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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서울 기행 > 강남구
2013년 12월호 서울사랑매거진에서...
글 윤재석(언론인)
채소농사 짓던 농촌에서 부촌의 상징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타운 강남구
배가 볼록 나오고 오동통한 ‘B급 뮤지션’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 전까지만 해도
‘강남’이란 용어는 우리에게 대체로 부정적 이미지로 통칭됐다. 이른바 속물근성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이제 강남은 세계적 용어가 됐다. 그게 먹는 건지, 물건인지 모르는 카자흐스탄 청년에게도, 이란 처녀에게도
강남은 싸이의 말 춤과 함께 그냥 기분 좋은 용어가 되었다.
영동지구 개발, 강남의 시초
강남은 어떻게 생긴 걸까? 1969년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를 준공하고, 이를 진입로로 해서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데서 강남 개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에 앞서 1966년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에서 영동지구(영등포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를 부도심 개발 대상으로 계획하면서 강남 개발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한 지역(여기선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포함)이 영동지구라는 이름으로 개발의 발파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전까지 강남은 어떤 존재였나?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날로 급팽창하는 서울 사람들의 채소 공급지였다.
오이, 호박, 토마토, 참외 등 이른바 초식(草食) 농사를 지어 강 건너에 공급하던 농촌이었다. 그런 한적한 시골 마을이
불과 몇십 년 만에 ‘영동’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부촌 강남’으로 화장하고 우리 앞에 나선 것이다.
여기서 ‘진짜 강남(강남구)’을 잠시 살펴보자. 강남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재정 자립도 1위를 자랑한다.
제조업체는 별로 없지만 한국전력·삼성생명·현대산업개발(이상 삼성동), 포스코·KT(이상 대치동) 등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 그리고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IT와 금융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다.
그뿐 아니라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지난 10월 16일 헬리콥터 충돌 사고가 발생한 삼성동 현대아이파크로 대표되는
부촌 주민을 비롯해 50만여 명의 중산층 주민이 내는 주민세 또한 만만치 않다. 강남구는 1979년 옛 천호출장소 지역과 강동 일대를 강동구에 넘겼고, 1988년 강남대로 서쪽을 서초구로 넘기면서 정비됐다. 동쪽으로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와, 북쪽은 한강을 경계로 광진구·성동구와, 남쪽 일부는 성남시, 서쪽과 남쪽 일부는 서초구와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다.
강남구는 대중교통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인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지상은 전형적 격자형 도로가 널찍널찍하게
뚫려 있고, 지하에는 지하철 2호선·7호선·민자 9호선이 동서를 관통하는가 하면, 3호선과 분당선이 남북을 가로지른다.
예전 소풍지, 봉은사
그럼 이제 강남구 탐방을 시작해본다. 시발점은 봉은사(奉恩寺)다. 왜냐하면 이곳이야말로 예전 강남 유일의 랜드마크였기 때문이다. 봉은사는 강 건너 사람들의 소풍지이기도 했다. 필자가 1971년 봄에 봉은사를 방문한 기억을 더듬어보자. 우선 서울 도심에서 뚝섬 가는 버스를 탄다. 뚝섬에서 내려 한강 백사장을 한참 걸으면 나루터에 닿는다. 한강을 건너온 거룻배를 타고 지금의 탄천 합류 부근 어딘가에서 내린다. 다시 한참을 걸으면 드디어 봉은사에 도착한다.
봉은사는 신라 시대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년) 에 지금의 선릉 부근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조선 시대 1498년(연산군 4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선릉(宣陵)의 원찰로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전각을 크게 짓고 봉은사라 개칭했다. 봉은사가 전국 수사찰(首寺刹)의 위상으로 떠오른 것은 명종 대 문정왕후(文定王后)와 보우 스님이 활동하면서부터다. 중종에 이어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섭정을 한 문정왕후 덕에 조선 불교계는 일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봉은사도 이때 보우 스님의 활동에 힘입어 수사찰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1562년(명종 17년) 선릉 동쪽 기슭에 있던 옛 봉은사 터에 중종의 정릉(靖陵)을 천묘했다. 중종은 처음에 왕비 장경왕후(章敬王后)가 묻힌 희릉(禧陵)에 나란히 묻혔다. 그런데 사후 중종 곁에 묻히고 싶어 한 문정왕후는 중종의 능을 봉은사 터로 옮기도록 해 정릉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에 따라 봉은사는 수도산 기슭에 대규모로 확장 이건(移建)했다. 관련 기록에서는 조정에서 도감(都監)을 설치해 당우(堂宇)와 요사(寮舍)를 창건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웅장해져 경산제찰(京山諸刹)의 으뜸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 봉은사가 소유한 땅이 지금의 코엑스와 한국전력 일대까지였다니 그 지경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 위용은 지금도 여전하다. 광복 후 조계종 총무원 직할 사찰이 된 봉은사는 대중적 포교 활동과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도심 대찰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얼굴이자 비즈니스 인프라, 코엑스
봉은사가 예전 강남의 랜드마크였다면 그 앞에 있는 코엑스는 현재의 랜드마크다. 국내 최대의 컨벤션 센터이자 글로벌 비즈니스, 문화 시설 등을 총망라한 초대형 콤플렉스다. 교통과 통신, 첨단 비즈니스 인프라를 두루 갖춘 글로벌 비즈니스의 메카이자 아시아 최고의 전시·문화·관광의 명소, 국제무역과 문화 교류의 마당이다.
주요 건물·시설로는 무역회관(트레이드타워), 종합전시장(코엑스), 호텔(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도심공항터미널, 쇼핑센터(코엑스몰·현대백화점), 아셈타워 등이 있다.
그중 부지 면적 1만1천 평(연건축면적 13만 평) 규모의 코엑스는 지상 4층, 지하 4층의 전문 전시와 상설 전시 기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 전시장으로, 무역센터의 핵심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 회의가 자주 열린다. 2012년 3월에는 53개국 정상과 4개 기구 수장이 참석한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가, 2010년 11월에는 단군 이래 최대 국제 행사인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트레이드타워는 무역업체 전용 사무용 빌딩이다. 아셈타워는 최첨단 인텔리전트 오피스 빌딩으로, 주로 벤처기업과 외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쇼핑센터인 코엑스몰은 지하 1층에 있는 문화·관광·쇼핑 단지로, 대형 서점과 영화관, 수족관·면세점·김치박물관, 세계
각국의 음식점 등이 입점해 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여가를 즐길 수 있어 내국인은 물론 서울 거주 외국인, 외국 관광객 등까지 몰려 항상 혼잡하다. 강남역, 압구정역, 신사역 일대와 더불어 젊은이들의 대표적 놀이터다.
도심공항터미널은 공항과 마찬가지로 항공사별 체크인 카운터가 있고 항공사 사무실, 여행 안내소, 환전소, 면세점·관련 서비스 시설을 갖추고 있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출입국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영동대로를 끼고 한참 내려와 은마아파트쯤 오면, 각종 학원 간판과 부동산 간판이 혼재돼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이름 하여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다.
오염된 개천에서 생태 하천으로
대치동에 왔으니 산책할 만한 곳을 가보자. 바로 양재천이다. 청계산에서 발원한 양재천은 과천시를 거쳐 강남구를 관통해 탄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양재천은 예전에 백로가 빈번히 날아든다고 해서 학여울이라고도 불렀다.
강남 개발 직후 도심을 가르는 양재천은 악취가 나는 개천이었다. 국내 최초로 자연형 하천 공법을 통해 복원한 결과
다행히 쏘가리·모래무지·맹꽁이가 사는 자연형 생태 하천이 됐다. 양재천에서는 농사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전 수질오염의 대명사이던 양재천은 이제 환경 교육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다. 구간별로 물놀이장과 생태 학습장, 자연 학습원이 마련돼 있으며 한여름 밤에는 매년 야외 음악회도 열린다.
한류 의료 관광 1번지
이제 또 다른 기행을 시작한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이나 학여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일원역에서 내리면 대한민국 최고 의료 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삼성의료원 서울병원이 있다. 매봉터널 근처 강남세브란스병원, 역삼동 차병원, 한국전력 본사 뒤 서울의료원 강남분원과 함께 강남구 대표 종합병원이다.
병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강남구는 한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관광 중심지이기도 하다. 종합병원과 한 집 건너 산재한 성형외과 등에서 중증 질환부터 피부 미용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강남구는 해외 의료 관광객이 입국부터 출국까지 편안하게 의료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를 갖췄다
도심 속 허파, 선정릉
이제 강남에서 마주하기 쉽지 않은 정경을 보러 간다. 바로 선정릉(宣靖陵)이다.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합쳐 선정릉이라 하는데, 선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495년 성종의 능인 선릉이 들어섰고, 그 뒤 1530년에 성종의 두 번째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의 능을 선릉 동쪽에 마련했다. 이는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각 한 봉분씩
조성한 경우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이라 한다.
그 후 1544년에 조성한 중종의 능인 정릉이 1562년 문정왕후에 의해 경기도 고양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倭兵)이 파헤쳐 유해가 훼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 도심 한가운데에 남아, 삼성병원 근처에 있는 전주 이씨 광평대군 묘역과 함께 강남구의 허파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관람객이 봉분 근처까지 올라가서 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능 양옆으로 계단을 만들어놓았는데, 성종 능에서 중종 능으로 넘어가는 산줄기를 따라 산벚나무와 참나무가 높이 뻗은 이곳은 도심의 분주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마음껏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적 제199호로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녹지 공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계획 도시 강남을 개발할 때 녹지 공간을 확보하는 데 왜 그리 인색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남구에 있는 녹지 공간이라고 해봐야 대모산, 구룡산 북쪽 기슭 외에 도곡공원, 학동공원, 도산공원,
청담근린공원이 고작이다.
압구정동, 그 모순적 존재
이제 북상해서 압구정동으로 간다. 이곳은 한때 속 비고 겉만 번지르이르한 존재들이 모이는 장소의 대명사였다.
공부는 뒷전인 채 외국 물 잠깐 먹고 부모의 부로 치장한 철부지들이 볼썽사나운 객기를 부리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지금은 청담동 일대까지 뻗은 대로변과 골목골목이 정제되고 세련된 풍모로 새로운 고급문화를 생산하는 대단지로 바뀌었지만. 압구정동 얘기가 나왔으니 아파트 개발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는 말이 있다. 제방을 정비하기 전 압구정 일대 한강 변을 일컬을 때 쓴 말이다. 그러던 곳이 1972년 ‘특정 지구 개발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따라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땅을 고르기에 엄청난 모래가 필요했다. 당국은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면서 형성된 삼각주인 저자도(楮子島)의
모래를 퍼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바람에 1972년 저자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성동구 편 참조). 고려 때부터 명승지로 주목받아 겸재 정선의 수묵과 함께 수많은 시인 묵객이 애송한 닥나무 섬인 저자도의 소멸.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개발 연대의 비극이다. 아무튼 그렇게 밀어붙인 강남 개발로 압구정동 일대엔 현대, 한양 등을 비롯한 아파트군이 형성됐다. 압구정동 하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압구정(鴨鷗亭)이다. 이 정자는 압구정동 산 310 일대인 동호대교 옆 현대아파트 72·74동 근처에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澮, 1415~1487년)의 별장이었다. 정자 이름은 명나라 한림학사 예겸(倪謙)이 한명회의 청을 받아 지었다는데, ‘부귀공명 다 버리고 강가에서 해오라기와 벗하며 지낸다’는 뜻을 지닌 이 정자의 주인은 정작 권모술수와 호화 생활로 생을 보냈고,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까지 당했으니 인생무상이 이 아니랴.
거리 예술의 메카
그런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도 아무튼 강남은 유쾌하다. 양재천은 앞서 소개했으니 넘어가고 코엑스, 강남역 M스테이지,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 거리 등 언제 어디서든 문화 예술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볼 것 많고 갈 곳 많아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하지만, 이곳만은 해야겠다. 바로 신사동 가로수길. 이곳을 지나다 보면 외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게 된다. 기업은행 신사동 지점에서 신사동 주민 센터에 이르는 약 700m. 유럽풍 카페를 지나면 일본 전통 음식점이 나오고, 와인 바 옆엔 한국 전통 음식점이 자리한다. 개성 있는 옷과 액세서리로 멋을 뽐내는 로드숍과 아기자기한 규모의 갤러리도 정감이 간다.
강남의 그림자, 구룡마을
마지막으로 강남구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곳을 가보자. 바로 개포동 구룡마을.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마을은 강남 유일의 달동네다. 구룡마을은 1983년 88서울올림픽 준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개포동 개발 계획에 의해 개포동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구룡산 북사면에 거주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영농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했으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단속번지르이 완화되자 무허가 집단 거주지로 성격도 변질돼 현재
1만 평 규모에 2천6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1960년대 서울 판자촌 모습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는 화장실이 없어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마을 전체가 합판과 비닐, 스티로폼 등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물질로 구성되어 항상 화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사이 좁은 길에 이따금 고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다. 극빈자를 위장하고 들어온
투기꾼의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최근 서울시는 공영 개발 방식을 통해 구룡마을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공영 개발 정책으로 구룡마을 주민은 강남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2012년 이후에는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 간 의견 충돌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구룡마을 문제는 강남이 안고 있는 그림자 중 하나다.
하지만 강남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경제 1번지’다. 이젠 종로가 갖고 있던 ‘정치 1번지’의 명성까지 빼앗았다.
따라서 강남의 파워는 막강하다. 이러한 강남 이미지에 겸양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