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울타리 옆으로 덩굴풀들이 자란다.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와 급기야 사철나무를 부러뜨리는 녀석들이다. 사철나무가 얼마나 귀찮을까 싶어서 울타리 좌우의 풀관리를 열심히 해주고 있다. 비라도 올라치면 금세 다시 풀들이 자라나지만 말이다.
풀을 뽑던 어느 날, 쑥은 아닌데 한 무더기씩 예닐곱 곳에서 듬쑥듬쑥 올라오는 식물체가 보였다. 기세 좋게 자라서 뽑아버리기엔 아까웠다. 초록색 잎들이 점점 커지더니 노란 꽃대가 올라왔다. 초록 잎, 빨간 줄기, 노란 꽃의 예쁜 모습으로 변신했다. 꽃검색으로 알아낸 정체는 "산괴불주머니"였다.
해열에 탁월한 효능이 있단다. 염증이나 통증을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되고,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여 부기를 뺄 때도 효과가 있다. 이렇게 약재로도 쓰이는 귀한 꽃이다. 꽃말이 무려 "보물주머니"란다. 층층이 쌓아 올린 낱개의 꽃 모양이 주머니 같기도 하고 무더기로 올라온 포기들도 풍성한 모양새라 정말 복스럽다.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는 블루베리와 복숭아 농장에 산괴불주머니가 찾아왔다. 개연성이 있을 리 없건만, 왠지 청신호 같아서 산괴불주머니가 진짜 보물주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의 잡풀을 뽑았다.
[복숭아나무 눈접붙이기]
유인줄에 유인할 가지가 없는 나무에 눈접을 붙여야 된다. 며칠 전, 복숭아나무 눈접 붙이는 작업을 배웠다. 작목반 전문가가 직접 우리 밭에 오셔서 알려 주셨다.
눈접은 잎이 생성되기 전에 채취한다. 신문지에 물을 뿌려서 가지를 놓고 돌돌 말아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눈접을 붙일 방향과 나뭇결이 매끈한 곳을 정한다. 그곳을 칼로 오린다. 잘라 놓은 가지의 눈접을 채취한다. 대목과 눈접의 무늬를 맞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마지막으로 눈접만 남겨 놓고 완벽하게 돌돌 감아 마무리한다.
나무를 심고 이듬해에 새순이 올라왔는데 새가 쪼아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국들이 보였다. 농장 주변에 까마귀, 까치 등 새가 많아서 차후가 걱정스럽다. 새로 붙인 눈접들이 건강하게 살아서 순이 나오기를 바랐다. 보름쯤 지나자 잎눈이 살아서 초록색으로 올라오고 있다. 작은 눈접을 꼭 안아서 살려 낸 나무들이 고마웠다. 참, 나무는 눈접을 붙이면, 그 가지는 눈접의 수종으로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큰 나무가 영양을 모두 주면서도 눈접의 고유성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블루베리 화분의 풀 제거]
블루베리 화분은 꽃이 지면서 동글동글 열매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겨울에 가지치기를 했던 나무들도 새잎이 돋아나고 있어서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몰라보게 자라나는 나무들의 생명력이 고귀하다.
잣껍질을 올려 주면 잡초가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잣껍질을 올리기 전에 복토를 해주었던 새로운 흙에서 풀씨들이 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잣껍질 위로 올라오는 잡초들을 한 차례 뽑아 주었다. 천여 개가 되는 화분의 풀을 모두 뽑아 주는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물이 빠져나가는 부분에도 풀이 나고, 바닥에 부직포가 덮혀지지 않은 경계 부분에도 어김없이 풀이 돋아났다. 보이는 대로 뽑고부터 보는 풀들이지만, 당할 재간은 없다. 예초기로 사흘을 깎았던 복숭아 밭의 풀들도 일주일이 채 못되어 한 뼘 넘게 자라났다. 남편은 승용예초기까지 동원하지 말고, 풀이 덜 자랐을 때 손예초기로 해보겠다며 작업할 날을 잡느라 고심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뽑아낸 풀들을 둘째는 또 부지런히 바깥으로 날랐다. 화분에 풀이 얹어 있으면 깨끗해 보이지도 않고, 물을 주면 살아날 수도 있다. 마른 풀이 새로 나오는 풀들을 가려서 뽑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잣껍질만 남도록 낙엽도 치워준다. 물을 줄 때, 물이 흙으로 가는 것을 방해할 것 같아 조금 힘들어도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한 보름쯤은 블루베리 나무는 잊고, 복숭아 밭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예초기를 돌리는 동안, 나무 주변의 풀을 뽑아야 한다. 나무 주변에 풀이 있으면 개미가 나무를 올라 다닌다. 개미 자체는 해충이 아니지만, 진딧물을 옮기기 때문에 나무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연일 농장 일로 끝없이 바쁘지만, 모양도 예쁘고, 꽃말도 최고인 산괴불주머니를 보면, 진짜 보물주머니를 만난 듯 행복해진다. 제일 좋은 자리에 터를 잡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소풍 나온 아이처럼 행복해 보인다. 스스로 꽃말이 "보물주머니"인 줄을 아는 것 같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곁에 있는 보물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