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만 생각해도 돼
『1분』, 최은영, 시공사, 2017.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모티브로 했다는 책 『1분』을 소개한다. 작가 최은영은 방송 작가로 일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책을 썼다. 취재하고 인터뷰한 경력은 작품에 영향을 미치며 그녀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만들게 된다. 작가는 삼풍백화점 사고의 ‘기억수집가’로 활동하며 당시 사고에 얽힌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 기록들은 2016년 4월 【1995년 서울, 삼풍】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1분》은 작가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모티브로 10대 아이들의 팬 문화와 접목시킨 이야기이다. 저서로 《게임 파티》, 《빨간 꽃》, 《떼인 돈 받아 드립니다》, 《수요일의 눈물》, 《우토로의 희망 노래》 들이 있다.
책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특히 10대 아이들의 팬문화와 접목시켰다. 유수라는 주인공이 팬미팅 콘서트에 참석하면서 벌어지는 사건. 가장 기다렸던 날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400여명의 희생자는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 유수와 서연, 보미는 아이돌 스타 ‘SEVER’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진타운에 갔다. 겨우겨우 팬미팅 사이트에 접속해 티켓팅을 구한 서버의 공연. 그곳을 찾아갔던 십대들은 과연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유수는 엄마 아빠와 자주 시간을 보냈단. 그때는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일상에 친구들이 끼어들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뭉텅이로 사라져 버렸다. 유수는 항상 친구가 먼저였다. 엄마 아빠하고는 언제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친구는 날이 새도록 만나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유수 곁에 항상 머물고 있지만, 친구는 반려동물 돌보듯 보듬고 다독여야 함께할 수 있는 존재였다. 엄마 아빠는 유수와 동떨어진 시대를 살아왔지만, 친구는 유수와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p54)
살아 남은자의 기억은 오래도록 상처와 아픔, 고된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유수는 자신만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 서연. 몇 번의 수술을 거듭해야 하는 보미. 유수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같이 콘서트장에 갔음에도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유수는 멀쩡하게 살게 된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로 벌어진 사이를 어떻게 정리하고 관계할 것인가. 아무도 자기편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 유수는 홀로 견뎌야 한다. 반면, 사고 후 다리와 골반을 크게 다친 보미는 씩씩하다. 보미는 모든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회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보미에게도 아픔이 있다.
보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보미는 유수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면서 씁쓸해한다. 친권이 아빠에게 있기 때문에 다시 부모님이 합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보상금 때문이란다. “웃기지? 그런데 한심하게 웃기는 게 뭐냐면 말이지” 보미는 잠깐 말을 멈추고 길게 숨을 뱉었다. 아무렇게 않은 척 하면서도 속내는 힘겨운 모양이었다. “그 놈의 돈 때문에 울 엄마랑 아빠가 다시 합친다는 사실이야. 크크크크크.”(p.187)
보미 부모님은 맨날 싸우더니 갑자기 이혼을 했다. 여태 엄마와 함께 사는 보미가 사고 보상금으로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한다니. 보미는 별스럽지 않게 털어놨지만 생각이 복잡해 보인다. 보미엄마는 어떨까. 한국사회의 친권문제와 보상금 문제로 한 가족이 해체되고 결합되는 상황까지 보여준다. 세월호 사건도 그랬다. 돈과 얽혀 벌어진 가정의 재편성. 금전적인 문제와 연결될 때 초월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보미는 발을 절룩절룩 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미 앞으로 나온 보상금을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가족구성이 불필요하게 엮이는 모습에 쓴웃음을 보인다.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극복한다. 책은 보미엄마와 유수 엄마, 수연엄마의 행동을 통해 사건대처행동이라 경제적 심리적 정서까지 파고든다. 먼저, 유수 엄마는 보호하려고 애쓴다. 사건을 되도록 외하고 딸에게서 거리를 두게 한다.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 텔레비전 시청 금지령을 내렸다. 휴대폰도 주지 않았다. 보미는 서연이의 소식을 알아다 주지도 않았다. 서버에 대해서도 몰라라 했다. 모두 유수를 위해서 라고 했다.”(p.62)
반면, 보미엄마는 적극적이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나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법정에서 선고받은 형량은 7년형이었다고 한다. 건물붕괴로 500명이 넘게 죽었는데 의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내린 형량은 과연 정당할까? 서진타운 건물붕괴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십대소녀들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유수에게서 알 수 없는 번호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고, ‘SEVER’의 멤버였던 제이의 문자였다.
“세상에 내 편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세상에는 내 편 아닌 사람이 더 많다. 이 메시지 보낸 사람도 내 편 아닌 사람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힘들어 할 수 있었다. 내 편 아닌 사람은 잊어도 돼. 내 편만 생각해도 돼. 그래야 우리 힘낼 수 있어” (p.163)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떠난 사람도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먼저 떠난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숙제. 그리고 끝까지 기억해야지요. 내 곁에 있다가 떠나간 그 사람을 기억 속에서라도 생생하게 살려 낼 수 있도록. 그게 그 문자를 저에게 보낸 친구의 바람이었고, 저 또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p.212)
“회사 관계자와 공무원 몇 명. 그게 서진타운 붕괴사고를 책임지는 사람의 전부였어. 그곳에서 400명이 죽어 나갔는데, 거의 2천명에 달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고작 몇 명이었어. 서연아, 이거 말이 되는 것 같니?” (p.136.)
“그들의 실수, 아니 사실은 욕심 때문이지. 그 사람들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공연장을 만들고, 기둥을 없애 쇼핑 부스를 늘리고, 식당 매장을 더 채워 넣은 것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겠다는 얄팍한 욕심이었어. 그것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무수하게 희생을 당했어. 진짜 어이없고 허무하지 않니.” (p.138.)
“7년 10개월. 서진타운 회장과 사장이 감옥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라고 했다. 만약 서연이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스물다섯.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 어쩌면 서연이가 꿈꾸던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예쁜 나이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꼭 그렇게만 버티면 4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건물 주인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는 거다.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p.194.)
책은 세월호사건을 떠오르게 만든다. 서진타운의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 소설은 보미엄마와 유수엄마가 법안제정촉구운동을 벌이며 끝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자의 생. 그들 곁에서 우리들이 할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평-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