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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lijah House Ministries 원문보기 글쓴이: oh-yes
오순절 아주사 부흥 운동
1901년이 시작되기 하루 전 날, 찰스 파햄 목사가 사설로 운영하는 벧엘 성경 학교에 몇몇 교인들을 모아놓고 사도행전을 공부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하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900년 12월 31일 밤 벧엘 성경 학교가 열리는 건물에는 비상한 하나님의 임재가 감지되고 있었지만 오순절과 같은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던 오즈만이라는 자매가 찰스 파햄 목사에게 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성령 세례의 사건 중 세 차례의 사례가 안수를 통해 일어났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에게 안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찰스 파햄의 안수로 오즈만 자매에게 방언의 역사가 터지기 시작했고 이는 지난 수 세기 간 교회 가운데 방언의 역사가 거의 소멸되었던 것으로 보여졌던 것에 비추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소문과 더불어 12명의 목사가 이 모임을 방문하게 되고 역시 급격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만 신기하게도 주님은 당시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홀대를 받던 윌리엄 세이모어라는 보잘것 없는 흑인을 주목하고 계셨다.
찰스 파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윌리엄 세이모어는 1906년 LA에서 집회를 요청 받아 그곳으로 가지만 공교롭게도 집회를 부탁했던 담당 교역자가 잠적한 상태였다. 윌리엄 세이모어가 허름한 창고와 마굿간을 빌려 교인들 일부와 함께 집회를 강행하게 되면서 오늘날 오순절 운동의 모태가 되는 아주사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회는 방언으로부터, 찬양, 간증, 기도가 연일 계속되는 중 기쁨으로 춤을 추며 성령의 권능으로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아주사 부흥은 기존 교단의 극심한 반대와 함께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소문을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한번은 17대째 랍비 집안의 유대인이 기독교를 비판, 이단임을 입증하는 저술을 준비하기 위해 집회 장소에 참여하게 되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캐서린이라는 여자 아이가 이 유대인을 가르켜 고대 히브리어로 방언을 말했다. 기독교를 반대했던 이 유대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한 이 일을 경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눈물을 흘리며 회심하게 되었다.
병든 자가 낫고 마약 중독자조차 자유케 되는 집회가 연일 계속되자, 한번은 LA타임즈의 기자가 일부러 다리를 못쓰는 소아마비 환자인양 거짓 잠입하여, 치유가 베풀어진다고 할 때 이 사역의 허구성을 드러내기로 작심하고 있었다. 윌리엄 세이모어는 치유 사역을 위해 이 기자 앞에 섰을 때 주님께로부터 ‘그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라는 음성을 들었고 그러한 선포 후 이 기자는 진짜 소아마비 환자가 되어 회심했다.
이러한 아주사 거리의 부흥운동은 이후 3년 동안 지속되며 오늘날 하나님의 성회 등 성령 사역 초기 교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은사주의 운동
1960년대 LA북쪽 밴나이스, 성 마가 성공회 교회를 담임하던 데니스 베넷 목사는 주로 중상류 계층으로 구성된 약 이천여 명의 성도에게 논리적이며 지적인 스타일의 설교를 충실히 해냈지만 사역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베넷 목사는 개신교, 성공회, 카톨릭 평신도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모임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방언을 받았다. 주일에 베넷은 성도들 앞에서 자신이 방언을 받은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간증하였고 바로 그날 교회 부목사가 사임하고 베넷은 성도들로부터 교회를 사임해줄 것을 요청 받았다.
이후 베넷 목사는 워싱턴 주 씨애틀의 성 누가 교회로 부임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단기간에 이천명이 넘게 신도들이 급증하였고 이 시기로부터 방언이 활성화되면서 은사주의 운동이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은사를 받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부흥회가 인도되면서 은사주의적 교회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노틀담 대학의 가톨릭 신학생들이 은사주의적 개신교 기도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카톨릭에까지 확산되었는데 카톨릭 안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이른 바 성령 쇄신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복음주의적 교단을 중심으로 비교적 부정적인 운동으로 치부되었던 은사주의 운동이 예수전도단, 예수원 같은 선교 단체 및 공동체를 통해 그 영향력이 흘러가게 되었다.
리차드 포스터의 <생수의 강>이라는 책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영성을 크게 복음, 묵상, 성례전, 성육, 사회참여, 은사 등 여섯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각 카테고리마다 시대별로 3명의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은사주의적 영성에 해당하는 인물로 리차드 포스터가 꼽고 있는 인물은 놀랍게도 복음의 정수를 드러냈다고 누구에게나 평가 받고 있는 바울, 청빈과 금욕의 삶을 산 중세 수도원 공동체의 대표적인 인물인 성 프란체스코와 앞서 살펴본 월리엄 세이모어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성령에 권능의 나타남에 뛰어났으며 그의 복음은 자신의 평가대로 그저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확신으로 이루어졌다. 병든 자가 나았고 뱀의 독이 소용이 없었으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났던 그의 사역은 확실히 그 누구보다도 성령의 권능에 의지한 바 크다.
성 프란체스코 역시 일반적으로 알려진 청빈과 금욕의 삶 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한 성령의 나타나심은 그 누구 보다 빼어나다. 하루는 제자와 함께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프란체스코가 기도를 마치고 제자를 향해 마치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숨을 내뿜자 제자는 천정까지 치솟았다. 어떤 때에는 그의 청빈의 상징이었던 그의 낡은 외투에 주님께서 직접 금화를 만들어 주머니에다 넣어주곤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프란체스코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금화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시 돌려드리겠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성령 사역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치과 기적(Dental Miracles, 성령의 능력으로 썩은 니가 금니 등으로 온전해지는 현상)과 같은 유의 현상이었다.
제 3의 물결
1980년대 빈야드 운동으로 알려진 존 윔버 목사는 본래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역 초기 윔버의 개인 전도를 통해 개척된 요르바 린다 지역의 교회에는 몇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마약 중독자, 동성연애자들이 교회로 와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데 그들의 궁극적인 죄악된 삶의 행태가 전혀 변화되지 않는 것이었다. 윔버는 이들을 적절히 교회에서 떠나게 하는 방법으로 목회를 유지하다가 어느 날 주님께로부터 치명적인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 교회가 네 것이냐 아니면 내 것이냐?” 윔버는 이 주님의 물음에 가책을 느껴 개척한 교회에 사임을 하고 피터 와그너의 청빙으로 풀러신학교의 교회 성장학 교수직을 맡으면서 성령 사역에 대한 일대 관점 변화를 경험하게된다. 풀러신학교는 선교학 과정에는 각지 현장에서 선교하던 목회자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학생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리포트를 제출할 때 자신의 사역 경험을 대폭 반영하였는데 이 학생들의 세계 각지에서의 사역보고에는 오늘날 여전히 성경과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윔버의 아내인 캐롤 윔버는 꿈에서 자신이 방언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여전히 현실에서도 방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들은 윔버가 성령에 역사에 대해 제한하고 있던 생각들을 풀어놓는 계기가 되어진다.
이후 윔버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오늘날 널리 알려진 빈야드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데 성령에 대한 사도행전적 역사를 바라며 그가 교수직을 통해 드러내었던 교사적 면모를 통해 성도들을 잘 양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주님께서 신유에 대한 주제로 윔버에게 설교할 것을 요청하셨다. 또 다른 주에는 신유에 대해 설교 할 뿐만 아니라 아픈 성도들을 단상으로 불러내어 치유 기도를 해 줄 것을 명령하셨고 순종하였으나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질 않았다. 장장 10개월에 걸처 신유에 대해 설교하며 안수 기도를 해오던 존 윔버와 빈야드 교회는 아무런 치유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마음이 어려웠으며 이 과정을 통해 절반에 가까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갔다.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역시 신유에 대해 설교하고 기도한 어느 주일 다음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있던 윔버에게 성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내가 아픈데 곧 직장에 가봐야 하니 와서 기도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못해 성도의 집으로 간 윔버는 환자를 위해 기도한 뒤 신학자 출신답게 신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신학적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그 환자가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윔버는 무척 기쁘면서도 놀랐다.
이후 빈야드 교회에 괄목할 만한 성령님의 움직이심이 또 한 차례 일어나는데, 어느날 주일 아침에 설교를 마친 윔버에게 주님께서 잘 알지 못하는 젊은 목사를 저녁 집회 때 초청할 것을 권고하셨다. 그 젊은 목사는 히피 족들의 회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예수 운동을 통해 회심한 사람이었다. 윔버는 잘 알지 못하는 목사를 교회로 청빙한 것이 몹시 걱정되어 저녁 예배를 지키고 있었는데 젊은 목사의 메시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가 설교를 마치고 단상에서 기도할 때 이 교회가 오랫동안 성령님을 근심시켰다는 말과 함께 ‘성령님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짧게 던졌다. 그 기도는 마치 교회에다 폭탄을 던진 것과 같았고 그 기도와 동시에 성도들이 교회 바닥에서 고꾸러지고 열살된 아이 하나는 마이크와 함께 넘어져 방언을 말하였고 온 교회는 이 방언을 똑똑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윔버는 존 웨슬레,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에게서 나타난 부흥을 연구 하였고 과거의 부흥에서도 빈야드 교회가 경험한 역사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토론토 블레싱 (Toronto Blessing)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 목사는 18세 때 성령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기도한 후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 기름부음은 그의 손에서 나오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마치 총알을 맞은 듯 멀리 튕겨져 나가거나 거룩한 웃음(holy laughing) 경험케하는 일로 있어났다.
1983년도에 아르헨티나에서는 사업가 출신의 까를로스 아나콘디아가 회심한 후 말기암 환자 병동에서 전도에 매진하며 병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 한 말기 암 여환자를 놓고 안수도 없이 선포하는 기도 후 치유가 일어났다. 이후 까를로스의 사역에는 치과기적(Dental Miracles) 등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는데 그의 전도 사역에서 수많은 영혼이 회심했다. 도시와 지방을 순회한 사역에서 한 집회에 5만, 9만, 10만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이것은 곧 국가적인 부흥으로 이어졌는데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의 교회사를 말할 때 아나콘디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이다.
한편 클라우디오 프레이전 목사는 7년 동안 7명의 노인만이 모이는 교회를 개척했을 뿐이었다. 이후 프레이전 목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무하여 이천여명의 교회를 개척하는 성과를 이룬다. 프레이전은 졸업한 신학교의 은사를 만났다가 “하루에 얼마나 성령님과 교제하는가?”라는 스승의 질문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 갈망하기 시작했다. 성령님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던 프레이전 목사는 우연히 베니힌 목사의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라는 책을 통해 강한 도전을 받고 92년도에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주일 예배 때 베니힌으로부터 안수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 프레이전 목사는 설교 때 별 의도없이 제스처를 취했는데 사람들이 쓰러지고 이에 당황한 프레이전이 뒤에 았던 부목사를 가르키자 그마저도 성령의 능력에 쓰러지고 말았다.
1993년에는 캐나다의 토론토 빈야드 교회에서 존 아낫, 캐롤 아낫 부부가 꾸준히 성령에 대해 갈망하며 주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그 해 10월 경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두 사역자 부부는 클라우디오 프레이전에게 안수받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데 캐롤 아낫은 안수 뒤에 무려 3미터나 나가 떨어졌으며, 존 아낫은 순간적으로 쓰러졌다가 믿음으로 안수 받을 것에 대한 음성을 듣고 다시 안수를 받은 후 성령의 능력을 임파테이션 받았다. 한편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지역에 랜디 클락은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으로부터 네 번에 걸쳐 안수 받은 후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되는데 존 아낫은 이 랜디 클락을 불러 교회 집회를 인도하게 했다. 이 나흘 간의 집회에서 성령이 급격히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운동이 토론토 블레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는 복음주의자였던 R. T. 캔달 이 토론토 블레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가 토론토 블레싱에 영향을 받은 사람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고질병에서 치유되어지자 캔달은 토론토 블레싱에 대한 오해와 성령을 제한했던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고 곧 토론토 블레싱에 합류해 사역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도 미국 플로리다 펜사콜라에서는 존 킬패트릭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블라운스빌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통한 부흥이 일어났다. 킬패트릭 목사는 예배 때 부흥에 대해 몰입하여 목회 자체의 모든 국면이 부흥과 관계된 설교와 찬양, 기도로 이루어졌는데 95년이 되었을 때에는 교인 중의 일부가 부흥에 대한 목회자의 몰두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버렸다. 또한 킬패트릭의 영적 멘토였던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킬패트릭은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마음에 번민이 가득했는데 당장 주일 설교를 못할 정도여서 스티븐 힐이라는 목사를 교회로 청빙, 주일 설교를 맡겼다. 스티븐 힐은 클라우디오 프레이전과 아나콘디아의 아르헨티나 부흥 때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아버지 날 주일에 스티븐 힐이 설교한 내용은 평상시와 비슷했으나 스티븐 힐이 성령을 받기 원하는 자들을 단상 앞으로 불러내었을 때 엄청난 성령의 능력이 교회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지고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자 오순절 교단 측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부정적이던 킬패트릭 목사는 불안한 마음으로 이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성령의 강물이 교회 뒤편으로 부터 넘쳐와 킬패트릭 목사의 복숭아뼈를 쳐 쓰러뜨렸고 그의 입에서 “부흥이 왔습니다”라는 외침이 흘러나오며 약 4시간 동안이나 성령의 임재 안에 쓰러져 있었다.
이러한 현대의 부흥의 사례들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일찍이 말했던 대로 성령의 역사하심은 현상 자체를 분석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가 아름답다는데서 더욱 주목되는 경우들이다. 괄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무수한 생명의 거듭남과 갱신으로 이어진 80~90년대의 부흥의 양상이 모두 오순절, 은사주의적인 양상으로 안수를 통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미 한 부흥운동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교단을 초월하여 다른 크리스천을 위해 안수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은 전 세계를 넘나들며 흘러가기 시작했다.
믿는 필자는 아마도 장차 한국에 임할 부흥이 오순절, 은사주의적 경향이 강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주시는 부흥이 복음주의적 부흥이라고 할지라도 감사하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부흥들이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어서 한 번 부흥이 임한 경우 적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지속되었지만 한국에 임할 부흥은 아마도 범세계적인 마지막 부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반도에서 타오른 부흥의 불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식지 않고 전세계로 흘러가는 양상으로, 특히 얼마 남지 않은 세계 복음화의 과업인 10/40창으로 뚫고 들어가 중국 교회와 중앙아시아, 중동의 교회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복음의 서진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지난날 평양 부흥 이래로 성령님께서는 아마도 한반도 전체를 흔들어 깨우는 국가적인 부흥의 양상으로 성령을 주실 것이다. 이는 곧 죽어있는 북한을 깨우고 중국교회를 일으켜 세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거룩한 생수가 되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新사도개혁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기드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