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옷을 꺼내 입어보면 헐렁할 때가 있다. 사람도 늙을수록 키와 몸무게가 쪼그라드나보다. 올해로 일흔여섯이 된 나는 키 163cm에 몸무게 57kg다. 예전에 비해 키는 2~3cm, 몸무게는 7~8kg이 줄었다. 투석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4년이 지났다. 세월은 참 빠르기만 하다. 투석 이후 하루의 일과 중에 빼먹지 않는 일이란 아침에 일어나서 몸무게를 달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저울 위에 올라서는 계체량과 스쿼트(squat)로 건강을 체크한다. 계체량은 주치의가 권하는 건체중(乾體重, Dry weight) 유지를 위한 것이고 스쿼트는 점점 허약해지는 하체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길이다. 일어났을 때의 체중을 잠자리에 들기 전과 비교하면 200~300g 정도 줄어든다. 콩팥 기능을 상실한 만성신부전증환자는 소변량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마시는 수분은 땀과 호흡 외에 모조리 몸속에 쌓인다. 그래서 갖가지 합병증이 뒤따른다. 의학적으로 건체중이란 몸에 불필요한 체액을 제거한 상태의 체중을 말한다. 인공투석기는 콩팥 기능을 상실한 환자가 일주일에 세 번, 매번 네 시간씩 콩밭을 대신해서 과수분과 노폐물을 제거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잡아주는 치료 방법이다. 인공투석기가 콩팥 대신 생명을 연장해줄 뿐 한 번 나빠진 신장의 기능을 결코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간병에 여념이 없는 아내와 오늘도 남은 삶을 공유하는 동안 오른팔에 투석의 흔적이 넓게 자리 잡아간다.
투석(dialysis)이라는 용어는 1854년 스코트랜드의 화학자 Thomas Graham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혈액투석이 시작된 것은 1952년 미군들에 의해 제11후송병원에 인공신장실이 설치되고 그 뒤 1965년 수도육군병원에 혈액투석실이 설치되었으며 이어 연세의대 1967년, 가톨릭의대 1969년, 서울의대 1969년에 인공신장실을 개설하였다. 계체량(計體量)은 투석치료를 위한 첫 준비다. 계체량은 투석환자뿐만 아니라 권투, 역도 등 격투기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계체량을 통해 체급을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눈물 같은 땀을 흘리며 사투를 벌인다. 인공투석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개인 카드함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그 안에 라커룸과 사물함에 신발장과 소파가 놓여 있다. 거기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자기 카드를 뽑아 체중기에 올라선다. 그 다음에는 주치의와 간호사들이 볼 수 있도록 체크카드를 침대의 모니터에 꽂고 눕는다. 이로써 투석 준비는 모두 끝난다. 투석치료에 앞서 환자의 체중이 건체중을 얼마나 초과했는지에 따라 몸속의 수분 제거량을 결정한다. 세계 최초의 인공투석기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Willem Kolff에 의해 고안된 생명연장 의료기기다. 혈액투석치료는 몸속의 혈액을 15게이지(1.829mm)의 굵은 주사바늘을 통해 혈액속의 적혈구와 같은 작은 혈액세포를 다치지 않게 끄집어내 몸 밖의 투석막으로 정화한 뒤 혈액을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는 1차적인 치료방법이다.
때로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병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투석실에 들어설 때마다 지겹고 귀찮다는 생각보다 생명 연장의 고마움과 새 생명이 태어나듯 감사하는 마음에 자기체면을 건다. 그것이 내 삶을 지키는 의지의 길이다. 맨 처음 인간의 체액설을 주장한 사람은 2500여 년 전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고 말한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다.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은 사람 몸속에 가지고 있는 네 가지 체액이 건강과 성격을 결정한다는 학설이다. 인체는 불, 물, 공기, 흙 이라는 4원소로 되어있고 인간의 생활은 그에 상응하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네 가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들 네 가지 액의 조화가 보존되어 있을 때를 '에우크라지에(eukrasie)' 라고 불렀고, 반대로 그 조화가 깨어진 경우를 '디스크라지에(dyskrasie)' 라 하였다. 디스크라지에 상태가 병이 생긴다고 보았고 병이 났을 때 나타나는 발열을 반응현상이라고 보았다. 그것을 병이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수분은 우리 몸속의 체액을 유지하는 균형의 바탕이다. 투석환자는 콩팥의 기능이 상실되어 오줌으로 몸 속의 수분을 배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과 음식으로 섭취하는 모든 수분은 몸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투석치료 사이에 늘어나는 양을 체중의 3~4%로 보고 건체중을 정한다. 건체중을 조절하지 못하면 몸이 붓고 숨이 차며 심장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격투기 경기에서 스포츠맨들의 체중감량은 체급을 결정하는 필수요건이다. 치료를 위한 다이어트에 비해서 투석환자들은 연명을 위해서 건체중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날씬한 몸매를 뽐내려는 젊은이들의 신체 관리를 위한 다이어트와 병원마다 비만클리닉에 무리한 시술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만큼 목숨을 위협한다. Diet는 그리스어 'diata'에서 나온 말로 원래 “생활방식(way of living)이라는 뜻이다. Diet는 ‘daily(매일)’, day(하루), diary(일기)로 파생되었고 diet control을 줄여서 흔히 dieting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량이나 식습관’인 다이어트를 ‘적게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살빼기 과정’으로 오용하고 있다. 원래 다이어트는 과다한 체중을 줄여서 장기의 기능회복과 생활 정상화를 꾀하려는 치료방법이다. 다이어트는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도 있지만 체중을 늘리기 위한 다이어트도 있으며 현상유지를 위한 다이어트도 있다. 요즘도 친구들이 만나면 입맛을 돋우는 이름난 맛집을 찾는다. 그럴게 아니라 몸에 좋은 거친 입맛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어트를 ‘살빼기’라는 의미로만 사용하지만 식단을 의미하는 말로 바로 잡아가야 하리라. 다이어트의 본뜻대로 필요한 만큼 먹는다면 절약정신과 성인병 예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입원으로 사경을 헤맨 뒤로는 혈액투석을 하는 나의 적절한 근력운동으로 스쿼트를 생각하게 되었다. 해질녘 광안리 해변을 따라 하루 칠천 보를 걷고 집안에서는 맨손체조와 스쿼트를 계속한다. 스쿼트는 다리를 어깨넓이 만큼 벌리고 서서 팔을 앞으로 든 채 엉덩이를 뒤로 빼서 앉듯이 내렸다 올리기를 거듭하는 운동이다. 스쿼트를 할 때면 기마(騎馬)자세를 떠올린다. 서재에서 스쿼트를 할 때는 서가를 잡고 꿇어앉듯이 윗몸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계속한다. 이때 무릎이 발끝 보다 앞으로 나오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세 번씩 한 번에 스무 번을 굽혔다 폈는데 지금은 하루에 다섯 차례, 한 번에 설흔 번씩 앉았다 서기를 반복한다. 스쿼트를 하고 나면 허벅지가 뻐근하고 힘이 모이는 것을 느낀다. 9월부터는 운동 횟수를 더 늘려서 강도를 높일 생각이다. 올가을에는 10여 년 전 정치과 동문들과 결성한 산정회 팀이 그리운 순천 조계산 굴목재 산행을 계획 하고 있다. 그곳에 가을이 깃들면 스카이라인 따라 언제나 믿음직한 후배 영민과 기대고 싶은 종길, 종환 선배와 함께 산길을 걷을 작정이다. 그때 우리는 잘 익은 막걸리와 구수한 보리밥을 나누며 Samuel Ullman이 노래한 시 '청춘(Youth)'과 우리의 인생과 사랑을 터놓고 이야기하리라.
첫댓글 그리움님,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국장님 더위와 싸우랴 건강과 싸우랴 얼마나 힘드십니까.
희망없는 이들의 희망이신 성모님께서 특별히 보살펴 드리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