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30 쇠날 날씨: 햇볕이 따갑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이다.
아침열기-텃밭농사-점심-청소-고구마순 껍질 벗기기-생일 편지 쓰기-마침회-생일잔치(유찬, 종민)
[고구마순]
8시 30분 마루로 나와 리코더를 부는 일상이 익숙해간다. 교사실에서 잠깐 앉아 아침열기를 준비하는데 송순옥 선생이 묻는다.
“선생님 과학 연수 안 가요?”
“앗 까먹고 있었어요.”
학교 일 때문에 줄곧 못가서 마지막 두 번은 꼭 가야지 했는데 알려줘서 다행이다.
9시 5분,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형들과 노는 푸른샘 아이들을 얼른 불러 아침 열기를 하려는데 지빈이와 승민이가 아직 안 왔다. 어쩔 수 없이 세 아이에게 선생이 과학 공부하러 아침나절 잠깐 나갔다 오니 텃밭 일 잘 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송순옥 선생에게 맡기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멀리서 수빈이와 지빈이랑 승민이가 보인다.
점심때 학교에 들어오니 가을 뜨거운 햇살에 텃밭에서 일하고 온 티가 많이 난다. 높은샘 4, 5, 6학년은 열리는어린이집 텃밭으로 가고, 낮은샘 1, 2, 3학년은 양재천 텃밭으로 가서 고추 따고 거름 넣고 밭을 뒤집어 쪽파도 심고 갓 씨를 뿌리고 고구마 순을 따는 텃밭 일인데 가을 햇볕이 따가워서 선생들이 땀을 많이 흘렸나보다. 고구마 순이 수북이 쌓여있고 빨간 고추와 풋고추도 보인다. 밥 먹고 빨간 고추를 따로 모아 가위로 잘라 채반에 널어 마당에 펼쳐놓고, 고구마 순을 소쿠리에 담아 교사실 앞 평상으로 나갔다. 김상미 선생, 권진숙 선생, 승민어머니, 윤영이와 수빈이랑 고구마 순 껍질을 벗기는데 우리 수빈이와 윤영이 입담이 즐겁다. 지리산 두 소녀들이 꺼내는 이야기 덕분에 웃다 고구마순 껍질 벗기다 보니 어느새 청소시간이다. 어제 마당 풀은 조금 잡아 놓은 상태이고 우진이와 지우가 마당 청소라 두 아이에게 맡겨놓고 아주 마음먹고 고구마 순을 줄곧 벗기고 있는데, 청소를 일찍 마친 희주가 평상으로 오더니 고구마순 껍질을 벗긴다. 우리 아이들은 선생들이 뭔가 줄곧 하고 있으면 꼭 한 번 씩 해보고 재미있으면 아주 집중해서 하는데 오늘도 그렇다.
낮공부로 알찬샘 아이들은 마당에서 천막 펼치고 벼이삭 그림을 그리고, 옹달샘은 오늘 딴 고추랑 고구마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누리샘 아이들은 평상에서 의자 만드는 목공 수업중이다. 지난 물날에 그림 그리기를 한 푸른샘 낮 공부는 고구마 순 껍질 벗기고 생일편지 쓰는 것이라 교실에 모두 둘러앉아 고구마 순 껍질을 벗긴다. 처음에는 일처럼 보이는 듯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 하더니 슬슬 일놀이에 빠진다.
“너희들 오늘 고구마 순 몇 개나 땄어? 한 100개씩 땄니?”
“아니요. 30개씩, 50개씩 따라고 했어요.”
“그랬군. 고구마순 껍질 벗겨서 고구마순 김치를 담아 먹으면 진짜로 맛있어. 선생님이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김치야. 너희들도 먹어봤니?”
“아뇨. 선생님 그냥 놀면 안돼요?”
“응 안돼. 고구마순 껍질 벗기지 않으면 애써 딴 고구마순을 다 버려야 해. 그리고 고구마순을 너희들이 잘 따줘서 고구마가 아주 굵을 거야. 고구마도 크고 고구마순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조금 재미없어 보여도 해보자. 하다보면 재미있어. 아 고구마순 껍질로 한 판 하는 건 어때? 자 덤벼봐.”
고구마순 껍질로 질경이 풀싸움처럼 하니 아이들 눈이 빛난다.
“어때 재미있지. 한 번 도전해보세요.”
“저랑 해요. 선생님.”
“좋아 한 판 하자. 어때 안 되겠지? 선생님처럼 껍질을 한 번에 벗기면 이렇게 두껍게 되어 유리한데. 자 선생님 손을 봐봐. 고구마순을 끝 쪽에서 쭉 천천히 내리면 돼.”
아이들 손놀림이 아주 바빠지더니 한 판씩 하니 아주 떠들썩하다.
“선생님 한 판 해요?”
선생이 줄곧 이기니 아이들이 손놀림이 빨라진다. 아주 고구마순 껍질을 아주 여러 겹으로 쌓아 밧줄을 만들자는 말에 강산이가 벗겨놓은 고구마순 껍질을 집어든다. 정우가 강산이 고구마순 밧줄 만드는 데 고구마순 껍질을 보태고, 민주 고구마순 껍질 만드는데 선생이 보태는 동안 지빈이는 아주 열심히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더니 드디어 한 번에 두꺼운 껍질을 들어 보인다.
“선생님 여기 봐요.”
“와 지빈이 대단하다. 정말 끊어지지 않고 긴 껍질을 벗겼네. 이제 고구마순 벗기기 달인이야.”
민주와 강산이는 줄곧 고구마 순 껍질을 모아 차곡차곡 모아 두껍게 만다. 그렇게 노는 동안 고구마 순 껍질을 정말 많이 벗겼다. 승민어머니와 승민이도 척척 고구마 순 속살을 드러낸다.
한 30분 아이들이 고구마순을 벗긴 다음 3학년 유찬이와 종민이 생일 편지를 쓴다. 아이들이 편지 쓰는 동안에도 줄곧 고구마순을 벗기니 3시 모두 마침회 할 때쯤에는 엄지와 검지 손톱이 까많고 엄지 손톱 아래가 쓰리다. 그저께 서민주 어머니가 담궈 보내준 고구마순 김치를 생일잔치 떡에 곁들여 먹는데 어찌나 맛이 좋은지 선생들도 모두 젓가락질을 한다. 아삭아삭 씹는 맛과 매콤한 김치 양념에 절로 밥이 생각난다. 선생들 모두 다시 달라붙어 남은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고 벗기다 학교를 마친다. 쇠날은 긴 교사회의 없이 가는 날이라 내일 들살이 짐 서둘러 챙기고 모둠살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나섰다. 8단지 놀이터에서 현서랑 고구마순을 벗기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간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 줄곧 고구마순 껍질을 벗긴 하루다.
고구마순 김치는 여름이면 내게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고구마순 김치를 얼마나 잘 먹는지 해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고구마순 김치를 해놓고 휴가 때 내려오는 자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올해는 고구마순 김치를 담궈 줄 어머니가 병원에 줄곧 계신다. 이주 전에는 시골 병원에 갔다 과천에 올라오는 날 바로 학교 텃밭에 가서 고구마순을 잔뜩 뜯어왔다. 아내가 담은 고구마순 김치를 와삭와삭 씹어 먹는데 어머니가 자꾸 생각났다. 그렇게 고구마순 김치를 한 번 푸짐하게 먹고 오늘 다시 고구마순 김치를 먹는다. 다음 주 아이들과 고구마순 김치를 담그려는 모둠도 있고, 담은 고구마순 김치 맛도 아이들과 볼 것이니 몸과 마음이 즐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