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칠불사 하늘나라 공주 백목련
한반도의 봄이 남해를 건너오더니, 맨 먼저 섬진강에 내려앉는다. 강 하류 고을 광양과 하동 산기슭의 매화가 온통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참으로 눈 깜짝할 새다. 그 봄은 쏜살같이 강을 거슬러 오르며 강 중류 고을 구례에 이르니 온 산천이 산수유 노란빛이다.
그 봄 길에 ‘얼쑤!’ 장단 맞춘 튀밥꽃인 조팝꽃이 ‘펑펑!’ 사방으로 튀어가 진달래, 개나리를 깨운다. ‘어? 봄이구나 봄!’ 기지개 켜며 말할 틈도 없이 목련, 살구, 홍도, 돌배마저 벌어지면 그저 온 산천은 한 마디로 꽃대궐이다.
한해의 그 봄은 평생에 딱 한 번이다. 그리 소중한 이 좋은 봄날 하루쯤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가 볼 곳이 또 딱 한 곳 있다. 바로 한반도의 봄꽃을 가장 먼저 피우는 지리산 계곡 하동의 화개골 칠불사이다.
그런데 여기 칠불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섬진강 화개골 푸른 물길 따라 몽실몽실 피어난 화사한 꽃구름 때문이다. 아니다. 벚꽃이나 돌배꽃, 홍매나 산복사꽃에 아무리 눈이 부시더라도 그저 쉬멍놀멍이다. 하지만 밀려드는 차량에 거의 주차장인 길은 ‘가다 멈추다, 가다 서다’이다, 그래도 그 횟수를 손가락이건 맘이건 세면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편안히 화개골로 접어들 수 있다. 좀 더 참으면 쌍계사이고 조금 여유롭다. 이어 지팡이를 꽂으니 싹이 났다는 최치원 지팡이 나무 즈음에선 더 여유롭다. 김수로 왕과 허 황후가 아들을 보러 와서 머물렀다는 범왕마을에 이르면, 이제 구불구불 거친 길에나 눈 크게 뜨면 된다.
그렇게 마침내 지리산 토끼봉 830m의 사찰 칠불사에 이르렀다면, 복 받은 거다. 꽃 피는 봄에 봄꽃 복이 어디 쉬운가? 그러니 아무 말 말고 그저 큰 꽃복 고맙게 받으면 된다.
이제 칠불사이니, 꽃구경에 앞서 2천 년 세월의 사찰을 잠시 둘러보자. 여긴 서기 101년 가야국 김수로 왕과 허황후의 일곱 아들이 운상원을 짓고 수행한 곳이다. 옥부선인이 구름 위 터를 잡아 피리를 불었고, 옥보고가 50여 년 머물며 거문고 노래 30곡을 만든 곳이다.
또 여기 아(亞)자방은 금관가야국 담공선사가 지은 길이 8m의 이중 온돌방으로 한 번 불을 때면 49일간 따뜻하다. 또 보광전은 나라가 어려울 때 소 울음소리를 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보광전에 불을 질렀다. 이때 산을 울리는 소 울음소리에 왜병은 허겁지겁 도망쳤고, 불길은 스스로 꺼졌다. 그 뒤로도 1876년 대 흉년에, 1910년 경술국치일에도 소 울음소리가 크게 났다. 여기 지형이 누워 있는 소의 형상이고 칠불사는 소 구유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엇이든 인간의 소망이 간절하면 이야기로 남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6·25전쟁에 모두 불 속으로 사라져버린 칠불사를 1978년부터 복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모두가 아니듯, 운상원이고 칠불사인 이곳에는 2천 년 역사가 변함없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성불한 가야국 일곱 왕자의 모습을 비춘 영지에서 김수로 왕과 허 황후를 뵙고, 옥부선인의 피리 가락, 옥보고의 거문고 곡도 바람결에 들을 수 있다.
그뿐인가? 새봄과 시작하는 한 해, 여기 칠불사의 매화와 백목련꽃을 본다면 2천 년 역사의 기운을 고스란히 몸과 맘으로 봄이고 받음이다.
매화의 아름다움이나 향기를 무어라 설명하랴? 또 백목련은 북쪽 바다지기를 사랑했으나 그에게 아내가 있음을 알고 목숨을 끊은 하늘나라 공주라고 한다. 꽃봉오리가 북쪽을 보며 벌어지고 북향화라는 이름인 것은 그 때문이다. 세상사라는 게 모두 내 마음의 일이다. 그렇게 칠불사의 매화와 목련을 본 봄이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