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위의 사람들, 평범한 일상을 꿈꾸게 된 비밀
글 최혜정 커뮤니케이션본부 간사
군산 유일의 노숙인 재활시설로 신애원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데는 두가지 비밀이 있다.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우리는 식구라고 부른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가족의 형태가 변모하고 있지만 식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예나 지금이나 각별하다.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기 마련일 터. 그러나 밥상에 둘러앉아 끼니를 함께하는 순간 우리는 식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품어낸다.
신애원에서도 식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노숙인이란 단어를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사회에서 노숙인이라는 이름하에 실패자, 포기자, 문제자로 낙인되어 살아온 그들을 신애원에서만큼은 식구로 품기로 한 것이다. 지난밤 당신이 어떤 사연으로 이 곳을 들어왔고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구절절 설명치 않아도 따뜻한 한 끼 식사는 노숙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묵직하고도 깊은 위로가 된다고 한다. 신애원 식구는 거리 위의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꿈꾸게 된 첫 번째 비밀이다.
신애원은 식구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재활에 사활을 걸었다. 의료서비스부터 훈련지원, 심리치료 등 재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
지만 신애원에서 지향하고 있는 재활은 크고 대단한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아프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일, 명절에 식구가 함께 모여 송편을 빚거나떡국을 먹는 일, 노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 일, 버스를 타고 극장에 가보는 일… 신애원 식구 대부분은 반평생 처음 경험하거나 오랜만에 겪는 일이다. 사소한 일상에 깃든 행복을 찾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비밀이다.
이제는 거리가 아닌 가정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나선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신애원은
1958년 개소한 군산 지역 유일의 노숙인 재활시설이다.
지리적으로 항만이 발달한 군산에는 해운업, 선박업에 종사하는 선원들이 많다. 선원의 경우 장기항해로 주거형태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 선주와의 관계적인 문제 등이 생기는 경우 업을 잃고 노숙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경찰서, 관공서 등을 통해 신애원을 거쳐가는 노숙인은 연 평균 100 여명. 신애원은 노숙인을 일시보호하고 상담을 통해 귀가 조치하거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시설로 연계 조치한다. 입소를 원하는 경우, 신애원에서는 사회적응 심리치료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노숙인 훈련지원 프로그램 참여를 도와 맞춤형 기능습득, 기술훈련으로 사회복귀가 가능한 수준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기아대책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위탁운영을 해오고 있다.
새로운 인생을 마주한
송은석(56세)씨에게 신애원은 ‘기적’이다.
청소년시기에 가출을 한 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된 후 선원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당뇨와 허리 디스크로 건강이 악화되자 생계수단을 잃고 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찾은 병원이었건만 병원비가 없어 강제 퇴원하게 된 그를 신애원은 ‘식구’라는 이름으로 받아주었다.
수술조차 위험한 상태에서 입소하였으나 신애원의 돌봄으로 송은석 씨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후 훈련지원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사회로의 재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처음 학원을 간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당장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던 내가 이곳에 오다니요… 믿을 수 없는 일을 그 이후에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취득한 그는 취업에도 바로 성공하였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3개월 후에는 집을 계약하였고 신애원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함께 퇴소하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들은 나를 일으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꿈꾸는 박진규(60세)씨에게 신애원은
‘해피 앤딩(Happy ANDing)’이다.
박진규씨는 공장에 취직하여 박스 포장, 운반, 납품 등의 일을 4개월 째 이어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2년 전 신애원에 입소하게 되었다는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21살 아들은 1급 장애를 앓고 있어 한 시설에 맡겨져 있고, 24살 딸은 위탁가정에 맡겨져 있다고 한다. 그에게 가족은 ‘재활’의 이유이자 ‘자립’의 목적이었다.
“신애원에 들어와 지난 4월에 운전면허 취득했던 것이 제겐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장애 아들을 양육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이동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운전이 가능하니 사회로 복귀하게 되면 자녀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행복을 꿈꾸는 것도 사치라 여겨졌던 그는 인생 2막의 출발선에 서있다. 행복을 나눌 누군가와 함께 말이다.
길 위에 흘린 노숙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빛을 보고 있다. 가야 할 방향과 속도를 잃은채 쓰러져 있던 이들은 ‘재활’을 통해 어느새 스스로 일어서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이다.영적, 육체적 굶주림을 겪는 한 사람의 자립을 통해 가정, 공동체가 회복을 경험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에 이미 찾아와있다.
담당자가 말하는 사업의 POINT!
— 김미영 생활복지사
2012년부터 실시된 노숙인 훈련지원 프로그램은 자립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자격 취득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사업이랍니다. 현재 훈련지원 프로그램에는 20명 남짓한 식구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참여자들은 자신의 욕구와 건강, 장애, 지적수준 등을 고려하여 습득할 기술을 선택하죠. 목공예, 원예, 바리스타, 요양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들을 배우고 있답니다.
사실 도전과 희망보다는 포기와 실패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이었기에 프로그램 참여를 이끌어내기까지도 수많은 진입장벽이 존재해요. 하지만 서서히 정신적, 신체적 ‘재활’을 통해 삶의 주체로서 기능하기 시작할 때 식구들의 삶에 크고 작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지난 8년 여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몇 년간의 운전면허 도전을 통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된 식구부터 바리스타 자격증과 제과자격증을 취득하여 군산지역의 빵집에 취직한 뒤 퇴소한 식구까지 여러 사례를 경험하였었죠. 앞서 말한 ‘재활’은 치료나 운동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신애원은 ‘재활’의 힘이 평범한 일상의 경험에서 솟아난다고 생각해요.
지난 9월에 입소한 새 식구가 있어요. 배를 타다가 오신 분인데 마침 지난 달 생일자셨어요. 그 분을 포함해서 같은 달 생일자인 분들을 모시고 외식을 갔었어요. 조촐한 생일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분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누군가 생일을 챙겨주고 축하해 준 것이 처음이에요.'라고 말이죠. 그날 이후부터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하루를, 생애 인간다운 삶을 맞이한 날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댓글 기아대책에서 이렇게 귀한 사역을 위탁운영하고 있었군요.
가슴 따뜻해지는 멋진 일입니다.
몸도 맘도 지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적이 되어주길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