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경(李圭景 1788~1856 五洲)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아정 이덕무의 손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학문은 선대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덕무(李德懋)는 박학다재해서 고금의 제자백가와 기문이서(奇文異書)에 까지 통달했고, 문장도 새로운 풍을 일으켜 인정(人情)과 물태(物態)를 곡진히 그려내었다. 일찍이 정조가 규장각을 열고 명사(名士)를 검서관에 등용할때 그의 할아버지는 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서이수(徐理修)와 함께 이른바 ‘4검서(檢書)’라 일컬어졌다.
아버지 광규도 할아버지를 이어 검서관에 등용되어 오랫동안 규장각에서 일하였다. 그는 이러한 가풍 위에 당시 팽배하던 청조 실학(實學)의 학풍에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금사물(古今事物)에 대한 수백 종의 서적을 탐독해 천문·역수(曆數)·종족·역사·지리·문학·음운(音韻)·종교·서화·풍속·야금(冶金)·병사(兵事)·초목·어조등 모든 학문을 고정변증(考訂辨證. 옛 서적의 진위와 異同을 조사해 밝히고 개념을 논리적으로 분석 연구함)하여 1400여 항목을 담아 ≪오주연문장전산고≫ 60권을 집대성 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이룩한 실학을 계승, 조선 후기 실학을 꽃피운 박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5 논사류2에 실린 「동국(東國) 제일의 인재에 대한 변증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국(東國) 제일의 인재(人材)에 대한 변증설- 이규경/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편5 논사류2
우리 동국 제일의 인재를 누가 품정(品定)할 수 있으랴. 그러나 일찍이 나의 조부(祖父.이덕무)께서 책상자 속에 기록해 둔 자료를 얻어 본《장전산고(長箋散稿)》에 기록, 이 다음 사람으로 하여금 이분들에 대한 소전(小傳)이나 소찬(小贊)을 지어 존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대비하는 바이다.
즉, 퇴계(退溪)의 덕(德),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시(詩), 간이(簡易) 최립(崔岦)의 문(文),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경륜(經綸),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도략(韜略),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절의(節義), 남이(南怡)의 무용(武勇),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천문(天文), 박연(朴堧)의 악학(樂學), 황공도(黃公圖)의 총명(聰明),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예학(禮學), 정북창(鄭北窓)의 선술(仙術), 흥령(興嶺)의 산술(算術),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필법(筆法),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풍채(風采), 규암(圭庵) 송미수(宋眉叟.송인수)의 효행(孝行) 등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