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골 세리머니
“국가대표는 공인, 공개적 종교행위는 부적절”
- 현대불교 / ‘종교자유 칼럼’ / (2007.11.14/제653호) / 박광서 -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행사는 인종ㆍ종교ㆍ정치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지구촌을 함께 묶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으로 경제효과뿐 아니라 국민적 혼연일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골이 터지거나 승리를 함께 기뻐하는 순간 그 환희감을 반감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기도 세리머니’나 ‘하나님 운운’하는 멘트들이다. 인종과 종교 간 긴장을 풀어보자는 화합과 축제의 마당에 다시 종교가 끼어들어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종교과잉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종교오염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개신교 선수들이 유별난 것이 사실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역도의 장미란 선수나 유도의 이원희 선수가 무릎 꿇고 기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박주영이나 2002년 월드컵 당시 이영표와 송종국 같이 축구를 통해 전도를 꿈꾸는 선수들 역시 기도 세리머니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매 게임마다 둥그렇게 모여 기도하던 김영철 감독 하의 여자배구국가대표팀도 개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축구장이 종교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차범근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이 터질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비쳐지고 인터뷰 때 “하나님의 은혜로...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만 연발하는 차범근 감독을 향해, 도올 김용옥 교수는 당시 10월 3일자 동아일보에서 ‘국가대표 감독이 아니라 어느 교회팀 감독’ 같이 보이는 어이없는 행동을 지적하며 “공인의 공적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행위는 공적 모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골방에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며 점잖게 타일러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국가대표는 공인이기 때문에 공인 신분으로 부적절한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국가대표일지라도 개인의 종교표현은 자유 아니냐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골을 넣을 때나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 기쁨에 들떠 외치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종교적 표현도 하고 싶을 것이다. 또 그런 극적 심리상태를 두고 각박하게 따지는 것도 내키지는 않는다. 더구나 “패한 사람이나 팀은 신이 잠시 외면하거나 저주했단 말이냐? ”며 유치한 논리를 들이대고 싶지도 않다. 기쁜 것은 기쁜 것이다. 다만 공인이란 신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국민 모두와 함께 기뻐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인의 종교적 행위가 제한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종교인 스스로는 물론 일반국민들도 대체로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개인의 권리를 지키려는 사회적 흐름 때문인지 공식행사나 공공장소에서 공직자의 종교적 표현에 대해 타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공공성 침해라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정서적 소외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대표가 공인인가이다. 공인의 법적 기준은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대우를 하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국가대표는 공무원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며 대국민 봉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사전적 의미의 ‘공직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동하는 기간만큼은 대표팀은 국가관리 체제로 전환되고 재원 역시 국가예산으로 집행되며, 더구나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선수에게는 ‘국민체육진흥법’으로 정한 연금, 병역면제 등의 혜택까지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대표는 분명히 공인이다. 그런 법리적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가대표는 정치사회지도자ㆍ언론방송인ㆍ연예인과 함께 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공인일 수밖에 없다.
차범근 감독은 기도문제가 불거진 지 수년 뒤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헌법상의 권리’를 주장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일부분으로 결코 타종교를 의식한 시위행위는 아니었다. TV에 그 모습이 비쳐지면서 오해와 시비가 생겼던 것뿐”이라고 변명했다. 자신의 권리만 생각하고 타인의 권리나 공인 신분에 대한 그 어떤 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시위행위’가 아닌 것이 고맙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공인이라면 당연히 타종교나 국민을 의식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절정의 순간에 혼자 자신의 신에게만 감사를 고하는 모습을 보는 일반 국민들이나 타종교인은 씁쓸하다. 단 몇 초의 짧은 순간이지만, 보고할 일이 있어 기쁨의 절정을 함께 만끽하지 못하겠으니 잠시 참아달라는 것은 자신의 종교가 국민보다 우선한다는 오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홍명보ㆍ김남일ㆍ박지성ㆍ설기현ㆍ이을용 등 불자 선수들이 합장을 하거나 오체투지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예산이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이들을 위해 쓰이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스포츠라는 공적 영역마저 기도꾼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국가대표에게 공적인 경기에서 사적인 욕심을 보이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