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금강선원에서 동안거 정진중인 태안사 금강선원장 금산스님
금산스님은 전남 곡성 태안사 금강선원 선원장이다. 태안사는 9산 선문 중 보림사, 실상사에 이어 세번째로 동리산에 개산조 혜철국사가 혜철암터에 일천여년 전에 선원을 개설하여 한때는 화엄사, 송광사, 쌍계사 등이 태안사 말사였다. 태안사 출신 유명한 스님으로는 혜철국사 제자로 고려초에 활동했던 도선스님, 광자선사 등이 있다.
약 5백년에 걸쳐 한국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태안사가 그후 쇠퇴를 거듭하다 페사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현재 조실로 계시는 청화대선사도 27년전에 태안사에 들어가 부흥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후 약 10년전에 선원장 금산스님등 10여명의 선객들이 청화스님과 함께 들어가 오늘날은 부흥을 이루어 태안사에서 많은 선객들이 선풍을 휘날리고 있다. 미주금강선원은 강청화대선사가 조실로 있는 태안사 금강선원의 미주 지원인 셈이다.
금산스님은 월정사에서 지암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으며 월출산 도갑사와 구례 화엄사주지를 역임하였고 총무원 감찰원에 오래 있으면서 조계종단의 종지를 세우고 종풍을 세우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청화스님과는 30여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60년대 초에는 진불암에서 청화스님과 오.육명이 오후 불식과 묵언하며 일종식하면서 불교회복과 선양의 꿈과 포부를 키웠다고 회고한다. 당시 호남비료에 파견 나와 있던 독일인들이 진불암까지 왔지만 멀리서 분위기가 하도 엄숙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서 겉만 보고 간적이 있다"고 그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때는 물자가 부족하여 막김치만 먹고 살았다고 젊은 시절의 구도기의 분위기를 회고한다.
금산스님은 유서깊은 태안사 금강선원 선원장답게 사태와 분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을 말할때도 모든 것을 종합하여 자상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쉽게 공감을 일으킨다. 세속의 나이로 예순이 훨씬 넘어지만 얼굴에는 주름살이 없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진지한 구도적 자세가 흐르고 있다.
청화대선사 계시는 곳에 항시 계시는 금산스님. 금강선원의 부흥이 곧 태안사 부흥이요 한국불교의 홍이라고 생각하면 금산스님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하겠다.
1993년 1월호 미주현대불교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