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학교에서 내준 가족신문 만들기 숙제를 한 적이 꽤 있었다.
학급 친구들이 만들어 온 가족신문을 보면 그 내용과 형식이 다 비슷비슷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창의성 부족으로 천편일률적인 신문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족의 매뉴얼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가족신문이란 숙제를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기에 ‘화목한 가정’이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답이고, 점수와 칭찬을 많이 받고,
모범적인 학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단 하나의 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정뿐 아니라 배우자의 가정, 가장의 가정, 며느리, 제부, 사돈의 가정들이 있다.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가정과 가족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는가? 사회가 일률적인 이데올로기로 가족을 정의하면,
각자의 입장을 토로할 때 그 말은 일종의 뒷담화가 되어버리고 말투는 신경질적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사회가 이데올로기로 묶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은 각자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장이 형성될 수 있다. 단지 하나로 묶으려는
그 강제가 우리 모두를 히스테리로 몰고 있다.
이데올로기 선순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해야 한다.
-‘비홉 개인전’ 작가 노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