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金. 맑음, 흐릿한 기운이 공기 중에 살짝 휘도는
04월08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차를 고북 주차장에 주차시켜놓고 태평거사님 차로 바꾸어 탔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태평거사님 차에 다섯 사람을 가득 태우고 도비산島飛山 동암東庵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사명寺名이 동암東庵이니 도비산 동쪽에 위치한다하면 산 반대편에 있는 부석사는 그럼 서사西寺가 되는 셈인데 방향으로만 따진다면 맞는 말입니다. 서편이 잘 보이는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서해 바닷가 풍경도 썩 볼만하지만 동남편을 잘 볼 수 있는 동암에서 내려다보는 세만금 간척지와 드넓은 하늘도 뛰어난 풍광입니다. 동암은 사실 암자庵子라기에도 오밀조밀 협소한 토굴土窟 같은 수행처修行處입니다.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활짝 펼친 일산日傘아래로 인법당 채가 몽땅 들어갈 만큼 도량 터가 좁아서 많아야 두 사람 혹은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이년 전 이맘 때 동암을 찾아왔던 기억 속에는 봄비에 흩날리는 나비춤의 낙화落花가 아주 인상적인 공간에 벚꽃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흐득이는 봄비에, 부연 산안개에, 외론 날갯짓 분분한 낙화에, 풍경 속에 들어 가버린 우리들을 보듬어 안은 채 은연隱然스레 아득하고 소롯한 세상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충청도 산이라 그리 높지 않은 도비산島飛山이지만 마을을 지나 산기슭에 들어서서 요리조리 올라가는 동암 가는 길이 제법 길어서 구절양장九折羊腸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불구불 산길의 정취情趣를 전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했습니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도비산 남향받이 길을 이리저리 오르다가 마지막 작은 산굽이를 돌아서자 도량 입구 겸 주차장에 차가 네 대나 주차되어있었습니다. 우리들을 실은 차는 그대로 주차된 차들을 지나쳐 저 안쪽으로 살살 달려서 9부 능선 고요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정하고 멈춰 섰습니다. 산이나 강에도 주인이 있는 법인데 차마다 낱낱의 주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것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하늘이나 허공이나 공기에도 그리고 별과 달에도 주인의 이름이 걸리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튼 한 대는 무진주보살님 차, 한 대는 전 거사님 차, 한 대는 동암 차, 그리고 또 한 대는 누군가 임자가 있겠지요.
일행들과 차에서 내렸더니 스님은 한 분도 보이지 않는데 전 거사님이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반겨주었습니다. 아, 주지스님께서는 미국에서 개원 중인 선센터에 지도방문을 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도비산島飛山의 봄은 연암산鷰巖山보다 더 천천히 오고 있는 듯했습니다. 법당 앞 둥치 굵은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맺힌 꽃망울들이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 수많은 꽃망울들이 터져 나와 활짝 웃음꽃을 피워낸다면 마치 동암東巖 지붕에 보름달이 얹힌 것처럼 둥글고 하얀 빛 무리가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퍼져 나올 것입니다.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법단위에 관을 쓴 채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사람얼굴을 하고 있는 보살상이 모셔져있었습니다. 아마 관세음보살님 같은데 산중 자그마한 인법당에 딱 어울리는 생생한 부처님입니다. 그 옆으로 모셔져있는 나한상은 형상이 독성님 같은데 상의를 벗고 있는 모습이나 상호가 참 자연스럽습니다. 보살님께 참배를 한 뒤에 독성님께도 참배를 했습니다. 법당에서 밖으로 나왔더니 무진주보살님은 도량 가장자리에 더부룩하게 자라난 봄나물을 열심히 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지로 인법당을 덮고 있는 벚나무 쳐다보았더니 한창 봄기운이 오르고 있을 법한 누른빛이 감돌고 있을 뿐 난만爛漫하게 화사華奢한 만개滿開를 기다리기에는 아직 한 주일이나 열흘쯤의 시간이 더 필요할 듯싶었습니다. 도비산 동암의 계절은 고북보다 일주일가량 늦어보였습니다. 열악한 동암 주거환경이지만 공양간만큼은 현대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바닥의 네모 판을 들어내면 검정가마솥이 올려있는 아궁이 속으로 군불을 땔 수 있도록 아궁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간 이상한 일이지만 절집 공양간에는 검정가마솥이 올려있는 커다란 검은 아궁이가 있어야 그것을 쳐다보는 내 마음이 언제나 편안하고 즐거워집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물론 모르시겠지만 절집에 내려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어느 고을에 사또가 새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신임사또가 워낙 불심이 좋은 분이라서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일정이 관내 유명사찰을 방문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관아로부터 통지를 받은 사찰에서는 마침 큰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도중이라 관할 사또의 영접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쓸고 닦고 대청소를 실시하고 점심공양으로 권할 음식을 준비를 하는 등 도량 안팎으로 다음날 손님맞이에 만전을 기하고 난 후 모두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잠속에서 주지스님께 현몽現夢이 있었습니다. 꿈에 대중들이 대중방에 모여 발우공양을 하고 있는데, 대중방 상단에 모신 관세음보살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지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후원의 검정가마솥을 열어 보고 그 아래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고 오너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후원으로 들어가 검정가마솥을 열어보고 아궁이 속을 들여다본 뒤에 다시 대중방으로 돌아와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신임사또가 절에 오면 법당보다 맨 먼저 후원에 들어가 검정가마솥과 아궁이 속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들이 아무리 청결하게 청소가 잘 되어있고 진심으로 환대를 하더라도 검정가마솥이 반질반질 윤이 나지 않고 아궁이 속에 재가 많이 쌓여 있으면 신임사또의 환심을 사기는 어려울 것이니라.” 하시고 나서는 다시 상단으로 올라가 가부좌하고는 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지스님이 관세음보살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점잖으신 신임사또께서 절에 처음 방문하는 길에 다짜고짜 먼저 후원으로 들어가 검정가마솥을 열어보고 아궁이 속을 들여다본다고 하시니 그런 괴이한 연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관세음보살님께서 답해주었습니다. “응, 그럴 것이다. 그 신임사또가 전생에 여기 절에서 십년 동안 행자생활을 하면서 공양주를 맡아보았는데, 그때 주지스님 성격이 워낙 깔끔해서 검정가마솥과 아궁이 속 청소를 날마다 해야 했던 습習이 현생現生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이제 알겠느냐.” 아침에 일어난 주지스님께서는 너무도 선명한 현몽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직접 후원으로 내려가 검정가마솥을 열어보고 그 아래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직접 검정가마솥과 아궁이 속 청소를 새로이 했습니다. 사시마지불공에 맞추어 절을 방문한 신임사또는 모든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역시 맨 먼저 발길을 향한 곳은 관세음보살님 말씀대로 후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정가마솥을 열어보고 또 그 아래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신임사또 방문이 있고 나서 사또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도량 불사는 온전하고 성대하게 잘 회향廻向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분명코 그랬습니다. 동암의 산과 하늘아래 서서 차를 마실 분은 차를, 커피를 원하는 분은 커피를, 동암 맑은 공기를 탐하는 분은 청정공기를 한 모금씩 목구멍으로 들이키고 다시 차에 올라 우리들은 고북으로 달려갔습니다.
간월암에서 순례를 마친 도반님들을 배웅을 하고 난 뒤 정덕거사님과 묘길향보살님이 먼저 칼국수 집에 와있었습니다. 비좁은 방에 그러나 정감 넘치는 아늑한 장소에 상을 두 개 들여놓고 모처럼 일요법회 성원이 된 13명의 도반님들이 함께 들어앉으려니 다소 붐비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낙화보살님이 나는 나가서 있겠다면서 홀에서 주인보살님과 자리를 맞춘 덕분에 그나마 방에서 편하게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집의 특품요리인 갱개미 무침과 만두 해물칼국수가 차례로 들어와 담소를 나누면서 모처럼 후끈한 땀을 흘려가며 맛나게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맵자한 갱개미 무침이 다소 매운 둣하지만 입안이 화끈하고 시원한 맛에 자꾸자꾸 먹게 되었습니다. 새우와 쭈꾸미와 버섯과 미더덕이 잔뜩 들어있는데다가 이집 수제만두가 풍덩풍덩 들어있는 해물칼국수 또한 진하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나는 본래 국수 종류나 칼국수를 별로 즐겨하지 않았는데 고북 천장사에 다니면서부터 한 번 두 번 먹게 된 칼국수에 맛이 들려서 이제는 칼국수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날그날 새로 담근다는 김치가 맛이 뛰어나 참으로 착착 혀에 감겨들어왔습니다. 전 거사님의 신행이야기도 듣고, 정덕거사님께서 고향 도반님들과 함께 하던 정진이야기도 들어보고, 묘길향보살님의 삼천 배 정진 이야기도 신심 돋게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中道인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 그리고 십이연기十二緣起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으니 사실 이만한 법담法談이 따로 없었습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한 수월거사님, 길현화보살님, 묘현궁보살님, 김화백님의 빈자리가 다소 아쉬웠지만 머지않아 모두 함께 하는 자리가 금세금세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검정가마솥과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처럼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