중얼거렸다.
"바보....... 내...가 맡을 거라니까..."
해리는 그녀에게 달려가 잘 일으켜 줬다. 헤르미온느가 벽을 짚고 가까스로 일어서자, 곧 볼드모트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이런,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감동적인 장면이로군.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야.... 해리 포터, 핏줄은 못 속이는 거야."
덜덜 떨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조용히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아, 물론, 너의 오빠 얘기지!" 볼드모트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유쾌하게 대답했다.
"오빠라니?" 헤르미온느가 피식 웃었다. "이제 어떻게 된 거 아냐? 난 외동딸이야. 톰 리들, 정신차리라고!"
해리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다, 그레인저. 넌 오빠가 분명이 있어. 그것도 너한테 아주 가까이!"
해리는 머릿속이 웅웅거려 미칠 것 같았다.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헤르미온느는 볼드모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게 누군데?"
#26
해리 포터다, 그레인저. 네가 그토록 걱정하던 해리 포터 말이야."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요술지팡이가 스르르 미끄러졌다. 해리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녀는 믿기지가 않는지 조용히 물었다.
"해리, 그게 사실이야?"
해리는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해리만큼 괴로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해리는 괴로웠지만 진실을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레인저, 충격이 꽤 크겠구나..... 그래, 이해가 되지 않을 거다. 내가 이야기해 주겠다.
넌 사실 해리 포터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었다. 그런데 내가 네 부모를 죽인 바로 그 날, 나의 충성스런 종이었던 바티 크라우치가 갓난아기였던 널 다른 머글 여자아이와 바꿔치기했어. 네 피엔 내 피가 상당량 섞여 있지....
네 본명은 레나 포터였다. 하지만 넌 내 쪽에 더 가까워. 네 피는 바로 내 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데?" 헤르미온느가 똑똑히 따졌다. "해리가 내 오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난 그걸 몰랐다. 그게 어때서?"
해리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엄청난 사실 앞에서.... 그녀는 그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볼드모트가 킬킬대고 웃었다. "그래, 결론은 이것이다, 그레인저. 선택해라... 볼드모트 경과 해리 포터 중 하나. 운명과 쓸데없는 추억. 혹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볼드모트가 손뼉을 한 번 쳤다. 그러자 갑자기 해리의 뒤에서 어떤 식물이 나타나 그를 잡고 자기 쪽으로 이끌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방어할 틈이 없었던 해리는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 식물은 수십 개나 되는 자신의 '손'들로 해리의 몸을 친친 동여매고 코와 입을 막았다. 해리는 발버둥쳤지만 그것은 너무나 힘이 셌다.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지르며 해리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볼드모트의 목소리가 그녀를 세웠다.
"자, 결정해라. 날 따르려면 내게 와서 요술지팡이를 바치면 돼.... 그러면 해리 포터와 너 모두 살 수 있을 거야.... 해리 포터를 선택하려면? 간단해. 그에게 가서 저 덩굴손을 끊어 버리면 되는 거야...
하지만 명심해. 덩굴손을 끊어버리는 즉시 그 쪽 청장에 있는 살인 도구가 떨어질거야... 너희 둘 다 죽는 거고 말이다. 머글들의 멍청한 살인 수단이긴 하지만, 고통을 주는데는 꽤 쓸모가 있지...."
헤르미온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강철로 된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는 천장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해리와 그녀는.... 무참하게... 너무나도 잔혹하게... 죽을 것이다....
"시간을 주겠어. 딱 10초. 너무 짧나?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저 쪽에서 발버둥치는 네 오빠가 위험할거야.... 저 식물은 숨을 막는 것 말고도 폐 속의 산소를 빨아들일 수 있거든...."
헤르미온느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볼드모트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0..."
해리가 저항을 포기하고 축 늘어져 헤르미온느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9..."
헤르미온느가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렸다...
"8..."
해리는 모든 희망을 잃었다...
"7..."
헤르미온느가 눈을 감았다...
"6..."
해리는 론이 너무도 그리웠다...
"5..."
헤르미온느가 결정을 끝낸 모양이었다...
#27.
"4..."
해리는 죽음이든 삶이든 상관없었다...
"3..."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2..."
해리의 숨이 막혔다. 헤르미온느, 제발...
"1..."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싹둑! 헤르미온느의 주머니칼이 덩굴손을 힘차게 잘랐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끔찍한 '살인 도구'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무시무시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그들을 비웃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해리는 눈을 꼭 감았다. 죽음은 4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두 팔로 해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해리의 눈에서도... 깨끗한 눈물 한 방울이... 헤르미온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볼드모트마저 경악케 했다. 갑자기 진한 황금빛 광선이 그들의 몸에서 위로 치솟았다... 살인 도구의 굉음이 사그라들었다.... 섬뜩하던 방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헤르미온느와 해리는 일제히 위를 바라보았다. 그 살인 도구는 흔적도 없었다.... 방은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해리는 넋을 잃은 채 방을 둘러보았다.... 헤르미온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이런 기적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해리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언제나... 단 1초라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너무나 그리웠던....
"엄마?"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마 해리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갑자기 볼드모트가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빛이 마치 꿈처럼... 안개처럼... 바람이 쓸어간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깜짝 놀라며 시선을 볼드모터에게 돌렸다. 그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이런, 너무 감상적으로 변한 게 아닌가 모르겠군. 대단해!" 그가 손뼉을 치며 킬킬대고 웃었다. "새로운 마법이야.... 뭔지 모르겠군.... 해리 포터와 레나 포터.... 대단한 우애야..."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그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지 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을 방도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아까 그들의 몸에서 뿜어졌던 마법(이라고 해야할까?) 때문에 힘을 많이 소모한 모양이었다.... 온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멍청한 매부리코 머글 애호가라면 이런 우애에 최고 점수를 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슬리데린은... 단호하다. 그깟 쓸데없는 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앞에 서서 그의 시야를 가렸다. 기진맥진한 해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벌써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틀림없이 아바다 케다브라를 써 버릴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해리의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맞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덤블도어가 낌새를 알아채고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와 줬으면 하는 소망만이 남아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요술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써 볼 생각이었다... 하다 못 해 무장해제라도... 1분 1초라도 해리에게 시간을 벌어 줘야 했다.
해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헤르미온느!"
"익스펙토 패트로눔!"
"아바다 케다브라!"
셋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묘한 울림을 이루어내었다. 볼드모트의 지팡이에서 눈부신 초록색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28.
초록빛 섬광이 눈을 찔렀다.... 해리는 눈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가 바닥에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건 아냐.... 안 돼.... 절대..... 이렇게는 안 돼....
그 때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 해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마다 나타났던 희망의 노래... 불사조의 노래가 돌바닥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니, 돌바닥이 아니었다... 헤르미온느가 놓쳐 버린 지팡이에서.... 은빛 안개로 만든 것 같은 패트로누스가... 천천히 나타나고 있었다..
해리는 믿어지지 않았다. 불사조 패트로누스가 몸을 완전히 빼내었다. 그것이... 볼드모트에게로 날아갔다. 볼드모트는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진 채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불사조가 볼드모트의 새빨간 두 눈을 마구 쪼아댔다. 볼드모트는 귀가 터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그의 몸은 공포로 차 있었으며 동작 하나하나에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해리는 멍하니 그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건.... 엄마였다.
"엄마?" 해리가 일말의 희망-혹은 절망-을 가지고 물었다. "엄마 맞아요?"
하지만 '그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신을 겨우 차린 해리는 '그 것'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 그건 패트로누스였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엄마라고.... 다시 살아난 엄마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패트로누스가 허리를 굽혀 해리가 떨어뜨린 지팡이를 주워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해리의 몸 속에서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라.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꼭 쥐었다. 그래! 해 보는 거야... 그가 요술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어디선가 새로운 힘이 솟구쳤다.
그는 아라고그의 몸에 박혀 있는 칼을 생각해냈다. 그걸 써야 할 때였다....
"아씨오 검!"
그의 몸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바라고 있었다... 해리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불사조 패트로누스이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헤르미온느는 움직일 줄 몰랐다.... 해리의 마음이 증오로 불타 올랐다.
바로 그 때였다. 돌문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파란색 피가 묻어 있는 검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리핀도르의 검.... 해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득달 같이 볼드모트에게 달려들었다... 왼손인데도... 해리는 검을 세게 잡고 볼드모트에게 달려들었다...
불사조 패트로누스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볼드모트의 시야를 막았다... 해리는 칼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칼을 붙잡고 분노에 찬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볓 분이나 지났을까. 불사조 패트로누스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칼이 해리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 소리가 온 벽에 부딪쳤다. 볼드모트가 해리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착각하지 마." 해리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당신을 동정하거나 좋아해서 한 짓은 아니니까. 그저.... 난..." 그는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케드릭, 그리고 헤르미온느의 복수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점이 그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그저 난 살인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이야.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너에겐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해리는 마지막 말을 힘겹게 끝내고는 그만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오열했다.
볼드모트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10년처럼 느껴지는 몇 분의 침묵....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비열하고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동정. 아름다운 해리 포터의 영혼. 리들의 마음이 다 아파오는군..... 그래, 넌 3학년 때에도 쓸데없는 동정을 베풀어 페티그루를 살렸지... 그 점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어.... 자, 해리, 이제 알겠지. 동정은 쓸데없는 거야. 잘 배워 두거라... 하긴 곧 죽을 거니까 필요도 없겠지만..."
해리는 멍한 눈으로 볼드모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파왔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미끄러졌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역질이 나고.... 눈 앞이 흐릿해지고.... 볼드모트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귀를 마구 때렸다.... 차가운 돌바닥에 몸이 닿자 추위가 몰려들었다.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해리," 볼드모트의 목소리. "방심했구나. 잊었느냐? 고양이의 발톱! 드디어 네 심장을 꿰뚫을 그 날이 왔다."
그가 비아냥대며 킬킬거리고 웃었다. 해리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런! 천하의 영웅 해리 포터가 저렇게 죽는군. 너무도 불쌍하게... 어둠의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잘 가거라, 해리."
해리의 피가 싸늘히 식어갔다... 심장이 차가워졌다... 피가 돌기를 멈추었다.
#29.
해리는 눈을 번쩍 떴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였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풍겨오는 약 냄새... 이 곳은 호그와트의 병동이었다. 정말 놀라웠다. 분명 난... 난 죽었을 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몸을 움직여보았다. 아라고그와의 싸움에서 다친 왼팔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움직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주위에 쳐진 벨벳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덤블도어를 중심으로 교수들이 빙 둘러 앉아있었다. 해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떻게 된 건가요, 알버스?"
"나도 모르오. 해리는 언제 깨어나는지 모르겠는데... 폼프리 부인, 해리는 괜찮나요?"
"교수님, 조용히 좀 하세요! 환자들이 다 깨겠어요."
"해리는요, 교수님? 어떻게 죽을 고비를 넘긴거죠?"
"테드가 치료해 주었다오. 의외로 심장에 고양이의 발톱이 꽂히니까 발견하기 쉬웠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소."
스네이프가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해리가 차가운 돌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볼드모트가 해리의 지팡이를 집어 반으로 뚝 부러뜨렸다. 나무 조각이 사방에 튀며 빨간색과 황금색이 번갈아 반짝이는 불사조의 깃털이 공중에 솟구쳤다. 볼드모트는 지팡이로 깃털을 꾹 찔러 태워버렸다.... 하얀 재가 날아다니며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는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었다. 주목이 이상하게 번득였다. 그의 흉측한 얼굴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였다.
쿵!
돌문이 바닥에 떨어지며 쩍 갈라졌다. 볼드모트의 새빨간 두 눈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휙 돌아섰다.
"테드 슬레이터!"
그가 경악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금발이 온통 땀으로 젖은 테드는 요술지팡이로 볼드모트를 겨냥하며 한 발 한 발 방안으로 걸어 왔다... 뚜벅, 뚜벅, 뚜벅. 그가 방안을 휘 둘러보더니 볼드모트를 노려보았다.
"그래, 톰, 나야. 잘 지냈나? 얼굴을 보니 그리 잘 지낸 것 같지는 않은데." 그가 애써 친근한 말투로 볼드모트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오랜만.... 거의 30년만이지. 그 동안 너도 나도 참 많이 변했군..."
"용건이 뭐냐?" 볼드모트가 날카롭게 물었다. "난 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그리고 나도 네가 싫어. 그저 난 부탁을 하나 하러 왔을 뿐이다."
"뭔데?"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풀어 줘."
볼드모트가 테드를 노려보며 끔찍한 웃음 소리를 터뜨렸다.
"내가 그럴 것 같나? 내가... 난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 생애를 다 바쳤어. 그리고 해리 포터의 죽음은 곧 나의 부활이며 전세계 지배의 열쇠야. 그런데 나한테 그걸 포기하라고?"
"네 말이 사실이라면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싸늘한 시체에 불과하잖아. 그 시체가 도대체 네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안 돼, 슬레이터. 너에게는 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난 해리 포터의 영혼을 끌어 내 이용할 거야. 그리고 넌 방해꾼이 뿐이야!"
"리들!" 테드가 무릎을 꿇었다. "네 다른 목적이 날 없애는 것임을 알 수 있어. 넌 포터보다 날 더 위험하게 생각하잖아."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이렇게 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호그와트로 보내는 대신 내 목숨을 가져 가."
볼드모트가 입술을 깨물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테드 슬레이터. 항상 그랬어. 사려깊고, 착하고, 고귀하고. 항상 고아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반요정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니콜라스 플라멜에게 입양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니콜라스 플라멜은 교장 아르만도 디펫을 설득해 네가 호그와트에서 다른 사람의 두 배나 되는 14년을 보내도록 했어. 네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모든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넌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어. 하지만 난..."
그의 얼굴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볼드모트의 눈물은 검은 연기를 내며 사라졌다.
"난 외로웠어.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어!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사랑이었어. 하지만 아무도 날 좋아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난... 이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면 모든 사람들이 날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무도.... 어느 한 사람도..." 이제 방은 눈물이 내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날 사랑해 주지 않았어. 오직 너만! 그래, 테드 슬레이터, 오직 너만. 그러더니 이제 더 큰 사랑을 내게서 빼앗으려 하다니!
비겁한 놈."
#30
테드는 천천히 일어나 볼드모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깊은 연민의 빛이 어렸다.... 그랬다. 그는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사악한 짓을 수없이 반복했던 어둠의 주인을 동정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볼드모트에게 다가가 형제라도 되는 양 껴안더니 볼드모트의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을 한 마디를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 톰."
볼드모트가 흐느낌을 뚝 멈췄다. 그는 손을 덜덜 떨며 테드를 바라보았다. 그가 테드의 손에서 몸을 빼내었다... 천천히 뒷걸음질치던 그는.... 숨쉬기가 힘든 듯 헉헉거렸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그가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는 사라져버렸다.
병동에서, 해리는 커튼을 조금 들추고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질문에 덤블도어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 세베루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볼드모트가 전적으로 사악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그는 사랑에 굶주렸다고 하오. 나도 몰랐던 사실이오. 하지만 반평생을 그와 함께 지내 온 테드는 결국 볼드모트에게서 고백을 받아내었고, 테드는... 그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오."
교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맥고나걸 교수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역겨움을 역력히 드러내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그런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지 마시오, 미네르바. 볼드모트는 따지고 보면 정말 가엾기 짝이 없는 사람이오. 그리고 그는,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그 말 한마디에 그만... 육체를 잃고 말았소. 그는 사악함으로 채워진 인물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게 되자 힘이 극도로 약해져 육체를 소유할 힘조차 잃은 것이오. 어쩌면 그는 디멘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군요. 디멘터가 유쾌한 생각을 먹고살듯이, 그는 사람들의 증오를 힘의 원천으로 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오."
해리는 그만 힘이 탁 풀려 손에서 커튼을 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그저 볼드모트를 모두의 적으로 정해 놓고 끊임없이 증오의 화살을 퍼부었었다. 결국 볼드모트라는 인물이 탄생한 건 모두의 탓이었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적. 십 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마치 하루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모두 제각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무디 교수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해리, 나오너라.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리는 화들짝 놀랐다. 덤블도어가 뚜벅뚜벅 걸어 와 커튼을 휙 젖혔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천천히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바라보는 교수님들의 놀란 눈길이 느껴졌다.
덤블도어가 구석에 치워져 있던 나무 의자를 가져왔다. 해리가 거기 앉자마자 트릴로니 교수가 가슴을 움켜잡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 이럴 줄 알았어요. 1주일쯤 전에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그런데 이상한 영상들이 마구 뒤엉켜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전 그 자가 호그와트 주변에 침투하고, 포터와 결투를 벌이고, 그레인저가 반쯤 죽었다가 살아날 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요! 천기를 누설하면 제 목숨이 위험해지니까요! 아, 얼마나 괴로웠던지!"
"사이빌, 당신이 켄타우루스가 아니라면, 예언 결과를 알려준다 해도 해가 없을 것 같은데요." 맥고나걸 교수가 차갑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 정말 미안하지만, 그 자와 결투하면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그녀가 해리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넌 지금까지 알버스에게만 이야기해 왔어. 난 3년 전에 딱 한 번 들어 보았고 말이야. 알버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알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중 한 명이 좋은 의견을 낼 지도 모르고 말이야. 알버스, 괜찮다면 우리도 좀 듣고 싶은데요? 태평하게 레몬 샤베트를 드실 시간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 사이에 레몬 샤베트를 먹고 있던 덤블도어가 깜짝 놀라며 샤베트를 떨어뜨렸다. 폼프리 부인이 짜증을 내며 마법으로 샤베트를 치웠다.
"좋아요," 덤블도어가 반짝이는 하늘빛 눈으로 맥고나걸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해리만 좋다면 말이오. 해리, 넌 어떻니?"
"괜찮아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지만 싫다고 말하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가 해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31.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났다. 정오였다. 하지만 누구도 연회장에 내려가지 않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꼼짝도 안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고, 플리트윅 교수는 감동받은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빈스 교수는 주름이 깊게 잡힌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플뢰르였다.
"다 제 잘못이에요. 해리를 호그스미드에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제가 데려가지만 않았으면 해리는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오." 뜻밖에도 무디 교수가 그녀를 옹호했다. "어둠의 주인은 어떻게든 해리를 공격했을 거요. 그가 고양이로 변신해 해리를 공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소. 오히려 잘 된 일일수도 있소."
"그런데 그레인저가 왜 죽지 않은 건가요?" 스프라우트 교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불사조가 대신 희생했다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세상에...!"
"아무리 불사조라도 살인 저주에는 어쩔 수 없소. 아마도 그레인저의 패트로누스는 퍽스의 영혼이 아니었나 싶소. 불사조는 죽더라도 그 영혼만은 영원하기 때문이라오."
"그렇다면 그 황금 기둥은요?" 벡터 교수가 손가락을 굴리며 물었다.
"글쎄, 내 생각으로는... 정말 모르겠소. 해리,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해리는 자신을 껴안던 헤르미온느를 생각했다.
"음... 아마도, 한 핏줄의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그랬구나."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튬 디 헤이오니였어. 놀랍구나. 그 마법은 특별히 성스러운 우애를 나눈 형제에게서 나타나는 마법이지. 잘 했다, 해리. 놀라워. 이건 네가 갓난아기였을 때 볼드모트의 저주를 맞고도 살아난 것과 맞먹는 사건이야. 그 마법은 천 년 동안이나 나타난 적이 없었거든. 바틸다 백셧에게 알려야겠다. <<마법의 역사>>를 고쳐야 한다고 말이다..."
해리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에게는 <<마법의 역사>>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 때였다. 구석에 있던 침대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커튼이 젖혀지고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나타났다.
"덤블도어 교수님! 맥고나걸 교수님! 도대체 뭐죠? 전, 전 괜찮은 건가요? 해리는요? 어떻게 된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입술을 실룩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덤블도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 교수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큰일났네! 모든 걸 다시 설명해야 한다니! 미네르바, 당신이 설명하시오. 아무래도 당신이 그레인저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구려!"
병동에서 나온 해리는 제일 먼저 그리핀도르에 복귀했다. 론은 레시폴드 사건 이후 해리를 처음 보자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핀도르와 래번클로는 현재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론이 플뢰르의 수업에서 무려 50점을 따 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헤르미온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여전히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해리에게 다정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 다음에는 해그리드를 찾아갔는데 그는 프우퍼(아름다운 아프리카 산의 새. 그러나 프우퍼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미쳐 버린다)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그는 그 위험한 새에게 각각 '해리'와 '론'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며(그들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애지중지했다. 해리는 해그리드로부터 아라고그에 대한 사과를 받아 내려고 했지만, 그는 끝내 아라고그를 감싸고 돌았다.
슬리데린들은 모두 기가 죽어 있었다. 말포이의 죽음과 죽음을 먹는 자들의 체포가 겹쳐 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해리가 돌아온 날 마법의 약 수업이 있었는데, 스네이프와 슬리데린 중 어느 누구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힘들었던 일도 몇 가지 있었는데, 제일 힘들었던 건 말포이의 어머니를 만난 일이었다. 해리는 케드릭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보다 더욱 참담함을 느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해리는 비록 그녀를 싫어하긴 했지만, 말포이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퀴디치 결승전이 다가왔다.
#32.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수색꾼을 해리로 할 것인지, 아니면 데니스로 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건강 상태를 봐서라도 데니스를 내보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고, 콜린은 해리가 해야 한다면서 동생 데니스를 윽박질렀다.
해리도 고민에 휩싸였다. 데니스는 퀴디치를 너무나 좋아했으며 뛰어난 수색꾼이었다. 그리고 해리는... 100년 만에 나온 최연소 선수였으며 용을 상대로 싸워 이기기도 했고... 퀴디치 우승컵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새겨지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리는 해그리드의 말을 생각했다.
"빗자루나 쥐보다는 친구를 소중히 생각할 줄 알았어."
결국 해리는 데니스에게 결승전 참가 자격을 넘겨주었다.
결승전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지만 전에 내린 폭우로 땅이 질퍽질퍽했다. 해리는 망토를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그리핀도르 응원석에 자리를 잡았다. 후플푸프 대 그리핀도르의 경기였다. 30년 만에 퀴디치 결승전에 올라온 후플푸프는 승리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그리핀도르 팀은 각 선수들의 움직이는 사진으로 대형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후플푸프는 졸업한 선배들이 보내 준 커다란 스니치 모형을 들고 큰 소리로 응원하고 있었다. 슬리데린 응원석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20년 만에 결승전에 나가지 못한 것이었다.
해리는 목을 길게 빼고 선수들이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리 조던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신나게 들렸다.
"그리핀도르 팀입니다. 벨, 존슨, 조지 위즐리, 프레드 위즐리, 맥도널드, 스피넷, 그리고 임시 수색꾼 크리비입니다. 지난번 퀴디치 우승컵을 멋지게 따 냈었죠. 그리핀도르 팀, 오늘도 멋진 경기 부탁합니다."
해리는 피식 웃었다. 리의 해설은 확실히 불공정했다.
"후플푸프 팀이네요. 새 주장 번디가 이끌고 있는데요, 글쎄... 아무래도 노력을 좀 해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치 부인이 퀘이플을 허공으로 던졌다.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벨이 퀘이플 잡았습니다. 밑에 있는 스피넷에게 멋진 패스! 자, 스피넷이 빠른 속도로 골대로 향하는군요... 아으! 블러저에 맞았어요... 정말 아프겠네요. 스피넷 양, 괜찮아요? 다친 덴 없어요? 이런, 많이 아프겠군요."
"조던! 경기 해설이나 해!"
후플푸프의 주장이자 추격꾼인 번디가 퀘이플을 잡고 그리핀도르 골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조지 위즐리가 번디의 앞으로 날아가 그의 코에 주먹을 날렸다... 아니 그런 시늉을 했다. 깜짝 놀란 번디는 퀘이플을 떨어뜨렸고, 안젤리나 존슨이 그 틈에 퀘이플을 가로챘다.
해리는 조던의 해설에 귀를 기울이며 두 수색꾼을 주시했다.
"하하! 저게 바로 그 유명한 트란실바니아 태클이라는 거죠. 신체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반칙이 아닙니다. 말씀드리는 사이 존슨이 후플푸프 골대에... 퀘이플을... 아니, 케이티 벨에게 패스... 벨 득점!"
그리핀도르 응원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직 스니치는 보이지 않았다. 두 수색꾼은 블러저를 피하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스니치를 찾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해리의 눈에 반짝이는 황금빛이 보였다... 그것은 아직 할 일이 없어 가만히 골대 앞에 있는 나탈리 맥도널드의 빗자루 꼬리 부분에 있었다. 데니스는 아직 스니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건 후플푸프의 수색꾼도 마찬가지였다.
해리는 애가 탔다. 그는 절친한 사이인 어니 맥밀란과 저스틴에게 미안했지만 그리핀도르의 승리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목청껏 소리질렀다.
"데니스, 스니치야!"
물론 데니스의 귀에 들릴 리는 없었지만 론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스니치? 어디?"
"저기, 나탈리의 빗자루 꼬리에! 봐!"
해리의 말은 곧 그리핀도르 응원석에 퍼졌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데니스, 스니치야!"
#33.
데니스 크리비가 깜짝 놀라며 경기장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스니치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그리핀도르 골대로 질주했다.
하지만 후플푸프 수색꾼 번디가 더 가까웠다... 번디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맥도널드를 향해 날아갔다.
해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경기를 시작한 지 겨우 1분이 지났다... 여기서 스니치를 잡는다면 호그와트 퀴디치 게임 사상 최단시간에 스니치를 잡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 잡은 승리를 놓치긴 싫었다. 하지만 데니스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이제 나탈리 맥도널드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니치 곁에서 떠나지 낳으며 번디를 막을 준비를 했다. 조지가 힘껏 클럽을 휘둘렀지만 긴장한 탓인지 블러저는 번디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탈리! 나탈리! 나탈리!"
그리핀도르 응원석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맥도널드를 응원했다.
번디가 힘껏 손을 뻗었다... 나탈리가 막아섰다. 스니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군중들의 함성에 묻혀 리 조던의 해설은 들리지 않았다... 나탈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번디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데니스는 아직도 10m나 떨어져 있었다. 옆에서 시무스가 툴툴거렸다.
"이런, 안 되면 반칙이라도 써야 할 거 아냐!"
하지만 나탈리 맥도널드는 '정의로운' 학생으로 이름나 있었다. 반칙할 리가 없었다. 관중들이 함성이 약간 수그러들면서 리 조던의 해설이 들렸다.
"나탈리 맥도널드가 막아내고 있습니다. 아, 데니스! 데니스 크리비가 왔습니다! 데니스! 안 돼, 번디가 다시 잡으려고 시도합니다... 제발... 반칙입니다!"
나탈리가 다시 방해하자 화가 난 번디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친 것이다. 나탈리가 고개를 숙였다... 번디가 팔을 쭉 뻗었다... 동시에 데니스가 한 팔만을 빗자루에 걸친 채 스니치를 향해 펄쩍 뛰었다...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빗자루로 올라탄 데니스의 손에는 스니치가 꽉 쥐어져 있었다. 번디의 반칙을 징계하려 했던 후치 부인이 노여운 표정을 지우며 그리핀도르의 승리를 선언했다.
공중에서 선수들이 한데 몰려들어 데니스를 껴안았다. 론은 네빌과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맥고나걸 교수가 이번에는 울지 않으며 덤블도어와 악수를 했다. 리 조던은 경기장으로 뛰쳐나와 땅에 내려온 프레드와 조지의 손을 잡아당겼다. 곧 모든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경기장에 몰려들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우승컵을 쥔 데니스는(죽을 수도 있는 작전을 성공시킨 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해맑게 웃더니 옆에 있던 해리에게 우승컵을 넘겨주었다. 해리는 데니스를 꼭 껴안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섭섭한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핀도르는 그 날 밤을 지새우며 파티를 열었다.
곧 종강연회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학년말 시험을 결승전 전에 치렀는데, 그래서인지 행복한 기분은 내내 그리핀도르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종강연회를 위해 연회장에 내려간 해리는 금세 기분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1년 전에도 봤던 검은 휘장. 말포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다. 해리에게서 말포이 이야기를 들은 론과 헤르미온느도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나머지(슬리데린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아랑곳없이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해리는 말포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삽시간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여러분께선 이 휘장의 의미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법의 천장에 떠 있던 해가 구름에 가려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 해리는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건 슬리데린 기숙사에서 공부하던 드레이코 말포이 군에 대한 애도의 표시입니다. 말포이 군은 뛰어난 성적으로 우리 학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인재였습니다." 딘 토마스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낮게 깔깔거렸지만, 해리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덤블도어가 딘에게 주의를 준 후 말을 이었다.
"지금 말포이 군의 아버지는 죽음을 먹는 자로 판명되어 아즈카반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말포이 군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누명을 이제 제가 벗겨 주겠습니다."
#34.
"말포이 군은 아버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포이는 5학년에 들어섰을 때 저주에 대항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줄곧 해리 포터를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는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해리가 비명을 질렀다.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도 눈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연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슬리데린들은 넋을 잃은 채 멍하니 덤블도어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포이 군은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있습니다. 그들은 볼드모트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 결과 볼드모트는 다시 한 번 크게 힘을 잃었습니다. 전 교직원들은 말포이, 포터, 그레인저에게 공로패를 수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연회장은 조용했다. 어느 누구도 식탁에 있는 음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덤블도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여기서 당사자들에게 매우 죄송하지만 밝혀두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 교직원들이 몇 달에 걸쳐 조사해 알아낸 사실입니다. 여러분께서 의연하게 받아 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해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쌍둥이 남매입니다."
론이 숨을 몰아 쉬었다. 모두의 눈길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향했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해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해리가 갓난아기였을 때 볼드모트가 몰락하자, 그의 추종자들이 그레인저 양을 머글 여자아이와 바꿔치기해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인저 양은 전혀 악하지 않으며 슬기로워 우리를 힘껏 도와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회장은 이제 무거운 침묵과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누구도 갑자기 몰아치는 진실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 패르바티 패틸이 헤르미온느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해리의 마음이 아파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순간 조지 위즐리가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먹어도 되죠?"
곧 연회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떠들쏘 한 소리로 가득 찼다.
해리는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학생들을 배웅하는 맥고나걸 교수가 보였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이번 방학이 기다려졌다. 드디어 시리우스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이미 런던에 가까운 포츠머스에 집을 하나 마련해두고 있었다.
해리의 주먹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그는 목을 쭉 배고 학생들을 살폈다. 저 멀리 초 챙이 보였다. 그는 론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부탁한 후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초 챙은 웬일인지 혼자였다.
"초 챙..." 해리가 정말, 정말 힘겹게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왜, 해리?"
"저..." 해리는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잘 정리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사실... 우리 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아." 초 챙의 뺨이 붉어졌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좋아. 물론이야, 해리... 그러면..." 저 멀리서 마차가 오고 있었다. "방학 동안 편지 주고 받자. 알았지?"
"응." 해리는 날아갈 듯한 기분을 꾹 누르며 태연하게 악수했다. "방학 잘 지내."
"너도." 초 챙이 마차를 타러 달려가는 해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해리는 객실 한 칸에 헤르미온느와 앉아 있었다. 론은 애써 자리를 피해 쌍둥이 형들에게 가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표준 마법서(5학년)>>을 꺼내들고 모든 걸 복습하고 있었다.
"저, 헤르미온느..."
#35.
"왜?" 헤르미온느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해리는 그녀의 무관심이 정말 싫었다.
"저... 잠깐 책 좀 안 볼 수 있겠니?"
"좋아." 그녀가 약간 짜증스럽게 책을 탁 덮었다. "무슨 얘긴데?"
"응... 그러니까... 너 나를 오빠로 생각하니?"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빠르게 그늘이 졌다.
"응, 물론이지. 그동안 몰랐지만 어쨌든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태어났잖아. 그리고... 난... 레나 포터라고 불리우는 것도 괜찮아."
"헤르미온느...!"
"내 정체성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어. 하지만 내 피는... 포터 가문의 피잖아. 어쩔 수 없는거야, 해리. 아니, ...오빠."
해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냐, 헤르미온느. 넌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야. 네가 포터 가문의 피를 갖고 있다고 해도 넌 그레인저로 자랐고 생활하잖아, 헤르미온느. 넌... 레나가 아니야. 지워 버려도 돼."
"해리...!"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껴안았다. "고마워."
해리는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점점 창 밖의 풍경이 푸르러지고 마침내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해리는 어서 시리우스를 보고 싶어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는 손수레를 끌고 수많은 머글들의 틈에 꼈다. 저 멀리서 버논 이모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자, 해리." 그가 툴툴거렸다. "어서 가자."
"아녜요." 해리가 밝게 웃었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이모부께서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있어요."
"누구?"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곧 그의 보랏빛 얼굴은 뻣뻣하게 경직되어 버렸다. 해리의 뒤에 TV에서 봤던 그 살인자가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 사람은!" 오랜만에 버논 이모부를 따라온 두들리가 겁에 질려 페투니아 이모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 이 분이 제 대부, 시리우스 블랙이세요. 인사하세요.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고 저와 함께 살러 오셨어요. 안녕히 계세요! 이제 영영 못 뵙겠네요.. 전 포츠머스에 가거든요. 잘 지내세요."
해리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더즐리 가족을 뒤로하고 시리우스와 함께 포츠머스로 가는 마법사 급행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7과 6분의 1 승강장을 향해 출발했다. 해리의 어깨에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첫댓글 이거 진짠가요? 진짜로 5편인가?
넘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