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건축가. 2011년 작고. 작년 말, 큰딸 유이화씨가 제주도에 완공.
<집이 뭔지 한번 생각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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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본명은 유동룡(庾東龍).
그런데 "庾"자는 당시 일본의 한자사전에 있지도 않았다고. 그래서 재일교포로 살면서 이름 쓰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어려서 큰집에 양자로 입양된 걸 그때 알게 된 "길옥윤" 씨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다가 일본에 와서 악단 활동을 하면서 그와 친해졌는데 동병상련?
자기 예명을 요시야 쥰(吉屋潤)으로 한 예를 들면서 그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제안해, "이타미 준"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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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이후 서양이 동양을 식민지로 삼았던 때부터 아직도 그들이 여전히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게 현실.
그 뿐 아니라 그들의 철학, 음악, 미술, 과학, 체육 등이 여전히 주류.
~소크라테스, 헤로도토스, 칸트, 모짜르트, 세익스피어, 피카소, 아인슈타인, 꼬르뷔지에,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 축구도, 올림픽 경기도, 그리고 TV, smart phone, 증권, 영화 등에 더해서 할로윈데이 까지 모두 그들이 만든 작품들,
건축도 마찬가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유리와 강철로 마천루(skyscraper)를 선보인 이후 도시화가 가속되는 이 시대에는 롯데 타워 같은 초고층 건물이 주도적이라 한옥이 세계적으로 발돋움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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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은 이런 서양 지향적인 현대미술과 건축분야에 있어 지역적인 문맥과 뿌리를 생각해 이에 조화되는 것을 찾아내고 형상화 하는, 독특한 건축을 창조했다. (그런데 이 동네의 모 회사는 설계도면 하나로 주변 지형과 상관없이 전국에 동일한 구조의 밤색 건물을 짓기도,,,)
그는 건물을 그 지역의 토속적인 것에 접목하고자 한 것인데,
건축가로서 단지 건축물을 짓는데 그치지 않고 환경과 흐르는 세월 따라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한 것.
그가 설계한 온양민속박물관 경우, 한국에서는 일본식 모자같다고 시비를 걸었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전혀 찾아보기 힘든, 작가의 모국(한국) 건축물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표출된 형태라고 평가했다.
또 그가 응모한 경주 EXPO 공모안은 한국적인 아이디어로 2등을 했는데, 그들은 나중에 그의 스케치를 도용해 똑같은 형태로 슬쩍 지었다. (그건 위로 올라가기에 한계가 있는 한옥을 서양건축 구조의 힘을 빌려 높게 형상화 한 독특한 모습)
세월이 흘려 그의 제자가 우연히 경주에 갔다가 스승의 스케치와 똑같아 항의를 했더니 결국 한쪽 구석 바닥에 "유동룡" 이라고 작가 이름을 새겨주었다.
그가 특별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는 건 내부가
온통 검정색인 "먹의 집".
그건 소외된 재일교포로 살면서 느낀 "절대고독"의 표현일지?
"긴자"에 지은 "TRUNK"라는 술집에는 당시 서울 문리대 건물을 해체할 때 버리는 도서관 벽돌을 가져와 장식했다. 그 벽돌 덕분에 한국에서는 사라졌어도 그 도서관에 대한 시간과 기억은 아직 Tokyo라는 도시 안에 살아있다. (고국에서 사라지는 건물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그 벽돌을 활용하는 것에서 보듯 그는,
건축물은 한번 짓고나면 세월에 따라 변하는 (wearing & tearing) 것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는 가치관을 가진 건축가였다.
그래서 건물을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같이 늙고 어울릴 수 있는 존재로 부각하려 노력했다.
~요즘 건물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 시선을 끌까" 하는 관점으로 짓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건물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여긴 사람.
요즘같이 CAD로 설계도를 그리면, 손으로 도면을 직접 그리던 옛 방식에 비해 현실감이 떨어진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카톡이, 연필로 손편지를 쓰던 시대에 비해 그 느낌이 다르듯,
IT, metaverse를 많이 쓰는 현대는 실제 현장에 있다는 감이 점점 떨어지는 시대.
그는 보기 드물게 이런 조류에 휘둘리지 않는, 현장의 야성미와 온기를 지닌 건축가였던 듯.
(첨부 사진은 작년 EBS에 방영되었던 자료중 일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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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의 그런 독특한 건축관은,
태생은 한국인이지만 현실은 일본이라는 치밀한 문화 환경에서 살면서 한국적인 것을 끝임없이 추구한, 경계인 같은 사고의 산물이었을지.
첫댓글
생각해 보니 의학도 수술하고 항생제 먹은 서양의학이 주류이고 치마 저고리에 기모노 입는 여성들 보다 양장이 대세.
갓 쓰고 상투 틀기보다 양복에 한쪽 가리마 타는 것도 서양에서 유래한 것이니 세상 살아가는 방식은 이래저래 서구식이 주류인 듯. 군대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