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있는가?
『달항(達巷) 마을 사람이 말하였다. “위대하도다, 공자(孔子)여. 박학(博學)하면서도 한 가지 기예(技藝)로 이름을 낸 것은 없구나.”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문하(門下) 제자들에게 말씀하였다. “그럼 내 무엇을 전문으로 해볼까? 수레 모는 일을 해볼까? 활쏘는 일을 해볼까? 내 수레 모는 일을 전문으로 해 봐야지.”[達港黨人(달항당인)曰(왈)大哉대재孔子(공자)博學而無所成名(박학이무소성명)子聞之(자문지)謂門弟子曰(위문제자왈)吾何執(오하집)執御乎(집어호)執射乎(집사호)吾執御矣.(오집어의.)]』<논어(論語) 자한(子罕) 2장>.
인간은 누구나 학문에 뜻을 두고 배우기에 힘써서 나름 인생관·가치관·역사관 등을 반듯하게 정립하고, 인격을 연마하고 영적·정신적인 성장을 도모해 가야한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누구나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에 필요한 기예(技藝)를 배우고 익히는 데에도 반드시 힘써야 한다. 실생활에 꼭 필요한 기예를 천하게 여기거나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예컨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자동차 운전면허나 자전거 타기 그리고 컴퓨터 활용능력 등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니, 자동차운전이나 자전거타기 그리고 컴퓨터 활용방법 배우기 등을 우습게 여기고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런즉 나아가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학문에 관련한 일에 종사하여 종교인이나 학자나 과학자나 기타 지식인이 되는 것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고, 우리 실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기능적인 일을 하는 모든 직업이 다 소중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직업이든,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면, 모두가 하등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직업이 목수이었던 것, 사도 베드로가 어부이었던 것, 사도 바울이 천막제조공(天幕製造工)이었던 것은 좋은 사례가 된다.
하여 우리 선조님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말하고 영어로는 Calling 이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Beruf 라고 하니, 모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소명(召命)이 나의 직업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당연히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소중한 이유 중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나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하등의 법적인 신분상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남의 직업을 보고 그 사람을 깔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사람됨이 부족한 사람들이니 반드시 성현(聖賢)들의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수의 일을 하였고, 공자도 수레 모는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오로지 그 사람의 내면세계와 인격적 성숙도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신다. 기독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품성을 닮는 것이라는 데에서 이는 잘 들어난다.
2026. 3.21.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