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와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남아메리카
이관순의 손편지[341]
파타고니아의 처음처럼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l)’. 구글이 창업되면서 내걸었던 모토이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두 사람은 1998년 구글을 창업하면서 사악해 지지 않기로 두 손을 모았다. 세 단어로 구성된 이 명징한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 ‘정직하자.’ ‘신의를 지키자.’ ‘고객이 왕이다.’ 그동안 귀 아프게 들어온 기업들의 구호와 달리, ‘사악하다’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느낌은 신선함과 진정성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면서 구글이 보여준 행보는 참신한 다짐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이익을 몰아주는 세금 회피 수법을 쓰는가 하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무기로 스마트폰 제조사나 앱 개발자에게 갑질을 일삼아 비난을 받았다. 맞춤형 광고를 위해 인터넷 사용자들의 검색 또는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태도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달콤한 약속이나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기업이 어디 구글뿐일까. 많은 기업이 인류 번영, 공동체 발전, 사회 공헌, 환경 보호 등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알고 보니 이익을 위한 하나의 위장 전술 사례로 나타나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이런 일을 자주 접하다 보면 처음엔 기업의 선의를 믿었던 사람들조차 착한 척하는 기업들에 대해 의심부터 품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의 바탕에는 ‘척’하는 기업의 이중적 행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 풍토에 가끔은 천둥소리를 내는 기업 기업인이 있어 위안을 준다. 2022년 9월 미국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소식 하나가 날아왔다. 아웃도어의 구찌 브랜드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이 회사를 통째로 환경단체와 관련 비영리 단체에 기증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파타고니아 지분(비상장) 100%, 시장가치 30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를 몽땅 지구 환경을 위해 헌납한 것이다. 더하여 연평균 1억 달러 규모의 회사 수익도 전액 환경보호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자산가나 재벌들이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공공 재단을 설립해 사회 환원에 나선 예는 있어도, 회사를 통째로 헌납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 후 50년간 일반의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숱하게 실천했다. 환경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회사의 주력 제품이라도 생산을 포기했고, 유기농 재활용 원료를 고집하느라 단가가 높아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납품가를 후려쳐 낮추거나, 기업 및 제품 홍보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여느 기업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건 이런 반(反) 상식적 경영을 하고도 큰 위기 없이 성장세를 50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아웃도어 시장이 정체된 가운데도 파타고니아는 연평균 10% 이상 넘게 성장했다. 세계 금융위기 전후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확연하다. 2005년 2억 4200만 달러이던 매출이 7년 만에 5억 4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윤에 집착하지 않아 보이는 이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고 성장할 수 있었을까?
중심에 ‘원칙’이 돈보다 앞선다는 경영철학이 있었다. “우리는 지구를 살리려고 사업한다”라는 쉬나드의 창업이념을 따른 것이다. 그는 기업가이기 전에 자연주의자였다. 요즘 불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열풍에 기업들이 친환경 경영을 앞세워 ‘착한 기업’ 행세를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이런 기업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쉬나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등산 장비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10대부터 암벽 등반을 시작한 소문난 암벽 등반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과 함께 한다’라는 창립 원칙을 뚝심 있게 지켜냈다. 환경과 비즈니스 가치가 충돌할 때는 항상 환경을 먼저 생각하며, 친환경 아웃도어의 ‘50년 착한 경영’을 실천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 ‘지구 수호’라는 기업의 진심을 전했다.
이러한 진심은 비싸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다. 회사는 지구 수호의 진심과 가성비로 보답했다. 선한 기업은 많지만, 모두 파타고니아처럼 강력한 브랜드 파워로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며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이쯤은 돼야 ‘착한 기업’이라는 명패를 달아줄 수 있지 않을까?
4조 원짜리 회사를 미련 없이 ‘환경’에 기부한 파타고니아 사례는 기업이 선한 의도와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쉬나드 회장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삶이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이 든다”라는 말로 진심을 전했다. 그에게 회사는 목표가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쉬나드 회장의 기부 소식에 ‘참 멋진 인생을 산다’는 생각을 넘어 “참 아름다운 인생을 산다”라는 존귀한 마음이 들었다. 한명회의 말처럼 그는 시작과 끝이 변하지 않는 종신여시(終愼如始)의 본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시작을 게을리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도 드물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자일수록 결단을 많이 한다. 결단을 많이 한다는 말은 시작을 그만큼 많이 한다는 뜻... 일등과 꼴찌의 차이는 시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에 있다. 사람들은 시작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만큼 어렵고 힘든 결단이 필요하기에, 어찌 보면 맞는 말이나 시작보다는 더 끝이 중요하다. 쉬나드의 처음처럼….
한 친구는 쉬나드 회장이 기업 하는 사람들에게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나에겐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로 들렸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