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가다’를 했다고 하면 웃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겨우 두어 달 일을 하고 그런 얘기를 한다고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 짧은 기간에 그쪽 일을 상당히 많이 보고 왔습니다.
현장에 가면 청년도 꽤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나라 청년들이 노가다 판에 많이 뛰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그게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정말 생각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전’입니다. 안전사고로 한 해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지만 이게 해마다 말로만 개선이 되고 실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환경의 문제입니다. 신축 현장이나 개축 현장이나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진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입니다. 엄청난 먼지와 소음, 그리고 온갖 위험요소가 늘 생명을 앗아가거나 단축시킬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형 건설현장, 중소 현장, 개인주택 현장에도 가서 일을 했는데 어디든 일을 할만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호주에선 엔지니어·목수·건축업자 같은 기술직이 높은 대우를 받고 많은 청소년이 꿈꾸는 직업으로 꼽혀요. 그런데 한국에선 건설 노동자가 ‘노가다’라며 무시당하는 걸 보고 충격 받았어요.”
3년 차 목수인 이아진(19)씨는 한국에서 기술직에 종사하며 예상치 못한 편견에 부딪혔다고 고백했다. 그는 호주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건축업을 꿈꿨고,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자퇴를 결심하고 아버지와 함께 목수 일에 뛰어들었다.
일을 배우던 첫해에는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어느덧 일당 11만원을 받는 경량 목조 주택 시공팀의 막내로 성장했다. 이씨는 “목수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집을 짓는 기술자이자 예술가”라며 “직업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고 싶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기술직에 뛰어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밤새 코딩을 짜는 개발자·프로그래머가 아니라 현장에서 못질하고, 힘을 쓰는 블루칼라 기술직이다. 취업을 위해 너도나도 인공지능(AI)·빅데이터·딥러닝을 공부할 때 이들은 땀을 흘리며 몸소 배우고, 익히며 차별화된 노동자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대학입학률이 70%에 달하고 몇십년간 기술직이 외면받는 사이 젊은 기술 노동자의 수는 급감했고, 오히려 지금은 고수익을 창출하는 틈새시장으로 떠올랐다.
“육체로 일하며 노동의 가치 느껴요”
젊은 기술자들이 말하는 블루칼라의 장점은 출퇴근, 승진압박, 직장 내 괴롭힘, 사내 정치 등 조직 내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땀 흘리는 만큼 벌어가는 정직한 시스템이라는 게 매력적이다.
도배사 배윤슬(29)씨는 이화외고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2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도배 기술을 익혀 2019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배씨는 직장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기업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하던 대로만 하라는 지시를 받다 보니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퇴사 후 일자리를 알아보던 배씨는 “숙련된 기술이 있으면 조직 내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도배사로 일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는 한순간이에요. 직장생활은 오래 해야 하는데, 그 찰나의 평가나 잠깐의 말들 때문에 평생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자신처럼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배 씨의 말이다.
유튜브 채널 ‘목수수첩’팀은 2030대로 구성된 젊은 시공팀이다. 시공과 관련된 노하우, 경험담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올리며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이들은 땀 흘리는 육체 노동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대 공대를 졸업한 조수성(35) 목수수첩팀 실장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온 것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고 있다”며 “업무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2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 대학 동기나 선배들을 보면 전공에 따라 취업할 뿐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서 회사를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일 수 있지만 현장에 나가는 게 기대되고 설렌다”고 말했다.
“능력되면 사무직 보다 더 벌어”
시공업체인 바론타일 홍재광(37) 대표가 시공업을 시작한 이유는 현실적이다. 대학 졸업 후 영업직으로 일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외벌이가 됐고 돈을 더 벌어야 했다. 현재 그의 월평균 수익은 1000만원 안팎으로 회사에 다닐 때보다 3배 이상이다. 홍씨는 “보통 20대에 타일 시공을 배우기 시작하면 30대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고 말했다. 유튜버 김스튜(28)씨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현재 도배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월평균 수익은 400만~500만원 선으로, 또래 중에서는 가장 돈을 잘 버는 편이고 밝혔다.
“눈치 안보고 원할 때 일하는 자유”
최연소 해녀 진소희(29)씨와 우정민(36)씨는 ‘요즘해녀’란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녀의 직업적 장점을 알리고 있다. 우씨의 경우 세 아이 엄마로 물질을 시작했는데, 아이가 아파도 쉽게 휴가를 낼 수 없는 회사 워킹맘과 달리 원할 때만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루 평균 물질은 4시간으로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날의 수확물에 따라 수입은 들쭉날쭉하지만 운이 좋은 날은 하루에 30만원을 벌기도 한다.
다만 여전히 “대학 나와 왜 노가다하냐”는 부정적 인식은 존재한다. MZ세대 기술 전문가들은 의외로 기성세대보다 젊은세대가 더욱 큰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수성 실장은 “어르신들은 기술직에 대해 성실한 노동자로 좋게 봐주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의사·변호사·대기업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교육열은 중요한 자산이지만, 모두가 대학을 졸업해 똑같은 직업을 향해 달려가는 건 경제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부정적이라며 직업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한파 학자인 휴 패트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소수의 좋은 대학과 몇 안 되는 일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며 “이런 야망과 근면성실함이 한국을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청년 패자’를 양산하는 사회적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의사나 변호사, 대기업 직원이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모든 직업이 존중받고 충분한 보상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배정원 기자
모든 젊은이가 다 의사나 판검사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들이 다 공사현장에 뛰어들어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당신 아들이, 혹은 당신이 그 현장에 가서 한달만 일을 한다고 하면 이런 얘기 절대 안 나올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도배사, 도장기사, 목수에게 늘 고정적인 일자리가 주어지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도 사람들이 알아야할 현실입니다. 일이 있으면 한 달에 500만원을 벌지만 일이 없으면 그냥 놀아야 하고 기술자가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현실입니다.
솔직히 저도 혹 해서 현장에 몇 차례 나갔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열악한 현장을 만든 것이 더 기성세대의 잘못인데 이게 쉽게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