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비워 둔 자리
박 은 주
거짓말처럼 다섯 시간이 내게서 달아났다.
4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감기가 말끔히 낫지 않아 병원에 가 진료를 받고, 아래층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딱 거기까지다. 그다음부턴 블랙아웃. 집으로 돌아온 후의 행보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현관문 비밀번호가 작동 안 된다는 내 전화를 받고 운동 갔던 남편이 부리나케 돌아왔단다. 주차장에는 내 차가 평소처럼 반듯이 세워져 있었고, 내 말투며 눈빛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는데, ‘여보, 오늘 내가 좀 이상해.’라며 오늘이 며칠이냐고 반복해 물었단다. 대화는 잘 진행되면서도 최근 딸아이가 외국 여행 다녀온 것을 처음 듣는 듯할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단다. 여행 잘 다녀오라며 용돈까지 보내주고, 여행지에서 보내온 사진을 함께 보며 이야기도 나누었건만.
감기와 수면 부족 때문일지 모른다고 여긴 남편은 일단 감기약을 먹게 하고 푹 자게 했단다. 내가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인 오빠에게 전화해 내 증상을 알렸고, 여행에서 막 돌아온 딸아이와도 한참 통화했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침인 줄 알았던 시간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갔다. 낯설었던 식탁 위의 풍경도 나중에 보니 쌍화탕을 데워 먹이느라 남편이 내어놓은 그릇 때문이었다. 늦은 점심을 함께 먹은 후, 바람 쐬러 가자는 남편을 따라 낙동강 강변 공원으로 나섰다. 차 안에서 남편은 그동안의 일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 나는 나로 다시 돌아왔구나! 딸의 여행은 물론 오래전의 일들부터 그날 아침 나눈 대화까지 기억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 몇 시간만은 종이를 싹 오려낸 듯 흔적조차 없었다. 다시 꿈속으로 빨려들 듯, 연두가 부풀어 오르는 공원 안 유채꽃 노란빛을 첫봄인 듯 한참 바라보았다.
그날 밤 이제 다 괜찮아졌다는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다음 날 아침 일찍 딸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자꾸 어정대는 나를 재촉하는 딸과 함께 치매안심센터로 갔다. 아,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내게 벌어지다니. 날짜 맞추기부터 단어 거꾸로 말하기, 문장 기억해서 말하기 등 각종 검사를 받았다. 진단 결과는 ‘정상 소견’이었다.
며칠 뒤 내가 겪은 증상은 TGA(일과성 전반 기억상실)로 치매나 뇌 질환과는 무관하며 대개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내 삶의 궤적에서 통째로 영영 사라질 기억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혼자 산길을 걷거나 운전 중에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면 손에는 진땀이 배고 등골이 다 서늘해져 오곤 했다.
그 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기억의 발자국은 종종걸음으로 그날 그 순간을 향하지만, 뚜껑 없는 맨홀처럼 짙은 어둠으로만 남은 공허. 그 앞에서 속수무책, 발걸음을 되돌릴 뿐이었다.
상실, 사라진 시간을 곱씹으며 우울해하던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저 너머 우주, 중력이 없고 시간도 멈춘 곳으로 당신이 잠깐 다녀왔다고 생각해 봐, 시간은 없어진 게 아니지, 그 시간만큼을 당신은 더 사는 거야.” 이상하게도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알쏭달쏭한 그 말이 불안으로 팔랑이는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것 같았다. 그래, 그때도 나는 숨 쉬고, 말하고, 여전히 나는 나였지.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지금의 나로 무사히 돌아와 있으니까.
짙은 어둠 옆 밝음이 그렇듯, 캄캄한 상실의 자리 주변 4월의 기억은 그래서인지 더 선명히 남아있다. 기억이 기억을 불러 겹으로 피던 그 푸르른 봄날은 맨 앞에서 수시로 나를 불러낸다.
4월의 첫날, 나는 서울에 있었다. 딸이 여행을 떠나 서울에 있는 집이 비어있기도 했지만, 꼭 보고 싶었던 전시 때문이었다. 친구와 함께 간 전시가 열리는 대학 캠퍼스는 봄빛으로 한껏 풋풋했다. 한창 물오른 나무와 봄꽃들, ‘과잠’을 입고 삼삼오오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을 보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절로 소환되었다.
오래전 추억도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그 학교에 다녔던 친구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던 대학 교정, 그곳을 40여 년 만에 우리는 다시 걷고 있었다. 친구의 자취방 근처, ‘목신의 오후’라는 이름에 걸맞은 느릿한 선율이 흐르던 찻집도 어느새 기억 속을 떠왔다. 어둑한 자리 위로 비친 오후의 햇살 속에 있던, 갓 스물 그때 우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연못가 벤치에서도 우리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잔잔한 물그림자를 바라보며, 어느 해 4월 1일, 그날의 또 다른 이름같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나 버린 한 배우를 추억하며 우리는 짧고도 긴, 지난 시간을 한 올씩 풀어놓았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에서 내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그분의 열한 권 일기장이었다.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감사를 놓지 않았던 작가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 이렇게 썼다. “살아나서 고맙다.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그 짤막한 구절은 전시장을 나온 뒤에도 내내 나를 따라왔다.
겹겹이 쌓이는 기억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잃어버린 것, 앞으로 잃게 될 것들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비워 둔 자리에 남을 것들을 곰곰 떠올리는 일도 잦아졌다. 부디 내게도 그것이 다행과 감사이기를.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한 감사이기를 마음 모아 소망한다.
사라진 시간, 돌연하고 아연했던 그날의 경험은 어쩌면 신이 내게 주신 쓴 약은 아니었을까. ‘괜찮아, 이 정도쯤은.’하고 늘 밀쳐둔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다정한 경고이자 선물. 다시는 겪지 않길 바라면서도, 그것이 남긴 깨달음만은 두고두고 내 삶의 선물이 되기를, 또한 소망해 본다.
잎새 달, 4월이 지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으로 인해 더욱더 찬연한 4월이여, 이제 안녕. “내 일기장, 4월의 기억을 가만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