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끝나지 않는 피해자의 시간
8/23 피해자 실명 공개에 대한 1심 재판
8/20 피해자 공격 모 변호사 글에 대한 가처분 재판
가해자에 공감·감정이입하며
피해자·조력자를 공격하는 행위,
함께 멈추게 나서자
1.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성폭력을 피해자가 고소한 지 1년 2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강제추행, 업무상위력에의한추행, 통신매체이용음란 세 가지 혐의에 대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작년 7월 8일 고소했습니다. 피해자의 대응을 인지한 박 전 시장은 다음날 스스로 사망했습니다. ‘공소권 없음’이 되어 버린 후 피해자는 제대로 수사, 재판받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여타 다른 사건 수사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진술하고 자료를 제출해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서울시에 (성추행을 포함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개념어인) 성희롱과 성차별적 직무 배치, 2차 가해 등이 있었음을 확인하며 서울시, 여성가족부 등에 권고했습니다.
2.
그러나 ‘피해자의 시간’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자 시작된 서울특별시장 5일장부터 박원순 전 시장의 업적을 기려야 했던 사람들은 성폭력 행위에 대한 질문을 제지하고, 부인하고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으며, 일부 지지자는 피해자를 색출하고 피해자 관련 자료를 유출하고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피해자의 사진, 영상, 필적으로 피해자를 이미지화하고 비난했으며, 피해자의 실명은 삽시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포되어 지금까지도 삭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3.
피해자는 서울시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직원이었고, 비서실의 연락을 받아 당일 면접을 통해 근무가 시작되었고, 여러 차례 전보요청을 했으나 번번이 되지 않고 오랜 기간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피해자는 근무 당시, 이런 직무라면 시장 비서직은 정치적 동지인 개방형 정무직이 하거나, 가족이 하거나, 남성이 해야 한다고 건의도 했습니다.
상사의 ‘심기보좌 노동’을 여성 비서에게 전가하고, 시장의 기분을 중심으로 정무를 운영해놓고도 사과 하나 없이, 반성도 성찰도 없이 지난 1년간 이렇게 파장이 큰 사회적 사건을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고, 피해자 조력자를 비난, 음해해온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행태를 규탄합니다.
4.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 변호인단은 피해자 실명을 인터넷에 올린 자를 지난 10월과 12월 두 차례 고소한 바 있습니다. 그 중 박 전 시장 지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최 모씨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이 8월 23일 오전 11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립니다. 본인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실명과 직장을 공개하고, 그럼으로써 피해자의 실명과 직장이 인터넷에 유포되게 하고, 그 결과 피해자에게 심각한 인권침해 사태를 일으킨 최 모씨의 행태가 제대로 법적으로 판단되고 정당하게 처벌되기를 촉구합니다.
12월 고소했던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와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은 지난 6월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어 검찰 수사 중에 있습니다.
5.
8월 20일에는 인터넷 페이스북에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 변호사를 공격하는 여론을 형성하며 글을 연일 게재한 정철승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에 대한 가처분 신청 재판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측은 8월 12일 정씨를 ‘게시물 삭제 및 게시금지 가처분’ 신청하고, 8월 12일과 16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 특례법 제24조 위반((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한 바 있습니다.
6.
정 씨 측은 ‘국민들에게 사실관계’를 알리려고 썼고, 피해자 공격이 아니라 박 전 시장 반론권 없음이 부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정 씨의 페이스북 댓글창에는 피해자와 조력자, 변호사, 지원단체에 대한 원색적 욕설과 비난이 수없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또한 “로스쿨 女학생들, 男교수에 친밀한 이유는 점수 위한 것”, “여성비서 두지 말라” 등 성폭력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성차별적 시각의 ‘주장’을 생산, 유포하고 있는데 – 일련의 이러한 게시행위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면서 피해자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7.
철학자 케이트 만은 『남성 특권 – 여성혐오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하인혜 옮김, 오월의 봄, 2021)에서 미투운동 이후 북미에서 일어난 ‘여성혐오’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분석하며 여러 현상들을 지적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여성 피해자보다 더 많은 지지와 공감을 받는 현상을 힘패시himpathy’(him+sympathy)로 일컬었습니다. 사회가 남성 가해자에게 더 쉽게 동일시하는 현상입니다. 또한 그러한 힘패시가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현상을 허레이저 ‘여성 피해자 지우기herasure’(her+erasure)로 조어하여 지칭했습니다.
가해자에게 공감·감정이입하여 피해자를 공격하는 행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경험과 피해 말하기를 전면적으로 지우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멈추게 하고,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이러한 행위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를 위해 용기 있게 말한 피해자의 실명을 공개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하는 자료를 확산시키기까지 합니다. 피해자 조력자들을 인터넷에서 조리돌림하고 음해하는 행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8.
성폭력과 성희롱, 성차별을 은폐하지 않고 신고하도록 교육하고 있는 나라에서, 침묵을 깨고 말하기를 한 피해자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이제 강력하게 제지되어야 합니다.
언론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피해자를 공격하는 글이 무비판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단순 보도가 아닌 비판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심층 보도를 해주십시오. 수사기관은 성폭력 피해자를 특정하고 사적 정보를 공개하는 성폭력 특별법 24조 해당 행위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하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께서는 피해자 실명이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글을 보면 함께 신고해주십시오. 용기있게 말하기를 하고 성폭력 문제해결에 나선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말하기가 두렵고 망설여지는 피해자가 있다면, 부당한 공격을 함께 기록, 고발하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9.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고 피해자의 증언을 지우고 피해자를 위협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제재되도록,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