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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별 여행자 – 류시화
한비야와 더불어 오지 여행가로, 시인으로 잘 알려진 류시화 선생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그의 본명이 안재찬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책 소개를 통해서 보면 그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고,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고, 시를 통해 민주화운동 同人으로 활동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창작활동을 접고 인도, 네팔,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면서 명상 서적 번역 작업을 시작했고, 명상과 인간의 의식에 관한 서적 80여 권을 번역했다고 한다.
번역 작업을 통해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오쇼 라즈니쉬, 라마나 마하리시, 스리 오로빈드, 푼자 바바 등을 알게 되면서, 그들을 찾아가 만났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다스 U. G. 크리슈나무르티와도 만났다. 영적 지도자로 잘 알려진 ‘달라이 라마’, ‘틱낫한’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1991년에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996년 두 번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발표해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 인생의 불가사의함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 냄으로써,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정서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이쿠 모음집으로 『한 줄도 너무 길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출간했고, 『성자가 된 청소부』(바바 하리다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티벳 사자의 서』(파드마삼바바), 『용서』(달라이 라마),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과 죽어감』의 저자),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크하르트 톨레)등을 번역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7∼2019년에는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내놓았으며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번역되기도 했다. 우화집 「인생 우화」 와 인도 우화집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인생 시 읽기 모음집 「시로 납치하다」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서울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낸다.
이 책 「지구별 여행자」는 15년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교훈, 깊은 사색과 문학, 감동과 울림 그리고 여행자로서의 자유로운 정신이 담겨 있다고 출판사는 소개했다. 그것은 시집 제목으로도 짐작이 간다. 나는 그의 인생과 삶을 찬양하거나 따르고 싶지는 않다. 그러지도 못할 형편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쫓아서 귀감으로 삼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여행 온 것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 이 여행을 마치고 떠나갈 때 나는 신 앞에 서서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노라고. 내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고….”이 책 서문에서 저자가 한 말이다.
태양이 쏟아지는 북인도 들판을 지나 기차가 럭나우 부근 한 역에 섰을 때 나는 갑자기 인도의 망고 주스가 마시고 싶어졌다. 역 구내를 들러보았으나 콜라와 환타만 있을 뿐 내가 원하는 망고 주스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나는 재빨리 역 구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 망고 주스를 사고자 했다. 남자가 한가히 앉아 있는 가게 안을 보니 망고 주스가 있었다. 나는 힌두어로 말했다. “무주헤 푸르티 디지예”가게 주인인 늙은 노인이 영어로 답했다. “망고 주스 달라는 말이지?”나는 다시 “잘디 잘디 디지예”하자 그가 다시 영어로 답했다. “빨리 달란 말이지?”속이 탄 나는 힌두어로 “그렇다”고 재촉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게 돼”하면서 아주 태평스러웠다. 봉지에 넣어 주는 망고 주스를 받고 마침 잔돈이 없어 큰돈을 주자 거스럼돈을 동전으로 주는 바람에 한참 걸렸고, 그것을 받다 그만 떨어뜨려서 줍는데 정신이 팔렸고, 가게를 나와서 역 안으로 들어서서야 나는 망고 주스 봉지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는 움직일 태세로 고동을 울렸다.
나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노인이 검은 봉지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손을 내저으며 노인에게 좀 더 속도를 내달라고 힌두어로 다그쳤다. “아다르 잘디 잘디 아이예!”그러나 노인은 시속 10㎞로 느리게 열차에 다가오면서 영어로 받아쳤다. “나더러 빨리 오란 말이지?”나는 노인이 베풀어준 수고로움에 감동해 차장밖으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수크리아, 바후트 수크리아?”그 순간 열차가 출발했으므로 나는 노인의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대단히 감사하단 말이지?”나는 노인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여유롭게 북인도 평원을 달리는 동안에 새처럼 쪽쪽거리며 망고 주스 5개를 앞 좌석 인도인들과 나눠 마셨다. 인도의 망고 주스는 노인의 친절함과 속 깊은 지혜가 겹쳐서인지 더위로 인한 갈증을 식혀주었다.
누가 봐도 지저분하고 낡아빠진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열악한 환경을 참지 못하고, 그만 불평을 터뜨렸다. 그러자 입심 좋게 생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충고했다. “신이 준 성스러운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그래도 게스트하우스 주방의 위생 상태에 엉망에 대해 불평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여인숙을 운영해 왔지만,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었소.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당신 스스로 선택할 일이오.”그리고 나서 덧붙였다. “당신은 지금 인도에 여행 온 것이지, 불평을 하러 온 것은 아니잖소.”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면 당연히 ‘타지마할’이다. 프랑스의 ‘에펠탑’, 영국의 ‘타워 브릿지’처럼 널리 알려져 있다. 무골제국의 황제 ‘사자 한’이 ‘보석처럼 탁월한 여성’이란 뜻의 아내 ‘뭄 타즈’가 열세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자, 그녀를 위해 만든 것이 타지마할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전에 인도의 남자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그곳은 황제가 아내를 위해 지은 무덤이다. 저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50대쯤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가 망연히 그곳을 바라보며 자신은 전생의 사자 한으로 이 무덤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는 5년 전에 떠난 아내가 그리워 날마다 여기를 찾아온다고 했다. “타지마할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오. 난 그녀가 살 천상의 궁전과 정원을 상상하며 그것을 지었소. 그것은 지상에 세워졌지만, 지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천상에 속한 것이오. 나는 벽마다 경전의 글귀들을 새기게 했고, 신이 머무는 곳과 똑같은 곳에 그녀가 머물도록 했단 말이오.”
고조되던 목소리가 차츰 슬픈 어조로 바뀌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내 인생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소. 그녀가 죽자 난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 버렸다오. 내 아들 ‘아우랑제브’가 나를 왕위에서 몰아내 아그라 성에 가두었지만, 난 이미 모든 집착을 버린 상태였소. 내가 죽자 내 아들은 타지마할 아내 옆에다 나를 묻어 주었소. 그것만으로 난 내 아들을 용서했소.”
건물이 완성된 뒤에 황제 사자 한은 일꾼들의 손이나 엄지손가락을 자르게 했다고 한다. 다시는 이처럼 완벽한 건축물을 세상에 세워질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중년 신사를 통해서 듣는 타지마할 건축과 그 역사는 이미 알려져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저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짧은 시 하나를 썼다.
…
아름다운 귀걸이와 커다란 예쁜 눈
꽃목걸이 목에 건 이여
때로 내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황홀한 음악을 연주하는 이여
당신의 아름다운 사리를 펼쳐 *사리 : 여자 옷, 치마
울고 있는 나를 감싸 주소서
힌두어로 ‘손님’이란 약속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 그대로 손님이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버터 난(진흙 화덕에 구운 밀가루빵)과 짜이(차)로 저녁을 먹고 나자 지평선 저쪽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달은 무대의 막을 올리듯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모닥불에 끓인 짜이, 잠든 염소들과 별들과 그 모든 것들이 넘치도록 많은 밤이었다. 밤이 깊어졌는데도 집시들은 천막 안으로 들지 않고 전부 모닥불 옆에 쓰러져 잠을 잤다. 여인들은 옷은 말할 것도 없고, 팔찌, 귀걸이, 코걸이까지 한 채로 잠들었다. 잠시 후 나는 내 긴 머리카락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무엇 때문에 언뜻 잠에서 깼다. 놀라서 살펴보니 들쥐였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한 가지 지혜를 터득했다. 배낭을 열고 그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자는 것이었다. 그때 옆을 보니 여자들은 모두 사리자락으로 머리를 감싸고 자고 있었다.
새벽녘에 나는 꿈을 꾸었다. 대지와 하늘 구분조차 없는 막막한 공간을 나 혼자 방랑하는 꿈이었다. 시간마저 지워진 하얀 지평선을 향해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고, 돌아오는 메아리도, 그림자도 없었다. 나는 다만 먼 지평선을 목적지 삼아 끝없이 걸어야만 했다. 그 끝에 이르러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러자 청년의 모습으로 방항을 시작한 내가 어느새 머리가 허연 노인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북인도 ‘바라나시’에 머물 때 나는 아침마다 갠지스 강가에 나가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다리 위에는 40대쯤 되는 거지 여인이 양손에 더러운 붕대를 감고 쪼그려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곳은 힌두교 성지 중심지여서 인도 각지에서 온 승려들과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온갖 장사꾼과 호객꾼, 걸인과 성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결혼 행렬은 나팔을 불면서 지나갔고, 순례자들은 강물에 들어가 성스러운 목욕을 하였고, 성자들은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었다. 또 그 옆에서는 뱀을 부리며 코브라에게 약을 올리는 땅꾼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 옆에는 누군가 시체를 태우고, 나뭇가지를 분질러 이를 닦기도 하고, 염소수염을 한 일본인 남자와 온통 벌거벗은 고행 수도승은 아침 햇살 속에 눈을 감고 명상에 감겨 있기도 했다. 어떤 성자는 이때를 놓칠세라 어서 자기한테 와서 죄를 씻어라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성스런 소들은 사원에 바친 금잔화를 훔쳐 먹다가 똥 묻은 엉덩짝을 얻어맞고는 쫓겨나기도 했다. 이런 여러 혼잡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매우 평화로웠다. 바로 옆에 어머니의 강 갠자스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 위로 피어 오르는 물안개, 강 건너 망고나무 숲 위로 붉게 떠 오른 아열대의 태양은 아침의 명상 분위기를 더하여 주었다.
약간은 무심하고 약간은 무표정하게 인파 속에 앉아 있는 여인과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한 1주일 그녀를 지나치며 무언의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날, 그녀 옆에 앉아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했다. 나는 짜이(음료)한 잔을 사다가 그녀 발 앞에 놓아주며 붕대로 감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전 내일 카트만두로 떠나요. 잘 지내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다른 반응은 없었다. 이튿날 나는 마음이 바뀌어버렸다. 히말라야로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너무 추울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다리 위로 나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를 보자 뭔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영문을 몰라 하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영어로 내게 물었다. “여인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하세요?”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이 여자가 지금 당신이 어제 자기 손을 잡았다고. 문둥병에 걸린 사람의 손을 누가 잡겠느냐고? 지금 행복에 겨워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오”
여인은 여전히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어린아이처럼 떠들고 있었다. 이 여인도 다른 나환자처럼 가족의 버림을 받았으나, 갠지스 강이 가져다줄 기적적인 치유를 바라고 멀리 바라나시까지 온 것이었다. 신은 거지 여인을 통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서로 만져주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길가에 버려진 망고 열매처럼 영혼이 쪼그라들어 버린다고.
‘잔티 초베’는 18세 소녀다. 나이는 어리지만 인도 벽화 속 여인처럼 눈매가 예쁘다. 그녀는 내가 묵고 있는 여인숙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를 떠나 할아버지와 산다는 것이 즐거움일 수는 없다. 인도에서는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떠나 성지 ‘나라바시’로 와서 살다가 죽고 싶어 하는 풍습이 있다. 잔티 부모도 할아버지가 여기에서 살다가 돌아가시게 하기 위해, 잔티가 할아버지를 돌보도록 하기 위해, 같이 여기로 보낸 것이다. 그런 잔티에게 낙이라고는 어쩌면 나와 이야기 나누는 것뿐인지 모른다. 잔티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는 앵무새가 든 새장을 들고 베란다에 나와 햇살을 쪼이면서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서 죽어 손녀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잔티가 할아버지 얼굴에 앉은 파리를 쫓아주며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해마다 인도에 오나요?”
나는 읽던 잡지를 덮으며 “그만큼 인도를 사랑하기 때문이지.”했다. 그러자 잔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인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가 당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인도가 언제나 당신을 부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꾸만 인도에 오게 되는 거예요.”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잔티가 말했다.
“이곳에 와서 지내다 보니 어릴 때 일들이 많이 생각나요. 행복한 순간들 말이예요. 그것은 세상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예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느낌을 잃어버렸어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말예요.”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세상은 지금도 널 사랑한단다. 나도 너를 좋아하잖니.”잔티는 갠지스 강 너머를 바라볼 뿐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린 잔티에게도 가난과 답답한 여인숙 생활이라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깊은 고독감이 있었다. 그녀는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아 버린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이 오고 봄맞이 축제인 ‘컬러 축제’가 열렸다. 상대의 옷과 얼굴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던지는 놀이로 잔티와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축제를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잔티는 빨갛고 노란 물감 가루를 정성껏 내 이마에다 ‘지혜의 눈’을 찍어 주기도 했다. 잔티의 검은 눈동자가 전에 없이 아름답게 빛났다. 봄이 가고 잔티 할아버지가 71세를 일기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장례식은 간단했다. 여인숙 주인이 종업원들과 두 개의 대나무 막대에 시신을 얹고 화장터로 향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만에 잔티 할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캔지스 강에 뿌려졌다. 화장을 끝내고 돌아와서 잔티는 나와 여인숙 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할아버지가 키우던 앵무새를 베란다에서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햇볕을 눈부셔하며 날아가는 앵무새를 내가 바라보고 있자 여인숙 주인이 말했다. “인도에선 사람이 죽으면 새가 새장을 떠났다고 하죠. 영혼이 자유를 얻은 겁니다. 저 새가 잔티 할아버지 영혼이 여행을 떠나는데 동행이 되어 줄 겁니다.”잔티가 떠나는 날, 나도 짐을 챙겨 바라나시를 떠났다. 그 후 잔티 초베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운명의 삶을 찾았을까? 궁금하다.
이재명 정부의 슬로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은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어느 나라인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도에 대해 누구는 ‘하늘 아래 하나뿐인 나라’라고 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나라다. 하지만 인도인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세속적인 삶으로도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온 종족이 사는 나라가 인도다. 물질적 쾌락 없이도 행복 추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1797년에 인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0년만 젊었어도 나는 기필코 인도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내 자신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100년 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97년 이렇게 썼다.
“태양 아래 오직 하나뿐인 나라
불멸의 흥미를 부여받은 나라
외국의 왕자에게나 농부에게나
학식이 있는 자에게나 무지한 자에게나
현명한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구속된 자에게나 자유인에게나
모든 종류의 인간이 보고 싶어하는 단 하나의 나라!
그리고 단 한 번 흘낏이라도 보고 나면
지구의 나머지 나라를 모두 본 것보다 더 강렬한 나라
인도!”
모르긴 해도 여기까지 읽었다면(책 아니고 이 독후감을) 저자가 참으로 ‘인도를 사랑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인도의 무엇에 반해 15년이나 거기 가서 살고 몇 번이나 거기를 여행했는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중요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삶의 목표일 수도 있겠다. 저자가 처음 인도 여행을 꿈꿀 당시에는 인도라는 나라가 영적인 나라, 깨달음의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여행에서부터 그것은 여지없이 깨졌다. 언뜻 보기에 인도는 더럽고,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고, 때로 대책 없는 나라로 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 저자는 지저분함 밑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고, 무질서 속에서 삶을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질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여러 번의 탈수병, 설사병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소중한 것이었다고 한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여인숙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유 없이 잘 난 체하다가도 다음 순간 두려워해야 했고, 행복한체하지만 돌아서면 고독감으로 가슴이 뚫려 있었던 흔히 겪는 여행자의 고달픔이 다름 아닌 저자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푸쉬카라의 성스런 호숫가에서 한 구다리 바바(누더기를 입고 다니는 사두-수행자)를 만났다. 그에게 허구한 날 누더기 옷을 만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두들처럼 힌두의 진리를 전파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가 바늘로 허공을 찌르며 말했다. “큰 사람과 비교해 적은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바늘로 할 수 있는 일을 큰 칼로 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들려준 지혜의 말은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화장터에서 이가 다 빠진 늙은 사두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이 없이 태어나서 이가 다 빠지면 죽는다. 그 사이에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빨만 마주치다가 갈 뿐이다.”
인도 여행의 백미는 이렇듯 사두들과의 대화, 그들의 명언에 귀 기울이는 일인지 모른다. 성기를 내놓고 온통 벌거벗은 채로 온몸에 잔뜩 재를 묻히고 정처 없는 걸어가는 사두, 3m에 달하는 긴 머리채를 강물에 헹구고 그것을 두 손에 받쳐 들고 햇볕에 말리며 서 있는 사두, 카멘탈(깡통)을 들고 당당하게 적선을 청하는 사두, 몇 날 며칠 심지어는 수십 년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두, 지평선 저 멀리 태양을 향해 표표히 사라져가는 사두, 굽타·무골·하라파 왕조는 물론 인더스 문명 이전부터 수천 년 동안 인도 땅을 어슬렁거려온 사두, 이제 좀 살만하게 된 중산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걸인 취급을 받는 이들 사두. 하지만 아직도 보란 듯이 신과 진리의 편에 서 있는 그들은 더럽고, 초라하고, 당당하고, 기품 있고, 언제나 평화로움으로 가득하다. 이 놀라운 종족은 모든 중요한 지식을 습득하고서도 칫솔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칫솔과 비누가 없어도 태양 아래서 그들은 언제나 떳떳하기만 하다.
‘당신들은 노동의 결실을 즐기지만, 속세를 떠나 여기, 이곳에서 다음 생을 준비한다’는 사두들, 서양의 한 여자가 갠지스에서 샌들을 신은 채 발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도인들은 그녀를 나무랐다. 성스런 강에 신발을 헹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불만의 목소리로 항의했다. “강물에 시체도 버리고 쓰레기도 버리는데, 신발을 씻으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하고. 그러자 한 사두가 그녀의 무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강물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강물에 던져진 쓰레기들이 더러울 뿐이다. 어머니의 강은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강은 언제나 순수 그 자체다.”
인도여행을 하며 저자가 느낀 점을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책의핵심 중의 하나는 결국 ‘나 자신’을 찾는 데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저자가 밤기차를 타고 가면서 앞에 앉은 늙은 사두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이름과 고향, 나이, 살아온 내력 등이었는데, 늙은 사두는 질문에 답할 뿐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가 “당신은 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없습니까? 심지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조차 묻지 않는군요.”했다. 그러자 그 사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소. 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 난 죽기 전에 나자신에 대해 알아야만 하오. 지금까지 난 나 아닌 사람들에 대해 많은 걸 알아 왔소. 당신도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오.”
속속들이 인도 여행의 경험함을 이야기해 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개하고자 하는 마지막 문장은 인도인의 인사법이다. 그들은 아침에 만나면 우리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아즈 함 바후트 쿠스헤!”라고 한다. 영어로 ‘아 유 해피?’다. 아마도 상대가 아 유 해피?라고 물으면 누구나 ‘나는 행복한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마련일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도 말하고 있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잃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라고 말하라. 그러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라는 충고일 것이다.‘아 유 해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