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책》 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 2007년판
신비한 경험
갈립은 카드에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보고도
게임을 망치지 않은 이 이해심 많은
도박꾼 여자에게 사랑을 느꼈다.
-오르한 파묵, 《검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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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검은 책》 2권의 마지막을 향해 열심히 읽다 잠시 쉬는 중이었다. 난 평소 어떤 책이든 읽고 나면 그 책에 대한 독서후기를 반드시 적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작품을 읽다 줄거리와 관련하여 흥이 나면 시상(詩想)을 떠올려 시를 적거나, 어떤 분위기 하나를 끌어올려 짧은 글(소설이나 산문)을 쓰기도 한다. 거실 한쪽의 소파 곁을 왔다 갔다 하며 이 작품이 주는 감흥에 대해 생각하는데,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불현 듯 떠올라, 과연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요즘 들어 사는 일에 다소 김이 빠지는 듯 지쳐갈 때)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에 아내의 김치 담그는 일을 도와주고(생마늘을 빻는 일) 책상에 앉아서 남은 부분을 마저 다 읽었다.
난해하고 한편으로는 난해해서 지루하기도 하고, 작품 속 주인공 ‘갈립’의 사라진 아름다운 아내 ‘뤼야’도 찾아야 하고, 어느 부분(제16장 <왕자 이야기>)에서는 ‘일생을 자신으로 살기’라는 철학적 사색(혹은 필생의 신념)을 두고 그렇게 되기 위한 평생의 분투를 그린 ‘어느 왕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읽으며 작품 읽기를 모두 끝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긴 역자의 후기에서 이 글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중략)……필자는, 2006년 여름에 오르한 파묵과의 인터뷰에서 “《검은책》은 선생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에요.”라고 당돌하고 어쩌면 실례가 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최고의 작품은 아직 내가 쓰지 않은 작품입니다.”라며 농담처럼 받아 넘겨주어 큰 결례를 면하였으나, ……(이하 생략). (《검은책》 민음사 2007년판, p325)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와 ‘나의 최고의 작품은 아직 내가 쓰지 않은 작품입니다.’는 뭔가 유사한 의미가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난 지금껏 수많은 책을 읽으며 이런 경험을 비교적 자주 해보았다. 책의 어느 곳에 실려 있는 키워드가 되는 단어나 내용들이 그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에 앞서서 나의 뇌리를 불쑥 찾아오는 현상들을. 그런 단어들은 평소 같으면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신을 잘 알기에 더욱 기이하게 생각하며 지나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해서 옛 선인들이나 작가들이 모든 책(작품)에는 저마다 사람처럼 생명력을 가진다는 말을 새삼 이해하는 계기로 삼으며, 한술 더 떠 독서라는 행위는 책안에 기록되어있는 정신사고의 결정체와 책을 읽는 나와의 대화 혹은 정서적 교류라고까지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한 줄의 문장으로까지 그 유사한 느낌이 확장되어 전달된 적은 처음이었다.(혹시 이 책을 번역한 번역 작가인 ‘이난아’ 선생님과 교감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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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검은책》에는 국가 ‘튀르키예’와 그 국가의 도시 중 하나인 ‘이스탄불’에 깃든 신비한 문화와 그들의 전통주의 사상 중 하나인 ‘신비주의’가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중동의 아랍세계와 이슬람 문화권에 깃든 신비주의를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책을 펴는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줄기차게 그들의 신비주의 사상에 관한 고전들(‘메블레나 제랄레딘 루미’의《메스네비》와 18세기 튀르키예의 신비주의 시인 ‘쉐흐 갈립’이 쓴 《휘순과 아슥》)과 들으면 누구나 잘 아는 《천일야화》(혹자에게는 《아라비안나이트》라고도 알려진)라는 책 제목이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고전들 속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천일야화》의 주인공 ‘세헤라자데’는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세헤라자데’는 함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공의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들로부터 ‘문학적 스승’이라고 칭송받기까지 한다.
역자가 역자후기에 이 작품과 관련하여 밝힌 추가 이야기에 의하면, 이 작품으로 인해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로 ‘더블린’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다면(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이 글, 독자후기를 읽기 전 뇌리에 앞의 내용들과 시간차를 두고 떠올랐음), ‘오르한 파묵’의 이 작품으로 ‘이스탄불’을 세계적으로 신비한 도시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칼럼니스트이자 주인공 ‘갈립’의 사촌형인 ‘제랄’과 그(갈립)의 아름다운 아내 ‘뤼야’의 갑작스런 실종으로부터 작품 속에서 신비감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더니, 이후에는 이 나라 ‘튀르키예’와 ‘이스탄불’ 도시의 신비스러운 문화하며 신비주의 사상을 작품 전체에 걸쳐 작가 ‘오르한 파묵’의 아름다운 문학으로 상세하고도 섬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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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화두(話頭)’를 물고 그 의미를 탐색 하는듯한 작품이다. 그 화두는 사라진 사촌형이자 칼럼니스트 ‘제랄’과 아내 ‘뤼야’를 찾으며 지난날을 회상함과 동시에 ‘나’라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나’ 자신이 되어 살기란 무엇이며, 과연 가능한 일인가를 두고 작품 전편에서 집요하게 답을 찾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결정적인 감동과 재미는 이 작품 제2권(2부) 제16장 <왕자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한 편의 동화같이 꾸며진 오스만 제국 어느 왕자의 일대기는 ‘나’, 즉 ‘자기 자신’으로 살기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그에게 영향을 부단히 미쳤을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독서, 형제, 가족, 신하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 여자와 사랑, 몰락한 왕국들 등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이러한 ‘나’에 대한 정체성 찾기 문제는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작품 속 섬세한 문체에서도 여지없이 잘 표현되어 나타나는데, 내용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그 현란함과 현학적인 문체에 녹아들어간 나머지 어느 순간 그의 손아귀에서 취해 놀아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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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편으로 긴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마치 이스탄불을 찾아 방문한 외국 여행객에게 길을 자세히 안내하려는 가이드처럼 시내 곳곳을 자세하게 탐방하듯 데리고 다니며 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흘려 읽다가는 나중 주인공 ‘갈립’이 사라진 ‘제랄’과 ‘뤼야’가 있을만한 곳과 그(갈립)의 가족이 지금 살고 있는 곳, 그 중심에 있는 가게 ‘알라딘’(상점 이름 자체가 이 작품의 신비감을 형성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취한 이름인 듯)과 갈립이 방황하듯 돌아다니는 주요 도로와 길을 머리에 개념처럼 형성시키지 못하면 전체 내용들의 이해에서도 헷갈리거나 이해를 하지 못해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모든 위대한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또한 인내심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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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칼럼니스트와 아내를 찾아 이스탐불 도시 내를 7일 동안 방황하는 것이 줄거리의 큰 부분이지만, 그 사이 사이에는 그의 사촌 형 ‘제랄’이 매 편마다 다른 주제로 써서 신문에 발표한 신문칼럼이 한 장(章)씩 독립적으로 작품 속에 삽입되어 있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옵니버스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총2부(1부:19장, 2부:17장) 1,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칼럼 형식의 매 편 다른 주제의 글이 18편 실려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튀르키예의 역사, 문화, 지리, 고전, 정치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된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작품 전체에 섬세하게 녹아들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읽는 독자라면 금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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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학작품의 경우 작품에는 반드시 훌륭한 번역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 문학계의 정석이지만, 가끔 이것도 운이 따르는 모양이어서 어떤 작품은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것은 번역자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번역자의 문학과 문학작품에 대한 애정이 우선시되면서 번역작업에 있어서 꾸준한 인내심과 한결같은 성실함이 먼저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 작품은 그 본연의 예술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는 조그만 토씨나 조사 하나의 잘못에 의해서 그 분위기가 삽시간에 돌변하여 읽는 독자의 섬세한 감성에 흠집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번역 후기에도 잘 나타나 있지만 번역 작가 이난아 선생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애정이 워낙 큰데다 애지중지 작업에 임하셔서 그 결과물인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조금의 흠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여 크게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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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오랜 시간에 걸친 나의 책읽기에 있어서
가장 큰 감동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순전히 나의 지식적 편협함과 무지 탓으로,
이것은 앞으로 나의 책읽기를 더욱 재촉하고
쉬이 끝나지 않을
아름다운 여정임을 예견하고 있다,
고 쓰고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2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