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서울운동장에서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나는 밴드반에 가입했다. 그땐 특별 활동반 선배들이 틈나는 시간이면 하급생반을 돌며 부원들을 선발하곤 했다. 나는 당시 밴드반 반장이었던 이세진(후에 공군군악대장)선배의 눈에 띠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입했다.
그날 가입하고 보니 후에 그런대로 사회에서 유명인이 된 이장호(영화감독) 김석원(쌍용회장) 구자극(LG 미주사장) 교장이 된 문용호도 있었으나 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도에 탈퇴하였다.
선배들은 내 입술이 두툼하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제일 큰 나팔인 수자폰을 불게 했다. 너무 무거워 힘이 들었다. 후에 MBC 교향악단에서 수석주자로 활약하신 김선팔선배가 트롬본을 불도록 했다. 트롬본 주자는 행군할 때 맨 앞에 서기 때문에 비교적 키 큰 녀석들 몫이다.
밴드반 동기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습득하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방과 후에 매일 두어 시간씩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밴드반만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가 있었고 같은 동기생들끼린 특별한 유대감들이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에 함께 보냈던 동기들 중에 교사출신인 조규상과 한정광 대한제당 CEO 출신인 한동혁 교수출신인 유정환 개인 사업하던 이재봉 대한중석 전무를 지낸 지동직 그리고 KBS 교향악단장까지 지내고 아직도 째즈악단을 이끌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정성조와는 졸업한지 50년이 된 지금도 가끔씩 만나 회포를 풀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고1때 을지로서 시가 행진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신체적변화도 오고 이웃집에 예쁜 여학생들에 관심도 가지게 되었고 복장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마음속에 짝사랑하던 여학생 도 있었다. 이 때 있었던 추억의 한 토막을 훗날 어느 글란에 올렸다. 아래 글이다.
"내 나이 60 먹던 해다. 중학교 시절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여자애가 멀리 카나다에서 전화를 했다. 반갑다고 귀 따갑게 소리치더니 내가 월남에서 죽었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나? 어쨌다나…….
그러면서 먼저 갔다는 남편얘기며 의사 변호사가 된 아들딸 이야길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수다 떨며 엮는다. 그 소문만 아니었으면 지금 쯤 지 팔자가 달라졌을 꺼라나? 모라나…….걸쭉한 농담도 거침없는 걸 보니 늙긴 늙었나 보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소문나면 오래 산다는 얘기도 있으니 난 오래 살기는 하겠으나 어이 쿠야~ 그 친구 팔자가 달라졌다면 난 지금 저승에 있을 테니 클 날 뻔 했다.
거무틱틱한 터럭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즈음에 첫 사랑이랄까? 그 여학생 때문에 마음 앓이도 많이 했다. 그녀가 다니던 동네 교회도 쫒아 다녔고 그 덕분에 성경책도 첨부터 끝까지 읽어봤고 난생 첨 교회 학생회 총무라는 감투도 써봤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시간에 기도한답시고 미리 적어놓은 걸 잊어먹고는 당황해서 뒷문으로 도망친 이후 부끄러워서 한 번도 그 녀를 못 봤다. 그런 그녀가 신문 동정 란에 실린 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곤 전화를 했다면서 그 옛날 생각하기도 망신스런 기도하다 도망친 사건(?)도 들춰낸다.
난 군 시절 삼척에서 내 총각딱지를 떼어간 여선생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 어린 시절 그때 일들을 집어내고 내 이름도 잊지 않고 있는걸 보니 대단한 기억력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몇 살 위인 골목 친구겸 동네형의 동생이니 나와는 한 살쯤 연하일 것 같은데 암튼 앙큼한 년임이 분명하다. "
대충 이런 내용인데 아무튼 그때 사춘기 시절에 있었던 잊히지 않는 추억거리 중에 하나이기에 그때의 순수했던 감정을 이 글로 대신하겠다.
첫댓글 그때 중학교시절부터 밴드반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기가 10명이었는데 한명은 고인이됐고 두명은 외국에서 살고있어 국내에 있는 나머지들이 매달 만나 애들처럼 옹알대며 산책도하고 밥도먹고 술도마시며 놀다가 헤어집니다 ㅎ
유명인사분들이 많으시군요 선배님...
두툼한 입술과 악기....수자폰...^_^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연애(?)에 대한 글이 시작되었으니..
흥미진진한 선배님의 연애담.....그 다음 스토리가 기대됩니다...
난 연애체질이 아닌가봐요 짝사랑 아니면 시도하다 늘 채이더라고요ㅎㅎ
국경일이나 특별한 행사있는 곳에 가끔은 중고교생들의 밴드행렬이 눈과 귀를 즐겁게해주곤했었죠. 수자폰 부는 분들은 유난히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선한데 선배님의 표현에두 담겨있군요.....*
전차가 다니던 시절 행렬에 앞장서면 공연히 신바람이 났지요 사진에 찍힌대로 트롬본은 맨 앞줄에 서니 우쭐감도 컸어요 수자폰주자들은 행군하고 나면 녹초가 됐고ㅡ 행군 끝나면 빵을 줬는데 두배씩 줬어요 ㅎ 그때 찍은 을지로 입구 사진입니다 ㅎ
선배님~ 10화 댓글에 바로 읽겠다하곤
이제 봤네요
우리때도 서울중고는 인기 짱이었는데 거기다 밴드부라면 완전 상한가를 쳤을것 같아요ㅎㅎ
올림픽공원 사진에선 단번에 선배님을
알아뵐수 있겠더라구요^^
개성 강한 두툼한 입술~ㅋㅋ
이성에 눈뜨면서 이제 소년이 청년이
되가는거겠죠?
선배님 글 넘넘 재밌게 읽었구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_^
반갑습니다 후배님~올림픽공원사진에 나오는친구들 이제 만나면 꼭 낯에 만나 먼저 산책부터 해요 옛날같으면 저녁때 만나 술집부터 가는녀석들인데 사진 왼쪽서 세번째ㅎ 맞쳤어요? 작년에 찍은건데 내가 보긴 전부 쭈그렁노인들이라 그놈이그놈 같해요 ㅎ
사실 색소폰을 늙으막에 배우셨다는데도 공공장소에서 연주하신다는 용기에 내심 깜짝 놀랐는데
다 근본이 있었군요..ㅎㅎㅎ
수자폰,트롬본 그리고 색소폰~~~
격에 어울리는 두툼한 입술..ㅋㅋ
타고난 절대음감이 부족해서 아무리 연습해도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탁월한 연주는 불가하나 그냥 그런대로 악보따라 부는건 아마 그때그시절 눈과귀에 익은 잠재력이 도움이 됐을것 같긴해요 제가 다니며 연습하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요 노래방기기도 있고요 가끔 친구들이모여 놀때 오브리반주는 제몫입니다 ㅎ
선배님 저도 중학교때 클라리넷을 조금 불었죠.(^&^) 밴드부 규율은 좀 엄격 했던것 같아요.(경험담 입니다)
선배님글로 오늘 하루의 시간을 마감 합니다(^&^)
그렇군요 클라리넷을 불연 왠만한 리드악기는 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뺀드반 규율이 엄격했지요ㅡ 가끔 선배들 한테 빳따도 맞기도 했고요 다 추억입니다ㅎ
넘 재밌어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거죠?
반갑습니다 24회면 귀여운막내시네ㅎ 중학교 졸업까지 연재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몇회남긴했어요 그 이상은 내개인은 물론 언급되는 사람들의 개인프리이버시도 있어 공개 카페에서 노출이 걱정돼요ㅎ 중학교시절까지는 철없던때라 서로 공유부분이 겹치니 용기를 낸겁니다 계속 성원 부탁해요ㅡㅎ
@구름정 선배님~ 24회 김용분 제 동생이예요^^
이름 보면 감이 오시죠?ㅋㅋ
카페활동을 열심히 안해서
맘에 안드는 후배랍니다ㅎㅎ
@22회김용순 아~ 그러시네 남매?자매? 어쨌든 두분 무진장 고마울뿐입니다 살다보면 가장 편한 곳이 초중고 동창여요 특히 지방에서 보니 국민학교동창들이 상당히 끈끈하던데 부럽기도 했어요 그런면에서는 우리모교가 없어진게 아쉽기만해요 다행이 몇분들이 이런 카페라도 만들어 쉼터로 만들어주니 고맙기만 하네요 특히 20회 이후 후배님들이 적극적인 활동이 기대됩니다ㅎ동생분 혼좀 내 주세요ㅎ
@구름정 선배님~ 저희가 1남4녀인데 제가 맏이고 저와 용분이 그리고 폐교되는 바람에 남산으로 전학간 넷째까지
세자매가 이카페 회원이예요^^
감사패 받을만 하죠?ㅋㅋ
@22회김용순 와아~ 세자매가 다 일신을 다녔군요 그땐 그런집이 제법 있었을 같기는한데 폐교된 모교카페 에 몽땅가입한 자매는 없을껍니다 그것도 전학간막내도.....우리 일신의 보배들입니다 우애들이 남다른것 같해요 감사패에 표창장 빈금일봉까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