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부리던 농장주 짓이었다…‘좀비’ 탄생시킨 악덕 거짓말
#궁궁통1
여러분은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무언가
괴기스럽고.
흉측하고,
공포스럽죠.
그런데
좀비에 얽힌
역사를
알고 나면
달라지실 겁니다.
오히려
슬프고,
아프고,
가슴 저미는
느낌이
드실 테니까요.
왜냐고요?
좀비는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의
슬픔 속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궁궁통2
신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인들이
카리브해의 아이티 섬에
들어왔습니다.
섬의
원주민들은
백인이 옮긴
전염병 때문에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설탕이
아주 인기였습니다.
귀족들이 애용하는
고급스러운
식재료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사탕수수 씨앗을 가져다
아이티 섬에
심었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그런데
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로 가서
흑인들을 잡아 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로
부렸습니다.
당시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였습니다.
사탕수수 농사
덕분에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로
꼽혔습니다.
1789년께에는
아이티 섬에
무려 50만 명의
흑인 노예가 살았습니다.
아이티 인구의
90%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삶은
참담했습니다.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해야 했습니다.
임신한 노예도
쉴 수 없었습니다.
출산 직전까지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주인이
가족을 팔면
생이별을
해야 했고,
노예로 태어난
아이는
농장주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먹는 음식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작업 속도가
느리거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식량을 훔치거나,
도주하다가
잡혀 오면
채찍으로 50대까지
맞았습니다.
인두로
낙인을 찍고,
귀나 햄스트링을
자르고,
철로 된
사슬을
목이나 발목에
채웠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몸에 꿀을 발라
곤충에게
쏘이게 하고,
배가 고파
사탕수수를 먹다가
발각되면
입에
주석으로 된 마스크를
씌우고,
심지어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의 삶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궁궁통3
아프리카의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백인에게
사슬에 묶인 채 끌려와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던
흑인들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아서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아이티로 잡혀 온
흑인 노예의
연간 사망률은
5~10%였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자살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지
얼마 안 된
노예일수록
자살률은
더 높았습니다.
심지어
노예선에서
잡혀 올 때
바다에 뛰어들어
집단 익사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살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옥 같은
노예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민속 신앙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조상들의
영혼이 사는
고향,
기넨으로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다시 말해
고향으로의
‘영적 귀환’이었습니다.
#궁궁통4
아이티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는
당시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은
전통적으로
가톨릭세가 강합니다.
프랑스는
아이티의
흑인 노예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처음에는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믿어야만
죽어서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들은
가톨릭의 천국보다
조상들의 영혼이 있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세례와 개종을
강제하고,
아프리카 종교를
금지했습니다.
결국
흑인 노예들은
타협책을
찾았습니다.
가톨릭의
성인 숭배를 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아프리카의 신 로아를
숭배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톨릭 신앙과
아프리카 민속 신앙이
서로
섞이게 됐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종교가
부두교입니다.
‘부두(Voodoo)’의 어원은
‘보둔(Vodun)’입니다.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궁궁통5
부두교에는
‘보코’라고 하는
부두교 사제가
있습니다.
그는
독초나
복어의 독을
이용해
사람을
가사 상태로 만든 뒤,
다시
살리는 의식을
하곤 했습니다.
독에 취한
사람은
아무런
의지나 영혼도 없는
존재로 비칩니다.
초점 없이
멍한 눈동자와
보코가
시키는 대로 조종되는,
마치
살아 있는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을
아프리카 콩고어로
‘잠비(Nzambi)’ 혹은 ‘줌비(Zumbi)’라고
불렀습니다.
노예들의
자살률이 높아지자
식민지 지배자들과
일부
보코 사제들이
결탁했습니다.
그들은
자살할 경우
조상들의
영혼이 사는 아프리카 땅,
기넨으로 가지 못하고
보코에게
영혼을 빼앗긴 채
살아 있는 시체가 돼
영원히 노예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흑인 노예들을
두려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눈앞에
좀비가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좀비가 되는 걸
무서워했습니다.
그럼
죽어서도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궁궁통6
19세기에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1915~34년
미군정기를 거쳤습니다.
미군정기에
윌리엄 시브록이
『마법의 섬(The magic island)』(1929) 이란
책을 통해
아이티에서 만난 좀비를
서구 사회에
처음으로
소개했습니다.
1932년에는
영화 ‘화이트 좀비(White Zombi)’가
제작돼
미국 대중문화에
좀비물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이후
세대를 관통하며
온갖 좀비물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물에는
역사 속에서
흘렸던
아이티 흑인 노예들의
눈물이
지워져 있습니다.
단순한
공포물의 소재로만
취급되고 있지요.
살아서
가지 못하니,
죽어서라도
간다는
삼사백 년 전
흑인 노예들의
슬픔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좀비의 역사를
보면서
저는
각별히 찡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가장 두려워한 건
좀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이
좀비가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는
대목입니다.
인간의 근원,
존재의 뿌리,
영혼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는
대목입니다.
사실
그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존재의
뿌리,
영혼의 고향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 어디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출처:중앙일보] 백성호-종교전문기자