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높이 123.5cm 일본의
국보 제1호 교토의 고류사(광륭사,廣隆寺)에 소장
반가사유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 시절에 인생무상을 느껴 고뇌하는 명상자세에서 기원하며, 출가
이전의 이러한 태자 모습은 중생 제도를 기다리는 미륵보살 모습과 비슷하므로
미륵보살상도 반가사유의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실존철학자인 독일의 야스퍼스(1883-1969)는
이 불상을 찬찬히 살펴본 뒤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불상이야말로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그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있는 예술미의
극치이다."
이
불상이 신라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은 7세기초이다. 서기 603년에 추고천황(推古天皇,
592-628)의 섭정이었던 쇼토쿠 태자(574-622)가 교토 땅의 신라인 지도자였던
진하승 공에게 전해주었고, 진하승 공은, 즉시 봉강사를 창건했다. 이
봉강사가 현재 교토의 우즈마사(太秦)에 위치한 고류사(광륭사, 廣隆寺)의
옛 이름이다. 진 공은 이 신라 불상을 모시고 오늘의 고류사의 전신인
봉강사를 신라인의 씨사(氏寺)로서 창건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본의 고대 기록에 전해지는 동시에 현대의 일본 고대사학자들이나,
미술사가들이 한결같이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부 학자가 이 불상이 '신라'에서 온 것이 아니고, '백제'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상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 90Cm)'이 바로 고류사의 목조
신라불상과 똑같은 형태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일본 학자들도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라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가 백제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현재는 삼국
시대의 것으로만 되어있다.
일본
학자들은 광륭사의 이 신라 목조 불상이 일본 고대 다른 불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적송(赤松)으로 만든 불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적송은 일명 춘양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경상북도 봉화에서만
나는 나무이다. 즉 적송으로 조각한 것은 한국의 목조 불상의 특징인
것이다.
신라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일본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광륭사 영보전
출처 - http://dugok.x-y.net/kor-his/world/j-mirukbosal.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