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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히 11:24-29절
제 목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
일 시 : 2021. 8. 8.
히 11:24-29/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사람이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외선 카메라로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CT나 MRI나 그 외에도 첨단 장비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제외하고도 보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먼저 육신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대부분 본다는 것이 바로 이 방법입니다.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력이 나쁘면 볼 수가 없습니다. 2) 두 번째로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영안으로 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이 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는 것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영안을 열어 주셔서 영의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세 가지의 눈 중에서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시면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믿음이 있고 반대로 주님을 화나게 해서 책망을 듣는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서 칭찬을 듣는 믿음은 바로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자신의 하인이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했더니 예수님이 자신의 집으로 와서 고쳐 주시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의 집으로 오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오직 말씀으로만 하시면 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눅7: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화나게 해서 책망을 들은 믿음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9-14/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부활의 증인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막달라 마리아가 증언하는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는데도 안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 번째로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들처럼 직접 자신의 눈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또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실 때에 믿음이 없는 것이고 마음이 완악하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의 믿음의 특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하나이지만 그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며, 또한 같은 믿음이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하고 사용하므로 믿음을 통해서 얻는 유익과 복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중요한 특징을 들라면 믿음은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통로이며, 하나님이 나타나시게 하는 요인(문)입니다. 반대로 말씀드리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그 때부터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나타나셔서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들어내십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온 천하에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참된 믿음이 또 다른 믿음을 만듭니다. 불신앙과 의심은 결코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의심은 믿음에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그래서 믿음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믿음이 좋은 사람과 사귀며 어울려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는 믿음의 주인이시며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믿음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작은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는 것처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삶 속에서 사용하고 활용하게 되면 거대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용하지 않는 믿음은 성장하지 않게 되고 점점 작아지게 되고 오래 되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인식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입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믿음의 특징들을 한 곳에 다 모아 놓은 믿음의 전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믿음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우리 각자의 믿음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제 모세의 믿음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세상이 주는 지위와 명예를 거절하는 믿음입니다.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장성하였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전까지는 부모나 가정교사에게 위탁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장성했습니다.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집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이니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칭이 얼마나 힘이 있고 자랑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모세가 만약 그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중에 이집트의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세상이 주는 어떤 것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권세와 명예와 부와 귀와 쾌락 등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 배후에는 원수 마귀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세와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것을 거부하고 버리는 일을 계속해서 실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좋아하는 믿음입니다.
25절에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했습니다. 왜 모세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거절하는 이유는 참된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주의 아들 됨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하늘의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인 동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이나 의심과 불신앙의 사람과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는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모임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자신이 비전교회의 성도가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게 되면 고난을 받게 됩니다. 교회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세상에서 교회 다닌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그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모세는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세상을 즐기는 것보다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하나님이 주는 고난의 축복이 무엇인지 그 차이를 아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상주 심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잠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쾌락보다 고난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극한 훈련과 고난을 감수하고 올림픽경기에 출전하는 이유는 금메달을 따기면 하면 평생 영광과 물질이라는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좋은 세상은 곧 없어져 버릴 것이지만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곧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믿음의 삶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고 상급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4.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같이 참는 믿음이었습니다.
27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다시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 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바로 왕의 노함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과거처럼 압제하고 노예처럼 부려먹는 바로 왕의 포학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처럼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왕과 같은 원수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원수마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에 믿음이 없을 때는 원수 마귀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귀신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 모릅니다.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가짜 뉴스를 듣고 속았던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가짜입니다. 이미 패배한 자이며, 지옥에 던져질 자입니다.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 왕이 바로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원수 마귀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믿음입니다.
2) 두 번째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정합니다. 전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전도대상자들은 내가 전하는 성경말씀과 진리를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오감만을 통해서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만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과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30%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70%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70%를 인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30%만을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처럼 사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시편 94:9/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시고 감찰하고 계십니다. 천사들이 24시간 우리의 모든 삶과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기록하여 하나님께 보고를 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거나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눈으로 보고 믿으려는 것입니다. 믿음의 특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히11:1-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고 믿겠다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믿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의 소원조차도 들어주셨지만 그의 믿음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20: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며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전 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그리고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했습니다. 즉 너희가 과거에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고 지금 현재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리고 히 11: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지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고 믿으려고 하면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 모든 것이 알아지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안을 열어서 보여 주시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보여 주시지 않더라도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믿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91:9-16/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우리가 믿어야 할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라고 고백하고 지존하신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았다면 즉 사랑하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결코 화가 나에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집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천사들에게 명령하셔서 나의 모든 길에서 나를 지키게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며 또한 내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사탄 마귀)을 발로 누르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앙화나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를 짓밟고 산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가지 막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다섯 가지의 표적이 따른다는 것을 믿어야 하지만 특별히 첫 번째와 다섯 번째 표적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들이 나를 떠난다고 믿고 떠났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손을 얹고 기도했으면 나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보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여러분의 몸에 일일이 손을 못됩니다. 따라다니면서 손을 얹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순간순간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의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할렐루야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히11:24-29절을 읽고 모세가 행한 모든 일의 배후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과학적인 방법 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2. 예수님께 칭찬들은 믿음과 책망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3.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통로는 무엇입니까?
4. 모세의 믿음의 특징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을 직접 만져 보고 믿겠다는 도마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6.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두 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1.육신의 눈,믿음의 눈,영안
2.백부장의 믿음은 병든 자신의 하인을 말씀만 하시면고침받을수있다고 믿음의 고백을 해서 칭찬받았고 제자들은 부활을 목격한 부활의 증인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기에 책망받았다
3.믿음
4.1)세상이 주는 지위와 명예를 거절하는 믿음 2)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것을 좋아하는 믿음 3)상주심을 바라보는 믿음 4)보이지않는자를 보는것같이 참는 믿음
5.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심
6.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시고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았다면 (즉 예수님과 동행한 삶을 산다면) 결코 화가 내게 미치지못하고 재앙이 내집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것을 믿는것이고 또한 믿는자들에게는 5가지 표적이 따르며 그중에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떠나고 병든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믿음입니다
아멘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