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은 족장시대의 마지막장이다. 일번적으로 창세기를 주제별로 구분할 때, 1-11장은 원역사. "구전으로 내려온 역사 이전의 역사", "Primary History"(최초의 역사) /12-36장까지는 족장시대라고 부른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 37장부터 요셉이야기가 시작.
이 본문을 설교하기 전 제 마음속에 불경스럽게도 창36장은 어떤 설교의 가치를 지녔을까? 라고 자문해 보았다. 36장의 가치? 재미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말씀이라는 인식을 가진다. 재미없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 배울 것이 없는 이유? 에서의 후손들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교자인 저도 이 본문을 다른 창세기 본문에 비해 많이 읽지는 못했다. 읽기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다. 주후90년에 "얌니아"회의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구약성경 39권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이후로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얀성경 27권은 주후 397년에 "카르타고"회의에서 결정.
두 가지 메세지?
36장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두 가지 족보로 나뉘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9절 까지는 에서의 족보이다. 반면에 또 하나의 다른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호리 족속 세일자손의 족보이다(20-30) "세일 땅에 거주하던 호리 족속" 이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다. 아브라함 족속들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전부터 살던 족속들이다. 에서 족속은 이주민이고, 호리족속은 원주민들이다. 에서족속이 고향을 떠나 호리족속들이 살고 있는 세일 땅을 점령한 후 그곳에 정착하여 에서족속이 호리족속을 흡수 통일한다.
호리란? 호르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들이 살았던 요르단의 페트라에 가 보면 동굴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서로 결혼하고 문화를 교류했다(18, 25) 에서의 아내는 호리족속이었다. 에서의 가문은 혼혈가문이다.
왜 하나님은 이방족속인 원주민 호리족속들의 족보를 성경안에 기록해 놓았을까?
1. 하나님은 단일한 혈통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아니시다는 사실을 말한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적에 선생님들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할 때마다 단일민족, 백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 우리 민족이 단일혈통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저희들도 한 때는 가끔 볼수 있는 혼혈친구들을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그의 후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빗나간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쏟으신다. 약속의 자녀도 하나님의 자녀요, 이방 민족도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일수 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는 이런 증거들이 넘친다.
예) 가인의 족보(4;6-24) 이스마엘의 족보(25:12-18)
한 때 우리는 한국민족외 다른 민족들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백인들에게는 친절하지만, 흑인이나 다른 유색인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편견을 지니고 있다. 이런 방식은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다. 이 세상에 모든 민족은 피부색과 국적에 관계 없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다민족사회로 나아가야 하고 그렇게 될수 밖에 없다. 이것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하락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나라 평균 출산율은 0.98명이다. 최소한 2명이 되어야 현상 유지가 된다.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이다. 내년부터 해운대지역의 반여초등학교와 위봉초등학교가 통 폐합된다고 한다.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어 인구 밀집지역이었던 반여동 조차 인구가 줄어든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차별과 편견은 예수의 정신이 아니다. 구원은 유대인만의 독점이 아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다. 복음은 사람을 피부색과 국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미국의 투자가인 짐 로저스가 그의 책" 세상에서 가장 적극적인 나라"에서 일본이 지금처럼 이주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멸망히게 될 것이라고 예언"/ 미국 예일대학 석학인 에이미 추는 그의 책"제국의 미래"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으로 로마와 몽골과 미국을 꼽았다. 공통점이 바로 이주민들을 받아 들였다로 결론 짓는다.
이제 앞으로 미준교회도 이주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다. 그러나 교회는 포괄적이고 융합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이를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일 혈통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다른 혈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다. 그러니 우리도 내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열려 있는 신앙, 열려 있는 사람, 열려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에서와 야곱은 평화롭게 헤어졌다는 사실이다(6-8) 이 구절은 에서가 그의 가족들과 소유물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이주하게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에서가 동쪽으로 약16킬로미터 떨어진 세일산 호리족속의 땅으로 이주를 했다.
왜 성경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와 목적? 에서와 야곱은 평화롭게 이별했다는 사실이다. 만날 때도 잘 만나야 하지만 헤어질 때도 잘 헤어져야 한다. 서양 속담에 "건너온 다리를 불 태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잊지 않고 아주 가치있는 구절로 기억.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헤어지지 마라. 에서도 야곱도 그랬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롯도 그랬다. 이들 모두 평화 롭게 헤어졌다. 헤어진 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교제를 나누었다. 이 사실이 이들이 평화롭게 헤어졌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창14:1-16, 18:16-33)
떠난 분들을 평화롭게 놓아주라. 미워하지도 말고 증오하지도 마라. 우리 곁을 떠나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신 23:7) 그들은 우리와 동거할수 없었던 분들이다. 모든 면에서 많이 달랐다. 그동안은 참다 참다 억지로 버티다 이제는 도무지 동거할수 없어 헤어진 것이다.
남은 야곱도 떠난 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떠남도 만남만큼 중요하다. 평화롭게 헤어져야 우연히 만나도 반가워진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들의 모든 헤어짐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오늘 36장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배웠다. 1. 하나님은 단일혈통을 고집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도 혈통에 매여서는 안된다. 피부색과 국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모든 민족은 복음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다.
2. 성도의 헤어짐에는 평화가 깃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헤어짐이 에서와 야곱처럼 평화롭게 되기를 축복한다.
이 두 가지 메세지를 잊지 말고 넓고 깊은 신앙으로 무장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