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보다 우직하게 드러나는 감정 때문에 사랑스러운 영화가 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이하 <봄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정말 사랑을 하듯이 영화를 찍었다는 두 배우, 배두나와 김남진을 만나 뚫어질 듯 관객을 향해 응시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봤다.
이 악물고 얻어낸 재산- 배두나
지난 9월 30일 <봄곰> 시사회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배두나는 “홍보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흔히 암기하듯 내뱉는 단순한 겉치레 인사가 아니었다. 배두나는 생전 처음 퀴즈 프로그램에 나갔다.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망가져야 했고, 연기하는 배두나가 아닌 웃고 떠드는 배두나를 보여줘야만 했다. “나 그거 못하겠다고, 죽어도 못한다고, 나 여배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런 프로가 시청률 1위라고 해서 나갔어요. 저, 이 악물고 하고 있어요.”
배두나의 직설적인 표현에 의하면, “그동안 '쌈마이' 쇼 프로그램에 안 나가고 비싸게 굴었다”. 배두다는 단 한번도 관객의 사랑을 구걸한 적이 없었다. 비록 많은 관객들이 그녀의 영화를 기억하고 봐주지 않았을지 몰라도,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를 본 사람은 그녀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요즘 싫은 기색을 숨기면서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양수리가 아닌 여의도에서 TV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이후 <로즈마리>라는 다른 드라마에 빠져 있다. “솔직히 말하면요. 드라마가 편한 이유는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전 영화는 훨씬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영화는 고르기도 힘들고 고르고 나서도 힘들고 평생 남는 거고 나의 명예라고 생각하고 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흥행 부담에 대한 질문에도 유쾌하게 웃어넘겼던 그녀가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걸까? 배두나는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자신 때문에 <봄곰>이 상처를 받은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봄곰>의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투자사는 슬그머니 발을 빼버렸고, 촬영 후 개봉까지 무려 9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배우로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안함 때문에 배두나는 쇼 프로그램 출연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봄곰>의 전체 촬영 분량에서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봄곰>은 배두나의 영화였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퇴짜 맞기 일쑤고, 혼자 이상한 공상을 즐기며, 화집을 통해 사랑 고백을 해오는 미지의 남자에게 바보같이 마음을 빼앗기는 할인 매장 직원 현채. 그건 누구도 아닌, 배두나였다.
그러나 배두나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복수는 나의 것>의 박찬욱 감독이나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처럼 배두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용이 감독은 <봄곰>이 여덟번째 작품인 배두나를 덜컥 믿었으며, 그녀의 의지를 카메라로 따라가기만 했다. “전 운이 좋은 배우예요. 그동안의 캐릭터는 내가 100% 상상해서 만들었다기보다 항상 저를 많이 관찰한 감독님이 만들어 주셨어요. <복수는 나의 것>의 영미나 <플란다스의 개>의 현남이 같은, 스토리를 이끌어간다기보단 영화의 색깔을 좌지우지 하는 빛나는 역할을 좋아하거든요. 처음 영화 보고도… 제가 지금까지 했던 영화랑 너무 달라서. 찍으면서도 내가 여기서 뭘 찾아 먹어야 하는지 헷갈렸어요.”
그녀를 더 헷갈리게 한 건,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CF감독 출신인 용이 감독은 지금까지의 배두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원했고, 그건 흔히 말하는 ‘예쁜 여배우’였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긴 했지만, 배두나는 용이 감독이 앵글을 1시간 동안 잡고 있으면 '내 얼굴에 그렇게 예쁜 각이 없나?' 좌절(?)하기도 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고 싶지도, 외모로부터 제약을 받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봄곰>은 배두나의 필모그래피에 여더덟번째 작품으로 등록됐다. 그만큼 배운 것도 많다.
“그게 제 재산인 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그런 얘기 한 적 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많은 작품을 쉬지 않고 해서 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많이 노력하다 보면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얻어지는 게 있거든요. 드라마도 하나 끝내고 왜 또 찍겠어요. 계속 굴러서 어떻게든 엎어지고 깨지면 결국은 내가 얻는 게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호기심에 모델을 시작하고 CF를 찍고, 영화배우가 된 배두나는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이 견딜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평생 연기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물에 뜬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런 연기를 위해 그녀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고개를 돌리는 작은 동작 하나도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저 내년이면 스물여섯 살이거든요. 이제 20대 중반이 아니에요.” 26세가 되기 전, 큰 열병을 앓고 있는 배두나는 지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위에 뜨는 연기를 위해 면역 주사를 맞고 있다. “치열하지 않은 연기는 싫어요. 돈 벌려고 하는 배우는 싫어요.” 그녀가 이 말을 잊지만 않는다면, 관객들은 아주 뒤늦게나마 그녀에게 응답을 보내올 것이다.
내공 다지기 1막 1장- 김남진
김남진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TV 채널을 돌릴지 말지 결정해야 했지만 선뜻 돌려지지는 않았다. 그가 보고 있었던 건 지금은 제목도 감독도 생각이 나질 않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큰 짐을 지고 기둥을 올라간다. 처음 올라갈 때 아들의 나이는 한 살이었다. 3분의 1 정도 올라갔을까. 아들은 청년이 됐다. 조금 더 올라가니까 아들은 중년이 됐고, 아버지는 노인이 됐다. 결국 그들은 정상에 올라갔지만, 그들이 한 일이라곤 조그만 돌 하나를 찾아서 벽돌 모서리를 맞추는 게 전부였다. 김남진은 짜증을 잘 참은 대신에, 한 가지 일을 완벽하게 하려면 평생을 바쳐 얻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어렵게 주웠다.
김남진은 어디쯤 올라갔을까. <연애소설>의 단역을 제외한다면 <봄곰>은 그에게 첫번째 영화나 마찬가지다. TV 드라마 <천년지애>와 <회전목마>를 찍기도 전에, 아직 관객들이 김남진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을 때 촬영에 들어간 영화였다. 그는 기둥에 이제 첫 발자국을 찍었다. 기둥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그는 어떤 조바심도 욕심도 없어 보인다. 신인 배우들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는 “제 연기는 한심해요”라는 자책도, “앞으로 열심히 하려고요”라는 다짐도, “존경하는 모 배우를 닮고 싶습니다”라는 포부도 드러내지 않는다.
“<연애소설>도 그렇고 <봄곰>도 그렇고 ‘신인인데 의외로 연기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다지 잘하진 않지만 기본은 되어 있어서 다른 작품에 쓸 수도 있겠다, 자기 밥그릇은 챙겨 먹겠다 정도. 그게 더 큰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요.” 밥그릇 챙겨 먹는 게 생각보다 큰 욕심이라고 느꼈는지, 그가 인터뷰 도중 말을 바꾼다. “물론 예술이 대중과 같이 가면 더 의미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사실은… 이거 말고 할 게 없어요.”
연기 꼭 해야 됩니다, 가 아니라 연기 말고 할 게 없다? 생계 유지를 위한 연기라, 구구절절 읊어대는 어떠한 동기보다 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사람들 앞에만 가면 손발이 부르르 떨려서 도저히 피아노에 소질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후, 그는 우연한 기회에 모델 일을 하게 된다. 의욕만 넘치고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몇 차례 영화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에도 응모했다가 최종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군대 갔다와서는 이제 먹고살 길을 걱정해야 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군대 가기 전 시절과 비교해서 그의 자신감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래, 처음에 조금이라도 해봤던 걸 하자. 거기다가 피아노 칠 때는 떨리던 몸이 카메라 앞에서는 이상하게 느긋해지는 알 수 없는 현상도 그의 결심을 거들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배우다.
<봄곰>은 그가 밥그릇을 채워주는 직업으로만 생각했던 연기를 즐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다. 몇 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진 그는 자신에게 들어온 <봄곰>의 시나리오를 받고 “연기하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서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서 꽃을 피우는 게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체험하게 된다. 촬영장에 가면 신났고, 배두나와 달리 배우의 상상력과 의지에 모든 걸 맡기는 용이 감독이 편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용이 감독은 “김남진의 감수성은 나와 비슷하다. 그가 연기한 동하를 나와 비슷하게 그리려고 했다”고 말한다. 김남진의 첫번째 타이틀롤인 동하는 별다른 미래도 없는 임시 기관사다. 묵묵부답인 현채(배두나)에 대해 꾸준한 사랑을 보이는 동하는 남자친구로 삼고 심지 않을 정도로 눈치 없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하며, 안쓰럽다. 그런 동하를 김남진은 몸으로 느꼈다. 그가 어찌나 캐릭터에 푹 빠져버렸는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현채에게 마지막으로 비타민 등 선물을 주섬주섬 건네는 장면에선 정말 봇물이 터지듯 눈물이 나왔다. 그 장면은 <봄곰>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캠코더를 가지고 마지막 장면을 찍는 배두나를 보고 그는 눈이 너무 슬프다고 느꼈다. 그건 어디까지나 김남진의 생각이지만 그는 마치 정말 현채를 사랑한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개인적인 기억까지 겹치면서 그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봄곰>의 완성본 프린트를 본 배두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남진이 오빠가 저렇게 많은 신에서 울고 있는 줄 몰랐어.”
단 한 명의 관객일지라도 그가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도 같다. 영화를 보면서 “김남진이 배두나를 실제로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의심한다면 앞으로도 스크린에서 그의 짝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최면을 걸고 싶다. 아직은 속임수를 모르는 그의 마술에 사람들이 은근슬쩍 걸려 넘어질 수 있도록.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최면을 거는 것은 극중 역할인 동하가 아니라 김남진이라는 이름 석자가 가지는 압도적인 아우란데, 본인이 그걸 모르네..ㅇㅇ 그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다니. 역시 자기 자신은 깨우치기 힘든가보다.ㅡㅡ 암튼 니가 조아~ 이 곰팅아.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강해지세요..
첫댓글 기사 고마워요..지니 카키색 옷도 잘어울리네요.
지니 정말 모성 자극한는 남자 같어여....언니 감사...
배두나 멋지네요....
요즘 젊은 여배우 같지않은 아주 멋쥔 여배우인거 같아요..
나두 두나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근데 남진이 정말 많이 울더라..-.-;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최면을 거는 것은 극중 역할인 동하가 아니라 김남진이라는 이름 석자가 가지는 압도적인 아우란데, 본인이 그걸 모르네..ㅇㅇ 그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다니. 역시 자기 자신은 깨우치기 힘든가보다.ㅡㅡ 암튼 니가 조아~ 이 곰팅아.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강해지세요..
남진이가 비타민 챙겨주는데 두나가 던지면서~필요 없다구 할때 정말 슬펐어염~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