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용문산구간) 2011년 3월 5~6일, 무박
구간 ; 추풍령(4번국도, 220m)-금산(대형석산, 384m)-사기점고개(390m)-난함산 분기점(세멘포장)-작점고개(4번군도,여덟마지기고개. 성황뎅이고개. 340m)-갈현(옛길.315m)-용문산(710m)-국수봉(도계이탈.790m)-큰재(68도로,우하재,신곡리표지석,옥산초등분교(폐교).320m) 17.8km(8시간)
조용하고 한적한 추풍령 휴게소(3시도착)
여기서 식사도 하고 30여분 쉬었다.
우리를 실어다주는 바꿔진 애마.
사람은 물론 지나가는 차도 없는 추풍령고개(노래비 앞)
3시 45분 산행을 시작.
어둠때문에 석산 절개지는 바라볼수가 없었다.
천길 낭떠러지 때문에 위험지역을 알리는 차단시설.
일렬로 줄지어 가고있는 대원들의 모습(24명)
작점고개(6시 20분 통과)
479.7봉 삼각점봉
갈현 옛고개
연리지같은 참나무.
언제나 지키고 있는 움막,
안은 비어 있는데도 수시로 보수를 하여 유지하고 있다.
올려다 보이는 용문산.
용문산 오름길의 암릉구간(많지는 않다)
숲가꾸기를 아주 잘해놓은 모습,
용문산 정상과 정상석.
용문산 기도원은 경북 김천시 어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0년 목사 나운몽이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하겠다.
50여만평의 기도원에는 신학교, 신용협동조합. 구판장, 우체국, 애향원등 5개의 촌락과
구국제단등 실버타운이 있었지만 지금은 옛날의 명성은 잃은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비어있는 건물들이 많이 있는 실정이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
이정표,
이곳에서 기양지맥이 분기한다.
국수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충북 영동군의 지장산(772.4m)부근과 추풍령면 일대
국수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지나온 용문산줄기들.
이정표엔 795m. 정상석은 763m. 어느것이 맞는것인지?
이런것을 세울때 좀 일관성있게 해 줬으면........
중화지역은 국수봉에서 시작하여 백학산, 신의터재. 화령재, 봉황산, 비재, 갈령을 지나 속리산 형제봉까지를 말하는데
대간을 벗어난 상주의 화동, 화서, 화남, 화북과 모동, 모서등 6개 마을이 충북땅으로 깊숙히 들어간 지역을 일컽는 말이다.
화동, 화서, 화남, 화북의 4개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요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의 중모현과 화령현을 합한 말이다.
683.5봉인 삼각점봉,
부산 석봉산악회 강창모 회장님과 김철우 국장님
4차, 5차 왕복종주를 같이한 대간동지이기도 하지만 평소 존경하는 분이시라
어찌나 반가운지 한참이나 껴안기도 했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교육을 할런지 궁금 하기만 하다.
인성분교(폐교)자리엔 이런건물이 세워져
백두대간 생태교육을 시킨다는데.........
1947년 7월 1일 설립
1997년 3월 1일 폐교
옛날 논두렁에 있던 이정목이 매립을 하면서 이렇게 낮아졌다.
매립할 때 조금 뽑아 올려줄 것이지.......
(산행후기)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그립 구나 추풍령고개 (가수 남상규)
마음속으로 조용히 노래가사를 읊어보며 추풍령고개 노래비를 뒤로하고 새로 난 도로를 따라 반 조각이 된 금산으로 향한다.
옛날엔 이곳이 상당한 고개였던 모양이고 꽤나 유명하고 아름답기도 했던 모양이다.
높고 험한 고개가 아니었기에 來往하는 사람도 많았을 터이고 아울러 酒幕과 쉬어갈 수 있는 여러 시설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복원 한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깊고 커다란 상처였었기에 그 흉터 또한 커 아팠던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게도 했던 곳이지만 어둠에 묻혀 그 현장을 다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人生나이 오십이면 知天命아라고 했는데 하물며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찌 개떡 같은 고집이라 할 수 있는 主觀마져 없겠는가.
사람의 가치를 돈이나 행적으로 평가 하지 말고 그 사람의 됨됨이에 달린 것이라 말하고 싶다.
백두대간종주를 한두 번도 아닌 일곱 번째나 하는 나에겐 백두대간이 그냥 보통의 산길이 아닌 내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는 그리움의 향연이랄까 광활한 들판을 피부로 느끼는 그야말로 진정한 향토색 짙은 농촌의 풍경을 그대로 맡아보는 순간이기도 한 곳이다.
채석장으로 반절된 금산을 지나자 조용한 숲길은 파도타기를 하듯 유유히 흘러만 가는 격이다.
한때는 쓸어 담을 정도의 상수리가 가득했던 참나무지역도 통과하며 부드러운 길을 한참 오르니 몸도 서서히 뜨거워지고 사기점고개 임도에 도착하자 주변이 가물가물 실루엣을 그리며 먼동이 트이기 시작한다.
자꾸만 비워져가는 현대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소박하면서도 훈훈한 情을 느끼게 하는 산 좋고 숲 좋은 어릴 적 노닐던 내 고향 뒷동산 같은 산길이다.
3시간 가까이 운행하니 난함산(중계소.733.4m)오르는 세멘포장길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왼쪽으로 꺾어 길 따라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마루금을 고집한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간 시간만 손해 보게 된다.
한참을 길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납골당이 보이는 지점에서 세멘포장길은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결국 작점고개에서 만나게 되지만 우리는 대간종주라 갈수 있는데 까지 마루금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점고개까지는 3시간 30여분 걸렸다.
정자에서 다리쉼도 하면서 목도 추기고 후미도 기다리며 여유도 부려본다.
오르내림이 별 없는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산책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이동한다.
우측아래 용문산 기도원의 규모는 정말 대단했다
오래전 기양지맥을 시작하면서 기도원을 들어가 보았는데 무슨 小王國 같았다.
한때는 그 범위가 엄청나 이곳까지 시내버스가 다닐 정도였으나 지금은 많이 쇠퇴(衰退)
하여 빈집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경칩(驚蟄)이라 개구리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하더니 날씨가 많이도 따뜻하다.
용문산을 지나 국수봉을 향해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분기하는 지맥을 만나게 된다.
바로 기양지맥이다.
백운산(629,8m)-기양산(706m)-수선산(683.6m)-형제봉(531m)-신산9457m)을 거쳐 감천에서 그 소임을 다하는 46.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국수봉에 올라섬으로 경북과 충북 道界를 이탈 경북 내륙으로 들어가게 되며 김천지역을 벗어나 상주 땅에 발을 딛게 된다.
경상도란 慶州와 尙州를 합쳐 도명이 생겼고 그를 구분 경상 남, 북도로 가르게 된 것이다.
이제 백두대간도 3/1정도는 충분히 마친 셈이다.
이제는 백두대간이 무엇이며 왜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고 고달프다 하더라도 선산 파먹는 자손은 없을 것이다.
다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백두대간만은 그대로 두면서 바라보자.
대간이 바로 자연이고 자연은 우리의 생명줄이며 살아가는 근본이고 민족의 기상이 여기에서부터 꿈틀 꺼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라에선 국립공원이라고 지정을 해놓고서는 국영기업체격인 돈벌이 수단으로 국립공원 내에 케이블카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줄잡아 10여 군데, “공원당 1개의 케이블카 설치”라는 환경부 방침에 따라 설악산의 경우 양양군이 추진하는 오색-대청봉 설치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겠다.
산악인구의 양적 팽창이 목적인 것 보다는 산악문화를 접하기 시작하는 청소년 때부터 인성교육과 함께 산악문화의 올바른 습득이 이뤄져야 향후 산악계의 전망이 밝아질 것이라 본다.
천재의 記憶보다는 바보의 記錄이 언제나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도전은 같은 방법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라고 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 있듯이 인간이기에 죄를 짓고 또 참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의든 타의든 우리는 모르는 사이 남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기도 하며 때로는 남을 도와가며 상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구간에서 제일 높은 국수봉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봄은 오고 있는 것 같다.
어제 부산에서 본 매화는 완전히 만발해 있었고 제주의 유채꽃 소식도 들은 지 이미 오래전이다.
내일부터 다시 꽃샘추위가 온다고는 하지만 제아무리 봄을 시샘해도 결국 봄은 우리 곁에 다가오고 말 것이다.
오늘의 대간 길은 좀 가벼운 산길이었지만 나와 같이 백두대간을 왕복으로 종주하였던 부산의 석봉산악회3차 백두대간 종주대(하행)를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 시집간 딸이 친정식구 만나는 그런 기쁨의 반가움이다.
그 당시에도 이곳에서 단독으로 종주를 하던 산악계에 유명한 운해(김진희)씨도 만나며 인연을 맺기도 했었다.
나에겐 이 구간이 이제는 아주 특별한 구간으로 등록되어지기도 한 곳이며 아쉬운 작별을 하며 큰재로 내려선다.
모든 분께 감사하고 서로의 무사 완주를 빌면서 분수령인 큰재에서 다음구간을 그려보며 산행후기로 남겨본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