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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1. (1988년도) 연말 가요대상 무대
암전.
매혹적인 기타 선율과 함께 화면 열리면, 열광의 도가니인 객석.
무대 위, 마이크를 쥐고 있는 젊은 남자 가수. 최곤이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고... 최곤의 화려한 무대 매너에 객석의 소녀 팬들 거의 까무러친다.
무대 밑 한 쪽, 최곤의 모션을 더 크고 격렬하게 따라하는 한 사내. 최곤의 매니저 박민수다.
최곤과 박민수의 액션이 교차 편집으로 연결된다.
최곤의 노래 계속 되는 가운데, 최곤(과 박민수)의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 인서트로 삽입된다.
INS 1 : 환호하는 팬들에 둘러싸인 채 박민수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오르는 최곤.
INS 2 : 최곤이 공연을 하는 무대 밑에서 괜한 짜증을 부리며 부산을 떠는 박민수.
INS 3 : 공연을 마친 뒤 무대 뒤에서 땀에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곤.
INS 4 : 차에서 내려 달려드는 팬들을 뚫고 방송국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최곤과 박민수.
최곤, 멋진 피날레와 함께 노래를 마친다.
2. 대기실(N)
(1988년도) 연말 가요대상 수상식장 대기실.
긴장된 분위기.
모니터를 보면 남녀 한 쌍의 MC가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정리 멘트 중이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가수들.
그들 사이, 최곤이 묵묵히 소파에 앉아 있다.
최곤 옆, 그 누구보다 초조해 보이는 박민수.
MC(男)
1988년 가요대상,
이제 영광의 대상 수상자를 발표할 시간입니다.
자, 지금 제 손에 대상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전달됐습니다.
1988년 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자...
(발표할 것처럼 하다가)
발표해 주시죠.
하고 여자 MC에게 봉투 건넨다.
MC(女)
(손에 봉투를 들고)
떨려서 못하겠는데요.
MC(男)
같이 할까요?
긴장을 고조시키는 타악기 연주 흐르는 가운데 봉투를 열어보는 남녀 MC.
최곤
형, 물.
박민수
야, 여기 물도 안 갖다 놓고 뭐하는 거야?
하고 괜한 역정 내고 보면 자기 손에 물병 있다. 얼른 물병을 건네는 박민수.
최곤, 물병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 선다.
MC(女)(off-sound)
1988년 KBS 가요대상!
(긴장감 넘치는 타악기 소리)
MC(男)(off-sound)
올해의 대상!!...
거울 속 최곤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린다.
박민수는 초조함을 견디느라 벽에 머리를 찧고 있다.
MC(男&女)(off-sound)
(시간 끌다)
‘비와 당신’의 최곤!
선글라스를 걸치는 최곤의 얼굴에 승리감이 옅은 미소로 번진다.
박민수, 주먹을 불끈 쥐고 혼잣말로 “아자!”를 외친다.
동료 가수들이 최곤에게 몰려와 축하, 축하.
박민수
비켜, 비켜.
곤이 나간다.
하고 요란스럽게 길을 트면 가수들 사이로 빠져 나가는 최곤.
박민수가 대기실 문을 활짝 열자 무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
그 빛 속에서 들려오는 함성.
그 빛과 함성 속으로 사라지는 최곤.
타이틀 : <라디오 스타>
3. 미사리 라이브 카페(N)
무대 위, 노래를 부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 너머로 불륜 커플들이 손님의 주를 이루고 있는 미사리 라이브 카페 실내 전경 보인다.
세월이 흘러 이제 마흔 살이 된 최곤이 노래를 하고 있다.
한쪽 테이블에서 한 중년녀가 넋을 잃고 최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여인의 맞은편엔 중년남이 그 여인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무대 근처, 카페 사장(남사장)이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최곤을 바라보고 있다.
남사장
거, 노래하기 전에 술 좀 마시지 말라 그래.
하고 사라지면 다소 난감한 표정의 박민수가 사장을 바라보다 따라 간다.
중년녀
여고생 때 최곤 오빠 참 좋아했었는데.
중년남
오빠? 오빠, 느낌 좋네.
나도 오빠라고 한번만 불러 줘봐.
중년녀
(새침하게)
왜 이래요?
하고 최곤을 끈적한 눈길로 바라본다.
최곤의 노래 끝난다. 적당한 박수.
중년여
(아쉬운 표정으로)
최곤 오빠 스테이지 벌써 끝났네.
중년남, 아쉬워하는 중년녀와 무대에서 나갈 준비하는 최곤 번갈아 보다 일어나 무대로 향해간다.
중년남
최곤씨.
(하고 불러 세워)
한 곡만 더 안 될까요?
최곤, 보면
중년남
(중년녀 바라보며)
제 여자 친구가 최곤씨 열렬한 팬인데.
하며 주섬주섬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최곤 비위 상한 얼굴로 바라본다.
중년남, 선심 쓰듯 만 원짜리 한 장 더 꺼내며...
중년남
(중년녀에게 들리게)
최곤 오빠 꽤 비싼데.
최곤
(들어가다 듣고)
야, 임마.
이 자식이... 너 지금 뭐라 그랬어?
4. 라이브 카페 대기실(N)
노란색 구식 벤츠 앞좌석에 최곤 앉아있다.
카페 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최곤을 바라보고 있다.
사장
(최곤을 노려보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박민수
남사장 왜 이래...
최곤
(귀찮다는 듯)
형, 가자.
남사장, 사과 한마디 앉아 있는 최곤의 태도에 비위가 팍 상한다.
사장
(옆에 선 웨이터에게)
야, 저 플랭카드 떼.
웨이터
예?
사장
‘빅 스타 최곤 독점 출연’있잖아. 임마.
그거 당장 떼.
박민수
(웨이터를 못 가게 잡으며)
남사장, 왜 이래?
최곤
형, 가자니까.
사장
(최곤을 힐끗 보고)
빅 스타?
아주 지가 조용필인 줄 알아요.
최곤, 남사장을 노려본다.
사장
한 물 갔으면 찌그러지는 맛이 있어야지...
저런 놈이 스타면, 파리가 새다 이 자식아!!!
최곤 차 문을 열고 나와 그대로 한방 날린다.
건장한 사장이 나가떨어진다.
박민수, 얼빠진다.
5. 경찰서 사무실(N)
나이든 형사 앞에 최곤과 카페 사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최곤, 남의 일처럼 고개 돌리고 앉아있다.
형사
이름.
박민수
최곤.
하고 자기가 대답한다.
최곤, 고개 돌려 형사를 외면한다.
박민수
제가 매니저거든요.
(다시 남사장에게 얼굴 들이밀며)
자, 아까 여기 맞았지.
형사
주민등록번호.
박민수
66XXXX-XXXXXXX
형사
당신이 이 사람 때렸어?
박민수
제가 때린 걸로 해도 될까요?
형사
이 사람이... 당신 나가있어!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웬만하면 합의들을 보시지.
박민수
그럼요. 합의 거의 됐거든요.
남사장, 두 대로 할까?
남사장, 고개 돌려 외면.
그 때 젊은 경찰서 출입기자가 다가와 묻지도 않고 형사의 조서를 들춰 본다.
기자
(조서에서 이름을 보고)
최곤?
하고는 최곤을 바라보자 최곤이 시선을 피한다.
기자
아, 최곤!
(대마초 피우는 시늉 내며)
또?
최곤, 기자를 노려본다.
형사
김기자, 그거 아니야.
박민수
기자 양반, 언제 적 얘길 가지고 왜 이래요?
기자, 박민수를 힐끔 보곤 무시한다.
기자
(조심스럽게)
들어온 김에 소변 검사 한번 해 봅시다.
박민수
(기자에게 매달리며)
나랑 저쪽 가서 얘기 좀 합시다. 예?
기자
(박민수 무시하며)
나오면 반장님도 좋고 나도 좋고. 응?
이런 한물간 가수,
단순 폭력은 기사 거리가 안 돼.
기자, 형사에게 얘기를 하느라 노려보는 최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듣고만 있던 최곤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기자를 갈긴다.
대자로 뻗는 기자.
박민수, 완전히 넋이 나간다.
6. 김밥 집(N)
박민수, 극도로 무거운 표정을 연출하고 들어선다.
박민수
(무겁고 슬픈 목소리로)
곤이가 죽게 생겼어.
박민수의 아내 순영, 아랑곳 않고 김밥을 말다...
순영
돈 없어.
순영, 말없이 박민수를 힐끔 보고 다시 김밥 만다.
박민수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오죽하면 마누라한테 와서 이러겠냐?
어떻게 좀 해봐라. 좀.
순영, 대꾸 없이 김밥만 만다.
박민수
(낮은 톤으로)
곤이 깜방 가서 평생 썩으면 니가 책임질 거야? 엉?
순영
누가 누굴 책임져?
박민수
야, 최곤 팬클럽 초대 회장 김순영!
순영, 이 말이 듣는 것이 고통스럽다.
박민수
곤이 오빠가 지금 죽게 생겼다고, 알어?
순영의 얼굴에서 표정조차 사라진다.
7. 서울 방송국 복도(N)
박민수가 급하게 복도를 돌아 나온다.
매니저와 함께 오는 가수 김장훈을 보더니 움찔 놀라 벽 쪽에 얼굴을 붙이고 피한다.
그러다 김장훈이 지나가자 다시 급히 걷다 임백천과 마주친다.
임백천
형, 방송국에 웬일이야?
곤이... 디제이 하기로 했구나?
박민수
아냐, 임마.
걔가 그걸 왜 해?
용필이 형이 그런 거 하냐?
디제이 임백천, 비위가 좀 상한다.
박민수
너... 요새 티비까지 세 프로 뛴다며?
그래서 말인데...
임백천
(박민수의 의중을 대번에 알아채고)
돈 없어.
하고 휙 가버린다.
낙심하던 박민수 복도 끝을 돌아 나오는 김국장을 발견한다.
박민수
(잠시 갈등하다)
김국장...님.
하며 달려간다.
8. 서울 방송국 복도/계단/사무실(N)
박민수가 제 갈길 가는 김국장에게 달라붙는다.
박민수
(절박하게)
국장님.
김국장, 못 들은 듯 모퉁이 돌아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박민수
김국장.
박민수 계속 따라 붙는다.
박민수
형.
김국장 멈춰 돌아선다.
김국장
니들 언제까지 그럴래?
박민수
마지막이야, 정말. 한번만.
김국장
그러게 내 말 들으라고 했잖아.
박민수
그건 곤이가 말도 못 꺼내게 한다니까.
김국장, 물끄러미 박민수 바라본다.
박민수, 김국장의 눈길을 피한다.
김국장, 사무실로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박민수, 황급히 문을 열고 따라 들어가면 김국장이 문 앞에 기다리고 섰다.
김국장
(간곡한 당부조로)
내말 들어, 글쎄.
9. 유치장(N)
최곤과 박민수가 유치장 철창을 사이에 두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철장에 손을 기대고 한숨을 쉬는 박민수, 마치 그가 갇힌 사람 같다.
최곤
그럼 일단 나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그래.
박민수
지방에 조그만 방송국들 다 통폐합되면 방송에
지역 색이 없어지잖니.
최곤
그게 형이랑 무슨 상관인데?
박민수
그게...
김국장 피디 시절에 너 그렇게 밀어줬는데
사정 한번 봐주면 안 되냐?
최곤
누가 밀어 줘?
김국장 아직도 나 가수왕 먹은 거,
자기 덕이라고 유세 떨어?
내가 MBC 가수왕 놓치는 거 알면서도
김국장 얼굴 봐서 KBS 가수왕 받아준 거잖아.
덕 본 게 누군데.
박민수, 지친 표정으로 최곤을 바라본다.
박민수
그래, 관두자.
넌 아쉬운 거 없으니까 관둬.
하고는 돌아서 간다.
최곤
(큰 소리로)
형, 어디 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자던 인상 험악한 사내가 벌떡 일어난다.
험악남
어떤 새끼가 자꾸 떠들어?
최곤 돌아보면 살벌하게 생겼다.
박민수
김국장한테 됐다고 전화하러 간다, 왜?
최곤이 피의자1의 눈치 보느라 머뭇거리는 사이 박민수가 다시 간다.
최곤
(피의자1 눈치 보며 다급하게)
형, 형.
하고 부른다.
박민수
(돌아서서)
왜?
최곤
김국장이 그렇게 급하데?
10. 차 안/고속도로 갓길(D)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란색 구식 벤츠 안.
운전을 하는 박민수, 그 옆에 최곤.
최곤
형, 미사리도 그랬지?
망하는 카페 한번 살려주자며?
사람들이 다 그래요.
아쉬울 때 도와줘봐야 고마운 거 모른다니까.
형은 아직도 그걸 몰라?
박민수
...
최곤
사정 봐줄 일이 따로 있지.
내가 지금 거기 가서 디제이 하게 생겼냐고.
김국장 나한텐 생전 아쉬운 얘기 못하면서 말이야,
형이 앞뒤 못 가리니까 들이대는 거 아냐.
박민수
...
최곤
지금 자기가 힘써서 고향에 최곤 보냈다 이거 아냐.
형한텐 김국장 속이 안보여?
박민수 울화가 치밀지만 계속 참는다.
최곤
형이나 김국장이나 말이야...
생각이 그렇게 없어?
내가 가면 영월 방송국 직원들이 부담스러워서
일 제대로 하겠냐고.
박민수
...
최곤
(박민수가 대꾸 없자 시큰둥해져)
매니저 잘못 만나서 별 걸 다해요.
박민수, 급하게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갓길로 걸어간다.
최곤이 보다가 클락션을 눌러대 보지만 박민수가 계속 걸어가자 차에서 내린다.
최곤
(따라가며)
어디가?
무시하고 걸어가는 박민수, 쫓아가던 최곤이 짜증내다 멈춰 선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갓길, 두 남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11. 고속도로 (문막)휴게소 화장실(D)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는 최곤과 박민수.
최곤
금방이라며 뭐 이렇게 멀어?
박민수 먼저 용무를 마치고 그냥 나간다.
최곤 얼른 따라 나간다.
12. 고속도로 휴게소(D)
최곤이 휴게소 건물 앞 테이블에 앉아 있다.
박민수가 자판기 커피 한잔을 들고 와 내려놓는다.
최곤
형은 안 마셔?
박민수 쳐다보지도 않고 삐딱하게 서서 먼 곳 바라본다.
최곤
담배.
박민수 손만 뻗어 담배 준다.
최곤
불.
박민수 손만 뻗어 불 준다.
최곤은 담배를 피우고 박민수는 먼 곳을 바라본다.
13. 영월 방송국 가는 길(D)
영월로 가는 국도.
최곤과 박민수가 탄 차가 고갯길을 넘어간다.
차창 밖으로 ‘영월’을 알리는 표지판 보인다.
14. 영월 방송국 입구(D)
숲길을 지나... 닫혀있는 철문 앞에서 멈추는 차.
차에서 내리는 최곤과 박민수.
철문 너머로 소담한 방송국 전경이 보인다.
경비실에서 김씨(60대)가 나와 최곤과 박민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15. 영월 방송국 복도(D)
최곤과 박민수가 김씨의 뒤를 따라 복도를 지나고 있다.
지국장(off-sound)
(푸념조로)
최곤이 아니라 최곤 할애비가 와도 그렇지,
달랑 두 시간짜리 프로 하나 자체 제작한다고
지역문화가 산답니까?
16. 영월 방송국 지국장실(D)
작은 라디오 뉴스용 부스가 하나 딸린 사무실.
원주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지국장(50대)이 서울의 김국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
엔지니어 박기사(30대 초반)가 통화 내용에 귀를 모으고 있다.
지국장
아니, 통폐합 3개월 앞두고 무슨 날벼락이에요?
원주 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경우냐고요?
(흥분하며)
최곤 그 친구 그렇게 할 일이 없데요?
아니, 여길 가란다고 와요?
지국장 돌아보면 어느새 김씨가 최곤과 박민수를 데리고 들어와 있다.
최곤, 김국장의 통화 내용을 듣고 비위가 상한 표정이 역력하다.
김씨
서울에서 온 가수왕이라는데.
지국장과 박기사, ‘서울에서 온 가수왕’을 바라본다.
지국장, 짜증내며 들고 있던 전화를 내려놓는다.
17. 라디오 스튜디오(D)
문이 열린다.
누군가 들어와 불을 켠다. 박기사다.
고작 한두 개 형광등만이 깜박이다 불을 밝힌다.
지국장 뒤로 최곤과 박민수가 따라 들어온다.
10년 넘게 버려진 상태로 방치된 라디오 스튜디오의 추레한 모습이 드러난다.
지국장, 괜히 스튜디오를 왔다 갔다 한다.
지국장
야, 방송 안한지 12년 됐냐?
(기계들을 발로 툭툭 차며)
야, 이게 되냐? 돼?
박기사
(확신에 차서)
될 겁니다.
지국장, 박기사를 째려보는 사이
한심한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바라보던 최곤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박민수가 얼른 따라 나간다.
18. 방송국 앞 마당(D)
최곤이 갑갑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서있다.
박민수, 힘없이 걸어 와 최곤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밝게 표정 관리한다.
박민수
(짐짓 들뜬 목소리로)
야, 저기 아파트 봐라.
영월 엄청 발전했네.
이제 시골이 아니다.
최곤, 반응 없다.
박민수
곤아. 너 영월 왔던 거 기억 나냐?
최곤
(짜증 섞인 혼잣말로)
내가 여길 왜 와?
19. 순댓국 집(D)
허름하고 작은 식당.
박민수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뒤따라 들어서는 최곤, 분위기가 영 마땅치 않다.
박민수
(두리번거리다 한 쪽 벽을 보며 반가운 듯)
저거 봐.
기억나지?
최곤, 박민수의 시선을 따라 보면 벽 한쪽에 자기의 사인이 된 색 바랜 종이가 붙어있다.
박민수
너 가수왕 먹은 다음 해에 말이야.
삼척 방송국 개국기념 공연 가다가
이 집에 들렀었는데 여기 시장통이 아주 난리 나고,
여기 주인이 니 팬이라고 안주 바리바리 내놓고
밤새 술 푸다가...
최곤, 박민수의 말을 들으며 사인이 붙어 있는 벽 쪽으로 다가가 바라본다.
박민수
술이 떡이 되가지고 공연 그냥 재꼈잖냐?
야, 그게 벌써 몇 년이냐?
근데 이 집은 똑같네.
할머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호영)가 다가온다.
호영 뒤로 놀고 있는 동생(7살) 보인다.
호영
네...
박민수
꼬마야, 여기 주인 바뀌었니?
호영
아뇨. 우리 아빠가 주인인데요...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박민수
순댓국 두개하고, 소주도 한 병 줄래?
호영, 할머니가 일하고 있는 주방 쪽으로 간다.
(jump)
최곤과 박민수가 소주를 곁들여 순댓국을 먹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악기를 든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 넷이 들어 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는다.
락 밴드‘이스트 리버’의 멤버들이다.
박동후
(입으로 기타 연주를 흉내 내며)
넌 이게 안 되냐?
멤버1
오늘 잘 됐어.
얘가 삐사리 낸 거라니까.
멤버2
삐사리였어?
난 다 같이 틀려서 삐사린지 몰랐지.
더 좋던데.
멤버들 떠드는 사이,
박동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최곤과 최곤의 사인을 번갈아 보다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최곤, 박동후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박민수에게 눈치를 준다.
박동후
(감격에 겨워)
선배님.
하며 ‘쿵!’하고 무릎을 꿇는다.
그 소리에 멤버1,2,3 일제히 박동후를 바라보다 최곤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져 달려온다.
박민수
니들... 뭐야?
박동후
선배님, ‘이스트 리버’입니다.
박민수
이스트 뭐?
박동후
이스트! 동... 리버! 강...
영월 유일의 락 밴드, 이스트 리법니다.
선배님, 저희는 락이 저주 받은 이 땅에
신중현 선생님의 맥을 잇는 진정한 락커는... 전무후무!
선배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곤, 어떻게 좀 해보라는 표정으로 박민수를 바라본다.
박민수
곤아, 얘가 뭘 좀 아는데.
박동후
선배님이 온 몸으로 보여주신 세상과의 거침없는 충돌!
음주, 폭행, 대마초... 로 점철된 카리스마가 빚어낸 소울 아니겠습니까?
저도 머리가 깨지도록 세상과 부딪혀야 되는데...
최곤
(일어나며)
형, 가자.
박동후
영월이... 바닥이 워낙 좁아놔서 사고냐고...
뭐 칠만한 사고가 없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박민수
(따라 일어나며)
니들 매니저 있냐?
최곤
가자니까.
하고 가게를 빠져 나간다.
20. 모텔 외관/방(N)
INS. 모텔 외관.
최곤, 욕실에서 씻고 나온다.
박민수, 구석에 이불을 깔고 있다.
최곤
뭐해?
박민수
야, 인터넷에... 이 침대 봐라.
요샌 이런 데가 호텔보다 더 좋아.
최곤
가서 쉬어.
박민수
쉬긴 뭘...
이런 덴 호텔이랑 달라서 혼자 자면 위험해.
난 요기서 이불 깔고 잘게. 잘 자.
하고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다.
21. 영월 방송국 앞/방송국 전경(D)
방송국 앞 숲 너머 유유히 흐르는 동강.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 한대가 동강 강가를 달려 방송국 앞 숲길로 거슬러 올라온다.
철문 앞에 멈춰 선 오토바이.
김씨가 고개를 내밀고 바라본다.
22. 영월 방송국 사무실(D)
네 남자(최곤, 박민수, 지국장, 박기사)가 둘러 앉아 있다.
철가방에서 자장면을 내놓는 배달부 장씨가 최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박민수가 최곤 앞 자장면의 랩을 벗겨주고 나무젓가락을 갈라서 준다.
지국장
안가?
장씨
그릇 가지고 갈려고.
지국장
다방 레지야?
기다렸다 그릇 가져가게.
장씨
괜찮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지국장
미친놈...
장씨 쭈뼛거리며 화이트보드에 다가가 매직을 집는다.
최곤에게 등을 들이 밀며,
장씨
저 싸인 좀...
최곤
뭐야....
장씨를 쳐다보던 최곤, 먹던 자장면을 계속 먹는다.
원주에서 송출하는 낮 시간 라디오 프로가 흘러나오고 있다.
디제이가 초대 손님으로 나온 댄스그룹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DJ-男(E)
...아쉽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요.
이렇게 원주까지 찾아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찾아 주실 거죠?
게스트 일동(E)
예!
DJ-男(E)
팬들에게 작별 인사 해주세요.
게스트 일동(E)
여러분, 사랑해요~
DJ-男(E)
잠시 전하는 말씀 듣겠습니다.
CM 나온다.
지국장
방송 좋잖아.
원주나 되니까 저런 애들도 나오고 하는 거 아냐.
최곤,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을 놓는다.
그 때, 광고와 섞여 젊은 여자의 말소리가 크게 들린다.
소리-석영(E)
(비아냥거리는 흉내)
여러분 싸랑해요~
저런 가수 같지도 않은 애들 한번 초대할래도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니, 참.
이거 원주에서 피디 해 먹겠어?
자장면을 입에 물고 놀란 표정으로 마주보는 지국장과 박기사.
소리-남자(E)
(다급하게)
강피디, 마이크 살았어!
소리-석영(E)
어머!
방송 사고다.
박민수
저... 뭐야?
박기사
방송 사곤데요.
피디 같은데요.
23. 원주 방송국 전경/ 라디오 제작국 사무실(D)
국장(off-sound)
너 지금 인터넷에 걔네 팬클럽 애들이
너 죽인다고 난리난 거 알지?
난 요새 10대 애들이 젤 무섭더라.
니가 사고를 쳤다고 내가 너를 토사구팽
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석영(off-sound)
알았어요.
석영(27), 국장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국장
눈 딱 감고 3개월만 고생해라.
거, 어차피 통폐합 되게 돼있어.
가서... 와신상담, 절치부심, 권토중래...
하면 금의환향해서... 승승장구...
석영
알았다니까요. 간다구요.
24. 영월 방송국 지국장실(D)
석영에게 쏟아지는 시선.
시선을 느끼는 석영, 민망함을 감추고 태연한 척 한다.
지국장
(비아냥)
디제이는 서울에서 와 주시고,
피디는 원주에서 와 주시고...
방송이 기대가 아주 많이 돼.
안 그래? 박기사.
박기사
(진짜 기대에 찬 모습으로)
예, 지국장님.
박민수
(석영 바라보며 앙증맞게)
파이팅!
25. 영월 방송국 곳곳(D)
1. 방송국 마당
건물 벽에 기대어 진 사다리 위, 김씨가 벽에 붙은 방송국 로고를 닦고 있다.
2. 방송국 복도
박민수, 석영, 박기사가 열심히 스튜디오를 치우느라 땀 흘리고 있다.
복도를 지나던 최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 석영과 눈이 마주치자 무시한다.
3. 방송국 스튜디오
거의 다 치워진 스튜디오.
김씨가 벽 한쪽에 쳐진 자바라 커튼을 걷자 벽면 빼곡히 LP판이 나타난다.
스튜디오를 정리하던 박민수 석영 박기사가 일제히 쳐다본다.
4. 방송국 스튜디오
박기사가 콘솔을 조작한다.
부스 유리창 위 <ON AIR> 등이 점멸한다.
5. 부스 안
박기사와 박민수가 마이크를 테스트 한다.
6. 방송국 입구
이른 아침. 김씨가 굳게 닫혔던 철문을 활짝 연다.
26. 방송국 사무실(D)
석영이 들어와 회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기획서를 돌린다.
최곤, 기획서를 받아서 보지도 않고 어느새 자리 잡고 앉는 박민수에게 건넨다.
석영, 그런 최곤이 못 마땅하다.
최곤
정오의 희망곡?
박민수
타이틀이 좀 촌스러운 거 같은데.
정오의 리퀘스트, 정오의 플랫폼,
뭐 이렇게 가야 되는 거 아냐?
석영
그게 더 촌스러워요.
박민수
강피디, 근데 ‘최곤’은 붙여야지.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어때 그게 더 좋지?
안 그냐? 곤아.
최곤
(삐딱하게)
뭐 거기서 거긴데,
아무래도 그게 낫지.
석영
‘의’가 두 번 들어가니까 이상하잖아요.
박민수
뭐 어때?
‘민주주의의 의의’에는 네 번이나 들어가는데.
석영
그 ‘의’랑 그 ‘의’가 같아요?
지국장
(짜증내며)
의가 몇 번 들어가던 강피디가 알아서 해.
하고 일어나려는데
박민수
지국장님 왜 그러세요?
그러다 의 상하겠어요.
회의가 알차고 좋네.
난 밖에 나가서 마케팅 뛸 테니까
계속 회의하세요.
27. 영월 시내 곳곳(D)
1. 출력소
박민수가 플랭카드 뭉치를 들고 나온다.
2. 터미널 근처 전봇대
박민수가 플랭카드를 걸 채비를 하는데 길 건너편을 지나던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달려온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전봇대를 오른다.
3. 출력소
박민수가 전단지 뭉치를 들고 나와서 이스트 리버 멤버들에게 나눠준다.
4. 영월 시내 곳곳
박민수와 이스트 리버들이 전단지를 붙이며 영월 시내를 누빈다.
5. 터미널 다방 앞
박민수가 다방 앞에 걸린 플랭카드,
<축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방송-영월 주민 일동>을 올려다보고 기분 좋게 웃으며 다방으로 들어간다.
28. 라디오 스튜디오(D)
석영과 박기사가 막바지 정리에 분주하다.
일하던 석영이 허리를 펴고 부스 안을 바라본다. 인상이 구겨진다.
부스 안에서 최곤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한가롭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최곤
너, 촌스럽게 화환 같은 거 보내고 그러지 마라.
(사이)
뭐? 알았다. 녹음 잘해라.
최곤 전화를 끊는다.
29. 터미널 다방(D)
박민수가 종업원 김양과 커피를 마시고 있다.
TV에서 K-1 경기를 하고 있다.
박민수
야, 이 동네 다방들은 왜 전부 라디오를 안 트냐?
김양
요새 라디오 트는 다방이 어딨어요?
박민수
다방에선 라디오를 틀어야지, 무슨 소리야?
손님들 티비 보느라 죽 때리면 테이블 회전이 안 되잖아.
김양
여기 거진 배달 장사예요.
박민수, 할 말 없자 커피를 홀짝인다.
28-1.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 다른 후배와 통화 중.
최곤
김국장이 하도 애걸복걸해서 하긴 하는데
한 둬 달하고 뜰 거니까 승훈이 너
애들한테 소문내지 마라. 알았지?
내가 판돌이 할 일 있냐?
알았어. 나도 바빠, 자식아. 끊어.
최곤 신경질 부리며 전화를 끊는다.
29-1. 터미널 다방(D)
박민수가 김양을 앞에 두고 떠들어 댄다.
박민수
너 최곤이 영월 방송국에서 디제이 하는 거 알어?
김양
최곤이 누구예요?
박민수
(최곤의 대표곡 ‘비와 당신’ 한 소절 부르고)
최곤 몰라?
박양이 앉으며 끼어든다.
김양
언니, 최곤 알어?
박양,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스쳐 가고...
박민수
야, 어떻게 88년도 가수왕 최곤을 모르냐?
너 문화예술에 통 관심이 없구나.
여전히 갸우뚱하는 김양.
박민수, 답답하다.
28-2.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 또 다른 후배와 통화 중.
최곤
(유리 너머 석영 보며)
어려서 아직 방송을 몰라.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거지 뭐.
건모야, 그리고 말이야...
(사이)
뭐? 그래, 알았다. 자라.
전화를 끊는 최곤, 기운 빠진다.
29-2. 터미널 다방(D)
박민수 조금씩 흥분한다.
박민수
음주운전 걸려서 신문에도 났었잖아.
김양
신문 안 보는데.
박민수
술 먹고 사람 패서 여러 번 났었는데...
김양
아...
박민수
생각나지?
김양
근데 최곤, 탤런트 아녜요?
박민수
(답답하다)
야, 대마초 걸려서 티비에도 엄청 나왔는데 정말 몰라?
김양
아! 기억난다. 기억 나.
박민수
그지? 기억나지?
그럼 모를 리가 없지.
박민수, 뿌듯하다.
28-3. 라디오 스튜디오(D)
부스 밖, LP를 정리하던 석영이 최곤의 데뷔 앨범을 발견 한다.
데뷔 앨범 표지의 젊은 최곤을 바라보던 석영이 부스 안의 최곤을 바라본다.
30. 모텔 방(N)
불 꺼진 방.
최곤은 침대에, 박민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다.
박민수
내일 방송해야 하니까 어여 자라.
최곤, 말없이 천정을 바라본다.
박민수, 안 그런 척 하지만 최곤에게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최곤
형, 내가 정말 이 짓해야 되는 거유?
박민수, 대답 없는가 싶더니 그새 코 고는 소리 가늘게 들린다.
모로 누운 박민수, 자는 척 코 골지만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다.
31. 영월 방송국 전경(D)
밝은 햇살... 방송국 송전탑이 높게 솟아 있다.
32. 방송국 스튜디오(D)
12시 정각을 향해 가는 시계 초침.
긴장이 감도는 스튜디오 분위기.
부스 안, 최곤이 헤드폰을 끼고 앉아 있다.
석영과 박기사는 콘솔 앞에 앉아 있다.
괜히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던 박민수, 콘솔로 다가가 부스로 통하는 마이크 버튼을 누른다.
박민수
곤아, 정신 바짝 차리고. 오케이?
정작 듣는 최곤은 무덤덤한데 박민수만 초조하다.
박민수
(다시 콘솔로 다가가)
아니다.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 하니까,
편하게 해. 편하게. 릴렉스, 알았지?
석영
저리 좀 가요.
박민수
(물러서며)
강피디도 릴렉스. 오케이?
(다시 다가가 버튼을 누르고)
곤아, 오프닝 잘 해야 된다.
오프닝이 미끼거든.
오프닝으로 청취자들 코를 콱 꿰야된다.
파이팅! 릴렉스하고 파이팅, 오케이?
석영
비켜요. 시간 다 됐어요.
마침내 “뚜 뚜 뚜 뚜~”하고 시보가 울린다.
INS. 이스트 리버 연습실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카세트 라디오 앞에 모여 있다.
박동후
야, 녹음... 녹음!
카세트 라디오의 녹음 버튼 눌러지고 테입 돌아간다.
힘차게 박기사에게 큐 사인을 보내는 석영.
경쾌한 시그널 뮤직이 울려 퍼진다.
석영, 최곤에게 큐 사인을 보낸다. ‘ON AIR'등에 불이 들어온다.
박민수, 석영 뒤에서 혼자 큐 사인 보내고 더 난리다.
최곤
‘처음’이라는 말처럼 설레는 단어가 있을까요?
첫 울음, 첫 눈, 첫 만남...
최곤 오프닝 멘트가 맘에 들지 않아 마땅치 않은 눈으로 석영을 바라본다.
석영 그런 최곤의 시선을 무시한다.
박민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오프닝 멘트를 복창하며 음미한다.
최곤
첫 데이트, 첫 키스...
최곤, 닭살 돋아 차마 더 이상 못하고 원고를 던져 버린다.
최곤
(거북한 긴장을 털어내듯 헛기침하고)
흠흠... 에...
(목을 풀다 가래침이 고이자 시원하게 뱉고)
영월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최곤입니다. 가수왕 최곤.
저... 어떡하다 보니까 제가 여기서
디제이를 하게 됐습니다.
석영, 열 받고 박민수는 그런 석영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최곤
거... 기왕 하는 거...
많이 들어주시고, 뭐... 엽서도 좀 보내주시고...
신청곡 보내주시면, 봐서 쓸 만한 노래 같으면...
틀어드리겠습니다.
자, 첫 곡... 그룹 시나위의 1집 타이틀 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 나갑니다.
‘라디오를 켜고’의 전주 나간다.
박민수
(부스 안으로 통하는 마이크 누르고)
분위기 좋아, 분위기 좋아.
곤아, 나 밖에 가서 사람들 듣나 보고 올게.
잘 해라. 파이팅!
하곤 나간다.
INS. 이스트 리버 연습실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라디오의 볼륨을 한껏 올린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의 리듬에 거의 지랄발광 수준으로 몸을 흔든다.
INS. 버스 안
노인이 주로 탄 버스, 요란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나온다.
기사가 얼른 채널을 돌린다. 바뀐 채널에서 뽕짝이 나온다.
INS. 미용실
라디오에서‘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나온다.
주인이 채널을 바꾼다. 차분한 발라드가 나온다.
INS. 시장통
과일 가게 입구에 매달려 있는 라디오에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나온다.
주인이 채널을 돌린다.
INS. 중국집
단무지 종지를 랩으로 싸던 장씨가 ‘크게 라디오를 켜고’에 몸을 흔든다.
장씨의 흰 가운 등짝에 최곤의 사인이 크게 그려져 있다.
주방장이 다가와 “시끄러, 임마” 하며 뒤통수를 갈기고 라디오를 꺼버린다.
INS. 터미널 대합실
스피커에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나온다.
터미널 안의 승객들, 방송에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나가고 있다.
최곤
강피디, 전화 연결 되지?
석영
왜요?
최곤
후배들이 어떻게 알고 축하해 주겠다고
하도 난리라 말이야.
박기사
(석영 눈치 보며)
좋죠. 2번 전화로 하면 돼요.
최곤 수화기를 든다.
33. 터미널 다방(D)
박민수가 들어온다.
박민수
야, 지금 라디오 안 듣고 뭐하는 거야?
하고 카운터 위에 있는 콤포넌트의 라디오를 켠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흘러나온다.
박민수
좋잖아.
하며 흡족해 한다.
32-1. 라디오 스튜디오(D)
'크게 라디오를 켜고’ 가 끝나간다.
최곤
장훈아, 축하 멘트 짧게 쏘고, 끊지 마.
나랑 얘기 좀 더 하자. 오케이?
연결한다.
(밖에 수신호)
김장훈(E)
민수형 좀 바꾸라니까 쏘다니? 뭘 쏴?
33-1. 터미널 다방(D)
최곤의 방송 나오고 있다.
최곤(E)
제가 방송을 한다니까...
어떻게 알고 후배 가수들의 축하 전화가 엄청 오네요.
한번 받아 볼까요? 여보세요?
김장훈(E)
형, 민수 형이 삼천 꿔 간 거 알지?
최곤(E)
예? 김장훈씨... 뭔 소리세요?
김장훈(E)
보름만 쓰겠다더니 네 달째 잠수타고 이러기야 정말?
최곤(E)
김장훈씨 이거 생방이거든요.
김장훈(E)
쌩까기야, 정말... 나뿐이 아니더만.
형, 후배들 돈 그렇게 슈킹하고 싶어?
INS. 터미널 대합실
라디오에서 최곤의 흥분한 목소리가 나온다.
터미널 안의 승객들, 모두 스피커를 바라보고 있다.
32-2.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 흥분한다.
최곤
임마?
슈킹이라뇨?
(겨우 진정하고)
김장훈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장훈(E)
에이, 씨... 정말, 형이랑 민수형 다 늙어서
그렇게 살지 마.
박기사, 당황한 눈빛으로 석영을 바라본다.
석영, 당황하는 기색 없이 부스 안의 최곤을 노려보고 있다.
최곤
그렇게 살지 마?
김장훈씨가 이게, 새파란 거 키워놨더니, 뭐라고?
김장훈(E)
입만 열면 키워줬데.
형이 날 언제 키워줬는데.
최곤
야, 김장훈씨! 너 어디야?
INS. 이스트 리버 연습실
이스트 리버 멤버들, 입을 맞춰 “야, 김장훈씨! 너 어디야?”를 복창하며 즐거워한다.
33-2. 터미널 다방(D)
김양과 박양, 재밌어 한다.
김양
방송 재밌다. 아저씨.
박민수
그지?
내가 재밌다 그랬잖아...
박민수, 점점 더 사색이 되어 간다.
최곤(E)
너 이 김장훈씨, 나 디제이 한다는 얘기 듣고
물 먹일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지?
김장훈(E)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최곤(E)
여보세요? 야?
이 자식이, 끊어?
박민수, 벌떡 일어나 급하게 다방을 빠져 나간다.
32-3. 라디오 스튜디오(D)
김장훈의 노래 ‘세상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중 한 구절 흘러나온다.
노래
...세상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최곤
(노래 듣고)
어, 이 자식 노래 아니야.
야, 강피디... 이거 안 꺼?
석영과 최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박기사.
지국장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지국장
지금 뭐하는 거야?
34. 방송국 마당(D)
최곤이 마당 벤취에 앉아 있는데 박민수가 방송국 입구를 지나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박민수
(심각하게)
곤아... 살다보면 말이야...
최곤
(말 끊으며)
뭐? 살다보면 뭐?
왜 쪽팔리게 애들한테 돈을 꾸고 난리야?
박민수
...
최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박민수
...
최곤
애들한테 돈 꿔서 순영이 김밥집 차려 준거야?
박민수
그래, 이 자식아.
애들한테 슈킹한 돈으로 마누라 김밥집 차려줬다, 왜.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최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해?
애들이 돈 꿔주면, 형보고 꿔줘?
다 내 얼굴 보고 꿔주는 거 아냐?
내 얼굴에 이렇게 똥칠 하고 싶어?
박민수
(어이없어)
똥칠? 나는?
난 너 땜에 얼굴에 똥칠 수 십 번은 했어.
(얼굴 들이밀며)
봐! 똥독 오른 거 안보여?
장훈이한테 돈 왜 꿨는데?
그 돈 다 니 깽값 물었다.
최곤, 말없이 노려본다.
35. 지국장실(D)
지국장 앞에 석영과 박기사가 앉아 있다.
지국장
원주에선 방송 이렇게 하냐?
석영
...
지국장
이거 반품할 수도 없고...
석영
...
지국장
(박기사에게)
넌 뭐하는 놈이야?
니들 한번만 더 사고 쳐봐.
방송국 문 확 닫아 버릴 테니까.
36. 모텔 방(N)
박민수가 방구석에서 기타를 튕기며 신중현의 미인을 부른다.
최곤
(잔뜩 구겨진 박민수의 얼굴을 보다)
그만 좀 구겨, 쫌.
박민수, 들으란 듯 더 크게 노래를 하고... 얼굴 더 구겨진다.
최곤
(다가 와 기타를 확 뺏으며)
시끄러.
박민수
(최곤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다)
우리 같이 동강에 빠져 죽자.
최곤
...
박민수
나두 더 이상 이 짓 못해먹겠다.
같이 빠져 죽자고, 엉?
최곤
죽으려면 혼자 죽어.
같이 빠져 죽으면 둘이 사귄 줄 알어.
박민수
곤아, 어떻게 좀 해봐라. 좀.
최곤, 박민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빼앗았던 기타를 다시 준다.
최곤
(귀찮은 듯)
노래 해.
37. 방송국 입구(D)
최곤과 박민수가 방송국 입구를 향해 걸어온다.
미국의 유명 가수들을 코스프레한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나타나 따라 붙는다.
박동후
선배님... 방송 역사에 굵은 획을 그으셨습니다.
멤버1
선배님과 김장훈씨의 전화연결,
정말 박진감 넘쳤습니다.
멤버2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을 한 번에 쌩까버리는
선배님의 그 거친 소울... 아~ 존경합니다.
멤버1
선배님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락커의 고뇌,
그 배고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동후
선배님, 저희들도 언제나 배고픕니다.
언제 밥 한번 사주십시오.
최곤과 박민수, 철문 사이로 들어간다.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따라 들어가려는 순간, 김씨가 제지하며 철문을 닫아 버린다.
이스트 리버 멤버들 닫힌 철문에 매달려 최곤을 연호한다.
38. 라디오 스튜디오(D)
석영이 부스 안으로 들어와 최곤에게 원고와 큐시트를 건넨다.
최곤, 거들떠보지도 않자 박민수가 보라고 들이민다.
최곤이 귀찮은 듯 쳐버리자 원고가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다.
석영
방송, 맘대로 할 거예요?
최곤
응.
석영
난 이 방송 책임자예요.
내가 시키는 대로 안할 거면...
최곤
안할 거면...?
나 짤리는 건가?
(석영 노려보다)
형, 나 짤렸어.
하고 나가버린다.
박기사
(다급하게)
시간 됐어.
시그널 나가!
시그널 나온다.
석영과 박민수, 벙찐 표정으로 마주본다.
박민수, 황급하게 부스 문을 열고 최곤을 잡으러 나가보지만 최곤 스튜디오 문을 빠져 나간다.
고개 돌려 당황하는 석영을 바라보는 박민수.
시그널 뮤직 잦아들며...
박기사
어떡해? 어떡해.
박민수, 후다닥 마이크 앞에 앉는다.
박민수
(호흡을 가다듬고 음악에 리듬을 맞추며)
오늘은 웬~지, 무작정 동해바다로 달려가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샤워를 하고
갈매기들의 날개 짓에 마음을 실으면...
석영, 진땀을 흘리며 박민수를 주시하고 있다.
박민수
오늘은 웬~지, 멀리 떠난 그대에게
나의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은,
오늘은 웬~~지, 그런 날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일일 디제이. 박민숩니다.
첫 곡 신중현의 미인 보내드립니다.
‘신중현의 미인’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박민수, 서둘러 부스 밖으로 뛰어 나간다.
INS
‘신중현의 미인’ 흐르는 가운데... 영월 주민들의 일상이 보여 진다.
-시장 통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전파사 앞, 밖에 내놓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연주 흉내를 내는 이스트 리버.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을 끓이고 있는 (호영의)할머니.
-박민수가 최곤을 스튜디오로 끌고 들어와 부스 안 의자에 앉히고 헤드폰을 씌운다.
-부스 안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최곤을 노려보는 석영. 그런 석영의 눈치를 보는 박민수.
-방송국 입구, 방송국에 진입하려다 김씨에게 저지당해 실패하는 이스트 리버 멤버들.
-스튜디오, 부스 안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최곤.
-전파사 안에서 손님과 흥정하는 전파사 주인.
-부스 안, 마이크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무성의한 표정으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 최곤.
-스튜디오, 콘솔 앞에서 하품하는 박기사. 그런 박기사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석영.
-방송국 입구,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방송국으로 달려들다 김씨에게 몽둥이세례를 받는다.
-버스 정류장, 비가 내린다. 버스가 도착하자 얼른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
-스튜디오, 생기라곤 없는 분위기. 지국장이 들어와 힐끔 보고 사라진다.
-터미널 다방, 혼자 있는 김양이 카운터에서 턱을 괴고 최곤의 방송을 듣다 전화를 받는다.
-영월 전경, 영월의 산과 들... 그리고 강에 비가 내린다.
39. 방송국 전경(D)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 흐르는 가운데...
방송국 건물이 비에 젖고 있다.
카메라 스튜디오 창가로 다가가면 석영이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다.
노란 우비를 입은 김양이 오토바이를 타고 방송국 입구를 지나 방송국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40. 라디오 스튜디오(D)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 계속 흐르고...
창밖을 보던 석영이 고개를 돌려 부스를 보면 최곤과, 박민수까지 짬뽕을 먹고 있다.
배달부 장씨, 부스 안에서 최곤의 헤드폰을 끼고 음악에 흠뻑 취해있다.
석영, 포기하는 표정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그 때 김양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김양
(낭낭한 목소리로)
커피 시키신 분.
박민수
(부스 안에서 마이크 통해)
여기.
하고 손을 흔든다.
(jump)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계속 흐르고 있다.
최곤, 김양이 배달해 온 커피를 마시고 있다.
김양,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에 젖어 든다.
석영이 최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양
아저씨, 이 노래 한번만 더 틀어주면 안 돼?
최곤, 보면
김양
안돼요? 우리 다방은 리필 해주는데.
최곤
그러지 뭐.
김양
난 이 노래 들으면 엄마 생각나더라.
우리 엄마 십팔번이거든.
그 때 석영이 들어온다.
석영
나와요.
김양
손님 다 마실 때까지 옆에 있는 거예요.
노래 끝나간다.
최곤을 노려보던 석영이 나가려는 순간,
최곤
(석영 들으란 듯)
너 엄마한테 한 마디 할래?
최곤 말에 깜짝 놀라는 김양.
김양
아저씨 뭔 이야기를 해?
최곤
엄마 십팔번이라며
엄마 이야기해
석영, 멈춰 돌아보고 노래 완전히 끝난다.
최곤
(마이크 올리고)
오늘은 애청자 중 한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밖에서 듣고 있던 박민수와 박기사가 놀란다.
최곤, 김양에게 얘기하라고 손짓한다.
석영, 화난 표정으로 최곤을 바라본다.
김양
(마이크 앞으로 다가앉으며)
안녕하세요?
저는 요 앞 터미널 바로 건너편
터미널 다방에 근무하는 김양입니다.
INS. 터미널 다방,
다방 안 스피커에서 김양의 목소리가 나오자 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다.
박양
김양이다.
손님1
쟤 저기서 뭐하는 거냐?
김양(E)
저, 먼저... 평소 터미널 다방을 이용해주시는
손님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구요.
김양의 말에 다방 손님들과, 특히 사장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김양(E)
세탁소 김사장님하고 철물점 박사장님
이번 달에는 외상값 꼭 갚아주세요.
김사장님 4만7천원이구요...
INS. 영월 시내 세탁소 내부,
세탁소 사장,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양의 얘기를 듣다 놀란다.
김양
철물점 박사장님... 맨날 쌍화차 드셔서 좀 많은데...
10만4천원인데... 4천원 까고 10만원만 받을게요.
INS. 영월 시내 철물점
철물점 사장,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양의 얘기를 듣고 당황한다.
옆에서 철물들을 정리하던 사장의 와이프가 남편을 째려본다.
김양
안 갚으시면 제 월급에서 까지는 거 아시죠?
스튜디오, 김양의 말 계속 이어진다.
김양
(잠시 뜸들이다)
엄마, 나 선옥인데... 나 방송 출연했거든.
엄마, 잘 있지?
석영,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표정으로 최곤을 노려본다.
최곤, 석영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김양에게 계속 말하라고 손을 흔든다.
김양, 잠시 말을 멈추더니 표정이 무거워진다.
김양
엄마, 비 오네.
엄마, 기억 나?
나 집 나오던 날도 비 왔는데.
엄마, 알어?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 때는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울음을 삼키며)
집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세상 사람들 다 밉고,
엄마만 안 미웠어... 그래서 내가 미웠어.
엄마, 나 내가 너무 미워서... 좀 막 살았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더 미워.
김양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석영의 표정이 동정으로 변한다.
INS. 지국장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양의 사연을 듣고 있는 지국장의 표정 슬프다.
김양
엄마, 나 비 오면 엄마가 해주던 부침개 해보거든.
근데 엄마가 해 주던 것처럼 맛있게 안 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잘 안 돼.
엄마,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하고는 무너져 테이블에 고개를 묻고 흐느낀다.
최곤이 김양을 바라보다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을 내보낸다.
김양의 흐느낌이 노래에 묻힌다.
최곤, 부스를 나온다.
석영이 김양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최곤이 창가에 선 박민수에게 다가가면 박민수의 눈이 젖어있다.
최곤
뭐야?
박민수
장마가 지려나?
박민수, 괜히 목을 빼고 창밖을 바라본다.
41. 방송국 현관 앞(D)
비가 내린다.
박민수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전화를 하고 있다.
박민수
왜는?
비도 오고... 곤이 자식 해먹이려고 그러지.
(사이)
왜 화를 내?
(사이)
맹물 말고 멸치 우린 물? 그리고?
쌀가루? 뭐 이렇게 어려워?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는데 최곤이 나온다.
최곤
담배.
박민수
(피우던 담배를 내밀며)
비 그치면 사올게.
최곤, 담배를 받는다.
박민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찜찜한 표정으로 담배를 바라보다 할 수 없이 한 모금 피운다.
최곤과 박민수, 낙숫물을 바라보며 주거니 받거니 담배를 나눠 피운다.
최곤
(받아 피우다)
에이 씨, 침을 묻히냐?
하고는 짜증을 내며 담배를 버리고 들어가 버린다.
박민수
(물에 젖어버린 꽁초를 보며)
아이 자식... 장초를 버리냐?
하고 최곤의 뒷모습에 눈을 흘기다 따라 들어간다.
42. 대중목욕탕(N)
박민수가 최곤의 등을 밀고 있다.
최곤
(짜증내며)
제대로 좀 밀어봐. 좀.
하여간 미는 거 되게 못해요.
박민수
나보다 어떻게 더 잘 밀어.
니가 누구 덕에 가수왕 먹었는데.
부화가 난 박민수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최곤
아퍼!
하고 벌떡 일어난다.
박민수, 자기 등 밀어줄 줄 알고 때 수건을 내밀지만 최곤이 그냥 가버린다.
43. 터미널 다방(N)
최곤과 박민수가 들어선다.
웬일로 손님들이 꽤 많다.
김양
어, 아저씨.
하고 손을 흔든다.
최곤과 박민수 자리에 앉는다.
박민수
손님이 많네.
하고 보면 카센터 사장과 철물점 사장도 보이고...
김양
(나지막이)
나 스타 됐어요.
박민수
정말?
김양
(철물점 사장과 카센터 사장 앉은 쪽 가리키며)
아저씨 덕분에 외상값 받았으니까 내가 쏠게.
쌍화차?
박민수
쌍화차, 좋지.
김양
(밝은 표정으로 일어나며)
여기 쌍화차 두 잔.
하고 외치고 간다.
최곤, 사람들이 자기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철물점 사장과 카센터 사장이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세탁소 사장
저... 최곤씨.
최곤
예?
세탁소 사장
제가 김양한테 외상을 할려고 한 게 아니라...
거, 공교롭게 커피를 시킬 때마다 잔돈이 없어서.
박민수
앞으론 외상 하지 마세요.
거 커피 값 얼마 한다고.
세탁소 사장
그럼요.
그런 의미에서 사인 한 장만.
어느새 철물점 사장도 사인 받을 종이를 들고 서있다.
44. 영월 시내(N)
박민수가 기분이 좋아서 흥겹게 ‘신중현의 미인’을 부르며 걷는다.
박민수
(얼굴 잔뜩 구기고 기타 치는 시늉하며)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이 자꾸만 보고 싶네.
하며 최곤을 살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박민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최곤, 박민수가 쪽팔려 걸음이 빨라진다.
박민수, 얼른 따라 붙는다.
박민수
띵띠딩띠 띵띠리리링...
45. 라디오 스튜디오(D)
시그널이 흐른다.
최곤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인간이,
밤이면 밤마다 영월 시내에 나타나 미인을
찾아 헤맨다고 합니다.
밤길 조심하시고... 혹시 이 작자를 발견하시는 분은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스 밖, 박민수가 최곤을 노려본다.
시그널 커졌다 다시 작아지고...
최곤
띵띠딩띠 띵띠리리링... 이러고 다닌답니다.
이거... 완전히 돈 놈이죠?
돌고 돌고 돌고... 들국화의 노래로 시작하겠습니다.
들국화의 ‘돌고 돌고 돌고’나온다.
부스 안, 최곤이 박민수를 바라보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jump)
‘돌고 돌고 돌고’끝나간다.
석영이 전화를 받는다.
석영
(부스 안으로 통하는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노래 끝나고 전화 연결 할게요.
최곤
누군데?
장훈이 아니지?
석영
선배 팬이래요.
노래 잦아든다.
석영, 전화 연결 됐다는 사인 보낸다.
최곤
여보세요?
이스트 리버 일동
선배님, 이스트 리법니다.
최곤
니들 왜?
박동후
선배님, 어젯밤에 저희 그 미친놈 봤습니다.
최곤
야, 경찰서에 신고하랬지 일루 전화하랬어?
박동후
선배님, 저희 노래 한곡 부르고 싶습니다.
최곤
됐어, 전화 끊고 니들끼리 불러.
박동후
(다급하게)
선배님...
저희가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팬 사이트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거든요.
선배님 방송 다시 듣기도 되고 청취자들 사연도
많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꼭 방문해 주세요...
(jump)
최곤이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고 있다.
최곤
아니, 취직 어렵다는 거 몰랐어요?
쓸 만한 자격증이라도 좀 따놓던지 말이야.
실업청년(E)
군대에서 딴 태권도 단증하고 운전면허증 있는데요.
최곤
그럼 태권도장 운전기사 자리 한번 알아봐요.
다음 전화 받겠습니다.
최곤에게 큐 싸인을 주는 석영
(jump)
최곤, 또 다른 청취자와의 전화 연결.
최곤
어차피 정해진 월급 받는데 널널하면 좋지 뭐.
간호사(E)
병원 망하면 월급 못 받잖아요.
지난주에 산에서 뱀에 물린 손님 한명
다녀가고 이번 주엔 한명도 없어요.
최곤
그럼, 비암을 키워서 쫙 풀어.
(jump)
컴퓨터 모니터,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팬 사이트가 떠있다.
석영과 박기사가 보고 있다.
박기사
사람들이 올린 글이 꽤 있네.
석영
정말 다시 듣기도 되네.
46. 서울 방송국 사무실(D)
김국장이 컴퓨터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고 앉아 있다.
주변의 피디들이 보면,
김국장이 웃었다 심각해졌다 좀 이상하다.
피디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왜 저래?’하는 표정을 교환하다 모여든다.
피디1
뭐 들으세요?
김국장
영월에서 하는 최곤 방송 모아놓은 거.
피디2
지금 정오 프로 청취율이 안 나와서 광고 다 떨어지게
생겼는데 그걸 듣고 계시면 어떡해요?
김국장
니들도 찾아서 듣고 이렇게 좀 만들어봐, 이 자식들아.
다 꺼져. 마저 듣게.
피디들 씰룩거리며 물러나고 김국장 다시 키득거린다.
47. 라디오 스튜디오(D)
BG(배경 음악) 흐르고 있다.
최곤
...제가 가수왕을 할 때만 해도 말이죠.
라디오 피디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었거든요.
근데 요샌 말이죠.
낙하산도 많은 것 같고...
박기사가 석영을 쳐다본다.
석영, 부스 안의 최곤을 노려보다 백지에 뭐라고 쓴다.
최곤
음악도 하나도 모르면서 라디오 한답시고
까불다가 사고나 치고...
그런 피디들이 간혹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이승철의 소녀시대’ 들으시겠습니다.
노래 나간다.
석영, 종이에 뭐라 끄적이더니 종이를 최곤에게 들어 보인다.
최곤, 석영이 들어 보인 종이를 보더니 인상 구겨진다.
석영이 들고 있는 종이에 ‘너나 잘 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jump)
BG(배경음악) 흐른다.
최곤
레드 재플린, 핑크 플로이드, 도어스, 너바나...
이런 밴드들이 하루아침에 나오는 줄 아십니까?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말이죠...
밴드 문화! 이게 핵심이거든요.
우리나라 음악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아십니까?
애들이 밴드를 안 해요, 밴드를.
왜냐? 배고프거든.
밴드에서 노래 좀 한다는 놈들은 죄다 나와서
댄스곡이나 부르고 말이야.
부스 밖의 박민수, 엄지를 세워 최곤 보라고 내민다.
최곤
(희색이 만연한 민수를 보다가)
저요? 저는 밴드 나와서도... 매니저 잘못 만나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여길 왜 왔는지 아십니까?
첫 방송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니저란 사람이 제 얼굴 팔아서
돈이나 땡겨 쓰고 말이죠...
박민수, 인상 구겨진다.
석영, 전화 연결하겠다고 수신호 한다.
최곤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여보세요?
이스트 리버 일동
(입 맞춰)
선배님, 밴드 여깄습니다.
이스트 리버!
최곤
그래, 알어... 임마.
꼭 실력 없는 것들이 밴드 이름 영어로 지어요.
왜?
박동후
선배님, 노래 한곡 하게 해주세요.
이스트 리버 멤버 일동
우~
하고 분위기 띄운다.
최곤
해, 해... 해.
한 곡하고... 니들 다시 전화하면 죽어.
이스트 리버의 ‘(노 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 시작된다.
전주부터 그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INS. 이스트 리버 연습실
마이크 스탠드에 핸드폰 꽂혀있고...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정열적인 연주에 몰입한다.
이스트 리버- 넌 내게 반했어 :
<(One two)
(One two three yeah)
워우 워우 워 워
(넌 내게 반했어)
화려한 조명 속에
빛나고 있는
(넌 내게 반했어)
웃지 말고 대답해봐
(넌 내게 반했어)
뜨거운 토요일 밤의 열기 속에
(넌 내게 반했어)
솔직하게 말을 해봐
도도한 눈빛으로
제압하려 해도
난 그런 속임수에 속지 않아. 예예
워우 워우 워 워
(넌 내게 반했어)
애매한 그 눈빛은 뭘 말하는 거니
(넌 내게 반했어)
춤을 춰줘
come on come on
내 눈과 너의 눈이 마주쳤던 순간
튀었던 정열의 불꽃들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원한다면
밤하늘의 별도 따 줄 텐데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내 볼에다 입맞춰줘
오우예~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원한다면
밤하늘의 별도 따 줄 텐데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내 볼에다 입맞춰줘
오우 예
워우 워우 워 워
난 네게 반했어~
이스트 리버의 ‘넌 내게 반했어’ 울려 퍼지는 사이,
청취자들과 전화 연결하는 최곤의 모습과
영월 곳곳에서 최곤과 전화를 하는 청취자들의 모습,
라디오로 최곤과 청취자들의 전화 연결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영월 사람들...
그리고 산(山) 중, 어느 비닐하우스 안에서 연주를 하는 이스트 리버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스튜디오, 최곤이 전화 연결 중이다.
최곤
축하합니다.
INS. 어느 가내 수공업 공장
주부들, 전화를 하는 주부 곁에 모여 앉아 라디오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다.
임신 주부
근데요... 벌써 애가 셋이 있거든요.
스튜디오,
최곤
(기 막혀 한숨 한번 쉬고)
제가 아는 병원 소개시켜 줄 테니까
남편 끌고 가서 정관수술 시켜 버려요.
INS. 산골 마을회관
고스톱을 치던 할머니들이 무슨 일인가로 다투다 방송을 듣고 웃는다.
그 중 한 할머니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스튜디오, 최곤이 전화 연결 중이다.
최곤
막판 쓸 없어요. 할머니.
피 한 장 안주셔도 돼요.
INS. 산골 마을회관
전화하던 할머니1이 할머니2를 쏘아본다.
할머니1
그지?봐라, 이 할망구야.
할머니2
전화 이리 내라.
여보세요?
막판 쓸이 없다고?
스튜디오, 최곤이 박민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박민수가 급히 들어간다.
최곤
잠깐만요.
여기 고스톱 전문가가 있거든요.
박민수
할머니, 팔팔 올림픽 아시죠?
팔팔 올림픽 이후로 막판 쓸 완전히 없어졌거든요.
피 한 장씩 안 받으면 3점 안되시는 거죠?
나가리니까 다음 판 따블로 하고 얼른 패 돌리세요.
첫 뻑은 인정하고 계시죠?
INS. 노을이 지고... 다시 해가 뜨는 동강의 아름다운 모습.(저속촬영-시간경과)
‘넌 내게 반했어’ 계속 이어진다.
스튜디오, 최곤이 또 다른 청취자와 전화를 하고 있다.
최곤
집 나간 애가 어떻게 생겼어요?
누렁이 할아버지(E)
자알 생겼지.
최곤
인상착의를 정확히 말씀해 보세요.
누렁이 할아버지(E)
그러니까...
눈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때깔이 누~래.
그건 그렇고... 서울에 있는 아들아.
애빈데... 누렁이가 집 나가서 방송국에 전화 한 김에
한마디 하것다.
최곤
할아버지 이거 서울에 방송 안돼요.
누렁이 할아버지(E)
어... 내가 크게 하께.
(목청껏)
아들아~! 들리지?너 집에 안 온지 삼년 됐지?
나는 괜찮다.
너 서울 가서 성공 안 해도... 나는 괜찮다.
너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나는 괜찮다.
근데 요번 추석에는 오냐?
INS. 영월 시내 베스킨라빈스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최곤의 방송이 나오고 있다.
누렁이 할아버지(E)
누렁이 찾으면 다시 전화하께.
아르바이트하는 여학생이 뭔가에 기겁을 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집어 든다.
여학생의 시선으로 보면, 누런 송아지가 길고 큰 혀로 투명한 아이스크림 박스를 핥고 있다.
최곤이 다른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고 있다.
최곤
(어이없어)
아니, 꽃집 하는 사람이 꽃 주는 걸 왜 못해?
INS. 영월 시내 꽃집
꽃집 주인인 총각이 최곤과 전화를 하다 놀란다.
보면 농협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가 꽃집 입구에서 꽃을 고르고 있다.
꽃집 총각
(작은 소리로)
부끄러워서...
최곤
(잘 안 들리자)
여보세요? 뭐라구요?
농협 아가씨 꽃향기를 맡다 사라진다.
꽃집 총각
너무 떨려서...
스튜디오.
최곤
참... 나...
이 불쌍한 영혼아... 전화 끊고...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영월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한심한 청춘 하나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전하지 못해 영혼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내 농협 근처를 지나실 일이 있는 분들은
농협 맞은편 꽃집에서 장미를 한 송이씩 가져다가,
농협에 근무하는 ‘신혜영’이라는 아가씨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셨죠?
안 그럼, 불쌍한 꽃집 총각 자살할지도 모릅니다.
꽃집 총각, 듣고 있지?
가게 앞에 장미꽃 내 놔. 알았지?
INS. 꽃집
‘넌 내게 반했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꽃집 총각이 빨간 장미가 가득 담긴 통 옆에 <제 마음을 전해 주세요>라고 쓴 푯말을 세운다.
-꽃집 앞을 지나던 세탁소 사장이 <저의 마음을 전해 주세요> 푯말 앞의 장미꽃을 뽑아들고 간다.
-꽃집 총각이 모른 척 꽃을 집어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중국집 배달부 장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다 멈춰 장미꽃 한 송이를 뽑아 들고 간다.
-터미널 다방 김양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다 멈춰 장미꽃 한 송이를 뽑아 들고 간다.
-농협 안, 장미꽃을 든 카센터 사장이 ‘신혜영’ 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창구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장미꽃을 전해주며 씨익 웃는다. 아가씨,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입구를 바라보면 장씨가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들어선다.
-신혜영양 앞에 장미꽃이 수북이 쌓여있다. 농협의 모든 직원들이 신혜영 양에게 눈길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순댓국집 호영이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와 신혜영 양 앞에 놓는다.
스튜디오, 최곤이 다른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고 있다.
최곤
여보세요?
호영(E)
안녕하세요? 아저씨.
최곤
너... 누구세요?
INS. 순댓국 집
호영이 최곤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할머니가 라디오로 호영과 최곤의 통화를 듣고 있다.
호영
여기 순댓국집이에요.
최곤(E)
어, 그래.
호영
아저씨, 할머니가 그러시는데요...
우리 아빠가 가수 중에 아저씨를 젤 좋아했데요.
그래서 저도 아저씨 팬 하기로 했어요.
저 방송 매일 들어요.
최곤(E)
그것 땜에 전화했니?
호영
아뇨.
아저씨, 북극에 사는 동물 다섯 가지만 가르쳐 주세요.
최곤, 부스 밖을 바라보면 박민수와 박기사는 모르겠다는 표정.
석영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다.
최곤
(짐짓 친절한 말투로)
꼬마야, 그런 건 인터넷 찾아보면 되겠지?
호영(E)
인터넷 없는데요.
최곤
꼬마야, 적어...
북극곰하고... 펭귄하고...
야, 그냥 북극곰 두 마리, 펭귄 세 마리.
됐지?
하고 만족스러워하는데,
호영(E)
펭귄은 남극에만 사는데요.
벙찌는 최곤...
이스트 리버의 ‘넌 내게 반했어’ 끝난다.
48. 순댓국 집(N)
최곤 박민수 석영 박기사 지국장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박민수
자, 자... 앉아.
최곤이 들어오자 순댓국집 안의 사람들이 최곤을 바라보며 쑥덕거린다.
호영이 다가온다.
박민수
여기 술국하고... 막걸리로 할까? 오케이?
막걸리 좀 줄래?
호영, 사라지고 손님1이 다가온다.
손님1
저... 사인 좀.
최곤이 손님1을 올려다본다.
순댓국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최곤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모여 든다.
박민수
다 해 드릴 테니까 차례, 차례.
하고 손님들을 정리한다.
손님들 사인을 받는 족족 환한 표정으로 흡족해하고 최곤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jump)
손님들 모두 사라지고 다섯 명만 남았다.
석영
(취한 목소리)
선배, 방송에서 반말 좀 하지 마요, 좀.
최곤
내가 언제 반말 했어?
석영
툭하면 반말이잖아.
최곤
너 지금 나한테 반말 하는 거야?
석영
거봐요. 기분 나쁘죠?
박민수
어허, 그만하고 한잔 하자고.
하며 술 따르려 보면 술 없다.
박기사
(웃으며)
형님, 막걸리 반말 더 시킬까요?
박민수
반말로 되겠어?
시키는 김에 존댓말 시키지?
지국장
(끼어들며)
존댓말로 되겠어?
모두 지국장을 주시하는데 지국장 아이디어가 없다.
지국장
(당황하다)
막말로 시키지.
어이! 할멈, 여기 막걸리 좀 줘봐.
싸늘해진다.
49. 영월 거리(N)
다섯 모두 취해 비척거리며 시장 통에서 나온다.
지국장이 지나던 택시를 세워 올라탄다.
지국장
자, 조심해서들 가고 낼 보자고.
박기사와 석영이 완전히 취해 자꾸만 주저앉는다.
박민수가 박기사를 추스르다 들쳐 업는다.
최곤도 엉망으로 취한 석영을 들쳐 업는다.
최곤과 박민수 각각 박기사와 석영을 업고 낑낑 대며 나란히 걷는다.
석영
선배, 나 잘 나갔었거든.
나 낙하산 아니거든.
나 낙하산에서 총 맞고 떨어졌거든.
최곤
야, 시끄러.
아이, 씨... 무거워 죽겠네.
석영
선배... 나 와신상담, 절치부심, 권토중래... 해서
원주로 금의환향해서 승승장구 할 거거든.
최곤
아이, 씨...
형은 애를 봐가면서 술을 먹여야지.
박민수
내가 안 먹였어, 임마.
걔가 나 먹였어, 자식아.
석영
야, 최곤!
나 초등학교 때 선배 가수왕 타는 거 봤거든.
그때 졸라 멋있었는데...
최곤, 자꾸 쳐지는 석영을 추스른다.
석영, 몸이 출렁일 때 마다 “욱~ 욱~”하고 토하려고 한다.
50. 여관 앞/방송국 진입로(D)
최곤 박민수 석영 박기사가 여관에서 나온다.
석영, 어색함을 애써 감추는 모습 역력하다.
네 사람, 방송국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넌다.
어디선가 박동후와 이스트 리버들이 나타나 따라 건넌다.
넷 모두 양복을 맞춰 입은 모습이 딱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틀즈의 모습이다.
눈치 채고도 모른 척 계속 가는 최곤과 박민수.
석영과 박기사는 힐끔힐끔 쳐다보며 경계한다.
이스트 리버, 아무 말 없이 발 맞춰 따라 걷는다.
51. 방송국 입구(D)
이스트 리버가 최곤 일행과 거리를 두고 걸어온다.
경비실 앞을 지나던 최곤이 김씨에게 이스트 리버 애들을 막으라고 눈치를 준다.
김씨가 경비실에서 나와 경계의 눈빛으로 이스트 리버 멤버들을 막아서려는 순간,
박동후가 표정과 손짓으로 최곤의 관계자임을 주지시킨다.
김씨가 ‘최곤이 눈치 준 게 그 뜻인가?’하는 표정으로 통과시킨다.
52. 방송국 마당(D)
건물 현관으로 걸어가던 최곤이 획 돌아본다.
박동후를 선두로 일렬로 걸어오던 나머지 멤버들이 얼른 박동후 뒤로 몸을 감춘다.
박동후가 의외의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최곤에게 다가온다.
석영과 박기사 의아하게 바라본다.
박동후
선배님, 저희가 마침내
생애 첫 콘서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스트 리버 멤버 일동
우~
하고 소리 내며 고무된다.
박동후
그리고 그 콘서트는 선배님께 바치기로 했습니다.
헌정 공연이라고 할 수 있죠.
(초대장 건네며)
꼭 참석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곤이 초대장을 들여다본다.
이스트 리버 멤버 일동
우~
하며 또 한 번 고무된다.
석영
니들이 이스트 리버니?
이스트 리버 멤버 네 명 모두 여유 있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53. 라디오 스튜디오(D)
석영이 손에 이스트 리버의 초대장을 들고 있다.
박기사
공개방송?
그거 장비 없어서 안 돼.
석영
그건 원주에 얘기해서 내가 책임질게요.
안 해주면 다 죽었어.
100일인데 그냥 보내는 거 보다
공개방송 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선배?
최곤
뭐 거기서 거긴데...
그게 좀 낫지.
박민수
오케이.
박기사, 필요한 장비 목록 꼼꼼하게 작성해서
강피디한테 넘기고
강피디는 원주에 전화...
아니 직접 가서 협조 확실하게 하고,
곤이, 너는... 하여간 잘 하고...
알았지?
하고 보면 어느새 지국장이 들어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박민수를 바라보고 있다.
박민수
(지국장을 발견하고)
지국장님은...
커피 오케이?
하고 얼른 커피 타러 간다.
54. 별마로 천문대 앞 공터(D)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공개방송 준비가 한창이다.
무대 위에선 이스트 리버 멤버들이 악기를 세팅하고 있고,
무대 밑에선 박기사와 원주에서 지원 나온 엔지니어들이 라인을 점검하는데
괜히 왔다 갔다 하던 박민수가 참견하자 핀잔을 준다.
최곤과 석영은 메인 콘솔 앞에서 큐시트를 보며 뭔가 상의하고 있다.
어느새,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이스트 리버를 참견하던 박민수의 눈에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고급 승용차가 들어온다.
승용차 멈추더니 서울의 김국장이 내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비싼 정장을 입은 ‘스타 팩토리’ 사장 최영도가 내린다.
박민수, 김국장을 향해 달려간다.
박민수
연락도 없이...?
김국장
공개 방송 한다 그래서 왔지.
인사하지.
스타 팩토리... 알지? 최영도 사장.
내가 간다니까 같이 와보고 싶다고 해서.
사장,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건넨다.
박민수, 악수하고 명함을 주려 뒤척이는데 명함이 없자 당황한다.
(jump)
헤드폰을 낀 석영이 박기사에게 큐 사인을 보낸다.
공터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정오의 희망곡 시그널’이 나온다.
최곤이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최곤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100회 특집 공개방송!
사람들, “와~”하는 함성.
시그널 음악 이어지는 가운데, 최곤이 사람들 속에서 손을 흔드는 김양을 발견한다.
최곤
어! 김양.
나 커피 안 시켰는데,
누가 시키셨나?
사람들이 모두 김양을 찾아 쳐다본다.
최곤
병원 망할까봐 걱정하던 간호사도 오셨나?
간호사, 사람들 속에서 손 흔든다.
최곤
뱀은 잘 커요?
사람들 와~ 하고 웃는다.
최곤
넷째 아이 임신한 주부님도 오셨어요?
한 주부가 함께 온 주부들 여럿과 함께 손을 흔든다.
최곤
남편, 병원 데려가서 묶었어요?
사람들 또 와~ 하고 웃는다.
최곤
할머니들은 고스톱 치시느라 바빠서
못 오셨을 테고...
사람들 또 한 번 웃고...
최곤
(뒤돌아 이스트 리버를 보며)
여러분, 이 친구들 아세요?
사람들, “예”하고 대답한다.
최곤
참... 영월 좁네.
니들 스타다, 스타.
이스트 리버의 퍼스트 기타가 “찌잉~”하고 울려 화답한다.
최곤
이 친구들 여기까지 악기 메고 올라오느라고
고생했거든요.
노래 들어봐야죠?
무슨 노래 준비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소개합니다.
영월의 자랑, 영월 유일의 락 밴드.
이스트... 리버!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최곤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이스트 리버가 연주를 시작한다.
박동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 와 부푸는 내 마음...
하고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부른다.
노래 선율과 함께 카메라 높이 떠서 이동하면 동강이 굽이도는 영월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최곤이 망연한 눈빛으로 연주하는 이스트 리버를 바라보고 있다.
박민수, 문득 최곤을 보면 최곤에게서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김국장
니들 좀 슬슬해라.
박민수
무슨 소리야?
김국장
니들 땜에 서울 방송국까지 난리야.
니들 방송 인터넷으로 듣는 청취자들이
생방송으로 듣게 해달라고 맨날 전화하고...
안 그래도 서울 정오프로 청취율 안 나와서
죽겠는데 청취자 다 뺏어 가냐?
박민수
그래봐야 라디오 디제이 그 까짓 거.
김국장
(최사장 의식하며)
곤이 사고치지 않게 단속 잘해서
지금처럼 조금만 더 해봐.
곤이 방송, 서울로 이관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박민수
정말이야?
김국장
너 곤이한텐 얘기하지 마라.
걔 알면 또 까불다가 사고 친다.
그리고 너 서울 한번 와라.
박민수
(은밀하게)
곤이한테는 비밀로?
김국장, 슬쩍 최사장을 의식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이스트 리버의 연주가 끝난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최곤이 무대에 오른다.
나란히 서서 최곤을 바라보는 박민수, 왠지 최사장이 신경 쓰인다.
박동후와 이스트 리버 멤버들 펄쩍펄쩍 뛰고 탄성을 지르며 사람들의 환호에 답한다.
박동후
다음 곡은 저희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그 곡은 바로 저기 계신 최곤 선배님의
불후의 명곡...
퍼스트 기타 “찌잉~”하고 분위기 잡는다.
박동후
비와 당신!!!
사람들 환호한다.
최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석영을 바라보면 석영이 씨익 웃어 보이고 박동후에게 오케이 사인한다.
최곤이 손을 흔들어 사양하자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로 최곤의 노래를 청한다.
하지만 끝내 무대에 오르지 않는 최곤.
박동후
선배님이 저희보고 하랍니다.
미친 듯이 한번 놀아볼까요!!
하고 광분하며 전주를 시작한다.
‘노브레인의 미친 듯 놀자’에 흥겨워하는 사람들.
최사장
최곤씨가 이렇게 초라한 무대에서 노래를 하실 순 없죠.
안 그렇습니까?
박민수
...
최사장
재기해서 큰 무대에서
노래하시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하고 사라진다.
박민수 걸어가는 최사장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스트 리버가 부르는 ‘미친 듯 놀자’ 이어진다.
사람들 모두 흥겹게 이스트 리버의 노래에 흠뻑 빠져든다.
최곤, 무대 위 박동후의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박민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55. 영월 거리(N)
최곤과 박민수가 모텔을 향해 걸어간다.
박민수
야, 어떻게 벌써 100일이냐?
니가 또 한 번 큰 사고 칠 때가 됐는데.
최곤
이번에 사고 치면 어디로 데려갈려구?
박민수
자식...
너 아까 왜 노래 안 했냐?
한 곡 하지.
최곤
노래하고 싶어 질까봐.
박민수, 최곤의 의외의 대답에 표정이 굳는다.
박민수
(애써 태연한 척)
자식...
잠시 말없이 걷는 두 사람.
최곤
(불쑥)
아까 김국장이랑 같이 온 친구, 누구야?
박민수
어?... 어... 스타 팩토리 사장.
최곤
그 친구가 왜?
박민수
어... 그냥 왔데.
최곤
자식... 젊데.
56. 영월 방송국 입구(D)
최곤의 차가 방송국 입구에 닿는다.
최곤만 내린다.
최곤
형수한테 뭔 일 있어?
언제 올 건데?
박민수
(운전석에 앉아)
어두워지기 전에 올게.
사고치지 말고 방송 잘해.
박민수, 차를 돌려 숲길로 내려간다.
최곤, 언덕길을 내려가는 차를 바라본다.
57. 서울 방송국 휴게실(D)
박민수가 임백천과 마주 앉아 있다.
임백천
그래봤자지, 뭐.
형 몰라?
요샌 한창 잘나가는 애들은 디제이 안 해.
디제이로 먹고 살려면 나처럼 몇 개를 뛰던지.
박민수
자식이, 곤이 방송 지금 난리 났다니까.
얘가 모르네.
너 김국장이 니 걱정 하더라, 자식아.
니 프로 광고 다 떨어지게 생겼데.
임백천
그래서?
영월에서 디제이로 떴다고 치고,
그게 돈 돼?
박민수
아니... 뭐...
(역정 내며)
돈이야 임마...
그게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곤이가 음반하나 내면 젤 먼저
돈 세는 기계부터 사야 돼.
임백천
형, 곤이 더 맛 가기 전에 업소 열라 뺑뺑이 돌려서
형 노후대책 해요.
음반? 요새 용필이 형이 내도 안 돼.
박민수
아... 이 자식이...
(뭐라 말하려다)
정오프로... 그런 게 있어, 임마.
나 바빠서 간다.
하고 일어난다.
58. 서울 방송국 사무실(D)
박민수가 김국장과 앉아 있다.
김국장
야, 백천이 말이 맞어.
요즘 노래해서 먹고 사는 가수 없다, 너.
박민수
가수가 노래 안하면 뭐해 먹고 살어?
그럼 곤이 서울 와서도 디제이만 하라고?
김국장
(당황하며 눈치주고)
너 지금 시간 있으면...
(하고 망설이다)
민수야, 스타 팩토리 최사장 한번 만나라.
박민수
걘 왜?
김국장
(잠시 말없이 박민수 바라보다)
지금 간다고 전화해 놓을 테니까 가서 만나봐.
좋은 일이야.
박민수
(반색하며)
좋은 일? 무슨 일?
돈 되는 일이야?
59. 스타 팩토리 사무실 입구/로비(D)
박민수가 자동문을 통과해 들어와 세련된 분위기에 다소 주눅 든다.
데스크에 앉아 있는 미녀가 박민수를 바라본다.
박민수 어색하게 웃는다.
60.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이 청취자와 전화 연결 중이다.
부산 청취자-여(E)
여기 부산인데예.
어제 공개방송 잘 들었어예.
최곤
어제 영월 왔었어요?
부산 청취자-여(E)
언제예? 인터넷으로 매일 듣거든요.
저희 엄마도 아저씨 팬이거든요.
(소리 다소 멀어지며)
좀 가만있어 봐라.
최곤
여보세요?
부산 청취자-여(E)
엄마가 옆에서 바꿔 달라고 난리거든요.
(전화기 뺏는 소리 들린다)
여보세요?
부스 밖, 석영이 흐뭇한 표정으로 최곤을 바라본다.
최곤
여보세요? 엄마...?
부산 청취자-엄마(E)
오빠...
저 88년도에 최곤씨 부산 시민 체육관에서
공연할 때 봤거든요.
오빠 방송 부산에서도 생방송으로 들을 수 있으면
억수로 좋을 낀데.
그나저나 한동안 안보이시더니 영월에서 디제이 하시고...
이제 갈 때까지 가셨네예.
최곤, 기분이 팍 상한다.
부산 청취자-엄마(E)
오빠, 신청곡 해도 됩니꺼?
최곤
신청곡은 영월 사람들한테만 받거든요.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61. 스타 팩토리 사장실(D)
박민수 너머 넒은 통유리를 통해 서울 강남의 전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박민수, 상기된 표정으로 최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박민수
(정색하며)
뭐? 나 빼고 곤이랑 계약하겠다고?
이 자식이 이게... 너 나랑 곤이가 어떤 관곈지 알어?
최사장
가수와 매니저 관계 아닙니까?
박민수
니가 매니저가 뭔지 알어?
니가 돈으로 가수 키운다고...
곤이한테도 그게 먹힐 거 같애?
너 이 바닥 몇 년 됐어?
예전에도 너 같은 새끼들 많았어.
88년도에 곤이가 가수왕 먹을 때 너처럼
돈 좀 있는 매니저들이 얼마나 로비했는지 알어?
나 불알 두 쪽 밖에 가진 거 없었지만...
내가 곤이 가수왕 만든 매니저야.
알어? 이 자식아?!
최사장
(실소를 감추며 냉정하게)
그런 날이 다시 올 것 같습니까?
박민수
와, 이 자식아.
내가 그렇게 만들어.
곤이... 음반도 내고, 콘서트도 하고...
시에프도 뛰고... 두고 봐, 이 자식아.
하고 돌아서 입구 쪽으로 향한다.
최사장
음반은 누가 내주고,
콘서트는 무슨 돈으로... 누가 기획합니까?
박민수, 멈춘다.
최사장
시장에 7080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최곤씨는 상품성이 있죠.
최곤씨를 팔 수 있는 마지막 기횝니다.
박민수씨... 최곤씨에게 걸림돌이 되시겠습니까?
박민수씨께도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박민수, 멈춘 채 돌아보지 않는다.
최사장
비즈니스는 타이밍이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입니다.
박민수, 끝내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간다.
62. 스타 팩토리 사장실 앞(D)
박민수가 나와 문을 닫고 기대서서 깊은 한숨을 쉰다.
비서와 눈이 마주치자 무안해 억지웃음을 짓는다.
63. 김밥 집 앞(N)
박민수가 걸어간다.
핸드폰 울린다. 보면 발신자‘가수왕’이라고 뜬다.
잠시 바라보다 전화 받는다.
박민수
응. 곤아.
최곤(E)
어디야?
박민수
왜? 뭔 일 있어?
박민수가 아내 순영이 하는 김밥집 앞에 닿는다.
박민수가 몸을 숨기고 가게 안을 본다.
탁자와 의자 등 집기들이 한쪽으로 모아져 쌓여 있다.
최곤(E)
담배가 없잖아, 담배가.
담배 가게 어디야?
박민수
고... 길 건너에 있어.
최곤(E)
언제 오는데?
박민수가 가게 밖으로 나오는 순영을 발견하고 얼른 몸을 숨긴다.
최곤(E)
여보세요? 형. 민수형.
박민수 살며시 전화를 끊는다.
가게에서 나온 순영이 셔터를 내리고 박민수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박민수, 순영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64. 라디오 스튜디오(D)
노래가 나가고 있다.
박민수가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부스 안의 최곤이 박민수를 발견한다.
최곤
(밖으로 통하는 마이크 누르고)
에이, 씨... 어제 온다더니.
순영이랑 회포 풀고 왔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좋겠다. 마누라 있어서.
석영과 박기사가 최곤의 농담에 웃는다.
박민수
(부스로 다가가 문을 열고)
이 자식...
맨날 순영이, 순영이...
순영이가 니 친구냐?
하고는 부스 문을 닫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간다.
최곤, 그런 박민수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박민수가 스튜디오를 빠져 나가고 노래 끝난다.
최곤
88년이니까... 벌써 근 20년 됐죠?
최곤의 멘트 이어지는 가운데,
스튜디오를 빠져나온 박민수가 방송국 복도를 지나 방송국 마당으로 나와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는다.
박민수의 모습과 멘트하는 최곤의 모습 교차 편집으로 보여진다.
최곤
"부활" 에서 탈퇴 한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자식 말이야, 그냥 있지... 탈퇴를 해 가지고.
그리고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 이거 난리 났었습니다.
게다가 대학가요제에선 생각지도 않았던 신해철이 떴고,
사랑과 평화에서 베이스 치던 이남이 선배는
"울고 싶어라"로 아주 뽕을 빼고,
이상은은 "담다디" 로 데뷔해서 영화까지 찍고...
이선희는 "나 항상 그대를"로 소녀들의 심금을 울렸죠.
그 해에 가수왕이 얼마나 치열했겠습니까?
매니저들... 자기가 데리고 있는 가수, 가수왕 만들려고
아주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하지만 가수왕, 그게 로비로 됩니까?
결국은 실력으로! 누가 됐느냐?!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제가 먹었습니다.
그 때, 내 노래! 비와... 당신!!
멘트를 마친 최곤 ‘비와 당신’을 내보내고 보면,
스튜디오 부스 창 너머 벤치에 앉아 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박민수의 뒷모습 보인다.
65. 방송국 마당(D)
방송국 건물에 달린 스피커에서 '비와 당신‘ 이 흐른다.
최곤이 건물을 빠져 나와 박민수가 앉아 있는 벤치로 온다.
최곤
(박민수 옆에 앉으며)
담배.
...
뭔 일 있지?
박민수, 담배 주며...
박민수
어제 담배 안 샀냐?
(불 붙여 준다)
최곤
내가 담배도 못살까봐?
박민수
(담배 한 대 깊게 빨고)
곤아, 저 동강이 말이야...
최곤
동강이 뭐?
박민수
저게 동쪽으로 흘러서 동강이냐?
동쪽에서 시작 되서 동강이냐?
최곤
전문대 나왔다는 거 거짓말이지?
동쪽에 있어서 동강이야.
박민수
곤아... 영월 좋지 않냐?
서울 가봐야 뭐 있어?
여기서 평생 니 노래나 틀면서 살자.
박민수, 고개 돌려 최곤 본다.
최곤
(일어나 담배 버리고 비벼 끄며)
순영이 데려다가 형이나 평생 살어.
최곤, 현관 쪽으로 간다.
박민수, 최곤이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최곤의 뒷모습 바라본다.
66. 별마로 천문대 관측실(N)
최곤이 박민수에 이끌려 들어온다. 다른 사람 아무도 없다.
최곤
여긴 왜 오자고 한 거야?
박민수
좋잖아. 별보고.
최곤
하여간 촌스러워요.
박민수, 망원경에 얼굴을 박고, 별을 본다. 한참동안...
최곤
좀 나와 봐.
박민수, 비키지 않는다.
최곤
비켜 봐. 나도 좀 보게.
박민수
(안 비키고)
별 진짜 많다.
최곤
나도 좀 봐.
최곤, 박민수가 계속 보자 같이 보려고 얼굴을 들이민다.
최곤이 망원경으로 별을 본다.
최곤
우와, 죽이네.
이거 볼 만하구만.
박민수
(잠시 최곤을 바라보다)
곤아, 너 아냐?
최곤
뭘?
박민수
별이 말이지...
지가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다.
최곤
(망원경 계속 보며)
그럼?
박민수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최곤
태양은?
박민수
...
최곤
(말 없는 박민수를 힐끔 보며)
고졸이 확실해.
하고는 다시 망원경에 얼굴을 처박고 별을 본다.
최곤
별이... 동그랗네.
별 모양이 아니네.
박민수, 말없이 최곤을 한동안 바라본다.
박민수
곤아.
최곤
또 뭐?
박민수, 불러 놓고 말이 없다.
최곤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박민수를 바라본다.
박민수
나 서울... 갈려고.
최곤
순영이한테 정말 무슨 일 있어?
박민수
이 자식이 또 순영이...
순영이 김밥집이 너무 잘 되서
가게를 넓히는데...
최곤
그래? 잘됐네.
하여간 음식 솜씨는 타고 났어요. 근데?
박민수
늙어서 따신 밥 얻어먹으려면 지금이라도
기어 들어가서 카운터라도 봐야지.
최곤
형, 카운터 안보는 게 순영이...
(얼른)
아니, 형수 도와주는 거야.
하고 무시하고 다시 별을 본다.
박민수, 별을 보는 최곤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위를 본다.
관측실의 열린 천정 사이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67. 라디오 스튜디오(D)
시그널이 나가고 있다.
최곤, 박민수에게 뭔가를 종용하고 있는데 박민수가 빼는 모습이다.
석영이 큐사인을 보낸다.
박민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에 다가 앉는다.
시그널에 물려 ‘George Baker의 I've been away to long’의 전주 흐른다.
박민수
How can I say to you I love somebody now
(내가 누군가를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당신께 말할 수 있겠어요?)
You were so good to me always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어요.)
And when I see your eyes I can't go on with lie.
(내가 당신의 눈을 볼 때면 나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It breaks your heart but I just can't hide it, oh no
(그것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숨길수가 없네요. 오노~)
최곤, 심각하기 그지없는 박민수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박민수, 그런 최곤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진지하게 가사를 읊는다.
(jump)
박민수
Don't look that way to me.
(그렇게 나를 보지 마세요.)
It hurts you so I see. But I just can't go on with lie
(그것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요..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I gave you all I had. So there is nothing left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한테 주었어요.. 그래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I may be wrong. But I'd better go now. oh no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나는 지금 가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오노~)
I,I've been away too long. Now I just can't go on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어요, 나는 지금 갈수가 없어요.)
I've been away too. I,I've been away too long
(너무 멀리~~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No, I can't feel so strong. I've been away long
(나는 그렇게 강하게 느낄 수가 없어요..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박민수, 부스 밖 석영과 박기사를 바라보면
석영과 박기사가 재밌어 하는 밝은 표정으로 박민수를 보고 있다.
최곤, 지나치다 싶게 심각한 박민수의 표정에 다소 의아해 한다.
박민수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스페어 디제이 박민수였습니다.
조지베이커의 ‘I've been away to long’ 들으셨습니다.
최곤
안녕하세요? 최곤입니다.
한 때 음악다방 디제이로 한 가닥 하던
스페어 디제이 박민수씨의 오프닝...
분위기 확 다운되는 게 죽이지 않습니까?
제대로 다운된 분위기,
신중현의 미인으로 살려보겠습니다.
미인 전주 나간다.
박민수, 일어나 말없이 부스 밖으로 나간다.
최곤, 부스를 빠져 나가 무거운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빠져 나가는 박민수를 바라본다.
신중현의 노래, ‘미인’... 이어진다.
68. 모텔 방(N)
박민수가 미인을 부르고 있다.
최곤
시끄러, 좀.
박민수, 아랑곳 않고 부른다.
최곤, 보다 못해 기타를 빼앗아 버린다.
박민수
(불쑥)
곤아, 나 서울 간다.
최곤, 박민수를 보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jump)
최곤, 상기되어 있다.
최곤
농담이 아니었단 말야?
그럼 나는?
마누라도 뭐도 없는 나는?
박민수
...
최곤
난 여기서 이렇게 그냥 썩으라고?
박민수
이제 니 앞길 니가 알아서 해.
최곤
(어이없어 헛웃음 지으며)
언젠 형이 내 앞길 터 줬어?
박민수, 바라보면...
최곤
내 말이 틀렸어? 맞잖아.
형 나 잘 나갈 때 가오 잡은 거 말고 한 거 없잖아.
박민수
(굳은 표정으로)
그래, 이 자식아.
근데 이제 가오가 안서잖아.
그래서 갈려고.
뭐 잘못됐어?
최곤
도대체 이유가 뭐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군데.
시골 방송국 디제이, 가오 안 설 줄 알면서도
끌고 온 게 누군데.
박민수
안 왔으면? 영창에 있으면 가오 서고?
가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인생 누구 땜에 조졌는데.
너 이 자식, 키워줬더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최곤
막판에 배신하겠다 이거지? 엉?
나쁜 자식...
박민수
뭐? 자식?
최곤
그래.
가서 마누라한테 따신 밥 얻어먹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최곤이야. 알어?
나 최곤이라고!
박민수
...
최곤
가.
(방안의 박민수 물건 집어 던지며)
대신 갈려면 지금 당장 가.
박민수, 대충 짐 챙겨 진짜 간다.
최곤, 멍하게 서 있다.
문 닫히는 소리 들린다.
멍 하게 서있던 최곤이 달려가 창문을 열어 재낀다.
내려다보면 박민수가 여관을 나가고 있다.
최곤
야, 박민수.
한 가지만 알고 가!
박민수, 멈추지 않고 걸어간다.
최곤
나 다신 형 얼굴 안 봐.
알어?
박민수의 모습 멀어진다.
멀리... 창가에 서 있는 최곤의 모습 보인다.
69. 김밥집 앞(N)
박민수가 순영의 김밥집 앞에 서있다.
셔터가 내려져 있다.
70. 박민수의 집 (N)
지하 집 문 앞에 서있던 박민수 벨을 누른다.
문이 열리며 나오는 순영, 문 앞에선 박민수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거실로 들어가...
다듬던 김밥 재료들을 계속 만진다.
박민수
미정이는?
순영
(돌아앉은 채로)
자.
박민수 방 문 열어보면 딸이 곤히 자고 있다.
박민수
김밥집은 어떻게 된 거야?
순영
망해서 문 닫았지, 뭐가 어떻게 돼.
박민수
근데 김밥은 왜?
순영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팔면 곧잘 팔려.
박민수, 말없이 순영의 등을 내려다본다.
71.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 전화 연결 중.
할머니1(E)
저번의 그 할망구가 멍박이 있다고
우겨서 그러는데 그 전문가 양반 좀 바꿔줘.
최곤
(짜증내며)
그냥 대충치세요.
거, 점 10원짜리 치시면서...
제가 내 드려요?
하고 전화 끊고 노래(선곡 미정) 틀어 버린다.
석영
(부스 안으로 들어 와)
정말, 왜 그래요?
최곤
뭘?
석영
그럴 거면 아저씰 찾아요.
최곤
내가 그 자식을 왜 찾어?!
돌아 앉아 외면한다.
72. 지국장실(D)
최곤 석영 지국장 박기사가 소파에 앉아 있다.
지국장
강피디, 너 원주로 금의환향 못하게 생겼다.
석영, 의아해 바라본다.
지국장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서울로 옮긴단다.
너 서울로 발령 낸데.
최곤도 놀란다.
석영
정말이요?
선배...
하고 감격한 표정으로 최곤을 보면 최곤 멍한 표정이다.
박기사
여기는요?
지국장
원주랑 통폐합 하고...
넌 나랑 원주 가야지.
최곤씨, 축하합니다.
청취자들한텐 내일 바로 알리죠.
73. 라디오 스튜디오(D)
시그널 흐른다.
최곤
(복잡한 심기를 감추고)
여러분, 제가 방송하는 모습 궁금하지 않으세요?
전 예전에 라디오 들을 때 디제이의 모습이
궁금하곤 했는데... 아님 말구요.
전, 제 방송을 듣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김양... 지금 다방에 있어요?
김양은 인기가 좋으니까 배달 나갈 준비하나?
INS. 터미널 다방
막 배달을 나가려던 김양이 멈춰 서서 스피커를 바라본다.
최곤
중국집 장씨는 라디오에 정신 팔려 있다가
주방장한테 뒤통수 얻어맞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INS. 중국집
“너 빨리 안 해!”하고 장씨를 때리려던 주방장이 방송을 듣고 팔을 멈춘다.
최곤
고스톱 매니아 할머니,
제가 알아봤는데요, 멍박은 정하기 나름이랍니다.
싸우지 마시고... 미리 정하고 치세요.
INS. 마을 회관
패를 돌리던 고스톱 할머니, “멍박은 없는겨”하고... 마저 패를 돌린다.
최곤
야, 동강...
니들 오늘은 누구 코스프레냐?
설마 키스는 아니겠지?
INS. 이스트 리버 연습실
키스를 흉내 내느라 화장품으로 얼굴에 떡칠을 하던 이스트 리버 멤버들 “우~” 환호한다.
최곤
저보고 서울 가래요.
첫 곡 나갑니다.
노래(선곡 미정) 나간다.
석영, 부스 안의 최곤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최곤이 일어나 부스 밖으로 나온다.
석영
왜요?
최곤
커피 한잔 하려고.
석영
들어가 계세요.
제가 타드릴게요.
석영,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김씨가 김장훈을 데리고 들어온다.
모두 놀란다.
김씨
서울에서 온 인기 가수라는데.
김장훈이 부스 안의 최곤을 보며 씨익 웃는다.
최영도 사장 뒤따라 들어온다.
74. 방송국 앞 팔각정(D)
김장훈이 최사장의 차에 기대 서있다.
김장훈의 시선으로 보면 저만치 떨어진 곳에 최곤과 최사장이 나란히 서있다.
최사장
서울로 오시면, 바빠지셔야죠.
최곤
나 지금도 바빠요.
최사장
재기하셔야죠.
최곤
내가 언제 쓰러졌었나?
최사장
저희 회사와 계약하시죠.
최곤
그런 얘긴 제 매니저랑 하쇼.
최사장
박민수씨하고 결별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최곤, 고개 돌려 최사장을 본다.
최곤
당신 민수형 만났어?
최사장
...
최곤
언제 만났어?
최사장
의외로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으시더군요.
짧게 말씀드렸는데 별 망설임 없이
최곤씨를 위한 결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최곤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고)
너... 민수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최사장
민수씨와 함께 최곤씨의 미래에 대해 논의 했습니다.
민수씨에게도 섭섭지 않게 해드리려 했습니다마는...
최곤
입 닥치고...
너 이 자식,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어?
최곤의 말에 놀라는 김장훈, 둘 사이를 끼어들며 말린다.
김장훈
형 뭐하는 거야?
최곤
넌 입 닥치고 가만있어!!!
최사장
(당황함을 숨기며)
말씀을 좀 가려 하시죠.
최곤
너 내가 지금 너 치면...
그래서 깜방 가면... 꺼내줄 사람이 없거든.
민수형 있었으면 넌 죽었어, 자식아.
최사장, 주춤거리다 사라진다.
최곤, 홀로 남겨진다.
75. 서울 방송국 사무실(D)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김국장이 곤란한 표정이다.
김국장
이 미친놈아, 뭔 소리하는 거야? 지금.
하여간 이 꼴통 때문에 내가 미쳐.
방송 이관이 낼 모렌데...
니가 나 옷 벗길라고 작정을 했구나.
76. 방송국 앞 팔각정(D)
노을이 지는 어라연 강가에 선... 김국장과 전화하는 최곤의 뒷모습.
최곤
하여간 난 서울 안 가.
나 여기서 그냥 이렇게 살 거야.
김국장(E)
너 재기하기 싫어?
최곤
응, 싫어.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77. 라디오 스튜디오(D)
석영이 최곤을 노려본다.
석영
이유가 뭐예요?
최곤
나 여기가 좋아.
석영
난 여기가 싫어요.
최곤
그럼 넌 가.
석영, 최곤을 노려본다.
석영
아저씨 때문이죠?
최곤
그 자식 얘기 꺼내지 마.
민수형, 내 옆에서 가오 잡은 거
말고 한 거 아무 것도 없어.
석영
아니요.
선배 이날 이때까지 스타로 살았잖아.
망가져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스타로 살게 해줬잖아.
그게 매니저잖아.
최곤, 석영을 노려본다.
78. 지국장 실(D)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역대 지국장들의 사진.
사진들 꽤 앞쪽에 젊은 김국장의 사진... 그리고 맨 끝에 (현재의)지국장 사진 걸려있다.
김국장(off-sound)
그럼 어쩌냐고?
기사 다 나가서 청취자들 최곤 방송
들을 날만 기다리고 있고...
내가 임백천이하고 의절해 가면서
겨우 방송 시간 비워 놨는데...
지국장
(즐기듯)
그러게 최곤을 왜 보냈냐고요?
김국장(off-sound)
하여간 예정대로 곤이 방송 전국으로
쏘는 거니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지국장
여기서 방송하는 걸 전국으로 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합니까?
아... 역시 국민의 방송 KBS 대단합니다.
아니... 저야 원주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니까... 뭐.
79. 영월 방송국 입구(D)
김씨가 플랭카드를 걸고 있다.
<축! 영월 KBS‘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전국 송출>
80.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입구(D)
박민수가 순영과 함께 출근길의 직장인들에게 김밥을 팔고 있다.
그 옆 신문 가판대의 신문에 최곤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다.
박민수가 보면,‘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라디오 방송 사상 최초로 지방에서 전국으로 송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81. 방송국 스튜디오(D)
시그널이 나가고 있다.
스튜디오에 서울의 김국장 모습도 보인다.
석영, 부스 안으로 큐 사인을 준다.
최곤
(느끼하게)
처음이라는 말처럼 설레는 단어가 있을까요?
첫 울음, 첫 눈, 첫 만남...
석영, 피식 웃으며 부스 안의 최곤을 흘긴다.
최곤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방송...
제가 영월에 와서 첫 방송 할 때
피디가 써준 오프닝 멘트였습니다.
그 때 읽다가 토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읽으니까 유치한 게 참~ 좋네요.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최곤입니다.
Buggles 의 video killed the radiostar 전주 나간다.
최곤
첫 곡이 뭘까~요?
다 같이 듣고 맞춰 봅시다.
INS. ‘video killed the radiostar’흐르는 가운데...(항공 촬영)
영월 방송국의 송전탑에서 동강 줄기를 따라 영월의 전경을 보여주며 떠가는 카메라.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KBS의 송전탑을 시작으로 각 도시의 전경 펼쳐진다.
82. 순댓국 집(N)
손님 없는 가운데 최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이 떨어진다.
(jump)
호영이 최곤의 잔에 술을 따른다.
최곤은 마주 앉은 호영의 소주잔에 콜라를 따른다.
호영
(잔을 들어)
건배.
최곤
(잔 마주치며)
원 샷.
호영
(빈 잔을 머리 위에서 뒤집으며)
확인.
주방에 있던 할머니가 최곤과 호영의 모습을 바라본다.
83. 방송국 스튜디오(D)
광고 나오고 있다.
호영, 헤드폰을 끼고 최곤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똘망똘망하다.
최곤
요거 끝나면 하는 거다.
호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곤
편지 가져왔지?
호영
다 외웠어요.
광고 끝난다.
최곤
자, 시~작.
호영이 마이크 앞으로 다가간다.
84. 서울 어느 버스 안(D)
박민수, 순영과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버스 스피커에서 최곤의 방송이 나오고 있다.
호영(E)
아빠... 아빠, 저 호영인데요...
아빠, 이제 집에 오면 안돼요?
85. 라디오 스튜디오(D)
호영의 말 이어진다.
호영
아빠 나가고 할머니가 식당 하시는데
할머니 밤마다 울어.
아빠, 아빠가 와서 옛날처럼 식당하면 안돼요?
최곤, 딱한 표정으로 호영을 바라본다.
INS. 호영의 말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서울역, 인천-연안부두 대합실, 부산-광안리, 대구-달성 공원, 광주-무등산 공원 등... 전국에서 최곤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 스케치된다.
호영
아빠, 아빠 나 땜에 나간거지?
그지?
(울먹이며)
나 이제 우영이하고 안 싸우고
할머니 말 잘 들으니까 이제 돌아오세요.
꼭 돌아오세요.
최곤
(보다 못해)
누가 그래?
호영
예?
최곤
아빠가 너 땜에 집 나갔다고 누가 그래?
호영
아빠가 술만 먹으면 그랬었거든요.
내가 자꾸 동생이랑 싸우고
할머니 말 안 들어서 못 살겠다고.
최곤
니 아빠 이름 뭐야?
호영
정상철이요.
최곤
야, 정상철.
너, 나 알지?
내가 당신 식당에서 사인해 줬잖아.
너 당장 돌아와.
야, 이 나쁜 자식아.
마누라 찾으러 집 나간 건 좋다 이거야.
근데 애가...
(분을 못 이겨 말을 잇지 못하다)
너 이 자식, 일단 돌아와.
와서, 호영이한테 그게 아니라고...
너 땜에 나간 거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 나가.
최곤이 화내는 모습에 호영이 겁을 먹는다.
호영
아저씨...
그게 아니구요.
최곤
(버럭)
넌 가만있어!
호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최곤
너, 지금 어딨어?
당장 돌아와.
알았어? 이 나쁜... 박민수 같은 자식.
호영
아저씨...
최곤
울지 마.
니가 뭘 잘못했다고 울어.
울지 말라니까!
이 자식아, 니가 애비냐?
당장 돌아와.
호영, 결국 “으앙~”하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최곤이 서둘러 노래를 내보낸다.
최곤
노래 들으시겠습니다.
뭐더라?
(흥분해서)
그냥 들으십시오.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나간다.
최곤이 호영을 덥석 안는다.
최곤
울지 마.
넌 잘못한 거 없다니까 왜 울어?
울지 마.
최곤이 호영을 더욱 꼬옥 안는다.
호영, 최곤에게 안겨 울음을 참아보려 하지만 계속 어깨가 들썩인다.
바라보던 석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최곤
(갑자기 음악을 끊으며)
저도 사람 한 명 찾겠습니다.
석영이 유리 너머 최곤을 바라본다.
최곤
이름 박민수.
나이 마흔 여섯.
형!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돌아와, 씨...
장난치는 거지?
죽어.
나 그냥 친구들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한다 그러는데 형이 꼬드겼잖아.
키워 준다며?
조용필이 저리 가라로 만들어 준다며?
86. 서울 어느 버스 안(D)
방송을 듣다 놀라 할 말을 잃는 순영.
박민수는 순영을 의식하며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최곤(E)
형, 나랑 천문대 가서 별 볼 때 그랬지?
87. 라디오 스튜디오(D)
최곤
형, 듣고 있어? 형이 그랬지?
지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며.
와서 좀 비쳐주라. 쫌.
나, 빤딱빤딱 광내고 제대로 빛 한번 내보자...
최곤, 고개를 떨군다.
보던 호영이 최곤을 다독거린다.
88. 서울 어느 버스 안(D)
박민수가 창밖을 바라보며 애써 최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순영, 박민수의 옆구리를 찌른다.
박민수 찌르지 말라고 순영을 밀친다.
순영
가라.
박민수
어딜 가?
순영
가.
박민수
안 가.
순영
나 최곤 팬클럽 회장이야.
안 가면 애들 풀어서 가만 안 둬.
박민수, 순영을 바라보다 외면한다.
순영
가, 이 화상아.
난 너 없어도 살아.
곤이 오빤 너 없이 못 살아.
당신도 최곤 없이 못 살잖아.
가.
박민수, 순영을 바라본다.
89. 라디오 스튜디오(D)
INS 비가 내린다.
광고 방송이 나가고 있다.
석영
노래 끝나고 전화 연결 할게요.
최곤
오늘은 그냥 차분히 음악 좀 듣지.
석영
해야 돼요.
노래 잦아든다.
최곤
(힘없이)
여보세요.
호영(E)
아저씨.
최곤
호영이?
호영(E)
예. 아저씨, 아빠 왔어요.
최곤
뭐? 정말?
호영(E)
예. 어젯밤에 오셨어요.
최곤
아빠 바꿔봐.
호영(E)
아빠, 아저씨가 바꿔 달래.
(하고 외친다)
싫대요. 아저씨 무섭대요.
아저씨, 노래 신청해도 돼요?
아빠가 신청해 달라고 한 건데.
최곤
뭔데?
호영(E)
비와 당신이요.
(jump)
최곤 기타를 퉁기며 ‘비와 당신’을 부르기 시작한다.
최곤의 마음이 가득 담긴 ‘비와 당신’
석영이 최곤과 최곤의 노래에 젖어 든다.
90. 영월 방송국 전경/영월 전경(D)
빗속의 영월 방송국.
비에 젖은 송전탑 너머 영월 시내 전경이 보인다.
최곤이 부르는 ‘비와 당신’이 영월 시내를 촉촉이 적신다.
91. 방송국 건물 현관(D)
최곤이 쪼그리고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최곤 너머, 복도를 지나던 석영이 잠시 최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사라진다.
최곤, 발 앞에 고인 물에 떨어져 튕기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문득 고개를 들면 우산을 쓴 한 사내가 방송국 입구를 지나 걸어오고 있다.
우산 밑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얼굴, 박민수다.
최곤,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박민수가 다가와 최곤 앞에 선다.
박민수
(아무렇지도 않게)
뭐하냐?
최곤
담배 사러 갈려고 했는데...
에이, 씨... 비가 오냐...
박민수, 피우던 담배를 내민다.
최곤, 잠깐 망설이다 받아 한 모금 피운다.
최곤
침을 묻히냐?
하고 짜증내며 담배를 빗물에 버리고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박민수
아이, 자식... 장초를 버리냐?
그거 침 아냐.
비야, 임마.
하며 최곤을 따라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92. 방송국 전경(D)
맑게 갠 날씨.
중국집 오토바이가 방송국 정문을 지난다.
93. 라디오 스튜디오(D)
‘유앤미블루의 언제나 내 곁에’, 나가고 있다.
부스 안에서 최곤이 박민수와 짬뽕을 먹으며 뭐가 재밌는지 키득거린다.
석영이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일어나 부스로 들어간다.
석영
(들어서며)
왜 부스 안에서 밥을 먹어요?
최곤
그럼 어뜩하냐?
방송 시간이 딱 밥 땐데.
아침도 안 먹고 나오고.
석영
왜 아저씨까지 이래요?
박민수
단무지가 하나라.
석영,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 관두고 짜증내며 나간다.
최곤과 박민수, 맛있게 짬뽕을 먹는다.
노래 끝나가자 최곤이 멘트 할 준비를 한다.
그사이 박민수가 하나 남은 단무지를 날름 가져다 먹는다.
최곤
장씨, 여기 단무지 하나만 더 갖다 줘.
다음 곡 들으시겠습니다.
이스트 리버의 ‘비와 당신’
이스트 리버가 리메이크 한 ‘비와 당신’힘차게 나온다.
에필로그...
홍대의 인디 밴드 클럽, ‘비와 당신’ 이어진다.
서울로 입성한 이스트 리버가 열정적으로 ‘비와 당신’을 연주한다.
정열적으로 환호하는 사람들... 영화 ‘라디오 스타’의 출연진과 스탭들이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