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장례 이틀째인 26일 대표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는 오전부터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전 7시에 조문한 성낙천(50·정육업)씨는 "작은 힘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음식 준비를 거들었다. 오후에는 고인들의 학교 후배나 지인들이 빗속을 뚫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평택기계공고 1학년 최동욱(17)군은 학교 선배인 고(故) 박보람 중사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인 뒤 "이런 식으로 젊은 군인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양에서 온 이영희(51·주부)씨는 "우리 딸과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범구(고 정범구 병장)가 하늘에서 평안히 쉬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밤 9시 22분에는 최원일 함장을 포함한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6명을 뺀 52명이 천안함이 피격됐던 한 달 전 같은 시각(3월26일 밤 9시22분)에 맞춰 단체로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최 함장이 앞에 서고 뒤에 도열한 장병들은 거수 경례로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생존 장병들은 희생된 동료들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어 유가족들을 만난 생존 장병들은 다 함께 큰 절을 한 뒤 전우들의 평소 군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픔을 나눴다. 이날 생존장병들이 조문 의사를 밝히자 일부 유가족들은 최 함장의 조문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이 과정에서 한 유족이 흥분하면서 최 함장을 덮쳐 분향소가 술렁이기도 했으나 나재봉 장례위원장 등 가족대표들이 만류해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한 가족 대표는 "비록 생사(生死)가 엇갈렸지만 사고 한 달 째인데 동료들이 다시 만나 화해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20여분쯤 유족들을 위로한 생존 장병들은 유족들에게 한번 더 큰 절을 한 뒤 오후 9시47분쯤 분향소를 떠났다. 일부 유족들은 버스에 오르는 장병들을 배웅하며 "살아 돌아와 고맙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오전부터 찾아와 46명의 영정 앞에서 헌화·분향했다. 정몽준한나라당 대표는 '국민들과 함께 천안함의 장병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고 방명록에 적었고, 정세균민주당 대표는 "진상을 밝혀 장병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장철희 일병의 아버지인 서울 강북경찰서 장병일(47) 경위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했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영정 앞에서 일일이 거수경례를 했다.
줄지은 위로 인파에도 유가족들의 슬픔은 이어졌다. 고(故) 이창기 준위의 아들 이산(13)군은 지난 22일 참가했던 발명대회에서 특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사합니다"고만 대답할 뿐 아빠를 잃은 슬픔에 말을 잊었다. 해군은 장례 시작 이후 이날 오후 9시까지 조문객 71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했다.
서울광장에도 이틀째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오전부터 학생과 직장인이 분향소에 들러 46명 장병들에게 꽃을 올리고 묵념했다. 해군 장성과 사병 30여명이 유족을 대신해 상주로 나와 조문객들을 맞았다. 이날 오후 9시까지 1만283여명이 조문했다.
오후가 되면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시청 잔디광장은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천안함 사진전 가운데 임재엽 상사의 사진 밑에는 '내 동생 임재엽. 사랑 사랑 사랑해. 다음 생에도 태어나 줘. 큰누나'라는 메모가 붙어 시민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모아졌다. 추모의 벽도 시민들 메모로 뒤덮였다. '편히 쉬세요. 마음이 속상해요. 수아가~ ♡'라고 삐뚤빼뚤하게 쓴 한 어린이의 메모가 추모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노재성(63·서울 동대문구)씨는 "하늘도 슬픈가 보다. 우리 장병들이 환생해서 대한민국 의 큰 인물이 되시길 바란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